《불의와 불이익, 민주주의와 볼셰비즘》
■ 탄핵 시위는 축구응원
민주주의를 볼셰비즘 으로 오해하는 이들이 많다.
★ 다수의 주장이 무조건 정당하고, ★ 남의 책임만을 찾으며, ★ 기존 질서 파괴를 통해 후려한 감정풀이를 하는 것.
그건 민주주의가 아니다. 탄핵 시위 모습을 보면 축구 응원과 달라 보이지 않는다.
“불의는 참아도 불이익은 못참는다” 탄핵 시위에 앞장 선 이들은《불의를 못참아서》라고 말할 것이다. 정말 그럴까.
공공선을 위해 나선 이들이 존경을 받는 건 이유가 있다. 뭔가《불이익》을 감수했기 때문이다. 《탄핵》을 목청껏 외치는 이들은 무슨《불이익》을 감수하고 있을까. 모여서 노래 부르고 춤추며, 사진찍고 흡사 공짜《쇼》를 즐기는 듯하다. 솔직히, 그들이 감수하는《불이익》은 없다.
황당한 건, 그 와중에《특정 정파의 정치적 이익이 극대화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사회적 비용》으로 이어진다. 탄핵 시위에 나선 이들에게 묻자. 자신들이 외치는《민주주의를 위해 그들 스스로 비용 지출을 감당》할 수 있을까. 막상《돈을 내야 한다고 하면, 그 정의가 필요 없다며 순식간에 돌아 설 사람들》이 많다.
민주주의는 공짜가 아니다. 그《비용은 책임과 의무》다.
■ 시스템 망가진 대한민국
지적이 새삼스럽지만,《대한민국은 도덕적 해이가 보편화된 나라》다.
★ 성실 근무자가 가장 피해자가 되고, ★ 근로 의욕이 떨어지며, ★ 결국 자신을 지키기 위해 도덕적 해이에 동참하게 된다.
《시스템이 망가진 나라》다. 《민주주의를 명분 삼아 도심을 질주하는 트랙터들》을 보노라면, 《민주주의라는 말이 무색》하다. 민주주의는 국민 모두 존중을 받자는 것이지, 일부 국민이 나서 대통령의 국정 운영을 가로막는 게 아니다. 민주주의가 대통령 1인의 결단으로 이뤄지는 것도 아니다. 대통령이 민주주의를 금지한 것도 아니고 으슥한 곳에 감춘 것도 아니다. 민주주의는 백성들이 실천하는 것이다. 탄핵에 광분한 이들 스스로 얼마나 민주적인지 물을 일이다. 민주주의를 열렬히 외치는 이들 중에 실제 태도가 비민주적인 이들도 많다. 고압적이고 오만한 태도, 남을 차별하고 무시하는 태도, 자신과 생각이 다르면 적대시하는 태도 등.
그뿐이 아니다. 자신은 존중받길 원하면서, 정작 남은 존중하지 않는다. 폭언도 다반사다. 남에게 피해를 끼치면서 남을 존중한다고 말하면, 그야말로 천연덕스러운 거짓말이다. 전국에서 탄핵을 목청껏 외치는 이들은 스스로 생각해볼 일이다. 정말 남을 존중하는지.
그토록 남을 존중하는데, 어떻게 OECD 국가 중에 한국이 사기범죄가 가장 많을 수 있을까. 검사 출신 전 국회의원이 쓴 책을 보면, 신고된 사기사건이 평균 2분마다 한건 씩이라고 한다.
그뿐인가. 《한국은 불쾌감을 주고 받고 피해를 끼치고 받는 게 생활화된 나라》다.
★ 시끄럽게 떠들기, ★ 갓길주차 또는 이중주차하고 늦잠자기, ★ 층간소음 일으키기, ★ 제 자식은 금쪽 남의 자식은《하빠리》로 취급하기, ★ 자식과 짜고 학교에 천연덕스럽게 거짓말하기 등. 그뿐 아니다. 《전국 공공기관에서 벌어지는 도덕적 해이》를 보라.
★ 짜고치고 밑장빼기 식으로 누군가에게 일감 몰아주기, ★ 세금 포탈하기, 공돈 삥땅치기, ★ 선관위처럼 음서채용해서 흙수저들 일자리 약탈하기 등. 손에 다 꼽을 수 없을 정도다.
《한국인은 그런 게 융통성이라고 말하는 경향》이 있다. 황당한 건,《그렇게 앞 뒤 다른 이들이 부정사익 추구에 열을 올려오다 별안간 민주주의를 열렬히 외친다는 것》이다. 그 경우,《열렬함이 더 위험》할 수 있다.
■《무질서·개판》이《노멀》이 된 나라
판단 오류는 누구나 할 수 있다.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이젠 차분하게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기다릴 때다.
《부정사익 추구에 열을 올려온 이들이 큰 사회적 비용을 일으켜가며 대통령 탄핵을 외칠 자격이 있는 지》 물을 때다.
탄핵 시위에 나선 이들 모두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이들이라면, 《한국이 이렇게 무질서 한 나라는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 모두 정말 양심적이고 정치적 식견이 높은 이들이라면, 지금《민주당의 천박한 행태를 그냥 두고보지 않을 것》이다. ■ 이재명당 이윤추구에 이용 당하는 백성들
지금《한국 좌파의 행태는 영낙없는 조선시대 백성들의 모습》이다. 기근이 발생하면, 궁궐 앞으로 몰려가 곳간을 풀어달라고 읍소하던 서글픈 백성들 같다.
형식만 약간 바뀌었을 뿐이다. 《당시엔 읍소》를 했고, 지금은《대통령을 상대로 민주주의 내놓으라고 협박》하는 식이다.
민주주의는 임금이 백성들을 긍휼이 여겨 내려주는 소비재가 아니다. 임금과 백성들 모두에게《권리와 함께 의무가 주어지는 사회계약》이다. 예외는 없다.
하지만 한국 좌파는 스스로 예외라고 생각한다. 허구적 민주주의가 아닐 수 없다. 그렇게《남에게만 의무이행을 강요하는 게 바로 볼셰비즘》이다. 탄핵을 외치는 사람들에게 말한다. 탄핵소추안은 이미 국회에서 가결됐다. 이젠 일상으로 돌아가, 차분하게 헌법재판소 결정을 기다릴 때다.
《조기대선을 위해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는 건 특정 정파의 정치적 이윤을 극대화하는 방법》일망정, 민주주의는 결언코 아니다. 진짜 민주주의라면, 법률이 정한 절차에 따라 대통령에게 변론의 기회를 주고 차분하게 그 결과를 기다려야 한다. 직무정지 기간 동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그 직무를 맡으면 되는 것이다. 대통령도 국민이다. G8 경제강국 한국도 이제 성숙한 민주주의를 위해 작은 것 부터 실천해야 할 때다. 실상 그 실천이 어려운 것이다.
민주당과《개딸》들은 자신들 스스로 민주주의를 실천하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착각이다. 《그들은 이윤을 챙기는 중》이다. 그건 상업주의를 실천하는 것이지,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게 아니다. 앞서 언급했지만,《민주주의 실천이 어려운 건 그 실천에 비용이 따르기 때문》이다. 그《비용은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것》이다.
실은 그것만으로 충분치 않다. 그건 필요조건일 뿐이다. 《다른 시각과 생각을 수용하고 존중하는 게 충분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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