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동훈 현상
《한동훈 사태》또는《한동훈 현상》은 한국《좌·우 대결사》의 한 파생적 현상으로서 특기할 만하다. 한국 현대사의 중심 테마는 뭐니 뭐니 해도《좌와 우의 사생결단》이다. 《한동훈 현상》은 한 개 부수적인 해프닝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런 해프닝이 이번에 처음 있었던 일이 아니라, 끊임없이 반복돼 일어났다는 사실을 중시해야 한다. 멀리 갈 것 없다. 이명박 시대, 박근혜 시대, 윤석열 시대만 두고 봐도《보수》안에선 번번이 똑같은 종류의《반란》이 일어나곤 했다. ※ 이명박 땐 대통령 자신이 “나는 보수가 아니라 《중도실용》” 이라고《반란》했다. ※ 박근혜 땐《비(非) 좌파》라면서도 바른미래당 소속 62명 이《탄핵》에 가담했다.
※ 윤석열 시대에 와선 국민의힘 12명 이《탄핵》에 가담했다. 김무성, 유승민, 이준석, 한동훈, 안철수, 김상욱 플러스 …
이런 유형은 정계뿐 아니라 지식인계, 사회운동, 언론계, 문화계, 종교계, 법조계에도 수두룩하다.
그들의 변명인즉, “나는 좌파는 아니다. 그러나 우파도 아니려고 한다. 중도다.”
말이《중도》이지, 실은《좌파에 밀리기로 한 우파》다.
■ 정체성 혼란, 이중성, 허위의식
왜 이런 부류가 생겼나?
《오셀로(Othello)의 열등의식》이다. 윌리엄 셰익스피어 연극의 주인공 오셀로 는 북아프리카 무어족 출신이다. 그런 그가 베니스의 지배자가 되었다. 서양 미인 데스데모나를 아내로 맞았다.
그는 흑인이면서도 백인의 가치관, 문화, (흑인에 대한) 차별, 서구적 습속을 내면화했다. 이건 뭘 말하는가? 《정체성의 혼란, 모순, 위기, 이중성》이다. 《허위의식》이다.
그의 정신 분열은 자신을 비극적 파멸로 이끌었다. 이 이중성, 허위의식, 파탄 을《현대 좌익의 시각에서 재해석》한 사람이 프란츠 파농(Frantz Fanon 1925~1961. 프랑스 정신과 의사)이다. 카리브해 일대의 흑인에 대한 백인 식민 통치의 효과에 대한 파농 의 설명은 간단하다. 백인들의 세뇌(洗腦)로 인해 흑인들도 자신의《열등함》을 은연중 받아들인 결과가 되었다는 것이다. ■ 운동권 앞에만 서면 왜 자꾸 작아지나
이《공식》을 오늘의 일부《투항 우파》에 적용하면?
그들은 대학사회가 온통《종속이론, (新)식민주의론, 민족해방론》에 열광, 《우파=반민족=반민주=반민중=수구반동=친일파=친미파=반통일》 어쩌고로 미쳐 돌아갈 때 학부생이었다. 그들은 겁이 많아, 좌익 중심부로는 들어갈 수 없었다. 남들이 데모할 때, 도서관에 틀어박혀 사법고시 공부나 열심히 했다. 이래서 그들은 출세 가도를 달렸다. 《머리는 아류 진보, 몸은 왕 부르주아》? 그래서였나? 그들은 “운동권 앞에만 서면 나는 왜 자꾸 작아지나요?” 라 느꼈다. 《오셀로의 열등의식》이었다.
이래서 그들은《우파 안에 터 잡은 ‘반(反) 우파’》를 자임했는지 모른다. 기득권층에 속하면서도《진보적인 체하는 위선자》들. 이들의 선대는《우익 권위주의 시절엔 꿀 빨던 계층》인 경우도 많았을 터? ■ 우린, 너희들 한 짓 절대 잊지 않을 것
저들은 우파를《극우, 꼰대》라 모략한다.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밀턴 프리드먼이《극우》?
그들은 우파 정부를 극좌와 함께 두 번씩 전복한《배신의 아이콘》이다.
정통 자유주의 세력은, 《지난 여름 너희가 무슨 짓을 했는지》 절대로 잊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한동훈 이 퇴출당한 후에도《내각제(또는 이원집정제)개헌》을 내세워《오셀로의 복권》을 집요하게 노린다. 자유인들은《이 날치기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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