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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담] 한동훈 정치명줄 깎아먹는 김경율

오주한

말 그대로 지극히 개인적인 소견의 담론

콜라도 무엇도 아닌 불안돈목에 헛웃음만

 

예나 지금이나 독설가들은 많다. 해당 분야의 ‘본좌’라면 한고조(漢高祖‧생몰연도 기원전 247~기원전 195)가 있다. 그는 “하찮은 유생(儒生)놈” “조무래기” “도적놈” 등 당대로서는 파격적인 욕설을 아무렇잖게 내뱉기 일쑤였다.

 

그러나 고조는 보란 듯 인심을 모아 400년 한나라 창업(創業)에 성공하게 된다. 이유는 그의 독설 상당수가 ‘악의적 악담’이 아닌 ‘시원한 콜라’ 쯤으로 많은 이들에게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사례를 보자. 패현(沛縣) 풍읍(豊邑) 중양리(中陽里)라는 시골마을 농가에서 태어난 고조의 소싯적 직업은 ‘백수건달’이었다. 그는 돈도 안 버는 주제에 동네 난봉꾼들과 어울리며 술집 들락거리고 외상으로 먹고 마셨다.

 

‘전한(前漢)’ 시기 학자인 사마천(司馬遷)마저도 사기(史記) 고조본기(高祖本紀)에서 “고조는 술과 여자를 좋아했다. 관아의 관리들 치고 고조를 업신여기지 않는 자가 없었다”고 기록했다. 실제로 고조는 술고래를 넘어 조씨(曹氏)라는 여인의 이른바 기둥서방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술집주인 왕온(王媼)‧무부(武負)는 공짜술 얻어먹고 아무렇게나 퍼질러 자는 고조 패거리를 내쫓는 대신 매번 상석(上席)에 모셨다. 고조가 특유의 걸쭉한 입담으로 손님들을 구름떼처럼 끌어 모았기 때문이라는 게 오늘날 학계의 추측이다.

 

고조의 평소 위트는 상상 초월이었다. 그의 큰형수는 친구들까지 데려와 밥만 축내는 시동생을 매우 못마땅해 했다. 한량(閑良)들이 들이닥치면 큰형수는 매번 ‘너희들 줄 음식 없다’는 눈치를 주려는 듯 일부러 큰소리로 국솥을 박박 긁었다. 정작 솥 안에는 남은 국이 있었다.

 

훗날 천자(天子)가 된 고조는 일족을 각지 왕후(王侯)에 봉하는 와중에도 큰형 유백(劉伯) 일가에게는 아무런 벼슬을 내리지 않았다. 그러다가 부친의 꾸짖음 앞에 큰조카 유신(劉信)에게 겨우 내린 작위라는 게 갱갈후(羹頡侯) 즉 ‘국 긁는 제후(...)’였다고 한다.

 

그러나 온갖 자질구레한 일화까지도 꼼꼼히 기록한 사기 등에서 고조를 원망하거나 비난한 이가 있었다는 내용은 찾아보기 힘들다. 사실 지금 봐도 솥바닥 신나게 긁어제끼는 제후 작명은 제 아무리 엄격‧근엄‧진지한 이라 해도 배꼽이 달아나기 충분한 소심한 복수이자 익살이다.

 

이러한 고조의 해학(諧謔)‧기지 덕분인지 공적인 자리에서의 무례를 종종 나무랐던 소하(蕭何)‧왕릉(王陵) 등 호걸들은 끝까지 고조의 뒤를 따랐다. 뿐만 아니라 천하 만백성까지도 고조를 끝내 저버리지 않고 지지해 한나라 건국의 일등공신이 됐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에 대한 홍준표 대구시장의 쓴소리를 두고 귀를 의심케 하는 발언이 나왔다. 한 전 위원장 영입 인사인 김경율 전 비대위원이, 본인은 그런 뜻이 아니라고 반박할 수 있겠으나, 15일 한 라디오방송에서 홍 시장을 ‘개’에 비유하는 듯한 독설을 내뿜었다고 한다.

 

김 전 위원이 무슨 의도에서 이러한 말을 했는지 모르나, 그 자신으로선 그게 ‘위트’라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그건 콜라도 사이다도 뭣도 아닌 ‘독’으로 한 전 위원장에게 작용한다는 게 정치권 중론(衆論)이다. 한참 웃어른이자 자당(自黨) 원로인 홍 시장을, 아니 그것을 넘어 무고한 ‘사람’을 다른 무엇도 아닌 ‘개’에 비유한 건 스스로 불안돈목(佛眼豚目)임을 자인(自認)한 셈이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자기들끼리 낄낄거리는 상당수 인사의 막말 논란으로 얼룩져 도마에 오른 상태다. 만에 하나 국민의힘마저도 그러한 논란 속으로 몰고 가려 한다면, 김 전 위원 발언이 한 전 위원장의 의중이라면, 두 사람은 보수정당에서 그만 퇴장함이 옳다. 수준에 맞는 둥지를 찾아 떠나는 게 그들에게도 국민의힘에게도 정신건강에 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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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한 前 여의도연구원 미디어소위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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