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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설계, 박정희 집행, 전두환 뱔전, MB 수출 … 문재인은 살해기도

뉴데일리

<체코 원전 수출이 반가우면 전두환에게 감사해야 한다>

대한민국 원전의 체코 진출이 반가운가? 그렇다면 전두환에게 감사하라.

30여년 간 원자력계를 취재했던 전직 기자이자, 문재인 정권이 무도하게 탈핵정책을 편 그해(2017) 『탈핵비판』(글마당)이란 책을 내며 대들었던 필자로서는 오해를 받더라도 이 말을 꼭 하고 싶다. 우리는 전두환을 과소평가하고 있다. 전두환도 이승만·박정희처럼 재평가해야 한다.

■ 한국 원전 가성비는 전두환으로부터

체코 내각이 만장일치로 한국형 원전을 선택했다. 이는 전적으로 [가성비] 때문이다. 2021년의 킬로와트 당 원전 건설단가는 한국형이 3,571달러, 프랑스 것이 7,931달러였다. 한국은 프랑스의 47.3% 가격으로 같은 성능의 원전을 지어줄 수 있는 것이다.

프랑스 원전을 지지한 체코 각료가 있다면, 그는 역적으로 몰릴 것이다. 이 놀라운 가성비는 전두환 정부가 만들었다.

■ 웨스팅하우스, 왜 우리 못잡아 먹어 안달?

체코 랠리는 3단계로 치러졌다.

1단계에서는 미국·러시아·중국·프랑스·대한민국이 참여했다. 그런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러시아와 중국이 탈락했다. 바르샤바조약기구 회원국으로 있다가 NATO 회원국이 된 체코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의 원전을 도입할 수가 없다. 중국은 러시아를 도와주고 있으니 배제해야 했다.

2단계에서 가장 불편한 상대인 미국의 <웨스팅하우스>가 탈락했다. 경수로 분야 세계 1위였던 <웨스팅하우스>는 체코가 요구한 조건을 채우지 못했다. 이것이 한 고비였다.

뒤에서 밝히겠지만, <웨스팅하우스>와 대한민국 원자력계는 사사건건 싸우고 있고, 아직 끝나지도 않았다.. 이 악연은 전두환 정권을 박살 낸 1988년의 <5공 청문회>부터 본격화했됐다.이를 아는 이는 극소수이다.

■ 15년 뒤, 또 프랑스 콧대 꺽다

1970년대 프랑스는 <웨스팅하우스>에 5억 달러로 추산되는 대가를 주고 기술을 받아 국산화를 했다. 덕분에 자국에 많은 원전을 건설, 원전용량 세계 2위가 됐다.

그런 프랑스가 내놓은 최고의 원자로가 <유럽형 경수로(European Pressurized Reactor)>란 뜻을 가진 이다. 프랑스는 유럽을 석권해보겠다며 이렇게 이름 지었다.

그런데도, 한국에 깨졌다. 이런 의 실패는 원천기술 제공자인 <웨스팅하우스>의 패배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의 최고 원전은 <발전한 경수로(Advanced Pressurized Reactor)>란 뜻의 이다. 대한민국은 이 을 들고, 2009년 UAE 경쟁에서 이미 프랑스의 을 이겼었다.

그때도 가성비 때문에 이겼다. 그런데도 세계(사실은 프랑스)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그래서 [기적]이라는 말로 폄하했다.

그런데 15년 만에,그것도 유럽에서 이뤄진 리턴매치에서, 또 이긴 것이다.

이젠 기적이라는 말을 할 수가 없을 것이다. 프랑스는 [심각한 내상(內傷)]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로 몰렸다.

■ 프랑스 원전, 이제 우리 상대 못된다

2009년 UAE에 도전했던 프랑스 업체는 <아레바(Areva)>였다.이번에는 란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UAE 실패 이후 <아레바>는 많은 문제에 봉착했다.그래서 프랑스는 독일 <지멘스>를 참여시켜 로 재편(2017)했다. 그런데도 또, 진 것이다.

사업의 세계는 냉정하다. 사업 세계에서는 [뭐니 뭐니 해도 머니(money)가 최고]이다.

따라 올 수 없는 가성비 때문에, 도 <아레바>처럼 몰락의 길로 갈지 모른다.

영국은 서방국가 최초의 원전을 만든 나라디. 하지만 영국형 원전은 경제성이 없어 완전 도태됐다. 지금 영국은 한국에 원전 건설을 타진하는 나라로 전락했다.

<웨스팅하우스>가 다른 방식으로 대한민국 원전을 물고 늘어지는 것도 [따라올 수 없는] 가성비 때문이다. 자칫하면 는 프랑스에 짓는 원전 사업도 놓칠지도 모른다. 프랑스가 영국의 뒤를 밟지 말란 법은 없다.

■ 이승만의 놀라운 혜안

이 놀라운 사실의 초석을 전두환 정부가 놓았다는 것을 우리만 모르고 있다. <웨스팅하우스>와 좌파가 결합해 [이미지 조작]을 해놓았기 때문이다.

잠시 과거로 돌아가 보자.

대한민국 원자력 산업은, 이승만 건국대통령이 터를 닦았다. 전쟁 직후인 1955년, 미국을 상대로 <한미원자력협정>을 맺게 한 대통령이 우남 이승만.

그는 문교부 교육기술국에 <원자력과>를 설치해 원자력 업무를 담당하게 했다. 1958년에는 아무 것도 없는 상태인데도 불구, <원자력법>을 만들게 했다.

1959년엔, 장관급이 이끄는 행정부 조직으로 <원자력원(院)>을 만들었다.이어 대한민국 최초의 국책연구소인 <원자력연구소>를 세우고, 연구용 원자로를 도입하게 했다. 당시 상황에선 가당치도 않은 일을 한 것이다.

■ 박정희의 강력한 추진력과 집념

박정희 대통령이 이를 이어 받아 가속화 했다. 1971년 당시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고리 1호기> 기공식을 한 것. 그리고 인도의 예에 주목해, 중수로 도입을 추진했다.

경수로에서 나온 [사용후 핵연료]는 재처리를 해도 얻는 플루토늄이 적다.하지만 중수로는 많다. 캐나다는 [영국의 확장체]인 영연방 일원이다. 같은 연영방 소속이기에, 인도는 캐나다에서 중수로를 도입했다. 그리고 1974년, 몰래 [사용후 핵연료]를 재처리해 만든 원폭(플루토늄탄)으로 “운하를 파는 발파를 한다”며 폭발 핵시험을 했다.

이를 본 박정희와 대만의 장개석이 동시에 캐나다산 중수로 도입을 추진했다. 이를 미국이 결사적으로 방해했다.

당시 미국은 이른바 [핑퐁외교]로 중공과 관계 개선을 추진중이었다. 안보 불안을 느낀 장개석은 미국과 사이가 틀어지면 안 된다고 봤는 지, 순순히 사업을 취소했다.

박정희는 달랐다. 당시 대한민국은 <핵확산금지조약(Nuclear Nonproliferation Treaty, NPT)>에 가입하지 않고 <웨스팅하우스로> 하여금 <고리 1호기>를 짓게 하고 있었다.

박정희는 미국과 [NPT에 가입하는 조건으로 중수로를 도입한다]고 합의했다. 때문에 1977년 중수로인 <월성 1호기> 기공식을 할 수 있었다. 이것이 대한민국이 만든 두 번째 원자로이다.

이어 <고리 2호기> 건설에 착수하고, 이듬해인 1978년에는 <고리 1호기> 준공식과 함께 <고리 3·4호기> 기공식을 하는 집념을 보였다.

■ 미국과 사사건건 충돌, 박정희의 비극 초래하다

그러나 국제정세는 대한민국에 불리하게 돌아갔다. 중국공산당의 중국을 상대로 핑퐁외교를 해온 미국이 1979년 중공과 복교한 탓이다. 유엔에서는 대한민국에 있는 <유엔사>를 해체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았다.

1977년 취임한 카터 미국 대통령은 주한미군을 완전 철수하려고 했다. 그에 대한 반발로 박정희는 1978년 <한미연합사>를 만들고 에 가입하면서 중수로인 <월성 1호기>를 짓게 했지만, 안보 불안은 사그러들지 않았다.

그때 박정희가 주목한 것이 <웨스팅하우스> 기술을 도입해 원전 국산화를 하고 있던 프랑스였다. 중수로 도입을 추진한 1975년, 박정희는 프랑스와 <원자력협정>을 맺고, 이듬해부터 핵연료 재처리 연구시설을 도입한다는 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이 사업은 미국의 방해로 실현되지 못했다.

■ 원전 갈등애 미사일 충돌까지

1979년 박정희 정부가 <백곰> 미사일을 개발한 것도 다시 볼 필요가 있다. 1970년대 중반 미국은 신형 방공(防空) 미사일 <패트리어트>를 개발해 <나이키 허큘리스>와 교체했다. 주한미군은 도태하게 된 <나이키 허큘리스>를 한국군에 넘겼다.

<국방과학연구소>는 이를 토대로 <백곰>을 개발했다.

<나이키 허큘리스>는 비행기를 잡는 지대공 미사일이지만, 지대지로도 사용될 수 있다. 지대지로 사용할 때는 소형 핵탄두도 달 수 있다.

한국은 <백곰>을 지대지로만 개발했다.이는 장차 핵탄두를 붙여보겠다는 암시이기도 했다.

<백곰> 개발이 알려지자, 미국은 위컴 주한미군사령관을 통해 개발을 중지하라는 경고 서한을 보냈다. [핵연료 재처리]에 이어 [미사일 사업]도 멈추게 된 것이다.이런 이유로, 박정희는 카터가 이끄는 미국과 사사건건 충돌했다.

그러던 1979년, 역사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그해 3월 28일 미국에서 <스리마일 섬 원전 2호기> 사고가 발생했다. 카터는 미국 내 신규 원전 건설 중단을 결정했다.

그 해 10월 26일엔 박정희 대통령이 스나이더 미국 대사를 자주 만나온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총격을 받아 시해됐다. 그리고 <12·12>를 거쳐 1980년 9월 한국에서는 전두환 정부가 출범하고, 1981년 1월 미국에서는 레이건 정부가 등장했다.

전두환 대통령은 대통령이 된 레이건의 첫 손님으로 미국을 방문해 난마처럼 얽힌 문제를 정리했다. 가장 중요한 것이 [주한미군 철수] 였는데 이를 중지하기로 한 것. 대신 [핵 개발]도 중지하기로 했다.

이를 입증하기 위해 우리는 <원자력연구소>를 <에너지연구소>로 개편했다. 그리고 미국의 지원을 받아 <현무> 지대지 미사일을 개발하는데, 사거리는 180㎞로 제한하기로 했다.

박정희는 미국과 싸우면서 국익을 챙겼지만, 전두환은 미국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며 국익을 챙겼다.

그리고 일본으로부터 [경협 차관]을 받아 침체에 빠진 한국 경제를 일으킨다는 합의도 했다. 서울올림픽 유치에 성공하자 전두환 정부는 일본으로부터 받은 [경협 차관]으로 둑을 겸한 강변도로를 만들며 한강을 정비하고 각종 사회 인프라 정비에 나섰다.

박정희가 토대를 놓은 [물류(物流)혁명]이 가속화 됐다. 기업하기 좋아진 것이다. 덕분에 경제가 일어나면서 에너지 수요가 급증했다. 전두환 정부는 원전으로 대응했다.

1981년 미국의 환심을 사기 위해 <영광 1·2호기> 공사는 <웨스팅하우스>에 주었다. 그러나 이듬해 <울진 1·2호기>는 국산화 이후 수출을 위해 저가 공세를 하고 있던 프랑스의 <프라마톰>(아레바의 전신)에 맡겼다.

한국은 미국 독점 시장이 아니란 암시를 준 것이다. 그리고 담대한 원자력 외교를 펼쳤다. 대한민국에 원전 기술을 제공하는 기업이 있으면, 그 기업에게 <영광 3·4호기> 공사를 주겠다고 한 것.

<웨스팅하우스>는 <고리 1·2·3·4호기>와 <영광 1·2호기>를 짓거나 짓고 있었으니, 기술제공에 부정적이었다. 프랑스도 그러했다.

그러나 스리마일 섬 사고 이후 일감이 없어 허덕대던 <컴버스천 엔지니어링>은 적극적으로 나왔다. 1986년 전두환 정부는 <영광 3·4호기> 공사를 이 회사에게 주었다.

■ 전두환의 현명한 선택

그러자 줄곳 이 회사와 경쟁해온 <웨스팅하우스>가 발끈했다. 그러나 이미 배는 떠난 다음이었다. 미국 기업 간의 경쟁이라, 전두환은 미국 정부의 눈치를 보지 않고 매정하게 나갈 수 있었다.

<영광3·4호기>를 짓게 된 <컴버스천 엔지니어링>에 우리 기술자를 보내 이 회사가 만든 <시스템 80> 원자로 설계술을 익히게 했다. 그리고 <시스템 80>과 비슷한 한국 표준형 원전 를 설계, <영광 5·6호기>와 <울진 3·4·5·6호기>에 적용, 완전한 기술 습득을 이뤄냈다. 건설은 노태우 정부 때 이뤄졌지만, 그 기틀은 전두환 정부가 만든 것이다.

노태우 정부는 박정희의 뜻을 잊지 않고 1991년 10월 9일 중수로인 <월성원전 2호기>도 건설했다. 그후 2 기를 더 지어 <월성 중수로>는 4 기가 됐다.

■ 한국 원전 가성비의 비밀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시절, 우리는 를 짓느라 정신 없었다. 동일 기종을 지으니 동일부품이 대량으로 필요해지면서, 강력한 공급망이 만들어졌다.

단일 기종을 대량으로 지은 덕분에 대한민국 원전은 따라올 수 없는 가성비를 갖게 됐다. 족발집도 모여 있어야 가격이 싸지고 맛도 있어진다. 원전은 더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모델을 다양화했다. 와 용량(1000MW)은 같지만 보다 최적화(optimized) 한 을 설계, 2007년부터 <신월성 1·2호기>와 <신고리 1·2호기>에 대입했다.용량을 1400MW로 늘린 도 설계, UAE에 도전했는데 성공했다.2009년 <신고리 3·4호기>를 지으면서, UAE의 <바라카 원전> 건설을 하게 됐다. 과 은 동일 부품을 쓰니, 가격 경쟁력이 확보됐다.

스리마일 섬 원전 사고로 프랑스와 일본을 제외한 거의 모든 나라가 원전을 짓지 않을 때, 우리는 원전을 대거 지어 기술 자립과 함께 에너지 부국이 된 것이다.

■ 웨스팅하우스, 뒷 끝 작렬

이러한 성공에 가장 배 아파한 것이 <웨스팅하우스>다. 1986년 전두환 정부의 제의를 보이콧했던 <웨스팅하우스>는 전두환 정부의 의지를 알고 경악했으나, 이미 떠난 대한민국호를 돌려세우진 못했다.

때문에 1988년 여소야대의 국회가 <5공 청문회>를 열자 야당에 많은 제보를 했다. 내용은 전두환 정부가 돈을 받고 성능 미달의 <컴버스천 엔지니어링> 원전을 선택했다는 것. 제보는 민주당과 평민당에 집중됐기에, 이들이 다수인 <5공 청문회>에서 한국형 원전은 난도질을 당했다.

그리고 수사로 이어졌다. 그러나 단 한 명도 유죄를 받지 않았다. 캐고 캐고 캐도 부정은 없었다.

그러나 이때 이후 민주당 계열은 [반핵] 이 됐다. 문재인 정부가 탈핵정책을 펼친 것도 이런 선택의 연장선이다.

천만다행인 것은 노태우-김영삼 정부가 전두환 정부의 원자력 결정을 뒤엎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덕분에 대한민국 원전은 먼저 기술 자립을 한 프랑스마저 따라 잡게 되었다.

■ 민주당과 웨스팅하우스의 이상한 연대

한국에 기술을 준 <컴버스천 엔지니어링>은 후속 일감을 잡지 못해 추락하다가 <웨스팅하우스>에 합병됐다. <컴버스천 엔지니어링>은 한국으로 씨를 뿌린 뒤, 적에게 잡아 먹힌 것이다.

그러나 <웨스팅하우스>도 사정은 좋지 않았다. <웨스팅하우스>도 크게 쇠락해 캐나다 투자회사가 대주주가 되는 처지가 됐다. 투자회사가 주인이 됐으니, 이 회사는 수익만 노리는 회사로 변모했다. 가격 경쟁에서는 이길 방법이 없으니 <웨스팅하우스>는 한국형 원전에는 <컴버스천 엔지니어링> 기술이 들어 있다며 번번히 시비를 거는 것이다.

[악에 찬] <웨스팅하우스> 주장이 민주당으로 집중됐다. 좌파는 [반핵], 우파는 [친핵]인 정치 지형이 만들어졌다.

■ 문재인, 역대 대통령 중 제일 흉측한 짓거리 했다

정치구도가 어쨌든 우리는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원전으로 돈을 벌어야 한다. 민주당과 반핵단체가 아무리 떠들어도 대한민국 원전은 UAE에 이어 또 다시 수출에 성공했다.

이런 성공의 뒷면엔 전두환과 박정희와 이승만이 있다. 반면, 문재인은 오만했던 <웨스팅하우스>의 원한을 이용해, 대한민국 원전을 불구로 만들려 했다.

음수사원(飮水思源). 한국 원전의 체코 수출에 기뻐한다면, 누가 수출이 가능하게 했는지부터 봐야 한다.

우리는 이승만의 원모심려(遠謨深慮), 박정희의 집요한 실천력, 전두환의 뚝심, 이명박의 판매력을 평가해야 한다.야당은 더 이상 <웨스팅하우스>의 장난에 놀아나면 안된다.

강조하고 싶은 게 또 하나 있다.전두환 정부는 미국이 멈춰 세운 지대지 미사일 개발을 살려내 <현무>를 개발하게 했다. 미국의 부품을 도입해 더 나은 미사일을 만든 것이다.

지금 <현무>는 ICBM 수준으로 개발돼 있다. 다만 핵탄두가 없을 뿐이다.그 대신 어마어마한 중량의 제래식 탄두가 탑재되어 있다. 서울은 핵 없는 [괴물] 미사일을 보유하고 있고, [평양것들] 은 핵탄두 달린 미사일을 갖고 있는 게 한반도가 처한 서글픈 현실이다.



http://www.newdaily.co.kr/site/data/html/2024/07/19/202407190011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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