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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휴전 전쟁’= 아이크 "휴전 불응땐 손 뗀다" … 이승만, 미국 협박 폭로 "분단은 사형선고, 국민은 나를 따르라!" 단독북진 횃불 … 미, 에버레디 작전

뉴데일리

“침략 원흉이 급살 맞았다니 원한 풀어야겠다”“통일 방해자가 사라졌으니 드디어 통일의 날 온다”“전쟁 곧 끝나겠네, 단독북진 내 고향 찾으러 가자” 스탈린의 죽음은 통일을 기다리는 일반 국민도 정치인들도 참호 속의 군인들까지도 춤추게 만들었다.어찌 한국뿐이랴. 가장 신이 난 것은 ‘휴전’을 공약한 미국대통령 아이젠하워였음은 말할 것도 없다. 영국 처칠도 유엔도 참전국들도 마찬가지, 바야흐로 전 세계가 둥둥 부풀었다.드디어 모스크바 클렘린에서 눈 빠지게 기다리던 희소식이 날아든다.새 수상 말렌코프(Georgy Maximilianovich Malenkov, 1902~1988)가 첫 연설에서 ‘낭보’를 터트렸다. 스탈린 사후 열흘, 3월15일 수상에 취임한 그는 소연방최고회의 1,339명 앞에서 “미국과 평화적 협의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자‘고 제안한 것이다.얼씨구나! 아이젠하워는 나흘 후 19일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화답한다. ”미국은 정당하고 명예로운 평화 달성을 위해 가능한 모든 조치를 강구할 용의가 있다“

◆판문점 회담 재개...’부상포로 교환‘ 협상 6일 만에 타결

스탈린의 사망효과가 가장 빠르고 큰 곳이 판문점이었다. 장애물이 없어지자 막혔던 봇물이 터진 듯, 오래 닫혔던 협상의 문이 열리고 양측은 마주앉았다. 완전히 태도가 달라진 공산측은 유엔 측이 제시하는 조건들을 모두 수락, 가장 고민꺼리였던 포로송환문제가 술술 풀린다. 그동안 한사코 반대해왔던 ’포로의 직접송환 원칙‘부터 두말없이 동의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우선 골치 아픈 ‘본국송환거부 포로’문제는 미뤄놓고 ‘부상포로’ 송환부터 흥정하는데 일주일도 안 걸려 결론이 났다. 스탈린이 살아있으면 어림도 없는 일이다.드디어 4월11일 부상포로 교환협정을 조인하는데까지 성공한다. 공산측은 중단되었던 전반적인 휴전협상 재개를 제의하고 클라크도 긍정적이다. 이런 속도라면 한국전쟁 휴전협상 전체가 5월중엔 타결되리라는 예상까지 나온다.

◉한반도 분단 휴전설=이런 분위기를 탔을까, 한반도 분단 휴전설이 빠르게 퍼진다. 진원지는 어디냐? 알고 보니 워싱턴이다. 미국 방송들은 그 발설자가 국무장관 덜레스라며 기정사실로 받아들인다고 했다. 불꽃에 처칠이 기름을 붓는다.”한국 통일은 휴전협정이 조인된 이후 정치회담을 열어 해결하기 위해“ 미-영 단일안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정상회담을 열자는 제안이다. 정치회담을 열어 통일? 속보이는 꼼수였다.

◆이승만, ”국토분할 휴전 반대...한국 운명을 한국이 알게 하라"급박하게 돌아가는 판문점과 국제정세를 지켜보던 이승만도 마침내 입을 열었다.[워싱턴14일발UP=동양] 대한민국대통령 이승만 박사는 13일 한국을 양단하는 여하한 한국전쟁해결도 ’공산군에 대한 유화(宥和=양보)‘라고 언명했다. 주미 한국대사관을 통하여 발표된 메시지에서 이대통령은 “경계선의 위치를 막론하고 국토양단에 의거하는 한국전쟁해결은 공산침략자의 승리가 될 것”이며 “조국의 경계선인 압록강까지 진격함으로써 한국전을 해결하는 것이 현재 자유의 최전선 한국의 승리일 뿐 아니라 전 세계의 승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백악관에서는 한국 분단의 가능성에 관하여는 결정에 도달하지 못하였다고 언명한바 있지만,미국이 한국 요부(腰部)에 경계선을 설정하고 한국으로 하여금 수락하기를 희망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와 큰 파장을 일으켰던 것이다.

이승만 대통령은 동 메시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한국인이 죽고 또한 우리와 함께 투쟁하고 있는 기타 유엔 제국국민을 죽인 공산군을 용인하고 국토를 분단한 채 둔다면 자기의 아들을 잃는 부모들에 대하여 우리는 어떠한 설명과 위안을 줄 수 있을 것인가. 한국군이 3년 전 경찰대의 휴대무기로써, 소련에 의해 훈련되고 소련 전차 중포 및 항공기 보급을 받은 공산군에 항거투쟁을 하였을 때 당시 한국군의 탄약부족에 대하여는 어떤 설명을 해줄 수 있을 것인가. 또한 최근 보도되는 탄약 부족을 무어라고 설명할 것인가. 이러한 결과는 우리 한국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미국 및 기타 자유제국에 대하여서도 막대한 침해를 주어온 것이다, 현재 우리가 공산주의자와 유화하고자 한다는 것은 믿을 수 없는 일이다. 만일 그러한 종전의 정치적 과오가 재차 취해진다면 우리는 한국의 운명이 어떻게 될 것인가를 알 수 있도록, 정직하고 솔직한 통고를 받아야 할 것이다.” ([조선일보] 53.4.16)

마지막 한 문장이 심장을 찌른다. “우리의 운명이 어찌 될 것인지 ’정직하고 솔직한 말‘로 알려달라”는 요구는 그동안 강대국에 휘둘려온 약소국의 피를 토하는 간청이다. 그러나 아이젠하워는 트루먼과 마찬가지로 들은 체도 않고 ’코리아 패싱‘의 일방적 휴전협상 코스를 질주하는 것이었다.

★ 미국 정부에 "통일없는 휴전 거부, 필요하면 단독 북진" 통고 [워싱턴25일발INS=합동] 대한민국 정부는 24일 미국에 대하여 “한국인민이 선택한 정부하의 재통일을 규정하지 않는 한” 어떠한 휴전이라도 이를 거부하기로 “단호하게 결심하였다”고 통고하였다. 미국주재 한국대사 양유찬 박사는 이날 극동문제담당 미국무차관보 로버트슨씨를 방문하고 이승만 대통령이 영도하는 대한민국 정부의 그러한 입장을 통고하였다.양 대사는 또한 그 휴전이 한국에 수락할 수 있게 되려면 휴전조건은 “중공군을 압록강 건너로 몰아낼 것”을 규정하는 것이라야 한다고 선언하였다.양유찬씨는 또한 미국이 중공본토를 폭격한다는 위협을 주어야한다는 맥아더 장군의 제안에 “이것은 유효한 제안”이라고 언급하였다.양 대사는 기자들과 만나 로버트슨 차관보에게 다음과 같이 통고했다고 설명하였다.“만약 한반도를 분단된 채로 남겨두는 휴전이 성립된다면 우리 국민들은 필요하다면 단독으로라도 국토의 재통일을 위한 방향으로 나아가기로 결심하였다. 설사 우리가 멸망을 당한다손치더라도 우리는 단독으로 이 길로 나아가겠다. 우리는 노예로서 생존하느니 자유인으로서 죽는 것을 택하는 바이다. 다음 두 가지 조건을 충족시키지 않는 휴전이라면 수락하지 않겠다. 1) 중공군의 완전철퇴. 2)한국인민이 선택하는 정부하의 재통일..."양 대사에 의하면 로버트슨 차관보는 한국측의 견해에 동조하기는 하나 이 목표를 달성하는 ”다른 길“도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하였다한다. ([조선일보]1953.4.27.일자)

◆아이크, 소련에 중대 방송...”한국 휴전 위해 만나자“

이승만 대통령이 ’국토분단 휴전 반대‘를 표명한 이틀 후, 아이젠하워는 소련에 대하여 중대방송을 한다. 15일 워싱턴 TV연설에서 ”소련의 새 지도자들은 냉전정책을 포기하고, 아시아의 평화를 마련하기 위해 한국전쟁을 종결시키자“고 제안하였다. 이어서 다음주 23일에는 ”소련 대표와 어떤 노력이라도 할 수 있으며 어떤 장소에서든 만나겠다“고 말하면서 ”한국 휴전이 성립된 후에는 어떤 사람과도 만나기 위해 해외로 나갈 용의도 있다“며 더욱 적극적인 자세로 ’한국전쟁 종결‘을 위한 타협을 약속하는 것이었다.

★판문점 협상 재개 첫날 ”종전의 논쟁점 백지화“ 합의’부상포로 송환문제‘에 전격적으로 합의한 유엔측과 공산측은 본회담을 재개한다. [판문점에서 최병우 본사특파원발] 냉전의 전국면을 일변시킬지 모르는 그 첫 포석으로서 6개월의 휴회 끝에 새로운 1막을 열게 된 판문점 휴전회담 본회의는 공산측이 6개항목으로 된 포로문제 해결안을 제시함으로써 제1일부터 구체적 토의에 들어가게 되었다.25일 공산측이 처음 공개한 그들의 시안과 해리슨 수석대표가 되풀이한 유엔측 시안 3개항목을 비교하여 볼 때 양안의 공통된 점으로서,1) 포로송환문제 해결은 곧 휴전협정의 성립을 의미한다는 암묵의 양해, 이것은 쌍방이 한국휴전의 성립을 가로막고 있는 ‘유일의 장해’라는 말을 포로문제의 관사처럼 쓰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렇게 일반화된다.2) 전에 무기휴회의 원인이 된 ‘비강제송환 내지 자의(自意)송환’의 문제를 일단 백지로 환원하고, 중립국을 통하는 포로처리방식에 쌍방이 원칙적으로 동의함으로써 논쟁점을 없앤 것.3) 중립국 관리하에 일정기간 포로의 의사를 재심사하는 문제에 원칙적으로 일치한 것. .이것은 통일 없는 휴전에는 한사반대(限死反對)한다는 한국국민의 절규에도 불구하고 전세계의 눈을 집중시킨 가운데 재개된 휴전협상 제1일에 단 70분 만에 나온 합의들이다. ([조선일보]1953.4.28일자). ”포로송환 해결=휴전 성립”이란 당시 일반화된 인식이다. 정전선(停戰線:Cease-Fire Line) 설정문제도 휴전협정조인 시의 경계로 합의되었고, 남은 것은 스탈린이 휴전을 막기 위해 붙잡고 늘어졌던 ‘포로송환문제’뿐이었기 때문이다. 이것을 풀기위해 그동안의 ‘논쟁점’을 백지화하였으니 이제 휴전협상은 마지막 조인을 향해 일사천리로 달린다. “통일 없는 휴전을 결사반대”하는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조선일보 최병우(崔秉宇) 기자의 기사는 한탄과 절망감이 행간에 넘치고 있다.

◆이승만 “평화조건은 중공군 철퇴...한인 포로는 외국 못 보낸다”

판문점에서 ‘반공포로의 중립국 이관문제’가 합의되자 이승만 대통령은 단호한 입장을 밝힌다. 「이대통령은 29일 상오10시 경무대관저에서 기자단과 회견하고 휴전문제에 언급하여 “중공군을 먼저 철퇴시켜야 한다”고 전제한 다음, ”귀국을 희망치 않는 중공군 포로의 제3국 이송관리는 상관치 않으나, 북한출신 포로만은 한국이외의 여하한 제3국 이송관리도 절대 반대하는 바“라고 언명하였다. 이대통령은 이어 한국은 휴전을 원치 않는다고 말하고 한인포로의 타국이송은 클라크 총사령관도 반대하고 있다고 부언하였다.”중공군이 한반도에 머물러 있는 한, 평화도 없고 통일도 있을 수 없다. 그러니까 우리는 끝까지 싸워야 할 것이다. 휴전에 대한 한국정부의 5개 원칙 가운데 첫 조목이 중공군의 철퇴인 것으로 이것의 실현 없이는 무엇이든지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둘째 조항에 가서 북한 괴뢰군의 무장해제를 요구하였는데 이는 지금에 와서 필요 없게 되었다. 왜냐하면 중공군만 물러나간다면 북한 공산군쯤이야 우리가 언제 어디서든지 그렇게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북진통일의 강력한 의지를 과시하였다. ([조선일보] 1953.5.1)

▶제1군단 창설식서 ‘북진통일’ 강조=[중동부전선에서 본사 김동천 특파원1일발]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국군은 1일 제1군단의 창설을 봄으로써 육군의 획기적인 강화를 전국민 앞에 실증하고 대외적으로 시위하였다. 창설식은 1일 상오11시15분부터 이대통령 부처를 위시하여 테일러 제8군사령관, 신태영 국방장관, 화이트 제10군단장, 백선엽 육군총참모장, 이형근 제0군단장, 정일권 제0군단장 및 휘하 각사단장 등 한미 장성 다수 임석하 중동부전선 미제10군단 광장에서 거행되었다. 이대통령을 맞아 21발의 예포발사가 있은 다음 미제10군단 의장대를 화이트 중장 안내로 이대통령은 사열하였다.창설식은 먼저 작전명령 낭독에 이어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태극기, 테일러 장군으로부터 유엔기, 그리고 화이트 10군단장으로부터 미국기가 각각 미군단장에게 수여되었고 분열식이 이어졌다. 이대통령은 휘하장병에게 다음과 같이 훈시하였다.”한국민은 평화를 사랑하기 때문에 휴전을 원하고 있다. 그러나 중공군이 한국에 남아있는 현정세하에서는 어떠한 휴전도 반대하는 것이다. 한국국민은 통일 없는 휴전에 반대하며 일대 국민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것으로, 휴전성립 전에 중공군은 압록강 이북으로 철수하여야 될 것이다. 또한 한국 국민은 미국을 비롯한 유엔군이 한국에 남아있어야 행복할 것으로 믿고있으며 승리의 날까지 계속 싸워주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조선일보] 1953.5.3.일자)

★이승만 “현상태로 휴전은 20일도 못간다...필요하면 단독 북진”[서울9일발 INS=합동] 이승만대통령은 7일 현재와 같은 협상에 기초를 둔 휴전은 20일도 지속되지 못할 것이라고 선언하였다. 또 당년 79세의 노대통령은 전화를 입은 한국 2천만 국민은 북한에 중공군이 남아있는 채 성립되는 어떠한 휴전도 이를 거부한다고 언명하고, 한국은 필요하다면 단독으로라도 전투를 계속할 것이리고 경고하였다.즉 이대통령은 이날 INS통신기자에게 현재의 휴전협상을 반대한다는 한국정부의 결정을 아이젠하워 대통령에게 정식으로 통고하였다고 다음과 같이 언명하였다.”나는 한국 통일을 전제로 하지 않는 휴전은 한국정부로서는 수락할 수 없다는 것을 정식으로 미국정부에 건의하였다“ 끝으로 이대통령은 압록강까지 군사적인 총공세를 취할 것을 강력히 제창하였다. ([조선일보] 1953. 5.11일자)

★변영태 ”완충지대는 국경선 밖에, 한국영토내 설정은 불가“ ‘군사적 완충지대 설정 논의’를 보고받은 변영태 외무장관은 5월8일 이승만대통령의 지시를 받아 성명을 발표한다. . “만일 휴전을 위한 완충지대가 북한에 설정된다면 그 완충지대의 존재이유까지도 소멸될 것이다. 압록강 연안의 완충지대 설정은 만일 그것이 만주 측에 위치해진다면 우리는 환영하는 바이다. 이것은 한중 양국간에 평화를 확보하기 위하여 우리 국경선 외에 중국이 광범한 무인지대를 설정하였던 유구한 역사적 전통이 부활하는 것뿐이다. 그러나 압록강 양안에 걸쳐지거나 또는 한국영토내에 설정되는 어떠한 완충지대라도 우리는 수락할 수 없다. 왜냐하면 첫째 이렇게 함으로써 한국은 무방비상태로 들어갈 것이며 더구나 중공이 한국을 침략할지언정 우리는 결코 이때까지 중국을 침략한 사실이 없었음에 비추어 완충지대는 마땅히 중국 영토 내에 설정하여 장래 중국의 한국 침략행위를 막는 방책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조선일보] 1953.5.10일자) 지난 4월 미국은 38선 북방 80~100마일의 한반도 협소선(평양~원산)을 완충지대로 삼아 한국을 분할 휴전한다는 보도가 나와 센세이션을 일으키자 미당국이 부인하는 성명까지 발표한 바 있었다.

◆미, 포로송환 조건을 대폭 양보...공산측 안에 맞추다

5월24일 도쿄에서 날아온 휴전협상 유엔측 책임자 클라크 사령관은 25일 경무대로 이승만 대통령을 방문하고 2시간이나 극비 회담을 진행하였다. 동석자는 한국 외무장관 변영태, 미8군사령관 테일러와 주한대사 브리그스(Ellis Ormsbee Briggs, 1899~1976), 회담결과는 비밀에 붙였으나 포로석방 문제에 대하여 미국이 대폭 양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즉, 공산측이 주장하는 중립국 인도(印度)의 관리 하에 포로들의 송환의사를 심사하여 송환지를 결정한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한인반공포로를 한국 내에 석방해야한다는 종전의 안과 정면 배치되는 것이므로 이승만 대통령의 양해를 구하느라 회담이 길어졌다는 추측이 나왔다. 이승만이 수락할 턱이 없는 핵심 사안이다.

★이승만 ”생존위해 모종의 결정“ 눈물의 선언

다음날 판문점 협상에 미국의 양보안이 제출 설명되자 한국군대표 최덕신 소장이 퇴장한다.이승만은 진해 해군사관학교 졸업식에 참석하여 훈시를 하며 눈물을 흘렸다. ”대한민국은 국토를 분단하려는 여하한 국제적 협정도 단호히 거부할 것임을 재천명한다. 지금이야말로 미증유의 국난에 당면하여 총궐기해야 할 것이며 88명의 새로운 해군장교에게 극동평화는 대한민국의 육해공 3군에 달려있다“고 강조하였다. ”우리민족의 생존과 숭고한 자유를 수호하기 위하여 어떠한 결정을 결심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밝히면서 ”우리는 장난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주권과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조국이 ‘용감한 국군’을 요구하고 있다“며 눈물을 흘렸다. ([조선일보] 1953.6.2.일자)6월1일 진해 별저에서 극비리에 국무회의를 개최한 이승만은 아이젠하워에게 보낼 편지를 변영태 및 부인 프란체스카와 함께 작성한다.

◆“일방적 분단 휴전강요는 사형선고...미국을 팔아먹지 말게 하시오”

6일 재개되는 판문점휴전회담에 대한 한국의 태도가 전 세계 주시의 초점이 되어있는 이 때 이대통령은 4일 미국의 유력한 방송망을 통하여 다음과 같은 내용의 언명을 하여 중대한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이하 [조선일보] 1953.6.7.일자) NBC방송 특파원과의 단독회견은 또 다시 클라크 장군과 브리그스 대사가 이대통령과 요담을 마치고 경무대를 떠난 오후4시경부터 관저 정원에서 약 1시간 계속되었다.NBC 한국특파원 제임스 로빈슨씨가 며칠 전 제출한 질문서에 대하여 이대통령은 마이크 앞에서 대답을 낭독하였으며 기타 질문에도 일문일답을 하였다.

▶기자=아이젠하워대통령 서한에 대하여 회답을 하였습니까? 각하의 회답내용 뿐만 아니라 미국 대통령의 서한내용에 대해서도 알려 주실 수 없을까요?◉이승만=아이젠하워대통령에 대한 답신은 보냈다. 나로서는 상호간의 양해 없이 내용을 알릴 수는 없다.▶기자=만일 중공군이 북한으로부터 철퇴한다면 한국전체를 통일하기 위하여 한국군이 군사작전을 지속할 수 있습니까?◉이승만= 중공군이 한국 땅으로부터 물러나기만 하면 남북한을 통일하는 데는 문제가 없을 것이다. 한국은 자동적으로 전과 같이 통일 되고 말 것이다. 북한 괴뢰군은 우심한 타격을 받았으므로 잔적은 만주나 시베리아로 도주할 것이다. 이들은 문제가 아니다.▶기자=궁극에 있어 한국 전체를 공산권내로 끌어넣으려는 것이 공산주의자들의 장기적인 계획의 일부라고 생각하십니까?◉이승만=당신은 공산주의자들이 언제고 한국전체를 공산권내로 포괄하려는 의도를 버릴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만일 공산주의자가 무엇을 의도하고 있다는 것을 아직도 모르는 미국사람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그것을 깨달아야 할 때이다. 공산주의자들의 궁극적인 목적이 그들이 말하는 바 제국주의적이고 자본주의적인 미국을 타도하려는데 있다는 것은 과거 30년에 걸쳐 전 세계에 잘 알려진 역사적 사실이다. 우리가 한국서 싸우고 있는 것은 곧 민주주의의 보루로서미국을 지키는 것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기자=만일 한국에 휴전이 성립된다면 중공과 장래 합의를 볼 수 있는 어떠한 협정을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은?◉이승만=나는 당신이 이에 대한 답을 모르기 때문에 이 질문을 한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어느 사람이고 중공과 합의를 볼 수 있는 어떠한 협정 운운하는 사람이 있다면 무엇을 말하고 있는 가를 스스로 모르고 있다고 할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공산주의자가 약속을 지키도록 한다는 말인가? 당신이 그것을 알고 있다면 나에게 알려주기 바란다.▶기자=한국은 유엔측 신제안에 기초하여 논의 중인 휴전 협정에 조인합니까?◉이승만=내가 이미 말한 바와 같이 우리로서는 미국이 우리에게 바라는 여하한 제안이라도 이것을 수락할 밖에 없을지 모른다. 미국은 과거에 우리들을 위하여 가장 힘 써준 유일의 우방이여 또 앞으로도 우리를 위하여 많이 힘써줄 나라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우리의 솔직한 심정이다. 그러나 우리로서 항의함도 없이, 모두 아는 바와 같이 결코 평화라고 말할 수 없는 이와 같은 거짓 평화를 어떻게 수락할 수 있을 것인지 나도 알 수 없다. 이런 휴전조항을 수락한다는 것은 사형선고를 받는 것과 마찬가지다. 중공군이 우리 강토에 남아있는 한 북한이고 남한이고 생존할 수 없을 것이며 또 우리는 머지않아 제2의 중국(대만)이 되도록 강요당하고 말 것이다. 나는 최근 세계 각처로부터 특히 미국사람들로부터 편지와 전보를 받았는데 그 중에는 “그들로 하여금 미국을 팔아먹지 못하도록 하여주시오”라는 것도 있다. 나는 이렇게 말해주는 사람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나는 그분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미국을 팔아먹지 말게 하여주시오”당신이 알다시피 유엔 가맹국 중 많은 나라가 인도와 마찬가지로 반이상 돌아버렸다.우리의 유일한 희망은, 아니 자유 제국의 유일한 희망은 미국에 걸려있다. 우리는 당신들을 위하여 싸우고 있다. 그들로 하여금 미국을 팔아먹지 말게 하시오.([조선일보] 1953.6.7.일자)

◆신문 호외 발행!◆ 이승만, “한미방위조약 체결이 선결” 발표

[공보처특별발표] 이승만 대통령은 6일 상오11시 휴전문제에 관한 정부의 입장을 천명하는 다음과 같은 성명을 발표하였다. ([조선일보] 호외 재록)

유엔군이 제출한 신제안은 본정부에서 접수할 수 없는 형편이므로 우리가 재제의를 제출하니, 이는 공산군과 유엔군이 일시에 한국에서 철퇴하자는 것이다. 이 철퇴를 실시하기 전에 한미양국 간에 공동방위조약을 체결할 것이며, 공동방위조약에는 다음과 같은 조건을 포함해야 한다.1. 한반도를 어떤 나라에서나 여러나라에서 침략할 때에는 미국이 한국과 합동방위를 자동적으로 즉각적으로 행할 것.2. 미국은 한국에 군사무기와 탄약과 병참물자를 충분히 보급, 한국이 국방을 상당히 준비하도록 하고, 미국 시민이 한국에서 참전할 필요가 없도록 할 것.3. 미국의 공군과 해군은 지금 있는데서 주류(駐留)해서 적군이 다시 침략을 시도하지 못할 만한 정도까지 한국 국방을 축성하도록 계속 노력할 것.그러나 본 제안을 협동할 수 없다면 싸움을 계속하게 하는 것을 허락할 것이니 어떤 휴전조약이나 평화조약으로 한국의 분열(분단)을 계속하게 하는 것보다 우리는 싸움으로 결정하는 것을 택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우리가 자유로 우리의 원하는 바를 말하자면, 연합군이 우리와 같이 계속해서 이 공동문제를 싸움으로 판결하자는 것인데, 만일 이것이 불가능하다면 우리가 우리의 고유한 민족자결주의의 권리를 행사해서 우리의 사활문제를 양단간에 판결하고자 생각하는 바이다. 우리는 이런 분단 형상으로는 더 살수 없음을 각오하는 바이다. ([조선일보] 1953.6월8일자)

이승만 특유의 구어체 그대로 작성된 빅뉴스, 초점은 한미방위조약 체결이며 분단상태의 휴전보다 통일 전쟁의 주권행사, 바로 단독북진을 택하겠다는 선언문이다. 그동안 클라크가 부지런히 오가며 수락해달라고 졸라댔던 아이젠하워의 일방적 ‘분단휴전’ 강요를 단칼에 잘라버린 이승만의 결단이다. ‘한국이 침략당할 때 미국이 자동적, 즉각적으로 방위하라“는 조약 조건은 이미 1948년 대한민국 건국 직후 미군철수 당시, 이승만대통령이 NATO의 출범과 조약문을 보고 미국에 ”우리도 똑같이 하자“며. ”철군하려면 조약부터 맺자”고 간청했던 것이다. “조약이 어렵다면 한국군을 무장시켜달라”고 무기원조을 요청하자 트루먼은 코웃음 치며 답하였다. “총알 타령 그만하고 배고픈 국민들 밥 먹일 생각이나 하라.”

◆아이크의 친서에 격분...이승만 “단독북진! 국민은 나를 따르라”

클라크 장군과 브리그스 대사가 이승만 대통령을 또 찾아왔다. 그들이 내놓은 봉투에서 아이젠하워가 쓴 장문의 친서가 나왔다. 이승만은 읽었다. 안면 근육과 입술이 부들부들 떨렸다. 무슨 내용일까.

「이대통령은 7일상오 11시 공보처를 통하여 특별담화를 발표하고 휴전회담에 관한 한국정부의 대안(代案) 관철을 다시 강조하고 최악의 경우에는 단독으로라도 북진하여 나갈 것이니 전국민은 일심합력하여 정부의 결정을 따라서 동진동퇴(同進同退)할 것을 바란다는 비장한 결의를 전국민 앞에 선언하였는데 특별담화내용은 아래와 같다.([조선일보] 1953,6.9일자)

“...(전략)...최덕신 소장이 매일 (천막)속에서 진전되는 사항을 보고하여 얼마쯤은 나도 알고 있었으나 유엔 측에서 절대비밀을 지켜달라는 부탁이 있었으므로 발포할 수 없는 형편에 있었으나, 동시에 그 제안의 중요한 조건은 벌써 각국 신문에 이미 전파되었으며, 연합국에서는 내용을 모르는데 공산측은 다 알고 있다는 비평까지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자초로 지금까지 변치 않고 주장해온 것은 중공군이 우리나라에 있고서는 살 수 없다는 것이므로 평화나 휴전이나 받을 수 없다는 것은 다 알만큼 되어있는 중인데, 지금에 유엔측에서 오는 보고를 들으면 공산당이 유엔의 제안을 다 접수하고 몇 가지 소절목은 토의중이라 하고 있으니, 우리는 이에 대해서 냉정히 굳센 결심을 가지고 이 앞에 올 일은 우리가 어찌해야 되겠다는 것을 결심해야 될 것이다. 얼마 전에 내가 미국대통령에게 답서를 보내는 중, 우리가 그 제안을 받을 수 없고 우리의 대안을 제출할 것이니, 이것은 유엔군과 중공군이 다 철퇴하고 미국은 언제나 타국이 침략할 때는 싸우겠다는 상호안전조약을 두 정부 간에 먼저 서명하고 철군하자는 의도를 표시하게 하였던 것인데, 오늘에 우리가 이것을 발포한 것이니 유엔측이 이것을 접수하지 않거나 공산당이 반대한다든지 해서 될 수 없다면, 우리는 우리끼리 만이라도 밀고 올라가서 사생을 결단하여 좌우간 통일을 규정해 내겠다는 결심을 표시한 것이다. 일반민중은 이 사태를 소상이 알고 전국민이 일심합력해서 정부에서 대책을 결정하는대로 따라서 동진동퇴(同進同退)하여야 할 것이다.」

아이크의 친서를 읽은 이승만이 ’국민 총동원령‘을 내린 것이다. 왜? 더 이상 머뭇거릴 수 없는 국가의 위기, 미국 대통령은 ’분단 휴전‘을 강요하고 불응시 ’이별하겠다‘는 협박까지 서슴치 않았던 것, 이것은 ’외교‘의 차원을 넘어선 강대국의 패권주의 횡포, 약소국 대통령 이승만이 주저 없이 반격의 칼을 빼든 것이다.

◆이승만, 아이크의 ’협박‘ 편지를 공개...미국의 음모 폭로오전 11시 특별담화를 발표한 이승만은 저녁 7시에 아이젠하워의 극비편지를 일방적으로 공개하였다. 미국을 잘 아는 이승만의 공격타이밍 선택, 워싱턴 백악관의 출근 시간에 맞춰 강펀치를 날린다. 아이크의 감언이설과 협박, 최후통첩 같은 국제음모의 가면을 활짝 벗겨 한-미 양국 국민 앞에 보란 듯이 폭로해버린 것이었다. 독립운동 때와 같은 이승만식 ’여론투쟁 전술‘이다.

▶[공보처7일 하오7시 특별발표]◀이대통령은 7일 하오 유엔군사령관 클라크 대장과 주한미국대사 브리그스씨를 통하여 아이젠하워 미대통령으로부터 장문의 서한을 접수하였다. 이날 공보처는 이대통령 특명에 의하여 동서한 전문을 공표하였는데 그 전문은 다음과 같다.([조선일보] 1953년 6월9일자)

◉서한전문◉1953년 6월6일 워싱턴 백악관에서대통령 각하5월30일자 서한을 보내신 전문은 6월2일 받았습니다. 대한민국은 그 가진바 모든 인적물적 자원들 들여 역사에 영원히 빛날 영웅적 투쟁을 하여왔습니다. 인간의 존엄성을 유린하고 굴욕적인 위성국의 지위로서 국가의 자주권을 깨트리는 공산주의 침략에 대하여 인간의 자유와 민족의 자유는 엄존할 것이라는 원칙을 위하여 귀국은 일체를 아낌없이 바쳤습니다.미국은 귀국과 함께 일어나 유엔군의 일원으로서 위와 같은 원칙을 위하여 싸워온 것입니다. (중략)...우리는 한국 통일을 위한 투쟁을 전쟁으로써 속행할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정치적 또는 기타 방법에 의하여 이 목표를 추구할 것인가? 결정해야할 순간에 직면하였습니다.적은 침략의 과실을 확실히 포기하는 것을 포함시켜 휴전을 제안하여 왔습니다.휴전으로 말미암아 대한민국은 침략을 받기전에 귀국이 통치하였던 영역을 실질적으로 전부 점유하게 되는 것이며, 오히려 이러한 영역은 좀 확대될지도 모릅니다...(중략)...현정세하에 있어서 유엔이나 대한민국이나 휴전을 수락해야 한다는 것은 나의 충심으로부터 나온 확신입니다. 무력으로써 한국통일을 달성하겠다는 기도에 수반될 모든 참사를 생각할 때 전쟁을 길게 끈다는 것은 정당하지 않을 것입니다.한국의 통일이라는 것은 미국이 한번만이 아니라 여러 차례 공약한 목표의 하나입니다.이 공약은 제2차 세계대전 중에도 그러하였고 또 한국에 관하여 유엔이 선언한 원칙을 미국이 수락함에서도 표명된 것입니다. 한국은 불행하게도 제2차대전후 국토가 분단된 유일한 국가는 아닙니다. 우리는 이와 같이 분단된 모든 나라의 정치적 통일을 달성하기 위하여 우리의 역할을 다 하겠다는 경의를 견지하고 있습니다.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그것을 위하여 노력하고 정당하다고 믿어온 세계적 규모의 정치적해결을 달성한 수단으로서 전쟁에 호소할 의사는 없습니다...(중략)...각하에게 명백히 알리고자하는 세 가지 주요점이 있습니다.

1. 미국은 모든 평화적 수단으로써 한국 통일을 달성하겠다는 노력을 결코 단념치 않을 것입니다. 또한 유엔의 일원으로서 우리는 유엔이 금후로 이점에 관하여 확고부동한 결의를 견지하도록 전력을 다 할 것입니다. 휴전후 열릴 정치회의에서도 이것이 우리의 중요목표가 될 것입니다. 2. 각하의 서한은 또 상호방위조약에 언급하였습니다. 나는 휴정협정이 체결되고 수락된 후 동시에 미국과 필리핀공화국, 미국과 호주 및 뉴질랜드 간에 체결된 조약과 동일성격의 상호방위조약을 협상할 용의가 있습니다. 동조약은 현재로 또는 금후 평화적으로 대한민국 통치하에 들어올 영역을 적용대상으로 할 것입니다. 말할 것도 없이 각하는 미국헌법의 규정에 의하여 이와같은 조약은 상원의 조언 과 동의를 얻어야만 성립할 수 있다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3. 미국정부는 국회의 예산승인 범위 내에서 대한민국이 황폐한 국토를 평화리에 부흥할 수 있도록 계속 경제원조를 할 용의가 있습니다...(중략)...휴전성립과 동시에 미국은 대한민국과 손을 잡고 한국의 이러한 목표를 추구할 용의가 있습니다. 우리는 한국이 더 완전한 통일을 필요로 하고 있다는 것을 믿으며, 위에 말한바 평화적 방법에 의하여 그러한 통일을 달성할 방도를 추구할 것입니다. 이것은 전투의 종식에서 올수 있다고 믿는 바입니다. 한국 방위를 위한 어떠한 규정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상호한전보장 조약에 나타날 것입니다. (중략)대통령 각하나는 대한민국과의 제휴관계를 증진하겠다는 것이 미국의 소망이라는 것을 확언하고자 합니다. 이와 같은 위기에 있어서 결별한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비극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앞으로도 일체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드와이트 J. 아이젠하워

선심을 쓰는 체 ‘용의가 있다'는 말의 연속이다. ‘약속’이 아니라 ‘용의’라는 외교적 수사, 어르고 달래는 수법이다. 한미방위조약도 “휴전을 수락해야만 협의할 용의가 있다”는 것, 휴전을 수락한다면 휴전 후에 정치협상으로 통일을 이룰 방도를 찾겠다는 것, 경제원조도 휴전을 수락해야 제공할 용의가 있다는 것, 그리고 편지 마지막에 결정적 ‘주먹 한방’을 날린다. “이런 위기에 ‘결별’한다는 것은 비극”이라는 말, 폭력배의 공갈 협박이나 다름없다. “나의 말을 안 들으면 너의 나라는 끝장이야! 손 털고 나올 테니 알아서 해!”

▶클라크도 이승만에게 협박 ”휴전불응-단독전투 시엔 모든 원조 중단“같은 날 INS통신은 다음과 같은 뉴스를 보도한다. 워싱턴 주재 한국대사관이 공표하였다는 놀라운 사실은 이랬다. 클라크 유엔사령관이 며칠 전 이승만 대통령을 경무대서 만났을 때 직접 구두로 ”만약 한국정부가 전투를 계속하겠다는 위협을 실천에 옮긴다면 미국의 모든 원조는 단절될 것“이라고 경고하였다는 것이다. 대사관 소식통은 모든 원조란 군사원조는 물론 한국인들에게 제공되는 식량까지 포함하는 것으로서 이대통령이 ”휴전을 수락하도록 가한 압력“이었다고 부언하였다. 한국대사관 측에서 이런 비밀정보를 유출한 것은 아이크의 편지를 공개한 이승만 대통령이 동시에 대사관에 내린 지시였음은 물론이다. ▶미 상원, 아이크 요구에 따라 한국 원조액 통과만 연기[워싱턴10일발UP=동양] 상원외교위원회에서는 9일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54억달러 대외원조예산안을 총괄적으로 승인하였는데 한국휴전에 대한 정세가 명백해지기를 기다려 한국원조부문에 대한 조치는 연기하기로 하였다. 이러한 조치는 아이젠하워 대통령과 덜레스 국무장관 및 스탓셉 상호안전본부장관이 하원 외교위원회의 간부위원들에게 동 원조계획안을 승인할 것을 권고한 회의 직후에 취해진 것이다. ([조선일보]1953.6.11.일자)

◆이승만, 미 유학 장성들 긴급 소환령...전국에 비상경계령

이승만 대통령에게 6월 7일 하루는 아주 바쁜 날이었다.국민들에게 ”단독 북진할 테니 나를 따르라“는 특별담화를 발표하고, 저녁엔 아이크의 협박편지를 폭로하면서 동시에 워싱턴 한국대사관에는 클라크의 협박도 폭로하라 시켰다. 그런데 이날 이승만이 맨 처음 한 일은 7일 아침 9시를 기해 전국에 준(準)비상경계령을 내리고, 미국에 유학중인 장성들과 장교들을 긴급 소환한 조처였다. ”보아라, 아이크! 단독 북진 못할 줄 아느냐?“ 행동으로 보인 ‘대미투쟁’ 그것이다. [공보처7알발표] 정부에서는 현하 긴박한 정세에 대처하기 위하여 도미 중에 있는 육군총참모장 백선엽 대장이하 육해공군 수뇌부 전장교의 즉시 소환을 병행하는 동시에 현재 도미 예정중이던 모든 장병에 대하여도 출발 중지를 명하였다.또한 공보처에서는 전국에 걸친 준비상경계령을 내렸다고 특별발표를 하였다. 내무장관은 금일 상오9시를 기하여 준비상경계태세에 돌입하라는 명령을 각 지방에 하달하였다.([조선일보] 1953.6.9일자 사회면)▶‘북진통일 투쟁위원회’ 담화=북진통일 투쟁위원회에서는 다음과 같은 담화를 발표하였다.”우리의 소망이 아닌 소위 판문점 휴전회담은 지금 어떠한 조건 밑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한국에 관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우리한국민은 전혀 알지도 못하는 밀담이 진행되고 있는 것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사실이다. 오늘 이 시각에도 삼천리 방방곡곡에서 조국의 운명을 결하겠다는 아우성소리가 산천을 뒤흔들고 있으며 삼천만의 가슴속에서는 분노의 핏덩어리가 용솟음치고 있다. 정부는 모름지기 판문점 휴전회담 내용을 남김없이 공개하라. 우리는 또다시 외친다. 최후의 일각까지 통일을 위한 투쟁은 계속될 것이다.“▶자결로 북진 호소. 마산의 반공포로 1명 할복=국방부의 8일 발표에 의하면 지난1일 거제도 수용소에 있는 반공포로 5백여명이 ”북진의 기회를 달라“는 메시지를 육군본부에 전달하였고 마산에 수용된 반공포로 3백여명은 5일 ”결사 휴전 반대“라는 혈서를 작성하는 한편, 휴전반대 시위를 대규모로 건재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지난 5일 마산 수용소의 반공포로 1명은 ”일편단심 송환을 불원“할 뿐 아니라 오직 통일을 성취해야 한다는 유서를 남기고 할복자살하였다고 한다.

◆‘포로송환처리 협정’ 조인...북한대표 ”우리가 이겼어!“

[판문점에서 본사 최병우 특파원발] 휴전회담 유엔측 수석대표 해리슨 장군과 공산측 수석대표 남일은 8일 하오2시 ‘귀국불원 포로’ 처리에 관한 협정에 조인하였다. ‘중립국송환위원회 직권의 범위’라는 제목을 가진 6조26항의 이 협정은 지금까지 한국휴전을 가로막고 있는 유일의 문제라고 유엔측과 공산측이 공인하고 그 해결은 곧 휴전 성립을 의미한다고 했던 것이다. 이것은 휴전협정은 아니다. 그러나 휴전 본 협정도 며칠 안 되어 조인될 것이라는 것은 당지 관측통의 일치된 견해이다. 이 협정은 최덕신 장군이하 한국군대표단이 한사람도 참석하지 않은 가운데 조인되었다.5차의 비밀회의 끝에 발표된 협정 전문을 통역하고 나서, 어찌하여 최덕신 장군이 그와 같이 강력하게 반대하였던가를 다시금 절실하게 깨닫지 않을 수 없다.협정은 표면적으로는 쌍무적인 것 같은 표현을 쓰고 있으나 실질에 있어서는 편파적인 것이며 그 실천을 위해서는 한국의 동의가 필요한데도 불구하고 한국정부의 승인 없이 조인을 강행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점에 한국전쟁 처리를 싸고도는 국제정치의 복잡성이 있다 하겠다. 북한 공산군 참모는 회의장으로부터 나오자 노동신문 특파원이라고 자칭하는 북한 공산기자에게 얕은 소리로 그러나 흥분된 어조로 ”우리가 이겼어“라고 일러주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조선일보] 1953.6.10일자)스탈린도 죽고 미국도 선뜻 양보함에 따라 공산측은 ‘굴러온 승리’에 만세를 불렀다. 이제 본국에 돌아가기를 원치 않는 북한군과 중공군의 반공포로들을 중립국으로 송환하는 길이 활짝 열렸다. 그리고 이것은 휴전 본협정이 체결된 것과 같은 폭발력을 터트린다.◆이승만, 미1군단 앞에서 ”단독북진 양해해 달라“ 오열

[제1군단사령부 8일발INS=합동] 이승만 대통령은 8일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보낸 서한에 포함된 양보는 ‘만족할만한 것이 아니다”라고 명백히 선언하였다. 즉 이대통령은 8일 INS통신에게만 보낸 단독성명서에서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표명한 양보는 만족할 만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하는가 여부에 대한 질문을 받고 “바로 그렇게 쓰시오”라고 대답하였다.그리고 이날 이대통령은 미제1군단의 참전 1000일 기념식에 참석하여 연설하였다. “나는 슬픈 얼굴과 무거운 심정을 가지고 이곳에 왔다”고 말하였는데 그의 목소리는 울음에 잠겨 거의 들을 수가 없었다. 군단 열병을 마치고 걸어올 때 이대통령은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제안을 수락할 것인가 여부를 질문 받았을 때 “나는 아직 결정하지 않고 있다”고 말하였다.▶연설요지=“....여러나라 군대가 싸우며 피를 같이 흘려온 것은 잊지 못할 감사를 불러옵니다...우리가 이때까지 바라고 온 것은 이와 같이 많은 희생의 결과로 동양 민주주의가 안전하게 될 것을 바랐던 것인데, 지금 와서는 이 모든 희생이 무효로 돌아가게 되었으니 깊이 상심하고 유감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중공군이 계속 우리나라에 있어가지고는 평화나 휴전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주장하는 바입니다. 유엔군이 우리나라에 와 처음에 희생당할 때의 가진 목적을 성취하기를 바라왔으나 그렇게 못해서 전쟁을 더 계속치않는다 할 때에는 그대들이 이 만큼 싸워주어서 생존을 유지한 것만이라도 우리는 감사히 여기며, 그 후에는 우리 끼리만이라도 목적을 달성하기까지 계속해 싸워나가겠다는 것이 우리의 결심이니 이것만은 양해애 주기를 바랍니다.” ([조선일보] 1953. 6.10일자)

◆전국 시위 폭발...싱이군들, 미대산관 앞서 농성...여고생들, 빗속에 통곡 몸부림2년전 1951년 6월 처음 횃불을 들어 계속해 왔던 휴전반대 시위는 이승만의 ”정부를 따르라“는 비상명령과 함께 ‘포로송환협정 조인”이란 불덩이가 연발하자 전국이 활화산처럼 폭발하고 말았다. 국무총리 서리가 된 변영태는 9일 특별담화를 내고 “전민족이 생사의 벽두에 선 중대위기에 있어 일반국민의 총궐기”를 요청하였다. 그런 요청은 불필요했다. 서울, 부산을 비롯한 전국 방방곡곡에서 “통일 없는 분단 휴전 결사반대”의 부르짖음이 산불처럼 일어나 날마다 전국토를 불태울 기세이다. 서울에선 상가는 모두 철시하고 전차와 버스도 운행중지, 수만명의 시위대는 중앙청, 시청앞, 남대문, 미8군사령부 앞 등에서 인산인해로 행진하며 “중공군 물러가라” “우리 의사 무시하는 회담 즉각 해산” “단독북진 통일 막지마라” 갖가지 플래카드와 구호가 하늘을 뚫을 듯 넘쳐난다. 국회가 “단독북진 통일” ”중공군의 한반도 철퇴“ 결의안을 잇따라 통과시키고 10일엔 임시수도 부산 충무로 광장에서 수만명의 인파가 국민대회를 열고 미국대사관으로 달려갔다.

▶이승만, ”시위는 민족자결권의 표현...언행에 신중, 외국 친구 잃지 말라“ 「거족적으로 통일 없는 휴전 반대와 북진통일 추진 민중대회가 전개되고 있거니와, 시위대원들이 흥분과 울분에 못 이겨 자칫하면 우리를 돕고 있는 외국 친구들에게 과격한 언동을 할 우려도 없지 않은 바, 이 대통령은 11일 다음과 같은 담화를 발표, 외국인사들에게 대한 언사와 행동에 특히 신중하기를 전 국민에게 요청하고 있다.([조선일보] 53.6.13일자)”지금 우리 국가에는 가장 큰 위기를 당해서 민심이 전국적으로 소동되고 있는 이때에, 혹 불량분자들이 이런 기회를 이용해서 탈선적 망언망동이 있을까 염려, 유엔군이나 외국인에 대해서 조금도 불온한 관념을 보이는 것이 없이 우리는 민족자결주의에 정당한 도리로 우리의 고유 권리를 세계에 표시해서 우방과 적국에 알게 하자는 것이니,...누구를 시비하는 것도 아니고 오직 우리 살길을 찾자는 것을 우방에 호소,....우방에 대한 불평을 표시하는 것은 난동적 미개 행동이니 인국 친구들을 잃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변총리 “국군은 현전선 불철수...휴전협정 따르는 자는 반역자”[서울12일발 AP=합동] 변영태 총리서리는 11일 특별국무회의를 마치고나서 ”한국정부는 휴전협정의 어떤 부분도 수락할 수 없으며 수락하지 않을 것“이라 말하고 “전선 3분의2를 감당하고 있는 한국군을 현재의 전선으로부터 결코 철수하지 않을 것”이라며 ”휴전협정대로 움직이는 한국군은 반역자“라고 단언하였다. ([조선일보] 53.6.14일자)변 총리는 13일 요지 다음과 같은 담화를 냈다. ”최근 외국인들과 한국인들 사이에 악감과 의혹을 조장할 유언비어가 성행...유해한 거짓 풍설을 믿지도 말고 전하지도 말기를 동포와 외국 친우들에게 충심으로 호소한다. 우리가 갈라설 바에는 사이좋게 갈라설 것을 바란다. 남한 각처에서 행해지는 시위운동은 민족자결권을 주장하기로 하는 것이며, 외국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배타운동이 아니다“ ▶상이군인들 ”내 다리 찾으러 북한 가겠다“ 미대사관 진격12일에도 부산에서는 학생들의 휴전반대 가두시위가 연일 개최되고 있는데, 11일 미국대사관 앞에서 특별상이군인들은 ”내팔 내다리를 찾으러 북으로 가겠다“고 외치며 아아젠하워 미국대통령에게 보낸 메시지에 대한 회답이 올 때까지 움직이지 않기로 결의한 후, 단식을 단행하고 찬이슬을 맞아가며 노상에서 밤을 새워 농성하고 있다. 이들의 비참한 모습과 눈물겨운 결의와 비장한 데모에 행인들은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있으며 감동한 부녀자와 여학생들은 주먹밥을 만들어 제공하고 있다.

★“한 다리, 한 팔 마저 바치리” “백두산까지 진격명령을 내려주시오”서울지구 상이군인 일동은 “남은 한 팔, 한 다리마저 조국에 바치겠다” “백두산까지 진격명령을 내려달라”는 결의를 담은 메시지를 경무대에 보냈다. 이승만은 “오늘까지 통일을 못하고 이 지경에 와서 순국한 수십만 전사들과 상이용사들에게 아무 할 말이 없어 죄스러운 마음뿐”이라며 감사를 전하고 격려하였다. ▶문화예술인들도 시위에 나서 “휴전은 제2의 6.25 만든다” “국토 양단시킨 미국은 통일 시킬 책임을 다하라”는 결의문을 내고 ’내자(內資)아파트‘ 앞에서 “북진통일” 거리 공연을 펼쳤다.서울 경무대 길목 내자동에 위치한 내자아파트는 미-영 등 각국 종군기자들이 머물며 본국에 기사를 보내는 곳이다. 따라서 시위대들은 자신들의 요구가 외국언론에 보도되기를 원하였으므로 내자 아파트 주변은 조용한 날이 없었다.▶여학생들의 통곡 시위=특히 이화-진명-경기-숙명 등 10대 어린 여학생들이 장마 비를 맞으며 땅바닥에 연좌농성, “통일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Unification or Death!)고 영문 플래카드를 흔들며 애타게 구호를 울부짖으며 몸부림치는 모습은 종군기자들의 시선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한 이색적 장면이 되었다. 대형 사진을 곁들인 르포와 인터뷰 기사들이 미국등 주요언론에 대서특필됨으로써 큰 반향을 일으키는 심리적 효과를 거두었다. ▶서울-부산 미국대사관 주변에 철조망을 설치하고, 소방차로 통행을 금지. 유엔군 기관 침입방지 위해 철통 경비령이 내려졌다.

◆미 8군, 이승만 제거 ’에버레디 작전‘ 출동태세앞에서 본대로 미국은 이승만 대통령을 제거하려는 군사작전을 짠 적이 있다. 바로 지난해 6월 부산 정치파동때 “미국 말을 안 듣고 직선제 개헌을 강행하는 이승만을 감금 또는 추방”하려던 비밀계획인데, 클라크 유엔군 사령관이 본국 지시로 “유엔군이 한국군을 앞세워 군정을 실시한다는 구상’이었다. 하지만 “미국 말 잘 듣는 장면“이 이승만을 대체할 지도자가 못 된다는 판단 때문에 자진포기, 사실상 폐기한 작전이다. 그런데 지금 1953년 4월부터 휴전을 결사반대하는 이승만이 ’단독북진‘ 을 통고하자 미국은 다시 그 카드를 꺼내들었다. 지난 1월 대통령 취임식을 마친 아이젠하워는 이승만에게 충성스런 밴플리트 8군사령관을 해임하고 후임에 맥스웰 테일러 미육참차장을 임명하였는데, 트루먼이 맥아더를 해임한 것과 같다. 테일러 장군은 휴전을 완수하라고 보낸 사람, 5월중 이승만 제거작전을 업그레이드-업데이트 시켜 놓았으며 이번엔 작전명도 붙였다. ’Plan Ever-Ready’ 또는 ‘Ever-Ready Operation’--24시간 출동태세 준비 끝! 사실상 카운트다운에 돌입하여 ‘이승만 체포’ 명령만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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