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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뉴욕총영사 자리는 대한민국 외교에서 아주 중요한 위치다.교민 보호 등 기본적 영사업무 외에, 세계 최강대국 미국의 경제수도 뉴욕에서 해야할 외교 임무는 그야말로 중차대하다.국제외교의 본산인 UN이 위치해 있어 주UN주재대사와도 보조를 맞춰야 한다. 워싱턴DC에 있는 주미한국대사의 지휘 아래 긴밀하게 움직여야 하는 중요 포지션이다.
그런 위치에 있는 뉴욕총영사가 지난해 8월 뉴욕한인회 주최 광복절 행사 발언으로 화제의 인물로 떠오른 적이 있다.《임시정부 1919 대한민국 건국론》을 주장하는 이종찬 광복회장의 연설문을 누군가가 대독했다.그러자 김의환 총영사가 "저런 말 같지도 않은 이야기를 계속 들어야 하나"라고 지적하고 나선 것이다.이 사실이 좌파언론에 의해 보도되자 국회 외교통상위 국정감사 출장에서 이재명당 의원들이 김 총영사를 닦달했다.사과요구를 그가 거절하자, 이재명당 의원들은 그가 공무원의 정치중립의무를 위반했다며 사퇴하라고 거칠게 몰아세웠다.대다수 공무원들은 이럴 때 적당히 고게 숙이고 비위 맞추며 굽신굽신 하는 데, 그는 달랐다.
“내가 말한 게 부적절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과도 하지 않겠다. 헌법 전문의 《자유민주주의 기본 질서》를 지키려 한 것뿐이다. 무엇이 정치편향이라는 건지 말해달라.”
"물러나라"는 거듭된 공격에도 "항상 마지막으로 알고 공무를 수행한다"며 끝까지 버텼다.
분을 삭이지 못한 이재명당 의원들은 귀국해 국회 외교부 국정감사에서 조태열 외무장관을 몰아붙였다."김의환 발언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는 질의에 장관은 "100% 공감하지 않는다" 고 꼬리를 내렸다.이런 보도를 접한 김의환 총영사는 "내가 외교부 장관이었으면, 그렇게 말하지 얺았을 것이다"고 말했다.
그는 강골 공무원이다.나라가 잘 되려면, 이런 공무원이 많아야 한다.
러시아의 침략으로 6.25와 같은 고통을 겪고 있으면서 미국과의 외교에서 약소국의 비애에 가슴을 치고 있는 우크라이나의 처지를 보며, 그가 한 편의 글을 보내왔다.
모근 제목과 본문 내 하이라이트는 뉴데일리의 편집이다.=============================
*우크라이나를 보며 로마를 생각한다*
■ 약소국 로마, 제국이 되다
AD 476년에 멸망한 로마는 BCE 8세기에 건국 했다. 1,200년 넘게 지속된 것이다. 로마가 제국으로 발전한 것은 AD 1세기 때였다.
우리가 알고 있는 로마는 줄리어스 시저와 여러 황제들 그리고 지중해를 중심으로 큰 영토와 인구를 지닌 로마 제국이다. 그러나 로마는 처음부터 제국이 아니었다. 공교롭게도 로마는 첫 째 왕의 이름이 로물루스였고, 제국의 마지막 황제 이름도 로물루스였다.
로마는 이태리 반도에서 삼리움족을 비롯한 강력한 부족들에 의해서 늘 위협을 받던 소국이었다. 근 700년 동안 멸망의 위험과 어려움을 극복하고 비로소 서기 50년에 제국의 기초를 이룬다. 이후 지중해를 제패하며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찬란한 로마 제국의 시대가 열린다. 그러나 결국 476년에 로마는 훈족의 침입에 의해서 멸망하고 만다.
■《멸망 원인》대신《1200년 지속 요인》생각해야
사람들은《로마는 왜 멸망했을까》에 관심을 둔다. 그러나《로마가 어떻게 1,200년을 지속했을까》는 관심이 없다.
어떤 대국이든 결국은 멸망하게 되어 있다. 그리고 멸망의 원인도 대부분 비슷하다.
그런데 아주 작은 세력으로 출발했던 로마가 어떻게 1,200년을 이어갔을까? 참으로 궁금하지 않은가?
고대 유럽 문명은 로마라는 호수로 흘러들고 르네상스를 비롯한 근대 유럽 문명이 로마라는 문명의 호수에서 발원되었다.
놀랍게도 지금 유럽의 고속도로 대부분은 2,000년 전 로마시대에 만들어졌던《로마가도》, 즉 로마가 건설한 고속도로가 원형이다. 믿기 어렵지만 로마시대 도로가 지금 유럽의 고속도로가 된 것이다. 그만큼 로마의 건설·토목 역량은 뛰어났다. 로마는 길을 만들어서 로마가 지배하던 모든 지역을 서로 연결하고 사람과 물자와 정보와 군대가 자유롭게 다닐 수 있게 했다. 《팍스 로마》라고 불리는 세계 최초의 글로벌을 만든 나라가 바로 로마 제국이다.
■《안보》잃으면,《경제》잘 나가도 소용 없다
지금 세계 최고의 국가이자 최강의 국가라 할 수 있는 미국의 역사는 채 250년이 되지 않는다. 1948년에 건국한 우리 대한민국 역시, 아직 백 년이 안 된다. 이런 사실을 볼 때《1,200년 동안 로마가 이어졌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로마는 어떻게 해서 1,200년을 이어갈 수 있었을까?
로마의 왕들, 로마 제국의 황제들은 두 가지 국가 목표에 집중했다고 한다. 하나는《식량》또 하나는《안보》였다. 《식량》은 지금으로 말하자면《경제》이다.
그러나 로마인들이 가장 중시 여겼던 것은《안보》였다. 《식량》은 다소 부족해도 버틸 수가 있지만,《안보》는 한 번 무너지면 제국 전체가 멸망한다는 사실을 그들은 알고 있었다.
로마의 왕들과 황제는 자신들의 군사력에 바탕한《안보》를 최고의 국가 목표로 설정하였다.
■ 로마는 기원전에도《종이장》믿지 않았다
20여 년 전 크게 흥행했던《글래디에이터 (검투사)》라는 제목의 영화는《게르마니아》전선에서 로마군이 야만족과 전투를 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로마 군단은 전투병인 동시에 모두 공병이었다. 기술자들이었다. 그 영화에서도 여러 가지 로마의 선진화된 무기와 장비들이 제시되었다. 질서 정연한 로마 군단은 압도적인 전략, 강력한 무기들로 야만족을 상대했다.그러나 광대한 라인강 전선을 지키는 것은 로마군으로서도 결코 쉽지 않았다.
세계 최강의 로마조차도 라인 강 국경 넘어 소위《검은 숲》이라 불리는《게르마니아》지역(야만인이 지배하는 지역이란 뜻)에 들어가는 것은 매우 위험했다. 그래서 로마의 장군들은 한편으로는 군사력으로 게르만 족들을 제압했지만, 회유하고 달래서 평화를 유지하는 것 또한 매우 중시했다. 로마의 사령관들은 야만족들과 평화협정을 수시로 체결함으로써 광대한 로마 지역의 전선을 유지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평화 협정시 로마군과 야만족과는 큰 차이가 있었다. 협정이 이루어지면 야만족들은 당연히 무기를 내려놓고 평상시로 돌아가며 별다른 군사적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로마는 달랐다. 로마군은 평화 협정이 체결되었을 때도 전쟁 상태와 전혀 달라진 게 없었다. 모든 군대는 완전 무장과 전쟁 상태와 동일한 전투력과 경계를 유지하였다. 로마의 사령관과 로마의 군대가 믿는 것은《글씨로 새겨진 평화 협정문》의 내용이 아니었다.
로마가 믿는 것은 단 한 가지, 오직 자신의《군사력》뿐이었다.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군사력》이 없다면,《평화 협정》은 종이 쪽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그들은 잘 알고 있었다. ■ 로마의《손자병법》
《군사학 논고(De Re Militari)》는 4세기경 로마 제국의 귀족이었던 베게티우스가 당시 퇴락하던 로마군을 쇄신하기 위해 저술한 병법서로 당대의 황제였던 발렌티니아누스 2세에게 헌정되었다. 흔히 로마의《손자병법》이라고 불린다.
그는 자신의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Si vis pacem, para bellum(시 위스 파켐, 파라 벨룸)" -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
베게티우스 당시의 로마는 물론 우크라이나 사태를 목격하고 있는 지금의 우리에게 주는 비장한 격언이다.
http://www.newdaily.co.kr/site/data/html/2025/03/06/202503060017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