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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확증편향의 위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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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익

 이 글은 단순한 칼럼이 아니라, 약 9달 전 확증편향의 위험성을 과소평가했던 본인의 생각을 반성하기 위해 작성하는 글이기도 하다.

 

 유리한 정보에 귀기울이려 하고 불리한 정보는 애써 무시하려 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이 본성은 워낙 원초적이기에 제어하기 어렵지만, 문제는 정보의 취사선택이 악화될 때 발생한다. 우리는 지나칠 정도의 선택적 정보 수용 및 인지적인 편향을 확증편향(確證偏向, comfirmation bias)이라 부르기로 합의했다.

 

 확증편향의 정확한 정의는 '원래 가지고 있는 생각이나 신념을 확인하려는 경향성'이다. 본래 견지하고 있던 생각이나 신념에 반대되는 증거는 '신념과 신념을 지닌 자신을 향한 공격'으로 간주하여 방어기제를 발동하고, 우호적인 증거는 신념의 논거로서 차곡차곡 쌓아 거대하고 폐쇄적인 신념의 성을 축조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확증편향이 특히나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치명적적으로 작용하는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좌파방송.jpg                                               우파방송.png.jpg

<왼쪽은 김어준의 뉴스공장, 오른쪽은 진성호tv. 각각 117만의 구독자와 156만의 구독자를 가진 유명한 방송이다.>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누구나 자유를 누릴 권리를 가지는 동시에,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가진다. 하지만 각기 다른 모두의 의견을 수렴할 수 없기에 다수결의 원칙을 채택하였고, 결국은 유권자의 수준에 상관없이 선거 결과가 결정된다.

 

 여기서 확증편향이 생각보다도 많은 사람을 덫으로 몰아넣고, 그것이 투표에 영향력을 끼친다는 것이 문제다. 인터넷이 크게 발달하고 남녀노소 모두가 스마트폰을 사용하여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현대 사회에서, 언론과 유튜브를 비롯한 방송은 지대한 영향력을 끼친다. 그리고 누구나 정보의 생산에 관여할 수 있다는 인터넷 환경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정보만을 접하기에도 벅찬 것이 작금의 상황이다. 게다가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인터넷 기업들이 속속이 도입하는 알고리즘 시스템까지 더하여, 인터넷 환경은 사용자의 확증편향을 악화하기에 더없는 조건이 되었다. 신념의 성을 축조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지리와 상황인 것이다.

 

 

 

어지럽다.jpg

<국뽕 방송. 정말이지 어지럽다.>

 

 두 번째 문제이자 사실상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확증편향 자체가 정보의 취사선택이라는 것이다. 확증편향은 사람으로 하여금 불리한 정보를 거부하게 만드는데, 그 불리한 정보가 사실상 성패를 가르는 중요한 정보가 될 수도 있다. 또한 자신에게 유리하다고 여겼던 정보가 사실은 가짜뉴스에 불과할 수도 있다.

 

 정치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은 윤석열을 대선 후보로 선출한 지지자들의 행보를 예시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너무나도 많은 리스크에 누구와 비교해도 압도적인 무지를 억지로 무시하고, 홍준표는 역선택의 결과라는 거짓 정보를 신뢰하며 윤석열을 추대한 결과는 압도적 정권교체와 세대포위론의 실패였다.(아직 정권교체 자체는 모르는 일이지 않냐고 질문하려면 먼저 '압도적'이라는 단어를 보자.)

 

 

 

 이처럼 누군가를 후보로 선출할 정도로 생각보다 파급력있고 지대한 위험성을 가진 확증편향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면 무엇을 해야 할까? 확증편향 방지를 위한 첫 번째 예방법은 ''나는 확증편향으로부터 안전하겠지'라는 무조건적인 자기신뢰를 버리는 것'이다. 무조건적인 자기신뢰는 확증편향에 있어서는 득이지만, 자기 자신에게는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게 하는 신경독이다. 무엇보다도 이 신경독에 면역이 있는 사람은 없다. 누구도 예외없이 확증편향에 빠질 수 있다. 현명한 판단을 내리기 위해서라면, 항상 확증편향으로부터 안전하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두 번째 예방법은 '교차검증'이다. 교차검증은 편향된 정보만 습득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다. 정치 유튜브는 아예 안 보는 것을 추천하고, 그나마 공인된 언론사의 신문을 볼 때에는 조중동과 한경오를 번갈아 보는 편이 낫다. 때때로는 권력유착에서 먼 외신까지 참고할 수도 있다. 사소한 사건까지 일일이 파악하기에는 다소 어렵지만, 그래도 이슈를 보다 정확히 이해하는 데에는 이 방법만한 것이 없다.

 

 민주주의 국가의 수준은 국민들이 결정한다. 국가의 향상을 위해서는 먼저 국민의 향상이 이루어져야 하지 않겠는가. 정보를 적절히 참고하여 건전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국민이 많아진다면 국민들의 수준 향상도 저절로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혹여나 확증편향에 사로잡힌 사람이 이 글을 보고 있다면, 귀를 여는 시기는 언제라도 늦지 않을 것이라는 말을 드리며 글을 끝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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