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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대놓고 독재 탄압의 메시지인가.>, <표현의 자유 for 진실>, <진실 추구와 반사회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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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casYoon

<대놓고 독재 탄압의 메시지인가.>

(어제 작성한 글입니다.)
 

오늘 尹이 한 발언이 "누구도 제3자적 논평가나 평론가가 되어선 안돼"인데, 이것이 크게 공론화되지 못하고, 그저 이준석 당 대표를 겨냥한 발언이라며 언론계에선 물타기를 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아주 중대한 문제로 볼 여지가 있다. 일전에 문재인이 2019년 7월경 아래 3, 4번 이미지를 양면에 인쇄한 전단지를 국회의사당 앞에서 배포하였다는 이유로 시민단체 터닝포인트코리아 대표 김정식 씨를 고소한 적이 있다.
 

이는 모욕을 문제삼았지만, 오늘 尹은 거기서 한 술 더 떠서 논평 자체를 문제삼은 것이다. 언론이나 미디어, 유튜브 등은 물론이요, 필자처럼 페북에서 활동하는 정치 포스터 개개인도 그 예외가 아닌 것이다. 누구도 제3자적 논평가가 돼어서는 안된다고 하지 않았나.
 

이것은 집회, 시위의 자유를 탄압하는 것을 훨씬 뛰어넘는 본질적인 영역에 대한 억압의 예고라 봐야 한다. 이 정도의 언론, 표현의 자유를 탄압하는 그 예는 지구상에 몇 개 국가 없다. 중국이나 북한 정도가 그 대표적인 예가 된다.
 

필자는 이제 李보다 尹이 더 차악이라고 하는 자들이 완전히 잘못 짚었음을 말할 수 있게 되었다고 본다. 과연 무엇이 다른가? 지금 우리가 페북에서 정치 포스팅을 하는 것도 모조리 검열이 대상이 될 수 있고, N번방 검열법, 알페스 논란, 포괄적 차별금지법, 경찰의 공안화 등 모든 자유 탄압과 그 궤를 같이 하는 그 발언을 오늘 尹이 했고 그 측근에 그런 주장을 하는 이들이 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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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필자는 그 배경상 이준석을 겨냥한 발언으로만 한정하여 놓고 볼 수 없다는 입장이다. '누구도'라고 했으므로 그 누가 됐든 적용이 가능한 발언이 되기에 그렇다고 보는 것이다.
 

속내를 드러내기 전까지는 알 수 없는 것이다. 필자 역시 尹이 멍청해서 그 상황만을 놓고 발언한 것이라 결론내릴 그 근거가 있다면 좋겠다만, 그럴 근거 또한 없다.
 

이 글을 보는 분들에게 동의를 요구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 가능성이 있음에 대해 경고의 메세지 정도는 필요하다고 보고, 필자는 이런 의견도 있다는 걸 말하고자 했음을 이해해 주었으면 한다. 경계를 해야 할 필요가 충분히 있다.
 

필자의 견해가 기우로 끝난다면 차라리 잘된 것이고, 단지 기우가 아니었다면 그래도 인지하고 경계하고 있었으므로 더 적극적인 대응이 가능할 것이다. 단지 언론, 표현의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지 그 의미만 알아주어도 이 글은 그것으로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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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시대준비위원회는 중도와 합리적 진보라는 워딩을 슬로건으로 내세웠고, 김한길, 신지예 등은 자신들이 진정한 진보를 추구하는 듯이 대외적으로 표방하고 있지만, 결국 소위 진보를 추구한다는 것은 망상이요, 사회주의 유토피아를 꿈꾸는 역설이 될 수 밖에 없다.
 

필자는 오늘 尹의 이 발언이 공론화되지 못하고 있음이 한탄스럽기까지 하다. 필자는 진정으로 자유를 위해서 지금까지 내 자신의 자리에서 싸우고 있는 것이다. 전장에 나선 군인의 심정으로 싸워 왔다. 이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발언이다.
 

필자는 대깨문은 물론 대깨윤까지도 그 모든 개인의 자유를 위해 싸우고 있는데 이 심정을 그들은 훗날에도 과연 알아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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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관과 도덕성은 우리가 얼마나 문명화되었는가를 보여 주는 지표다." (Jordan B Peterson)
 

"그 나라의 정치가 얼마나 부패했는지는, 표현의 자유가 얼마나 잘 지켜지고 있는가를 보면 알 수 있다." (Jordan B Peterson)
 

"개인의 자유를 위한 정책이 진짜 진보 정책이다." (Friedrich August von Hayek)
 

"나는 당신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지만, 당신의 말할 자유를 위해 함께 싸우겠다." (Voltaire)(알려진 바에 의하면)
 

"거짓말을 한 자를 멸하는 가장 훌륭한 무기가 바로 표현의 자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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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의 자유 for 진실>
 

그렇다. 진실을 말하기 위해 표현의 자유가 필요한 것이다.

진실은 그로써 '참'이지만, 인간은 각자의 개성, 가치관, 성격, 경험 등의 차이로 인해 저마다 다른 진실을 추구할 때도 있다. 착각으로 인한 것도 그 당사자는 그게 진실이라고 믿고 있는 경우이다. 그래서 각자가 자신이 믿고 있는 '진실'을 자유롭게 표현하기 위해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하는 거다. 개인차로 인해 표현에 서툰 경우도 있어서 더욱 그렇다.
 

그렇게 서로가 말하는 진실들이 상호 교류를 통해 미약한 발전을 이루고, 그것이 쌓여 질서를 만들어내며, 그 질서는 복잡한 세상을 유기적으로 맞물려 돌아가게 하는 톱니바퀴와 같은 구조가 된다. 이 구조는 모두를 올바른 길로 이끄는 밤바다의 등대와 같은 것이다. 그래서 질서란 것이 중요하고, 질서는 자유와 진실을 추구할 때 구축된다.(진실을 쫓는 자는 얼마든지 설득될 수 있는 이유다.)
 

그러나 집단주의, 전체주의 이데올로기에선 진실 따위에 관심이 없고 오직 하나의 집단지성을 정체성으로 추구하기에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이 자유발언을 막으려 하고, 질서와 구조를 파괴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을 개인이 아니라 집단의 일부로 인식하는 데에서 근본적인 사고의 차이를 가지고 있다.
 

이 포스트모더니즘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대중은 미처 의식하지도 못한 사이에 가치관과 사고의 영역에서 조금씩 지배의 수렁에 빠져들고 있고, 적은 그 세를 점점 더 넓혀가고 있기 때문이다. 뭐가 뭔지 잘 모르는 사람들은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을 지식인으로, 동경의 대상으로 바라보기 쉬우며,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이 다같이 한목소리를 내기 때문에 그 영향력에 금새 동화되고 만다.
 

우리나라도 지금 포스트모더니즘에 함락되고 있는 것이다. 페미니즘이니, 성 소수자 인권이니, 기후환경론, 각종 계층 분열, 언론중재법, 역사왜곡처벌법, 차별금지법 등이 다 그렇다.
 

총칼을 들고 나를 위협하는 적은 금방 알아차릴 수 있지만 웃는 얼굴로 악의 구렁텅이에 조금씩 밀어넣는 적은 죽기 직전까지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세상은 지금 총성 없는 전쟁 중이며, 우리가 이기기 위해서는 적을 알고 나를 알아야만 한다. 적을 모른다면, 내 상황을 모른다면 어떻게 싸울 것인가.
 

[조던 피터슨 공식 채널 - 사회와 언론의 자유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https://youtu.be/buYnW3OA86U

(기독교인이 아니라면 앞부분은 생략하고 7:27부터 3분 정도만 보세요.)


 

<진실 추구와 반사회성>
 

본문을 제대로 다 읽지도 않거나 대충 읽다 말고서 댓글만 읽고 반론이랍시고 악플을 다는 문화, 제멋대로 해석한 자기주장을 끼워 맞춘 논리로써 합리화하는 것에 진절머리가 난다. 그러다가도 또 생각해 보면 그들이 머리로는 이해가 된다. 논리적인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이것도 인간의 모습이고, 자연의 일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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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치맨'이라는 영화가 있다. '300'으로 유명한 잭 스나이더 감독의 작품인데, 영화 내내 주인공이자 히어로로 등장하는 로어셰크가 진실에 접근하는 그 과정을 보여준다. 그의 진실 추구는 매우 순수한 것이어서 그 어떤 현실과도 타협하지 않고 오직 진실만을 맹목적으로 쫓기까지 했고, 결국 '평화를 지키기 위한 현실과의 타협, 사회성'보다 '평화를 해치게 되는 진실 추구, 반사회성'을 선택하고 기꺼이 죽음을 맞이한다.

(비슷하지만 좀 다른 경우인 원자폭탄의 아버지, 로버트 오펜하이머가 떠오르기도 하는.)
 

영화에서는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상황을 설정하고 극단의 장면을 그려냈지만, 현실에서는 그렇게까지 극단적인 예외는 좀처럼 발생하지 않는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서는 거의 모든 경우에서 진실을 추구하는 것이 진정한 올바름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진실은 매우 타당한 원인과 결과의 흐름에 기초한다. 배고프면 먹어야 하고, 졸리면 자야 하고, 소금을 넣으면 짜고, 설탕을 맛보면 단 것,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처럼 자연의 이치, 과학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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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을 추구하는 과정은 고뇌의 연속이다."
 

"진실을 알리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은 외로운 소수에게만 흐른다."
 

진실을 추구한다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겉으로는 잘 보이지 않는, 드러나지 않은 것을 찾는, 알리는 과정이기 때문에 타협과 멀어지고 반사회성을 띄게 된다. 종종 부딪히는 벽 앞에서 현실과 타협하는 순간 진실을 찾는 여정은 거기서 중단되어 버리고 사회성을 대가로 점수를 따낼 수 있을 뿐이다. 이 역시도 등가교환의 법칙인지 모두를 다 가질 순 없기에, 진실을 추구하는 사람은 드물며 꽤 외로운 존재들이다. 그래서 나는 진실을 추구하는 모든 이들을 응원한다.
 

"자유를 보장해야 진실을 볼 수 있고, 진실을 추구해야 자유를 지킬 수 있다. 자유와 진실은 동일선상에 놓인 가치이다."
 

진실을 말함은 때로는 '팩폭'이 될 수 있고, 매우 슬프거나 비참함을 보여줄 수도 있는 데다가, 상대가 불편함을 느끼고 거부할 수도 있으며, 진실에 관심조차 두지 않을 수도 있어서, 상대에게 강요하는 것은 선택할 자유를 제한하는 게 되지만, 선택의 여지를 남겨둔 이상에야 그것을 말할 자유가 있어야 한다. 자유주의를 약 250년 동안이나 지탱할 수 있었던 미국 사회의 자정 작용도 이 '각자의 진실을 말할 자유'로부터 나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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