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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수, 때늦은 ‘독재타도’ 비밀집회 … 장면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왜?

뉴데일리

통칭 1백만 피란민이 들끓는 부산거리 시민들은 계엄이든 아니든 밥줄에 매달려 땀 흘리고 있었으나, 난데없는 소문들이 쏟아져 나와 어수선하기 그지없었다. 어느 국회의원이 일본으로 도망쳤다느니 어느 유명 인사들이 미국 망명신청을 했다느니, 국회가 곧 해산되면 선거는 언제 하느냐는 둥, 종잡을 수 없는 뜬소문에 특히 국회의원들이 안절부절인지라 의사당은 날마다 성원미달로 개점휴업이다. 끼리끼리 모여 ‘트루먼이 이승만에게 무슨 통고를 했다’는데 또 무슨 조치가 나올까, 설마 국회를 해산까지야 하겠느냐...수런거리는 틈새를 비집고 장택상의 ‘개헌 로비’만은 알게 모르게 번져가고 있었다.

◆이승만 “국회 해산 연기”...국회의원들 갈팡질팡

이때 이승만이 ‘폭탄 성명’을 발표하였다.“국회 해산을 연기하고 순리로 해결하겠다”는 성명은 조선일보가 톱기사로 보도한다.「이대통령은 4일 장문의 성명서를 발표하고 ‘현 국회를 민의에 따라 즉시 해산하기로 하였으나 민의를 차차 준행하는 국회의원이 생긴다하여 순리로 조정되기를 바라는 뜻으로 국회해산을 며칠 지연시키는 터이나 소기대로 안 되면 부득이 국민 뜻대로 국회해산을 공포할 것’이라고 천명하였다. 요지는 다음과 같다.“...각도에서 들어온 공문이 일치하게 국회를 해산시키라는 결의안으로 도의원 대표들이 와서 대통령에게 진정하며 결의를 표시하게 된 것이니 본대통령은 이 민의를 준행하기 위하여 즉시 국회를 해산하기로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나의 입장으로는 민국의 초대대통령으로 국회를 해산시켰다는 전례를 만드는 것을 원치 않는 동시에, 국회의원 50여명이 공개로 연명선언하고 민의를 거부하는 국회의원을 공개 성토하였으며 다른 국회의원들도 민의를 준행해야 한다는 분들이 여럿 있다 하므로, 아직 해산령은 중지하고 국회에서 순리로 조정되기를 바라는 뜻으로 며칠 지연하는 것이다....(중략)....내가 민중에게 설명코자 하는 바는 우리가 더욱 인내하는 마음으로 수일만 참아서 순조로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요. 이대로 못되면 부득이 합헌대로 공포할 것 뿐이다. 국회를 해산시키지 않고라도 그 결과는 민중이 요구하는 대지(大旨=직선제)를 실시함으로 결정될 것이니 며칠만 기다려주기 바란다.”([조선일보] 1952년 6월6일자) 이 성명이 나가자 「정국은 아연 ‘서광’이 비친다」는 기사를 쓴 조선일보는 장택상의 개헌 절충안 내용을 소개하며 강경파들의 움직임 분석 등 향후 정국전망을 내놓고 있다.다음날 국회는 오랜만에 성원이 되었다. 국회해산을 보류한다는 성명을 듣자 국회의원 구속은 더 없을 것이라던 정부 방침에 신뢰가 생기면서 숨었던 의원들이 모처럼 등원한 것이었다.

‘국회해산 보류’ 성명으로 카드 하나를 버린 이승만이 ‘수일간 보류’ 단서를 붙이자 그 폭발력은 예상대로 컸다. 지난 지방의회선거로 국민의 정치력을 조직화한 이승만은 그 국민의 힘을 믿고 활용하여 ‘국민이 주인 되는 직선제 헌법’을 반드시 관철하려는 목표는 더욱 굳어졌고, 강대국들의 계엄령해제 요구엔 요지부동이다. 미국의 내정간섭을 포기시켜야 하기 때문이다.각도 의희 대표들은 날마다 대통령관저에 몰려들어 국회해산을 소리쳤다.동아극장에서는 1천5백여명의 인파가 모여 전국지방의회대표자회를 개최, 이승만 지지를 결의하고 국회로 행진하며 “민의 배반 국회는 즉시 해산하고 총선거를 실시하라“고 합창하였다.정부는 200개가 넘는 지방의회가 직선제지지 결의안을 채택하여 전해왔다고 발표했다. 이승만이 뽑아 흔드는 각가지 카드에 국회의원들은 정신을 못 차리고 갈팡질팡이다.

◆”미국 약점을 잘 이용하는 이승만“

무초는 본국에 돌아가서도 쉴 틈이 없다. 한국 사태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급박한 분위기 탓이다. 모교인 브라운대학에서 명예법학박사 학위를 받은 일 말고는 워싱턴에서 부산보다 더 분주하게 뛰어야했다. 라이트너 대사대리가 날마다 보내오는 보고서는 이승만에 대한 비난과 이승만을 하루속히 제압하라는 군사적 강경책을 비롯하여, 국무부 극동 담당관들이 맞장구치는 닦달에 시달렸다.

미 국무부는 무초의 비관적인 의견을 듣고서는 그것이 무초의 책임이라는 듯 핀잔이 앞선다. “국회 해산 보류? 이것 말고 이승만이 달라진 게 없단 말이냐?” 국무성 차관보 히커슨(John Hickerson)은 라이트너의 보고서들을 흔들며 “유엔군의 적극 개입으로 이승만의 행보를 한시바삐 막아야한다“는 대책을 재삼 강조했다.*이승만이 계엄령을 즉시 해제하도록 더욱 강압할 것. *한국 국회와 연계하여 언커크와 협력, 유엔이 바라는 타협을 반드시 달성할 것. *이승만이 요구를 거부하거나 국회를 해산하면 유엔군이 즉각 계엄령을 선포하고 작전대로 행동을 개시할 것 등이다.

무초는 한숨을 토한다. 바위에 계란 치듯 이승만과의 메아리 없는 대면에 지친 52세 노총각도 결국 국무부의 강공책을 거부할 명분도 기력도 없어졌다. 무초는 현재 예상할 수 있는 ‘만약의 경우’를 몇 가지 제시한다.*이승만의 국회해산 강행 *이승만의 육체적 정신적 장애 발생의 경우 *강경파 이범석의 경찰 쿠데타 *부산에서 한국군의 쿠데타 혹은 폭동 등...어떤 경우라도 무초는 어디까지나 미군이 아닌 유엔군의 이름으로 개입해야 할 것이며, 이승만에게 반항할 틈을 주지 말고 ‘순식간에 결행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외교관으로서 외교적 수단은 이미 약효가 다했다는 자포자기적 실토나 다름없었다.

다시 말하면, 무초로서 할 일은 다 했으니 유엔군 사령관 클라크가 행동에 나설 때라며 급히 만나 협의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클라크는 무초를 만나지 않았다. 클라크 사령관은 처음부터 국무부의 강공책을 반대하며 신중책을 제시하였다.미국과 한국야당이 국회 선거로 이승만을 패배시켰을 때 클라크의 대응책은 이러하다.*이승만이 반항 없이 패배를 수용할 경우, 유엔 경비로 세계여행을 시키며 협력을 구한다.*이승만이 선거무효를 선언하고 스스로 대통령에 취임하거나 강력한 위압적 반발수단에 호소할 경우, 유엔군 사령관 내가 사태를 장악해야 할 것이므로 필요한 지침을 달라.우리가 과격한 군사적 행동을 취하기전까지는 최대한의 외교적 설득 압력에 집중해야하고 이승만을 궁지에 몰아넣는 강공책은 최대한 피해야 한다” 이것이 클라크의 입장이다.“섣불리 유엔군을 동원하면 공산군과의 전쟁에 지장을 초래할 위험이 크고 결국른 유엔과 미국의 권위만 떨어트릴 것임”을 제기하며 반대의 입장을 고수하는 것이었다. 무초는 클라크를 급히 만나야겠는데 ”북해도 출장 중“이라는 전갈만 날아왔다. 클라크를 대신하여 도쿄 주재 미국대사 머피(Robert Murphy)가 야릇한 편지를 보냈다.“...한국의 미국 대사관은 처음부터 국회 편만을 들었을 뿐, 이승만을 조금이라도 지지하는 일은 없었다고 클라크가 생각하고 있다오. 클라크 사령관 대리인 히키(Doyle Hickey) 장군은 ‘한국 국회가 전적으로 옳다고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승만이 전적으로 잘못이라고 할수도 없지 않은가’라고 생각하고 있소. 미국으로서는 공정하고 현실적인 절충안을 목표로 해서 노력해야 할 것이오.”무초는 이 편지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고백한다. 그는 한국의 현지 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클라크에게 서운하고 실망했다는 투의 표현을 답장에서 감추지 않았다. “이승만은 절대로 계엄령을 해제하지 않을 것이오. 나는 알고 있소. 그럴 경우 미국은 매우 어려운 지경에 빠질 것이며, 나는 유엔군 사령관에게 기대는 일 밖에 할 일을 다 했소. 당신을 믿을 뿐이오.” 사실이었다. 더 이상 이승만을 움직일 수 있는 방법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부산의 라이트너도 무초와 같은 심정이었다.“이승만이 계엄령을 내리자 미국은 이승만을 몰아낼 ‘하늘이 준 기회’를 잡았다. 그는 미국에도 한국에도 도움이 안되는 인물이다. 누가 다음 대통령이 될 것인지 나는 몰랐지만, 4,5명의 후보도 있었다. 그런데도 국무부가 주저한 것은 국방부와 마찰을 빚어 파국을 피하려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것이 미국정부의 큰 약점이었다. 이승만은 이런 미국의 사정에 밝았다” 라이트너는 “우리가 보인 약점 때문에 이승만은 더욱 고무되었을 테고 더 멀리 도망쳐버렸을 뿐”이라며 고개를 흔들었다. (1973년 라이트너 인터뷰 증언:Oral History Interview with E. Allan Lightner by Richard McKinzie. Oct,26,1973)

그렇다. 이승만은 미국을 잘 알고(知美) 미국의 필요한 인물들과 친하고(親美) 미국 정부의 힘를 잘 이용할 줄 아는(用美) 전략가임을 우리는 앞에서 여러 번 보았다. 이번에도 이승만은 맨손으로 말과 신념으로만 미국을 굴복시킨다. 유엔군 사령부와 미국대사관 사이의 미묘한 의견충돌이나 워싱턴의 국무부와 군부 간의 문무(文武)대립관계 등 요컨대 ‘미국의 약점’에 대하여 이승만은 누구보다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유난히 이승만을 존경한다는 밴 플리트 사령관도 많은 ‘조언’을 제공했으리라. (조용중, 앞의 책).

◆중대한 전환점—미국 ‘이승만 제거’ 군사작전 포기

미국시간 6월4일 워싱턴에서 미국무부와 합동참모본부 수뇌들의 연석회의가 열렸다.이 자리에서 놀라운 반전이 일어난다. 지난 일주일간 숨 가쁘게 진행된 한국의 계엄 사태와 미국의 대응과 그 정치적 혼란을 잠재우는 결정이 내려졌던 날이다.“전쟁하는 한국에 유엔군의 군사정권을 등장시키기 보다는 한국인의 문민정부가 바람직하다”국무부의 ‘이승만 강공책’을 제압한 이 합의는 미군 합참이 유엔군의 직접개입을 최종적으로 거부함으로써 합의된 미국정부의 결단이다.그러나, 이승만을 제거하는 유엔군의 무력개입은 포기되었지만 이승만을 바꾸려는 정치게임은 변화가 없다. 무초 대사에겐 “오늘 밤에라도 한국에 가서 취할 조처”의 지침들이 주어지고, 국방장관의 지침도 무초가 클라크에게 전달하기로 했다. 로베트(Robert Lovett) 국방장관도 클라크처럼 “혐오스럽고 심대하게 중요한 군사개입 대신 정치적 해결”을 촉구한다고 다짐 주었다.애치슨도 결단을 내린다. 이승만을 혐오하는 친소세력이나 유럽 중심론자들이 가득찬 국무부의 책임자 애치슨 장관은 주한대사대리 라이트너의 강경책을 깨끗이 무효화시켰다. “한국에 안정적 정권을 확보하는 길은 이승만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승만이 대통령에 앉아있는 편이 미국이나 유엔의 이익에 가장 맞는 선택이다.” 요컨대 애치슨은 한국정치관련 보고를 종합하여 본 결과, “이승만을 대체할 한국 대표브랜드 전쟁지도자를 찾지 못한 결론”에 도달하였다는 것이다. (Memorandum of the Substance of Discussion at Department of State Joint Chiefs of Staff Meeting, Washington, June 4, 1952)

이렇게 해서 미국정부의 대한정책 최종안이 정리되고, 트루먼 대통령은 이승만 대통령에게 ‘각서’를 발송했던 것이다. 트루먼 각서로써 미국정부의 ‘이승만 제거’ 갈팡질팡은 끝났다. 하지만, 지난 달 실패한 ‘국회쿠데타’의 새로운 성공을 위한 시나리오를 다시 만들어야 할 일이 남았으니, 태평양을 날아오는 무초는 또 바쁘게 생겼다.

◆무초, 군사작전 대신 ‘국회 쿠데타’ 다시 준비

무초가 돌아왔다. 계엄령 선포전날 미국에 갔던 미국대사 무초가 2주일 만에 부산에 도착하여 이승만 대통령을 예방한 것은 6월6일 오후, 오랜만의 대화는 2시간 가까이 길어졌다. 이승만의 열변을 또 들어야하는 무초의 머릿속에는 새로운 ‘문민정부 창출’이란 구상뿐이다. <조속히 계엄 해제, 국회의 대통령 간접선거, 이승만이 당선되면 지지, 낙선 후 반항하면 유엔군이 계엄선포 이승만 구금, 미군정 실시>--이런 그림을 가져 온 무초가 이승만의 대화에 어디까지 응대할 수 있었을까. 열기를 뿜는 이승만의 주장에는 한 치의 변화도 없었다.“대사, 미국이 나의 고귀한 목적을 이해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 지나친 강경책을 쓰고 있소. 언커크 등이 노골적으로 내정간섭을 하고, 각국 언론에 흘리는 바람에 세계가 나에게 대항하는 꼴이 되어 있으니 나는 누구에게도 의지할 수 없을 만큼 외로워졌소이다.”그랬다. 하소연하듯 주름진 이승만의 얼굴은 눈에 띠게 쇠잔해 보이고 의지할 사람이 필요한 것 같았다고 무초는 보고서에 썼다. 80대에 다가서는 독립운동가의 ‘평생의 염원’ ‘고귀한 목적’을 알아주는 사람은 그림자도 없는데 버텨내는 용기가 얼마나 쓸쓸할까.

무초에 이어 영국 공사 애덤스(Alec Adams)도 이승만을 찾아와 한 시간 넘게 계엄령 해제를 촉구하였고,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인도 등 영연방국가들이 연합하여 압력을 가하였으며, 영국 국방상과 외무상이 곧 방한 할 것이라고 위협하였다프랑스도 주한 대리공사를 시켜 정부각서를 이승만에게 전달하였고, 유엔 사무총장 리(Trigve Lie)는 언커크 입장을 지지, 국회해산은 절대로 안되며 계엄령을 풀라고 독촉하였다.타임, 뉴스위크등 미국 주간지들은 이승만의 얼굴을 희화화하여 표지인물로 등장시키는가 하면, 뉴욕 타임즈와 워싱턴 포스트는 물론, 영국의 더 타임스 등 세계의 유력 언론들은 입을 모은 듯이 이승만을 비난하고 “국회를 해산한다면 쿠데타적 수법”이라거나 “이승만을 보다 강력하게 압박하라”는 주장들을 줄줄이 써내고 있었다. 그러니까 한국서 종군한다는 외국 특파원들은 각국대사관이나 언커크등의 ‘이승만 압박’ 활동에 앞장 선 대변자들이었다.

◆장택상 절충안...직선제와 내각제 조항들 발췌 헌법안 마련

장택상이 뛰기 시작했다. 트루먼 각서를 본 이승만의 ‘의미심장한 시그널’ 때문이다.머리 좋고 수완 좋고 돈 많은 마당발 정치인 국무총리, 이승만이 총리로 임명하던 날부터 ‘묘책’을 찾아 궁리를 거듭하였다. 직선제와 내각제의 개헌안이 맞붙어 결투를 벌이는 국면을 돌파해야할 임무, 그것이 이승만이 자신을 총리 자리에 앉힌 숙제임을 잘 알고 있다. “절충안을 만들자” 두 가지 개헌안을 뒤적이는 장택상은 이승만도 국회도 받아들일 수 있는 타협안을 짜느라 골머리가 아프다. 그 뼈대는 자신도 찬성하는 ‘직선제’임은 물론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대통령이 보여주지 않던 ‘트루먼의 각서‘ 내용을 먼저 알아야겠다고 다짐한 장 총리는 친분 있는 미대사관 요원을 통해 대충 요지를 탐지해낼 수 있었다. 그 순간 얼굴이 환해졌다. 그렇구나...미국이 이승만을 죽이지는 않겠구나...각서의 행간에서 나름 ‘타협’의 냄새를 맡은 정치동물 장택상은 두 개헌안의 핵심을 짚어가며 또 하나의 ‘비빔밥 헌법’을 조리하기 시작한다.

국무총리로부터 절충안을 받아 본 이승만은 창밖을 바라보며 10분 넘게 말이 없었다.“자네는 이걸로 국회에서 통과시킬 수 있단 말이지?” 이승만이 날카롭게 쏘아본다.“예, 각하!” 재빨리 답하는 장택상은 자신감이 솟는다. 독립운동시절의 호칭 ‘선생님’은 이제 깍듯한 ‘각하’로 변한지 오래다. 경상북도 칠곡의 명문 대지주 셋째아들 장택상은 영국 에딘버러(Edinburgh)대학에 유학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허정, 조병옥 등과 함께 이승만의 구미외교위원부에서 독립운동을 도울 때부터 이승만을 선생님이라 불렀다.

장택상은 이미 국회 안에 직선제 개헌 지지세력을 상당수 확보해 놓은 터, 원내 이승만지지 국회의원 모임 ‘삼우장(三友莊)파’ 52명과 장택상의 친목모임 영남출신 ‘신라회(新羅會)’ 40여명이 그들이다. (삼우장파는 삼우장 음식점이 근거지라 생긴 이름.) 옛날부터 지역파벌은 피할 수 없는 한국정치 고질병, 그때나 지금이나 영남출신은 여당이고, 호남출신은 야당인 모양이다. 장택상은 삼우장파와 신라회를 총동원하여 직선제 동조세력을 더 확보하기 위해 서두른다. 두 세력 합해도 개헌선에는 30여표나 모자랐기 때문이다.

이승만의 지침에 따라 장택상이 마무리한 절충안의 골자는 이렇다. ①대통령 직선제. ②국무총리는 대통령이 임명하고 국회의 인준을 받는다. ③국회가 3분의 2이상 찬성으로 불신임안을 결의하면 총리는 사임. ④대통령은 총리의 제청으로 각료를 임명하며 국회의 동의를 받는다. 이것이 이른바 유명한 ‘발췌개헌안’--직선제 헌법에 야당의 내각책임제 개헌안의 요소를 발췌하여 짜깁기한 것이었다. 이로써 이제 이승만도 ‘타협의 카드’를 가지게 되었다. 트루먼의 고압적인 위협 각서에 대응하여 이승만 식의 실질적인 ‘양보 신호’를 보낸 셈이다. 과연 미국과 참전각국의 반발은 이것으로 진정될 수 있을 것인지...◆무초, 김성수 찾아가 '시위' 선동국무성 실무진이 작성한 ‘한국 정세보고서’에는 몇 가지 흥미로운 내용이 눈길을 끈다.*이승만은 정신적 파산자. *이승만을 대신할 ‘국민적 대표인물(national brand)’이 없다면 대안을 찾는다. *한국 육군총장의 주도로 군부와 지식층, 언론을 단결시켜 대처할 방안 등.이 보고서의 ‘국회’ 항목에서는 “한국정치가 복원되려면 국회의 신뢰가 중요한데 ”일부 의원들은 무능, 부패, 파괴분자들도 있다는 현실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는 지적도 병기해놓았다.

‘대안’을 찾아 야당을 누비는 무초는 어느 날 발길을 부산 앞바다로 돌렸다.24시간 푸른 파도에 떠있는 미국 병원선 헤이븐(haven)호, 그 고위층 병실에 들어있는 ‘환자 아닌 환자’ 김성수를 또 찾아가는 수밖에 없다. 문병 구실로 갈 때마다 속셈을 떠보지만 한국 정치인들은 도대체 이해하기 힘들고 믿을 수 없는 존재들이다. 저마다 우두머리요, 이승만 못지않은 고집불통이요,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하고 위기 대처능력도 없이 단합할 줄도 모르고, 끼리끼리는 거품을 품고 비난하다가도 막상 이승만 앞에서는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는 ‘고양이 앞의 쥐’ 아닌가. 아니 이승만을 만나기조차 겁을 낸다. 게다가 민국당은 장면이 대통령 되는 것도 꺼려하니 어쩌자는 말인가...오늘은 꼭 무슨 수를 내야지...장면이든 조병옥이든 김성수든 이승만보다는 쉬운 인물들이니까. (Oral History Interview with John Muccio by Jerry Hess, Feb. 1971)무초는 이날 김성수와 대화를 나누면서 넌지시 이런 말을 던졌다.“지금 미국에서는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비난의 소리가 높지만, 막상 한국의 반대세력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있기 때문에 미국으로서는 어찌할 수가 없어 참 난처하다오.”이 같은 무초의 선동적인 말은 김성수의 비서실장 신도성(愼道晟)이 남긴 기록에 있다.노련한 직업외교관이 직설적인 표현은 피하였겠지만 그 취지는 분명히 전달되었다. (신도성 [신도성 수상집: 정가의 낙수] 관동출판, 1977)

★국제구락부 사건...호헌대회 쑥대밭...장면은 끝내 안나오다민국당은 신바람이 났다. 간부들은 바다속 병원선 김성수 독방에 모여 한판 승부수를 은밀하게 준비하기 시작하였다. 장면 못지않은 미국통 조병옥 사무총장은 신도성, 유진산을 데리고 ‘호헌구국(護憲救國) 선언대회’와 시가행진 데모를 하자는 시나리오를 만들었다.소요자금 4천만원(당시 화폐)은 정치자금 조달의 명수 조병옥이 맡았고, 선언문을 만들어 참석자들의 서명을 받았다. 검거 위험 때문에 최소화하여 60~70여명, 민국당을 중심으로 안창호의 흥사단과 종교계의 지도자들을 모았다. 사임한 부통령 이시영과 원로 독립운동가 김창숙(金昌淑:1879~1962)을 비롯, 이동하, 전진한, 서상일, 백남훈, 최희송, 김동명, 장기영, 유진산 등 주요 인물들, 그리고 초량 국민 학교 미군 병원에 입원중인 장면도 참가하기로 약속하였다. 인촌 김성수는 불참하는 게 좋겠다고 하여 제외시켰다.

▶6월20일 오후 3시, 부산 남포동 경양식집 국제구락부. 민국당 등 정치인 단골집이다.문밖에 ‘문화인 간담회’라고 쓰인 흰 종이가 붙어있는 넓은 홀에 인사들이 모여들었다. 시간이 다 되었는데 겨우 40여명, 선언문에 서명했던 20여명이 나오지 않은 것이다. 문제는 주인공 장면, 선언문을 읽기로 정해진 장면이 무슨 까닭인지 개회시간이 훌쩍 넘도록 나타나지 않는다.대회장 밖에는 경찰들이 진을 치고 군중들이 몰려들었다.30분 이상 장면을 기다리다 못한 조병옥은 대회를 시작, 민국당의 서상일이 개회를 선언하고 국민의례와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이 끝났다. 이어서 선언문 낭독, 장면이 읽기로 했던 선언문은 누구 읽어야할까. 장면 대신 최고령자 김창숙이 읽기로 하고 부축을 받으면서 일어설 때였다. 와장창! 잠갔던 출입문을 밀치고 한 떼의 청년들이 뛰어들었다. 닥치는 대로 화분과 의자를 던지며 외쳤다. “호헌은 무슨 호헌이냐. 니들끼리 해먹는 게 호헌이냐” "직선제는 싫고 국민은 보이지도 않느냐" 대회장은 금새 수라장으로 변했다.“웬 놈들이냐? 썩 물러가지 못할까” 구석으로 밀려나며 조병옥이 소리 질렀지만 소용없다. 메아리 없는 호통, 청년들이 물러가자 남은 것은 깨지고 찢어지고 쓰러지고 뒤집혀진 쑥대밭 난장판뿐, 넋 잃은 참석자들은 허탈감에 빠져 주저앉고 말았다.

김성수가 작심하고 이승만을 타도하자고 써낸 선언문은 읽기도 전에 휴지조각으로 변해버렸다. 국회의 간접선거로 자기 대통령을 뽑아 정권을 잡으려던 야당의 ‘호헌’(헌법수호) 몸부림은 미국의 지원에도 불구, 허망하게도 사실상 물거품이 되어버리는 순간이었다.“민의가 독재냐? 국회가 독재냐?” “민의 무시 국회는 직선제를 즉시 통과시켜라” 거리가 떠나갈 듯 군중의 함성에 쫓긴 참가자들은 허둥지둥 길 건너 조병옥 원내총무 사무실로 피신하였다.이날 대회를 무산시킨 행동대원들은 대한청년단 리더 문봉제(文鳳濟)가 진두지휘하였다고 한다.([조선일보]1952년6월23일자)그런데 경찰의 수사에서 이들이 사용한 유인물의 용지와 활자체가 외국용임이 드러났다. 선언문, 결의문, 메시지 등 인쇄물이 미제종이요, 모두 한글과 영문뿐이고 한자는 없었다. 경찰은 미국대사관 소유 타자기를 사용했거나 관련 미국인들이 도와준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조선일보] 1952년7월7일자)

◆김성수, 이승만을 최초로 ‘독재자’ 규정

◉김성수 작성 선언문=바다에 떠있는 미국 병원선에서 김성수가 구술하여 측근이 만든 ‘호헌구국(護憲救國) 선언문’은 현행 헌법을 지키고 나라를 구하자는 결의를 담았다.여기서 특히 주목되는 표현은 ‘독재’ ‘독재자’란 말을 여러 번 되풀이 한 것, 그동안 어느 의원이 국회 원내발언에서 ‘이승만 독재‘를 언급한 일은 있었지만, 정당 대표가 ’이승만 독재자’로 공식 선언한 것은 김성수가 최초였다. 요지를 읽어보자.

친애하는 동지, 내빈, 국내외 동포 여러분! 지금 대한민국은 바야흐로 중대한 위기에 직면하였습니다. 밖으로는 적색 제국주의의 침략으로 말미암아 국토는 황폐하고 국민은 유리(流離)하여 생사지경을 헤매고 있는데 안으로는 오직 일개인(필자주: 이승만)의 그칠 줄 모르는 독재적 탐욕 때문에 국헌(國憲)은 유린되고 민주주의는 말살되어 전 자유세계의 동정과 구원의 손길은 거역되어 국가와 국민을 통틀어 멸망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으려 하고 있습니다...(중략)...그는 마치 절대 권력을 쥔 황제연(皇帝然) 하여 그의 의사는 신성불가침이요, 그 명령은 곧 국법인 듯 착각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도탄에 빠진 민생의 고통이나 파멸에 임한 난국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는 양 오직 일개의 탐람(貪婪)한 욕망만을 추구하는 언어도단의 난맥정치를 자행하여 왔던 것입니다. 오늘에 있어서 이 독재자가 소위 민의를 칭탁(稱託)하고 민권에 빙자하여 애국심을 운운하는 것처럼 가소로운 일은 없습니다. 그나 지나간 4년 동안에 민의를 무시하고 민권을 유린한 것이 그 얼마였으며 국리민복을 위하여 건설적인 사업을 한 것이 그 무엇입니까? 그는 오직 그의 전제적인 권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우리나라의 애국적인 민주세력을 분열 약화시키려는 간악한 분할통치책략에만 몰두하여 왔고 국민의 기본적인 자유 인권을 박탈하고 언론을 탄압하여 국군을 사병화하여 그의 이기적인 목적에 구사하려고 하고, 사회 경제 문화의 모든 부분에 걸쳐 졸렬하고 무능한 시정으로써 파괴일로를 걸어왔으며 근로대중의 정당한 요구를 흉악한 공갈과 위협으로 압살하지 아니하였습니까? 우리는 대체 무엇 때문에 오늘까지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하고 옹호하기에 갖은 힘을 다하여 왔습니까? 지금에 있어서 우리의 혈투와 혈투의 대가가 다만 이기적인 독재자의 망국정권을 강화하고 공산 노예제국이나 다름이 없는 전제적 경찰국가를 현출시킨 것뿐이라면 과연 이 무슨 모순이겠습니까?...(중략)...자유한국을 건설하기 위하여 분투하여 온 유엔의 노력을 헛되게 하는 것입니다. 더욱이 이역만리에 군대까지 파견하여 우리나라를 수호해주고 있는 유엔 각국으로서는 그 귀중한 인명과 막대한 재화를 희생시킨 결과가 겨우 이 부패한 독재자를 구제해 준 것뿐이었다면 그 얼마나 의외이겠습니까?...(중략)...여기에 있어서 자유와 평화를 애호하는 우리들 한국 국민은 분연히 궐기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국가의 도괴(倒壞)와 민족의 멸망을 이 이상 더 좌시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일치 결속해서 이 독재와 싸우기로 결심하였습니다.이 독재자는 지금 이 순간에도 대의를 위해서 생명을 마치고 있는 우리 국군 및 유엔군 장병의 숭고한 정신을 모욕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반역적이고 망국적인 독재자를 타도하는 것만이 우리가 국운을 만회하여 순국의 영령을 위로하고 우리 자신의 평화와 번영을 향유하도록 하는 유일한 길입니다...(후략)...」 단기4285년 6월20일 김성수

‘독재’ ‘독재자’란 말을 반복하며 비분강개를 토해내는 김성수의 한 맺힌 울분을 그 누가 헤아릴 수 있으랴. 일찍이 도쿄 유학때 처음 만난 젊은이의 우상 이승만 박사, 3.1운동 때에는 이승만의 “귈기하라”는 밀서를 받고 만세운동을 지원했던 호남지주 아들 김성수였다. 해방 후엔 김일성과 손잡는 김구에 실망하여 이승만 박사를 물심양면으로 도와 대한민국을 세웠건만, 그러므로 건국정부는 당연히 김성수의 한민당 정권인줄 믿었건만, 이런 배신자 대통령이 어디 있으랴. 총리도 안주고 장관6명을 달라는데 단칼에 뿌리치고 달랑 한명만 받는 냉정한 노인네, 그때부터 독재자인줄 알았지만 행여나 부통령에 당선되어 협력하려 했건만 인사문제 건의도 안 받으니 사표를 던지고 말았다. 다행히 미국이 말안듣는 이승만을 축출하려 하는지라 손을 잡고 정권을 잡아보려하는데 어느 틈에 먼저 알고 계엄령에 국회의원들 검거사태...이 독재자는 번번이 집권을 가로막는 원수 아닌가.

김성수는 아무리 발버둥쳐도 이승만을 이겨 낼 수가 없다. 마지막 수단으로 국민궐기에 호소하는 길뿐!그러나 이 선언문은 국민 앞에 읽기도 전에 갈갈이 찢어졌다.‘독재자 타도 대회’ 자체가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이게 무슨 꼴인가, 왜 그런지 김성수는 알았을까? 그의 외침은 거창한 목표를 내세웠지만 너무나도 ‘외로운 고함’에 지나지 않았다. 불과 한 달 전에 전국 지방자치제 선거로 국민적 지지를 장악해버린 이승만대통령을 ‘국가 파괴자’로 몰아붙이다니, 직선제지지 국민들이 이미 간선제지지 정치인들을 ‘배신자’로 규탄하는 한가운데서 이런 선언문을 읽어봤자 누가 듣겠는가. 비장하고 고매한 어휘들은 쫓겨난 양반 귀족인양 “안방에서 임금을 원망하는 선비의 독백” 같았으므로 그의 [동아일보]를 제외한 신문들조차 이 선언문엔 눈길도 주지 않았다. (조용중, 앞의 책)

기본적으로 이 선언문은 몇 가지 자체 모순점을 스스로 드러낸다. 첫째, 헌법을 지키자는 ‘호헌’을 내세우며 ‘이승만이 헌법을 유린했다’는 주장의 근거를 제시하지 않는다. 헌법의 일부조항을 개정하자는 ‘개헌’이 ‘헌법유린‘은 아니기 때문이다. 야당도 내각제 개헌안을 두 번이나 내지 않았는가. 바꿔 말하면, 김성수의 ’호헌‘은 직선제 개헌을 거부하고 ’간선제 헌법‘을 이대로 유지하자는 것, 미국의 도움을 받아 국회의 간선제를 통해 이승만을 축출하고 장면을 뽑아 집권하겠다는 권력의지의 다른 표현인 것이다.둘째, 비상계엄령 선포 역시 헌법규정에 따른 조처이다. 전쟁비상령을 지방선거 중 잠시 해제했던 것을 다시 선포한 것이며, 국회의원들을 검거한 것은 ’국제공산당음모‘에 관련횐 혐의를 조사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공산군과 싸우는 대통령으로서 공산당과 내통하는 자는 신분여하를 막론하고 제거해야하는 의무 아닌가. 셋째, ’지난 4년간 국가를 파괴하고 권력욕만 채운 부패한 정권‘이란 주장이다. 건국후 겨우 1년 6개월을 제외한 기간은 공산침략과 싸우는 중이다. 국가를 파괴한 것은 공산군이요, 부패한 집단은 앞에서 본대로 국회의원들이었다.넷째, 선언문은 무작정 ’국민 궐기‘를 외치고 있다. 전쟁에 동원할 인력도 모자란 판에 이승만정권 타도를 위해 국민을 동원하겠다는 선언은 오히려 국민들의 반감만 불러 일으킨다. 즉, 2대대통령부터는 국민이 직접투표로 선출하는 직선제를 실시하겠다는 이승만에 반하여, 간선제를 고수하겠다는 김성수의 야당 고집에 국민들의 민심은 벌써 돌아서버린 타이밍이다.다섯째, 무엇보다 이 ’궐기의 시기‘가 너무 늦었다. 계엄선포 한 달이 되도록 숨어 있다가 미국대사 무초의 말을 듣고서야 그것도 비밀리에 소잡한 대회, 게다가 주인공 장면도 꼭 참석하겠다는 약속을 깨고 빠져버렸으니 지도자들은 미국병원에 편히 지내면서 남들이 다 해주기를 바라는 꼴이다. 미국 땅에 ’망명‘한 채로 부하들에게 잘해보라고 시키는 그런 대회가 무슨 동력을 발휘하겠는가. 다섯째, 정보부족과 전략빈곤이다. 미국은 이미 ’유엔군에 의한 이승만 제거‘라는 무력동원작전을 포기하였는데 그것도 모르면서 미국이 강권을 발동해주기를 기다리는 ’사대주의 고질병‘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또한 이승만처럼 선거에 의한 ’국민조직‘을 갖추고 국민의 힘을 이용하는 전략적 사고력과 추진력은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수구적 정치인들, 한마디로 조선왕조시대 ’양반계급의식‘의 포로들이란 표현이 딱이다. (인보길 [이승만 현대사-위대한 3년] 기파랑, 2020)

★장면이 말하는 불참 이유국제구락부 사건에서 풀리지 않는 의문은 장면이 도무지 나타나지 않은 일이었다.가톨릭계 경향신문 사장으로 장면의 측근이었던 한창우(韓昌遇)의 증언을 들어보자.“장면 박사가 대회에 안 나와서 병실로 가보았더니 넥타이를 맨 채로 침대에 누워있었다. 장 박사는 ‘꼭 나가봐야겠다고 사정해도 병원 원장이 못 나간다는 거야. 자동차도 철수 시키고 나가려면 퇴원수속을 하라잖아’라고 말했다. 따라서 대회에 못 나간 것은 장 박사 뜻이 아니라 전적으로 미군 병원 측의 책임이다.“ (허동현 [장면의 정치활동과 사상에 관한 연구], 운석기념회 [장면, 건국외교 민주의 선구자] 분도출판사, 1999)이것이 사실이든 변명이든 이날 장면은 ‘독재타도’라는 대의를 포기하고 미국 의사 말에 따랐다는 말이다. 총리 사임후 초량국민학교의 미군병원에 입원할 때도 미군 장교가 데려갔고, 계엄령 선포후에는 보다 안전한 대신중학교의 미군병원으로 다시 옮길 정도로 미국은 장면을 지키려 애를 썼다고 한다. 그래서 그토록 미국인 말만 듣는가? 그 대회가 미국대사 무초의 조종을 받아 열린 사실도 몰랐던가? 그렇다고 자신을 옹립한다는 지원자 김성수와의 철석같은 그 약속을 그렇게 깨버린 이유는? 혹시라도 ‘잡혀가면 안된다’는 공포심 때문일 것이다.당시 정치권에선 간선제로 선거해도 장면이 대통령, 내각제 개헌되면 총리는 장면, 이런 인식이 굳어있었다. 왜냐하면 미국이 장면을 적극 옹호하기 때문에, 미국의 힘을 빌지 않고는 거물 이승만을 꺾을 수 없음을 너무나 알기 때문이다. 이런 정세구도를 잘 아는 장면이 ‘미군 의사 핑계’로 은신처에서 꼼짝도 안한 속내는 뒷날 국민들이 그 까닭을 다 알게 된다. 9년 뒤 장면총리 정권을 급습한 박정희의 5.16쿠데타 때 야반에 성당 수녀원에 숨어들어가 며칠간 꼼짝도 안하던 그 모습이!

★대통령 임기만료 7월14일, 선거까지 시간이 촉박하다내각제 개헌 이전에 ‘대통령 선취’로 전략을 바꾼 야권이 ‘호헌 결의안’을 통과시켰던 것이 지난 11일, 그후 은밀한 준비 끝에 열었던 국제구락부 ‘호헌-독재 규탄’ 대회마저 어이없이 깨지고 나자 허탈한 그들의 눈앞에 대통령 선거개시 법정시한 6월23일이 닥쳤다. 그동안 논란을 거듭하였던 대통령 임기문제는 개헌대결에 얽히면서 결론을 내지 못하였던 것, 헌법에는 임기만료 한달 전까지는 새 대통령을 선출해야 하는데 그 임기만료 날짜를 둘러싼 정파정략에 따라 세 가지 주장이 맞서는 중이다.①1948년 제헌국회서 초대대통령을 선출한 7월20일 이전 한달, 즉 6월19일 임기만료.②이승만이 대통령에 취임한 7월24일 기준 6월23일까지라는 주장.③1948년 8월15일 이승만이 대통령으로서 처음 정부수립을 선포하였으니 임기만료는 8월14일, 그러므로 7월13일까지 2대대통령을 선출하면 문제없다는 설이 큰 지지를 받는다. 이 방안을 내놓은 서이환(徐貳煥) 의원의 ‘인간 권리 발생 주기설’이 화제였다.*진통설=모태가 진통을 시작할 때. *일부 노출설=태아가 나오기 시작할 때.*전부 노출설=아이가 완전히 나왔을 때라야 인간 대접할수 있다.*제호설(啼呼說)=아니다. 아이가 울음을 터트려야 사산이 아니므로 그때다.서 의원의 농담 섞인 이런 설명은 국회에 모처럼 웃음소리를 끌어냈지만 주자의 목표는 ‘전부 노출설’ 즉 8월15일로 하자는 것이다.(국회속기록)이것은 물론 장택상 총리의 신라회등 이승만 지지세력이 이승만의 뜻을 받들어 만든 논리였다. 몇몇 의원이 구속의원들을 다 석방시켜 전원이 표결에 참여하자는 반론을 폈으나 자유당 양우정(梁又正)의원이 가로막았다.“오늘(6월 23일)을 넘기면 무정부상태가 됩니다. 여기는 반공국회요, 공산당에 연루된 사람들을 갖다 앉히자니 이 국회가 공산당 국회입니까? 절대로 안됩니다.”의사당은 반론 한마디 없이 조용하였다. 체신부장관 조주영(趙柱泳) 의원이 낸 ‘8.15 임기 긴급동의’는 83대 2로 통과되었고, 선거 지연에 따라 국정공백상태가 생길 경우, 현직 대통령이 계속 대행한다는 경과규정까지 채택되었다. 이제 국회도 정부도 7월14일까지 시간을 벌었다.

*장마 비로 질척거리는 부산 거리, 습기가 차오르는 항만의 여름은 수많은 판잣촌이 쏟아내는 악취에 덮여 숨막힐 듯 답답하고 고달픈 날들이 흘러간다.판문점 휴전 협상도 포로석방 문제에 가로막혀 엎치락뒤치락 양측의 기선잡기 실랑이로 개점휴업상태나 마찬가지다.어렵사리 국회에 상정된 두 개의 개헌안 역시 낮잠만 자고 있다.밤낮으로 국회 주변에 진을 친 지방의회대표들과 청년단원들의 일부는 임시경무대로 몰려가 이승만과 담판이라도 하자는 듯이 덤빈다.“대통령과 국무총리가 이 자리에 나와 무슨 말 좀 해 달라”며 ”국회해산이 관철될 때까지 단식농성을 결의했다"고 욱박질렀다.결국 대통령과 국무총리가 문밖에 나와 이들을 향해 입을 연다.“이제라도 국회가 마음을 돌려서 정부가 낸 개헌안을 통과시켜주기를 바랄 뿐이다. 그러지 않을 때는 우리 미래에 가망이 없다. 나도 국회를 해산하고 싶지만 참고 기다리는 중이다. 여러분도 성공할 때까지 사고를 일으키지 말고 투쟁해주기를 바란다.“(이승만)“그 동안 여러분의 요구에 답변할 말이 없어서 못 나왔다. 나는 국회와 정부가 타협해서 사태를 수습하도록 전력을 다하고 있으니 믿어 달라. 그러지 못하면 사표를 내고 여러분과 같이 민의 관철을 위하여 투쟁할 것이다.”(장택상)이 시간, 포위된 국회 안에서는 일부 의원들이 사실상 감금상태로 바둑을 두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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