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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담] 말 한마디에 오해 받은 명장 이야기

오주한

말 그대로 지극히 개인적 소견의 담론

‘돈봉투 석방’ 취지 발언에 오해 시선들

더 이상의 오해 소지 발생은 없었으면

 

백기(白起‧생몰연도 ?~기원전 257)는 동아시아 역사상 단연 탑클래스에 드는 명장(名將)이다. 가히 이순신(李純信) 장군에 버금간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기(史記) 백기왕전열전(白起王翦列傳) 등에 의하면 백기는 전국시대(戰國時代) 말기 진(秦)나라의 장수였다. 그는 조(趙)‧위(魏)‧한(韓)‧초(楚) 등 모든 나라와 싸워 모조리 쳐부수면서 진나라의 천하통일 기틀을 마련했다. 백기가 나라로부터 받은 칭호부터가 “무(武)로써 세상을 평안케 한다”는 의미의 무안군(武安君)이었다.

 

주요 전적은 다음과 같다. 기원전 293년 백기는 한‧위 두 나라를 공격해 5개 성(城)을 함락했다. 이듬해 또는 기원전 289년에는 재차 위나라를 쳐서 61개 성을 빼앗았다. 기원전 278년에는 초나라로 진격해 수도 영(郢)에 진나라 깃발을 꽂았다. 기원전 276~263년 사이에는 삼진(三晉)에 홀로 대적해 삼진의 영토를 피바다로 만들었다.

 

가장 유명한 전투는 단연 기원전 262~260년 사이의 장평대전(長平大戰)이다. 당시 조나라 수비대장은 또다른 명장인 염파(廉頗)였다. 염파와 맞선 진장(秦將) 왕흘(王齕)은 계란으로 바위 치는 격으로 견고한 염파의 방어선을 도저히 뚫지 못했다. 이에 진나라는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건 조장(趙將) 조괄(趙括)”이라는 헛소문을 퍼뜨렸다. 염파가 실각하고 조괄이 나서자 진나라는 조나라 패망에 쐐기를 박기 위해 왕흘 대신 백기를 투입했다.

 

혈기왕성한 하룻강아지 조괄은 총사령관으로 부임하자마자 기존의 모든 전략을 뒤집어엎고 공세(攻勢)로 나섰다. 백기는 짐짓 패한 척하며 달아났다. 조괄의 조군(趙軍)이 진군(秦軍) 포위망 안으로 깊숙이 들어오자 백기는 기병을 보내 조괄의 퇴로를 끊었다.

 

한 달 이상 포위된 채 말(馬)까지 잡아먹고 급기야 아사자(餓死者)가 속출한 조군은 스스로 무너졌다. 조괄은 화살비 아래 고슴도치가 됐으며 조나라 장정(壯丁) 40여만은 산채로 생매장됐다. 빈사(瀕死)상태가 된 조나라는 후술(後述)할 이유로 약 30년 동안은 겨우겨우 버텼다. 결국엔 기원전 228년 진시황(秦始皇)의 침략 앞에 완전히 멸망했다.

 

천하는 백기라는 두 이름만 들어도 벌벌 떨었다. 2천년도 더 지난 오늘날에도 대륙에는 백기육(白起肉)이라는 흰 두부요리가 있다고 한다. 백기의 위세에 눌린 이들은 이 음식을 몰래 먹으면서 복수에 있어서 대리만족했다고 한다.

 

그러나 일세(一世)의 영웅 백기는 말 한마디로 말미암아 돌이킬 수 없는 오해를 사게 됐다. 그가 승승장구하자 진나라 백관(百官)들 중에는 시기하는 자가 나타났다. 재상 범수(范睢)는 제 자리를 뺏길까 싶어 소양왕(昭襄王)에게 건의해 조나라 영토를 짓밟던 백기의 말발굽을 멈추게 했다. 이 일로 인해 백기‧범수의 사이는 크게 나빠졌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소양왕은 다시 출병(出兵)하려 했다. 백기는 “예전에는 장평대전 후유증으로 조나라가 산송장이었으나 지금은 다시 국력(國力)이 어느 정도 충전됐다. 게다가 나머지 나라들도 조나라를 적극 도울 것이니 대적하기 어렵다”며 말렸다.

 

범수는 “당신은 예전엔 잘만 이기지 않았나”고 따졌다. 백기는 “내가 연승(連勝)했던 건 무당 같은 초자연적 힘을 빌어서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상식에 따라 승리의 기회를 만들고 그 승기(勝機)를 놓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반박해 범수의 입을 다물게 했다.

 

하지만 소양왕은 조나라와 같은 삼진 소속 한나라에 기어이 군사를 보냈다. 대장 왕릉(王陵)은 여러 날이 되도록 한나라 수도 한단(邯鄲)을 점령하지 못했다. 그 사이에 초나라의 춘신군(春申君)과 위나라의 신릉군(信陵君) 등이 원군(援軍)을 이끌고 한단에 도착했다. 진군 피해는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났다.

 

그런데 이 소식을 들은 백기는 한마디를 내놨다. “진왕(秦王)께서 내 말을 듣지 않으시다가 지금 어찌 됐는가?”였다. 위정자(爲政者)에 대한 우회적인 따끔한 일침(一鍼)이었으나 이 한마디로 인해 백기는 받지 않아도 될 오해를 사게 됐다. 소문이 와전(訛傳)에 와전을 거듭한 진나라는 그에게 검(劍) 한 자루를 보내고야 말았다.

 

‘돈봉투 전당대회’ 혐의로 현재 구속수감 중인 야권 인사에 대한 불구속 수사 목소리가 찬반 논란에 휩싸였다. 본의(本義)가 무엇인지 해석이 분분하나 단순히 “풀어주자” “불구속 수사” 등 취사선택적 내용만을 두고서 오해의 목소리가 적잖이 고조된다. 이를 바라보는 많은 이들이 안타까움을 표하고 있다. 참새가 봉황(鳳凰)의 뜻을 어찌 알 수 있겠냐마는, 필자의 어리석은 소견에도 더 이상의 오해 소지 발생은 모쪼록 없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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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한 前 여의도연구원 미디어소위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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