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가입

로그인

아이디
비밀번호
ID/PW 찾기
아직 회원이 아니신가요? 회원가입 하기

[개담] 쌈 싸먹힌 ‘만물지중 유인최귀’

오주한

말 그대로 ‘개’인적 소견 담은 군‘담’

범고래 등의 인본주의‧아가페적 사랑

미물만도 못한 것들 바다에 폐기해야

 

조선시대 서당교재인 동몽선습(童蒙先習) 구절 중 하나는 다음과 같다. “천지지간 만물지중 유인최귀(天地之間 萬物之衆 惟人最貴)” 하늘과 땅 사이에 존재하는 만물 중 사람이 가장 귀한 존재라는 뜻이다. 예나 지금이나 정치핵심인 민본사상(民本政治)과 일맥상통하는 말이다.

 

공교롭게도 천지지간 만물지중 중에서 유인최귀를 몸소 실천하는 미물(微物)이 있다. 바로 ‘고래’다.

 

‘죠스’ 등 헐리웃영화 영향으로 흔히 바다의 폭군은 백상아리라 생각하지만 진짜는 범고래(흰줄박이돌고래‧killer whale)다. 얼마나 흉포하면 영문명부터가 ‘해치는 고래’다. 백상아리도 범고래 앞에선 그저 따뜻한 한 끼 밥일 뿐이다.

 

범고래는 길이 7~10m, 체중 6~10t의 거구(巨軀)다. 2008년 영국 런던동물학회(ZSL) 논문에 의하면 치악력(齒握力)도 8만4516N에 달한다. 반면 생김새는 순둥이 그 자체다. 둥글둥글한 몸통에 어딘가 피곤해 보이는 작고 귀여운 두 눈이 달려 있다. 만화 속 캐릭터 같아 자칫 방심하기 쉽다.

 

그러나 이들은 수십 마리씩 떼 지어 오대양을 누비며 눈앞을 가로막는 모든 걸 초토화한다. 예외는 지구 역사상 가장 큰 동물인 대왕고래(흰긴수염고래‧Blue whale‧길이 약 30m‧체중 약 150t) 정도일 뿐이다. 유영(游泳) 속도는 시속 50㎞ 안팎에 달하며 머리도 똑똑해 먹이를 전술적으로 사냥한다.

 

지능이 얼마나 높냐면 2018년 영국 일간지 더 텔레그래프(The Telegraph)는 최초로 ‘말하는 범고래’ 영상을 보도했다. 해당 영상은 유튜브에서 ‘World's first talking killer whale’로 검색 시 볼 수 있다. 범고래는 제한적 상륙, 고공점프도 가능해 뭍에서 일광욕 중인 물개나 날아가는 바닷새 등도 잡아먹는다. 때때론 물범 등을 축구공처럼 쓰면서 ‘장난감’ 취급하기도 한다.

 

상술했듯 살벌한 외모 아이콘이자 근육질인 백상아리도 범고래를 만나면 착해지고 만다. 둘은 체급부터가 다르다. 백상아리는 아무리 커도 길이 최대 6m에 체중 3t, 치악력 1만8000N에 ‘불과’하다. 게다가 백상아리와 달리 범고래는 무리 지어 다닌다.

 

범고래는 특히 백상아리의 간에 ‘환장’한다고 한다. 간만 쏙 빼먹고 나머지는 버린다고 한다. 백상아리 살육현장은 지난해 말 남아프리카 해안에서 드론(무인기)으로 첫 촬영돼 영국 일간지 더 가디언(The Guardian) 등을 통해 공개됐다.

 

그런데 이렇듯 세상 무서울 게 없는 범고래는 이상하리만치 사람 앞에선 한 마리 강아지가 되고 만다. 지금까지 학계 등에 보고된 범고래의 인간 사냥‧공격 사례는 ‘0건’에 수렴한다. 1970년대 초에 서핑 중이던 사람을 물었다 놔준 게 전부다. 이것도 서핑보드를 물범으로 착각해 공격한 것이었다. 인육(人肉) 섭취 적발사례는 아예 없다.

 

심지어 야생 개체든 길들여진 개체든 사람 앞에서 ‘애교’ 부리기도 한다. 유튜브에서 ‘Orca Wikie and a girl’로 검색하면 수족관 안에서 사람을 따라하며 지느러미 흔드는 범고래 영상이 나온다. 일부는 사람의 ‘포경(捕鯨)’을 돕기도 했다. 2014년 6월 미국의 대중 과학잡지 사이언티픽아메리칸(Scientific American) 보도에 의하면 톰으로 호칭된 한 수컷 범고래는 20세기 초까지 호주 남부 해안에 살면서 포경업자들에게 고래 위치를 알리곤 했다. 그 대가로는 남은 고래 살코기를 얻었다.

 

약한 동물을 장난삼아 괴롭히고 갑질하는 흉악무도 범고래가 왜 유독 사람 앞에선 을(乙) 중의 을이 되는지는 미스터리다. 인간의 범고래 대량사냥 기억이 유전자에 각인돼 알아서 순종한다는 설도 있으나 반론도 있다. 고기‧기름 등 범고래 주산물(主産物)‧부산물(副産物)은 경제적 가치가 거의 없다고 한다.

 

범고래와 비슷한 고래는 또 있다. 육중한 몸체 이끌고 수면 위로 도약하는 브리칭(Breaching)으로 유명한 혹등고래(Humpback whale)다.

 

19세기 미국 소설가 허먼 멜빌(Herman Melville)의 모비딕(백경‧Moby Dick) 묘사처럼 혹등고래는 성질이 매우 온순하다. 사람에게도 예외는 아니어서 혹 백상아리 등을 발견하면 주변 사람에게 “도망치세요” “저기 가면 안 돼요” 신호 보낸다고 한다. 범고래와 마찬가지로 혹등고래의 이타적(利他的) 행위 이유도 베일에 가려져 있다.

 

이처럼 범고래‧혹등고래 같은 미물들도 “천지지간 만물지중 유인최귀”인 줄 안다. 그런데 유독 인간들 상당수는 사람 귀한 줄 모른다. 사회에선 ‘I am 사기’ 난무하고 정계에선 민본사상 실종된 지 오래다. 미물보다도 못한 존재들이 인두겁 쓰고 나대고 있다. 범고래가 웃고 갈 일이고, 혹등고래 보기 민망한 일이다. 바다가 오염될지 모르겠으나 배출·폐기가 시급하다.

 

20000.png.jpg

오주한 前 여의도연구원 미디어소위 부위원장 [email protected]

댓글
0
댓글 쓰기
권한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