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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칼] “I am 실망. you도 실망. every 신뢰해야”

오주한

말 그대로 지극히 ‘개’인적인 소견 담은 ‘칼’럼

근래 벌어진 황당 사기의혹 사건에 전국 들썩

정계는 혼돈카오스 된지 오래…next엔 잘 되길

 

큰 부 과시한 사짜

 

상방(相邦) 여불위(呂不韋‧생몰연도 ?~기원전 235)는 고대 진(秦)나라의 킹메이커였다. 허나 실상은 가렴주구(苛斂誅求)‧부정축재(不正蓄財) 등 목적으로 유명인에게 접근해 “네 아이다” 사기 치는 등 지저분한 이면이 있었다.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 여불위열전(呂不韋列傳), 유향(劉向)의 전국책(戰國策) 등에 의하면 여불위는 본래 한(韓)나라 또는 위(衞)나라 출신이었다. 진나라와는 하등 상관없었으나 거상(巨商)으로서 월급 1500만원짜리 경호원들 거느리고, 월세 수천만원의 초호화 레지던스에 살며, 최고급 리무진 마차 타는 등 큰 부를 과시했다.

 

어떤 장사를 했는지는 불분명하나 그리 깨끗한 사업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기는 여불위에 대해 “전국에서 물건을 헐값에 사들인 뒤 시세가 하늘 찌를 때 되팔아 천금(千金)을 쌓았다” 기록했다.

 

역사상 무수한 악덕상인들이 이 같은 수법으로 취급한 대표적 물건이 ‘곡식’ 등 생활필수품이었다. 흉년 맞은 백성들은 굶어죽지 않기 위해 상인이 부르는 값대로 치르고 한 줌 곡물을 사야 했다. 그나마 돈 없는 이들은 그 길로 온 일가족이 아사(餓死)했다.

 

거국적 사기 착수

 

여불위는 거상 자리에만 만족하지 못했다. 그는 ‘천하’를 손바닥 위에 올려두고 국가단위로 거하게 해먹겠다는 거창한 꿈 꿨다.

 

그 때 여불위 눈에 띈 사람이 진나라 태자 안국군(安國君)의 아들로서 조(趙)나라에 인질로 와 있던 영이인(嬴異人)이었다. 아무리 이인이 개털 신세라 해도 그래도 왕족(王族)으로서 비견할 자 없는 인플루언서(influencer)였다.

 

여불위는 신속히 이인에게 접근했다. 그리곤 만나 말 섞어보고는 “진정 호구로구나” 감탄하며 늙은 아버지에게 이렇게 물었다. “농사를 지으면 이윤은 몇 배입니까?” “10배다” “보석을 팔면 몇 배 입니까?” “100배다” “킹메이커가 되면 몇 배 입니까?” “그건 이루 계산할 수 없다. 그건 왜 묻냐” “제가 그 일을 하려 합니다. 천하에 씨를 뿌리겠습니다”

 

여불위는 이인에게 가산(家産)의 절반에 달하는 500금을 건넸다. 또 “제가 공(公)의 집을 ‘대궐’처럼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은밀히 말했다. 입이 귀에 걸렸으면서도 주변 듣는 귀가 두려워 헛기침한 이인은 “당신 집이나 크게 만드시오” 답했다. 그러자 여불위는 “제 집은 당신 집이 ‘대궐’처럼 돼야 성대해질 수 있습니다” 노골적으로 딜 제안했다. 대놓고 대민(對民)수탈 하겠다는 메시지에도 불구하고 왕좌에 눈 먼 이인은 제의를 받아들였다.

 

여불위는 다른 의미의 ‘임신공격’도 가했다. 그는 제 첩이었던 조희(趙姬)를 ‘제 씨’로서 수태(受胎)시킨 뒤 이인에게 바쳤다. 그리곤 물만 닿아도 두 줄 나오는 가짜 임신테스트기 보여주며 “공의 자식이옵니다. 감축 드리옵니다” “이 아이를 낳으시오. 다 크면 내 팔아다있소 그룹 물려주겠소” 취지로 약속했다.

 

나라는 혼돈의 카오스로

 

이인은 기적적으로 옥좌(玉座)에 앉아 장양왕(莊襄王)에 등극했다. 그 사이 이인 이름 팔아 부정축재하고 조정 대신들 제 사람으로 만들던 여불위는 승상(丞相) 즉 재상에 취임했다. 임금마저도 그를 떠받드니 여불위의 권세는 기하급수적으로 커졌다.

 

비로소 이인을 허수아비로 만드는데 성공한 여불위는 다음 작업에 착수했다. 이인은 재위(在位) 약 3년만에 원인을 알 수 없게 급사(急死)했다. 자연사라는 설도 있지만 여불위가 제 자식이었던 이인‧조희 아들에게 하루빨리 왕위 넘기려 암살했다는 설도 있다.

 

제 아들을 기어이 천자(天子)로 만든 여불위는 과거 부친과의 약속대로 지존(至尊)에 올랐다. 그는 승상보다도 높은 상방 자리에 앉아 나라를 제 손으로 다스렸다. 사생아 격이었던 젖먹이 임금에겐 자신을 중부(仲父) 즉 작은아버지로 부르게 했다.

 

여불위는 나아가 옛날 첩 조희와는 대놓고 밤마다 엉겨 붙었다. 아들 머리가 어느 정도 커지자 노애(嫪毐)라는 ‘나이롱 환관’ 조희에게 붙여주고선 자신은 어린 여자들과 놀아났다.

 

노애는 절륜한 정력으로 조희를 사로잡았다. 나중엔 아예 무식한 남창(男娼)이 아닌 물 건너 유학파 흉내 내며 “I am 임금. no 호빠. next time은 없다” 반란 일으켰다가 처단됐다. 조희는 노애와의 사이에서 새 아이들 얻은 뒤 제 배로 낳은 장남을 죽이려 했다. 상당수 백성은 주린 배 부여잡고서 유민(流民)‧도적으로 전락했다. 실로 난장판이었다.

 

next time 처단된 여불위

 

그러나 여불위의 막장사기극은 결국 종말을 맞았다. 처단 주체는 여불위가 팔아다있소 그룹 물려주겠다 호언(豪言)하며 끊임없이 이용해먹은 사생아 즉 제 아들이었다. 그리고 이 아들은 다름 아닌 ‘훗날의 진시황제(秦始皇帝)’ 영정(嬴政‧기원전 259~기원전 210)이었다.

 

영정은 제 어머니와 노애의 사통(私通) 등 황궁 뒤덮은 추문들 샅샅이 알고 있었다. 자신이 여불위와 친모(親母)의 막장불륜 결과라는 소문도 알았던 듯하다. 허나 세상에 무서울 게 없는 여불위는 이 난리통 만든 책임 앞에선 입 꾹 다문 채 “없던 일로 합시다 껄껄” 웃어 제쳤다.

 

“내 얼굴에, 내 인생에 X칠 해도 유분수지 뭐가 어째” 폭발한 영정은 후일의 쾌속 천하통일 같은 추진력 발휘했다.

 

그는 우선 여불위를 수도 밖으로 내쫓았다. 그리곤 중앙 조정을 신속히 장악한 뒤 여불위를 다시 파촉(巴蜀) 땅으로 유배 보냈다. 당시 파촉은 “한 번 가면 시체로 돌아오는 곳” 쯤으로 여겨졌다. 여불위는 과거의 조정 졸개들에게 도움 요청했으나 영정의 카리스마에 눌린 모두가 고개 돌렸다. 제 시대가 끝났음을 깨달은 여불위는 극단적 선택을 했다. 그의 후손들은 약 100년 뒤 한무제(漢武帝) 시절엔 아예 더 남쪽이자 칠종칠금(七縱七擒) 무대인 운남(雲南)으로 내쫓겼다.

 

근래 온 나라를 웃프게 만든 사건이 터졌다. 성별(性別)을 마음대로 바꾸는 20대 어린 나이의 사기범죄 용의자가 대규모 기업집단 현금보유액보다 더 많은 51조원 재산이 있다 주변에 자랑했고, 뉴욕 출생자 사칭하면서 “I am 신뢰” 등 이상한 문자 읊으며 전 펜싱 국가대표 남현희 씨를 농락한 것 아니냐는 사건이다.

 

허나 전혀 놀랍지 않다는 목소리도 있다. 이미 검사 사칭 전과범이 정치권 리더로 추앙받고, 자칭 은퇴호소인은 과거 통계조작 사기 쳤다는 의혹 사는 등 이상한 세상 된 지 오래인데 “I am 신뢰” 따위가 뭐 대수이겠냐는 것이다. 자칭 51조원 떼부자 표현 빌리자면 “I am도 실망하고 you도 실망하고 every 실망”한 지 근 10년이 가까워온다. next time엔 국민신뢰 얻는 정치판, 개그맨인지 사기꾼인지 모를 족속들 근절되는 우리 사회 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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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한 前 여의도연구원 미디어소위 부위원장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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