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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레짐체인지, 韓 힘겹지만 '10대 경제대국' 위상 놓쳐선 안 된다

뉴데일리

'슈퍼 선거의 해'였던 지난해를 관통하는 키워드로 '레짐체인지(Regime Change)'와 자국 우선주의가 가장 먼저 거론된다.

게다가 한국 경제는 비상계엄과 탄핵정국에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까지 벌어지면서 위기감이 확산하고 있다. 대한민국 기업으로선 제조업 경쟁력 약화라는 근원적 한계와 정치 리스크(P-리스크)發 고환율이라는 다중위험에 봉착했다.

결국 글로벌 전반의 리더십 교체기에 우리가 얼마나 빨리 전열을 정비하느냐에 따라 K-제조업의 미래가 결정되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각국 정권이 새로 출범하면서 자국 기업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전략과 정책이 치열하게 펼쳐질 것"이라며 "대한민국으로서는 올해가 10대 경제 대국의 위상을 사수할 수 있을지 판가름 나는 결정적 계기가 될 것"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사상 최대 규모의 '선거의 해'였던 지난해의 두드러진 경향 중 하나는 레짐체인지다. 집권당이 패배하고 현직 대통령이나 총리 등이 선거로 교체된 곳이 많았다는 것이다. 레짐체인지는 단순 정권교체를 넘어 권력 집단을 갈아엎어 버린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지난해 대통령선거를 치른 국가 수는 모두 71개국이며 투표에 참여한 인원수는 세계 인구의 4분의 1가량인 20억명에 달한다.

미국은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돼 백악관으로 다시 돌아간다. 영국과 프랑스는 집권당이 총선에서 패했다. 독일은 집권 연합이 불신임을 받아 2월23일 조기총선을 앞두고 있다.

일본은 야권의 약진으로 총리가 교체됐다. 한국도 총선에서 국민의힘이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에 역대 최악의 참패를 당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선거판이 벌어진 인도에서도 현 정부가 타격을 입는 선거 결과가 나왔다. 나렌드라 모디 총리는 3연임에 성공하며 집권을 이어갔지만, 집권 힌두 민족주의 바라티야자나타당은 의회에서 과반을 잃어 야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높은 실업률과 불평등이 백인 소수자 통치의 아파르트헤이트 체제가 종식된 이후 30년 동안 집권해 온 아프리카민족회의(ANC)에 등을 돌렸다. ANC는 5월 선거에서 과반을 잃어 야당과 연정을 해야 했다.

집권 세력이 '심판'받은 곳은 세네갈, 가나, 보츠와나, 우루과이 등 부지기수다. AP통신은 낮은 경제성장률과 극심한 빈부격차, 이민자 문제, 부패 이슈 등으로 유권자들이 집권세력을 거부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슈퍼 선거의 해'를 휩쓴 레짐체인지 물결에 따라 게임의 룰이 바뀌면서 각국 리더십은 '자국 우선주의'를 강하게 요구받고 있다.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로 대변되는 트럼프 당선인의 고립주의와 보호무역주의는 국제 사회를 '탈세계화(de-globalization)'를 넘어 새로운 형태의 세계화, 즉 '재세계화(re-globalization)'를 촉진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피에르 자케 프랑스 ENPC대 교수는 지난달 세계정책콘퍼런스(WPC)에서 "불확실성의 증가로 인해 각국은 디리스킹(de-risking, 위험 축소)에 나섰다"고 밝혔다. 특정 국가나 지역에 대한 수입의존도를 낮추면서 위험을 관리하고 있다는 의미다.

자케 교수에 따르면 이러한 디리스킹 전략은 역설적으로 국가간 상호의존성을 높이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보호주의가 심해질수록 해외시장의 폐쇄성을 우려한 기업들이 현지 생산에 대한 투자를 늘릴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즉 디리스킹 전략이 탈세계화 흐름으로 귀결되는 대신 새로운 형태의 세계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다만 이러한 재세계화를 향한 상호의존성은 경제 성장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경제를 무기화하려는 도구로 활용되는 경향이 뒤따른다.

스즈키 가즈토 도쿄대 공공정책대학원 교수는 "국가들은 서로의 이해관계를 관철하기 위해 상호의존성을 협박 수단으로 삼고 있다"며 "한 국가가 상호의존관계에서 홀로 배제될 경우 치명적인 피해를 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가령 서방사회의 대(對)러시아 경제 제재는 러시아를 압박하기 위해 상호의존성을 무기화한 사례로 볼 수 있다.

지난달 계엄 선포 이후 한국 경제는 총체적 난국을 맞았다. 1월2일 2655로 출발한 코스피는 마지막 거래일인 30일 2400선을 지키지 못하고 2399로 마감됐다. 연간 9.63% 하락했으며 코스닥도 23.5% 폭락하면서 '악몽의 해'를 보냈다.

지난해 미국 S&P500지수가 26.5%, 나스닥지수는 33.3% 오른 것과 극명한 대비를 이룬 것은 물론, 아시아태평양 11개 주요 주가지수 중에서도 수익률이 꼴찌였다. '셀 코리아' 흐름으로 시가총액은 250조원 이상 증발했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해 마지막 날 연중 최고인 1472원을 찍으면서 올해 13%나 평가절하됐다. 글로벌 달러 강세 속에서도 환율이 금융위기 때보다도 높아지면서 원화가치의 추락은 두드러졌다.

특히 계엄사태가 터진 12월에만 원화가치가 5% 이상 하락했다. 이는 유로, 파운드 등의 세 배를 웃도는 수준이다. 이 같은 추세가 이어지면서 1500원 선 붕괴 가능성까지 점쳐진다.

경제 회복이 더딘 가운데 정치적 불확실성이 고조되면서 주가와 원화가치가 곤두박질친 것이다. 11월 말까지 452억달러의 무역수지 흑자와 4154억달러에 이르는 외화보유액도 소용없었다.

소비심리가 위축된 데다 무안공항 참사로 연말연시 특수까지 사라져 서민경제는 외환위기 때보다 더한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소상공인연합회 조사에서 자영업·소상공인의 88%가 '계엄 이후 매출 감소'를 호소했다.

이러다 보니 북한 도발 등 지정학적 리스크에도 한국 경제의 기초체력에 굳건한 신뢰를 보내온 국제 신용평가사들조차 시선이 싸늘해지고 있다.

무디스와 피치는 최근 일제히 정치 불안이 장기화하면 한국 신용등급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신용등급이 내려가면 조달금리 상승, 통화가치 하락을 유발해 내수와 투자, 수출 등 모든 분야에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해외 언론 역시 "한국의 정치적 불확실성이 경제를 더 압박하고 있다(블룸버그통신)", "금융시장을 뒤흔든 정치 파행이 심화하고 있다(AP통신)"면서 한국의 정치 리스크를 집중 조명하고 있다.

때문에 경제계 신년사는 '혁신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고 미래 동력을 마련하자'는 결의로 이어진다. 불확실성이 최고조에 이르는 세계 경제 앞에서 난파당하지 않기 위해서다.

류진 한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은 "우리 사회 전반에 기업가 정신을 전파하고 일상화하는 파워하우스가 되겠다"며 "더 많은 기업이 더 넓은 시장에서 더 큰 기회를 창출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과거의 성장공식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며 "기업이 근본적인 체질 개선, 혁고정신(革故鼎新, 옛것을 뜯어고치고 새로운 것을 취함)의 결단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수출경쟁력 강화, 다변화는 기본이다. 기업들은 상상력을 총동원해 1970년대 중동 진출에 버금가는 발상의 전환이 절실하다.

정부와 국회는 정치 불안으로 최근 국가신용등급 강등 수모를 겪은 프랑스 사례를 반면교사 삼아 정국안정을 위해 뜻을 모아야 한다. 당리당략에서 벗어나 작금의 리더십 공백에도 고군분투할 기업들이 보호무역 파고를 넘을 수 있도록 불확실성을 서둘러 해소해야 한다.

무엇보다 '기업 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앞장서야 한다. 특히 규제 혁파와 세제·예산 전방위 지원 등으로 기업의 투자와 고용을 촉진할 수 있도록 초당적으로 협력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국정 리더십 공백을 이유로 손 놓고 있다가는 '코리아 패싱'이 현실화하면서 우리 국익과 안보가 훼손될 우려가 있다. 정부의 경제·안보 컨트롤타워를 조속히 정비해 민·관·정 원팀으로 전방위 외교채널 가동해야 할 것이다.

푸른 뱀의 해 을사년, 뱀이 허물을 벗고 새로 태어나듯 경제주체 모두 심기일전해 경제적 안정성과 신인도 제고라는 방향을 상실하지 않고 총력전을 펼쳐야 비로소 세계 10위권의 경제 강국의 위치를 사수할 수 있을 것이다. 모두의 지원과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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