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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아동반품”의 끔찍한 대가

오주한

윗물 맑아야 아랫물도 맑은 법

다시는 상류오염 자초치 말아야

 

‘인명경시’ 장려한 로마공화국

 

예부터 상행하효(上行下效) 즉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다”고 했다. 비슷한 맥락의 말로 “군주란 대야나 사발 같고 백성은 물과 같다. 대야가 둥글면 (거기 담긴) 물 또한 둥글게 되고, 사발이 모나면 물도 모가 난다”가 있다. 국민은 위정자(爲政者)의 언행에 좋은 싫든 많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왕국 이후 로마(Rome)의 역사는 크게 공화정(共和政)‧제정(帝政) 시기로 나뉜다. 이 때 크게 유행한 게 널리 잘 알려진 검투사(Gladiator) 경기다. 그런데 해당 이벤트 성격은 공화정 때와 제정 때가 사뭇 달랐다.

 

공화정 시기의 검투경기는 사망한 지배층에 대한 인신공양(人身供養) 성격이 강했다고 한다. 검투사들은 살기 보다는 죽기 위해 콜로세움(Colosseum) 등으로 입장했다. 이러한 영향으로 인해 제정 시기에도 검투사들 인사말은, 비록 제정 때는 형식적이긴 했지만, “황제 폐하 만세. 곧 죽을 자들이 인사 올립니다(Ave Imperator, Morituri te salutant)”였다.

 

검투사‧격투가들은 길이 약 60cm의 단검 글라디우스(Gladius)‧창‧그물‧방패‧투구 또는 맨손 등으로 싸웠다. 초기의 경기는 마지 실전처럼 격렬했다. 종합격투기인 판크라티온(Pancration)의 경우 극히 일부 제약을 빼고선 낭심(囊心)공격, 눈 찌르기, 깨물기 등 모든 수단이 허용됐다.

 

22년 동안 무려 1400번 안팎의 경기를 치른 그리스 출신 무패(無敗)의 용사 테오게네스(Theogenes) 동상을 보면 흉터가 없는 곳이 없다. 코는 휘어져 있으며 눈두덩이는 부어 있다. 복싱‧레슬링에 능했던 테오게네스는 헤라클레스(Heracles) 동상을 뽑았다가 신성모독(神聖冒瀆)죄로 단두대에 올랐지만 격투노예가 되는 조건으로 풀려났다고 한다.

 

검투사들 운명도 격투가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2000년대 말에 영국 요크(York)지방에서 발굴된 80여구의 검투사 추정 유골들에는 하나같이 사자‧곰 등 맹수(猛獸)에게 물린 상처, 흉기에 찔리고 베인 흔적, 팔 한 쪽이 기형적으로 발달한 흔적 등이 발견됐다고 한다.

 

검투사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혹독한 훈련에 시달리다가 사지(死地)에 내몰렸다. 치자(治者)들은 “둘 중 하나가 죽을 때까지는 링에서 못 내려온다”고 외치며 피의 잔치를 즐겼다. 상당수 백성들도 광란(狂亂)에 빠져 “죽어라” “죽여라”고 소리쳤다.

 

스파르타쿠스 반란에도 광란인 민관(民官)

 

공화정 시기 로마 민관(民官)의 인명경시(人命輕視) 풍조는 1~3차 노예전쟁(Servile war)이 여실히 보여준다. 참다못한 노예들은 “우리도 사람이다”를 외치며 봉기했다. 특히 스파르타쿠스(Spartacus‧생몰연도 기원전 111?~기원전 71년)가 이끈 기원전 73~71년의 3차 노예전쟁이 유명하다.

 

스파르타쿠스는 카푸아(Capua)에 있던 검투사 양성소 소속이었다. 로마인들을 위한 의식 제물로 바쳐질 예정이었던 그는 수십명의 동료를 이끌고 탈출해 베수비오(Vesuvio)화산에 숨어들었다.

 

반란진압 성패 여부는 초동(初動)진압에 달리는 법이지만 지배층은 하찮은 노예들을 얕봤다. 수차례 보낸 민병대 수준 병력이 검투사들에 의해 모조리 격파되자 스파르타쿠스의 명성은 로마 전역으로 퍼졌다. 수많은 노예들이 탈주해 베수비오로 달려왔다.

 

위기를 느낀 원로원(元老院)은 수천명의 진압군을 파병했지만 이마저도 박살났다. 수만 규모로 늘어난 노예군은 이제는 단순 반란집단이 아닌 로마의 흥망성쇠(興亡盛衰)마저 좌지우지할 수 있는 국가급 세력으로 자리매김했다.

 

당초 알프스(Alps)를 넘어 북쪽으로 가려던 이들은 발길을 돌려 로마의 심장부 방향으로 남진(南進)했다. 일설에는 시칠리아(Sicilia) 또는 그 너머의 땅을 거점 삼으려 했다고 한다. 노예군은 포로로 잡은 로마군에게 앙갚음이라도 하듯 검투경기를 시켰다고도 한다.

 

발등에 불 떨어진 로마인들은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Marcus Licinius Crassus)를 보내 검투사들을 막게 했다. 크라수스는 병사들을 10명씩 분리시킨 후 제비뽑기를 해 나온 당첨자를 나머지 9명이 쳐 죽이게 하는 데키마티온(Decimation‧10분의1형) 등 극약처방을 내려 군심(軍心)을 다잡았다. 로마는 한편으로는 노예군을 바다 너머로 싣고 가기로 약속한 해적들을 매수해 스파르타쿠스가 고립되도록 했다.

 

궁지에 몰린 노예군은 결국 진압됐다. 포로가 된 수천명은 당시로서는 극형(極刑)이었던 십자가형(十字架刑)에 처했다. 살가죽 찢기고 비명소리 가득한 검투경기는 이후로도 지속됐다.

 

치자 바뀌자 막 내린 야만(野蠻)의 시대

 

원형경기장 분위기가 변하기 시작한 건, 다시 말해 로마시민들 도덕성이 높아지기 시작한 건, 제정이 공화정보다 낫다는 뜻은 아니지만, 공교롭게도 치자의 성격과 정치체계가 완전히 달라지면서부터다.

 

후일 밀라노칙령(Edict of Milan)을 통해 기독교를 공인(公認)하기도 하는 제정이 시작되자, 경기장 분위기는 마치 오늘날의 권투경기‧아이돌콘서트처럼 대폭 부드러워졌다. 지배층의 목적은 살육 그 자체가 아닌 ‘연예기획사’와 계약 체결하고서 공약대로 검투경기를 열어 민심(民心)을 사로잡는 것으로 이동했다.

 

링 안에서의 규칙은 엄격해졌으며 경기장에서의 사망자 수는 급감했다. 황제가 패자(敗者)에게 죽음을 내리는 척 하다가 시민들이 “살려라”를 외치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는 게 클리셰처럼 자리 잡았다. 선수들은 부상이 두려워 상대에게서 등 돌리거나 하지 않는 이상 어지간하면 지더라도 살아남아 충분한 휴식‧영양을 취하고서 다음 경기를 준비했다.

 

높은 승률의 선수들은 영웅으로서 시민들에게 높은 인기를 누렸다. 노예뿐만 아니라 시민권자(Citizen)들도 부와 영예를 위해 프로모터(Promoter)와 계약 맺고 검투사에 도전했다. ‘신비로운 분위기’의 여성검투사가 본격 등장한 것도 제정 무렵인 것으로 추정된다. 심지어 17대 ‘황제’ 콤모두스(Commodus)는 자신이 직접 경기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렇게 범국민 축제처럼 이어지던 검투경기는 밀라노칙령과 함께 공식적으로 금지됐다. 음지(陰地)에서 근근이 지속된 검투경기는 호노리우스(Honorius‧서기 384~423)황제에 의해 완전히 철폐됐다.

 

일설에 의하면 호노리우스는 텔레마커스(Telemachus)라는 수도사를 존경했다. 텔레마커스는 “재미를 위해 살인하는 건 신(神)의 뜻을 어기는 것”이라고 주장했다가 폭도들에 의해 순교(殉敎)했다. 이 소식을 접하자마자 “이제부턴 검투경기란 없다”고 선언할 정도로 호노리우스는 도덕적 인물이었다.

 

처음엔 반항하던 일부 시민들도 머잖아 상행하효라는 말처럼 검투경기의 부도덕성을 인정‧수긍했다. 밀라노칙령 등의 주역 콘스탄티누스(Constantinus I) 대제(大帝) 때부터 시작된 ‘새로운 로마’는 1453년까지 천년왕국으로서 번창했다.

 

상류 오염의 슬픈 대가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수천명의 영아(嬰兒)들 존재가 수면 위로 드러나 충격을 던진다. 감사원이 지자체에 생사를 확인해달라고 요청한 출생미신고 영‧유아(幼兒) 중 희생자는 3명(23일 기준)이라고 한다. 이 중 2명은 살해된 것으로, 1명은 영양실조로 사망했다고 한다. 수천명 중 단 1%만 조사했는데도 이 지경이라고 한다.

 

이러한 인면수심(人面獸心)의 경악스런 세태에는 여러 원인이 있을 수 있겠지만, 한 전직 대통령의 ‘아동 반품’ 발언을 떠올리는 사람도 적지 않다. 해당 인사는 수년 전 신년기자회견에서 아동 학대·사망사건 대책을 묻는 질문에 “입양을 취소한다든지, 아동을 바꾼다든지 하는 방식으로 입양 자체는 위축시키지 않으면서 입양아동을 보호할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답해 모두를 아연실색케 했다.

 

공교롭게도 해당 인사 재임시기에 각종 풍속영업(風俗營業)이 활개치고 마약 등 중범죄도 급증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러한 이전 정부 태도가 적잖은 국민 도덕성에 악영향을 끼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나쁜 짓해도 되나 보다”하고 말이다.

 

늦게나마 현 정부 들어 출생미신고 아동학대 실태가 드러나 공론화(公論化)되는 점은 그나마 다행이다. 정부는 해당 실태를 철저히 조사해 다시는 인권사각지대에 놓이는 아동이 없도록 해야 한다. 또한 우리 모두 다시는 상류(上流)가 오염돼 하류(下流)마저 더럽혀지지 않도록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선진국 위상에 걸맞은 도덕성을 갖춤으로써 다시는 대한민국이 해외토픽 가십(Gossip)거리로 전락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저들의 해방구(解放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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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한 前 여의도연구원 미디어소위 부위원장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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