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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바지위원장’께 드리는 고언(苦言)

오주한

부림 당하다가 ‘팽’ 되어버린 묵가의 이야기

출발부터 삐걱대는 野 혁신위…金 결단 필요

 

유가에도 일부 상호영향 끼친 묵가

 

묵자(墨子‧생몰연도 기원전 480~390)는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에 등장한 제자백가(諸子百家) 중 한 명이다. 묵자에게는 다른 여러 철학자들과 구별되는 특징이 있었다. 바로 인문학자인 동시에 병가(兵家‧병학을 다루는 학자)였다는 점이다.

 

이러한 독특한 가르침은 묵가(墨家)로 명명됐다. 제자백가는 유가(儒家)‧도가(道家)‧법가(法家)‧명가(名家)‧병가‧종횡가(縱橫家)‧음양가(陰陽家) 등 구별이 어느 정도 뚜렷했다. 유가의 대표인물은 공자(孔子)‧맹자(孟子), 도가는 노자(老子)‧장자(莊子), 법가는 한비자(韓非子), 병가는 손자(孫子)‧오자(吳子), 종횡가는 소진(蘇秦)‧장의(張儀) 등이다.

 

고향이 노(魯)나라라는 것만 알려질 뿐 묵자의 출생정보는 베일에 가려져 있다. 사대부 출신이라는 주장에서부터 묵형(墨刑‧신체에 먹물로 죄명을 새겨 넣던 형벌)을 받은 죄인이었다는 추측, 사농공상(士農工商) 중 피부가 검은 하층계급 또는 인도인‧아랍인이라는 분석까지 분분하다.

 

묵자 71편 중 현존하는 대표작은 겸애(兼愛)‧비공(非攻)‧상현(尙賢)‧상동(尙同)‧천지(天志)‧명귀(明鬼) 등이다. 묵자의 사상은 당대로서는 파격적인 개혁안이었다. 겸애는 “임금과 신하, 아버지와 아들, 형과 아우가 서로 사랑하고 타인도 제 자신처럼 아껴야 한다.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고, 부자가 빈자(貧者)를 모욕하며, 귀한 자가 천한 자를 무시하는 건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다”는 내용이다.

 

이렇듯 혁신적이었기에 묵가는 배척받기 일쑤였다. 때문에 묵가는 종교적 비밀결사(祕密結社) 성격이 강했다. 묵가는 특히 유가와 번번이 충돌했다.

 

다만 팽팽한 대립관계임에도 시간이 흐를수록 사상을 일부 상호공유하기도 했다. 천지‧명귀 등에는 “하늘은 백성을 사랑하기에 임금이 천명(天命)을 어긴다면 천벌을 받고 뜻을 받든다면 상을 받을 것”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상동‧상현 등은 “임금은 능력자라면 그 출신에 얽매이지 않고 등용해야 한다. 관리에게 영원한 고귀함은 없고 백성에게 영원한 미천함은 없다”고 했다.

 

후대 인물인 맹자도 ‘무(無)자격 임금 파면’을 제(齊)나라 선왕(宣王) 면전에서 주장했다. 왕권신수설(王權神授說)을 부정한 그는 왕권은 백성에게서 위임받은 것이라고 강조했다. 훨씬 더 후대 국가로서 유교(儒敎)를 사실상의 국교(國敎)로 삼았던 한(漢)나라는 향거리선제(鄕擧里選制)라는 이름의 능력본위(能力本位) 임용제도를, 비록 일부 폐단도 있었지만, 신분고하 막론하고 실시했다. 대표적 인물이 후한(後漢) 말 ‘고아’이자 ‘나무꾼’ 출신으로서 효렴(孝廉)에 천거됐던 강동(江東)의 명장 황개(黃蓋)다.

 

오늘날 중국공산당 등에선 묵자를 두고 ‘인류 최초 사회주의자’라 주장하지만 이는 억지이자 궤변이다. 공산당은 특정계급‧특정인물 독재를 주장하지만 묵자는 누군가에 의한 권력독점을 매우 경계했다. 만인(萬人)의 자유‧권리‧평등 등을 주창(主唱)한 묵가는 오히려 자유민주주의 사상에 가깝다.

 

궁지에 몰린 여러 기득권을 구하다

 

상술한대로 묵자는 병학가이기도 했다. 그는 “모두가 철통방어에만 임하면 패자(霸者)들의 의욕이 꺾여 전쟁이 사라질 것”이라고 믿으며 수성전(守城戰)을 연구했다. 유명한 사례가 전국시대 초(楚)나라의 공학자 공수반(公輸般)과의 모의전투다. 묵자는 한 소국(小國)에 대한 공격중단을 요구했지만 초나라 측은 듣지 않았다. 이에 묵자‧공수반은 가상으로 공성전(攻城戰)을 벌여 지는 사람이 굴복하기로 약속했다.

 

공수반은 수차례 전술을 바꾸면서 묵자 측 성벽을 쳤지만 번번이 가로막혔다. 반면 공수교대 후 묵자가 공격에 나서자 공수반은 무기력하게 무너졌다. 결국 공수반은 백기 들고 말았다. 바로 묵적지수(墨翟之守)의 고사다. 묵적은 묵자의 본명이다. 묵자 사후(死後) 그의 제자 혁리(革離) 등도 천하를 떠돌며 전쟁이 임박한 방어 측 여러 임금들에게 무료봉사하는 등 아가페(Agape)적 사랑을 베풀었다.

 

묵자의 병가적 면모는 후대의 공성‧농성전(籠城戰)에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려진다. 공성전은 단순히 사다리 타고 성벽 기어오르며 성문을 때려 부수는 것 외에 수많은 전술이 존재한다.

 

성을 포위하고서 농성 측 사기‧군량 등이 다하기를 기다리거나, 혈공(穴攻) 즉 성 내부까지 땅굴을 파고, 정란(井欄) 등으로 성벽 너머를 타격하거나, 간자(間者)를 보내 야밤에 성문을 열어젖히게 하는 등 다양한 방법이 존재한다. 방어 측은 군심(軍心)을 다잡으면서 ‘맞땅굴’을 파 상대 땅굴을 무력화시키고, 간자를 색출하는 한편 투석기로 정란을 저격하는 등의 대응으로 맞설 수 있다. 유럽의 성형요새(Star Fort) 등은 수성전의 정수(精髓)다.

 

표리부동(表裏不同)에 당하다

 

유가 등과의 사상공유와는 별개로 묵가는 나날이 쇠약해졌다. 기득권은 ‘별 족보도 없는’ 자칭 제자백가가 겸애 등 ‘위험한’ 개혁안을 떠드는 걸 묵인하지 않았다. 필요할 땐 인문학‧병학 등에서 실컷 이용당하던 묵가는 춘추전국시대 종식과 함께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법가를 숭상하면서 분서갱유(焚書坑儒)에 나선 폭군(暴君) 진시황(秦始皇)은 유가뿐만 아니라 묵가의 책들도 모조리 불살라버렸다. 묵자 71편 중 53편만이 필사(筆寫) 등을 통해 간신히 살아남은 건 이 때문이다.

 

유학(儒學)‧법학(法學)의 조화를 중시한 한(漢)대에도 분위기는 다르지 않았다. 특히 정복왕이자 마찬가지로, 내치(內治)에선, 폭군이었던 무제(武帝)가 묵가를 철저히 때려잡았다. 묵가는 19세기 말~20세기 초의 청조(淸朝) 말기에 이르러서야 재조명받았다. 겸애의 화신(化身) 묵자의 이상은 2000년 이상 지나 세상 밖으로 나오기까지 음지(陰地)에서 깊은 잠에 빠져야 했다.

 

김은경 더불어민주당 혁신위원장은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주재한 혁신위 1차 회의에서 “가죽을 벗기고 뼈를 깎는 노력을 통해 (민주당을) 윤리정당으로 거듭나게 하겠다”는 일성(一聲)을 내놨다. 특히 ‘돈봉투 전당대회’ 논란 진상조사를 첫 과제로 내세웠다. 하지만 혁신위원 7명 중 ‘5~6명’이 친명(親明‧친 이재명)계인 것으로 알려져 개혁이 과연 가능하겠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이를 보여주듯 김 위원장, 당 지도부는 첫 스타트부터 충돌하며 관계가 삐걱거린다고 한다. 21일 정치권에 의하면 김 위원장은 현역의원의 혁신위원 참여 반대 입장을 당 지도부에 전달했지만 지도부는 난색을 표했다고 한다. 마치 ‘바지 위원장’은 조용히 지도부가 시키는 대로 하면 된다는 것처럼 말이다. ‘돈봉투 전대’ 논란에선 이재명 대표도 자유로울 수 없다. 따라서 이를 건드리는 건 친명 입장에선 벌집을 쑤시는 셈이 된다.

 

이를 보고 있으면 2000년하고도 수백년 전, 필요할 땐 묵자를 구원투수로 불러 썼다가 결국 ‘팽(烹)’해버린 기득권층이 생각날 수밖에 없다. 우리 선조님들 옛말에 “소귀에 경(經) 읽기”라는 명언이 있다. 무슨 의미인지는, 불과 며칠 동안 저들의 ‘서식지 생태계’가 어떠한지 깨달아버린 김 위원장 자신이 더 잘 알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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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한 前 여의도연구원 미디어소위 부위원장 [email protected]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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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풀소유

    민주당은 뿌리부터 썩어서 가지치기 해봤자 갱생불가라고 생각합니다.

  • 풀소유
    오주한
    작성자
    2023.06.21
    @풀소유 님에게 보내는 답글

    깊이 공감합니다. 때문에 저들의 술수에 넘어간 사람들이 하루빨리 제정신들 차리시고 '올바른' 길로 오시길 바라며 본 칼럼을 써봤습니다. 감사합니다.

  • 멸공통일
    2023.06.22

    묵가와 법가는 백가 중 옳은 소리였지만 세상인심은 현재의 권력을 향하는지라, 외면받은 것이겠지요. 지금도 옳은 소리는 집단적으로 비난하지요.

    김은경이 한 소리는 비명계의 가죽을 벗기고 뼈를 깍는 고통을 안겨주어 린민당을 남로당으로 거듭나게 하겠다로 해석되는 것은 어쩐 일인지.

     

    항상 청꿈을 풍성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멸공통일
    오주한
    작성자
    2023.06.22
    @멸공통일 님에게 보내는 답글

    의견 감사합니다.

  • INDEX
    2023.06.23

    한편 역사상 수많은 학문들과 학자들은 정치적 클레임으로 사용되고 버려져왔습니다. 현대에 와서도 변하지 않는 이 끔찍한 굴레를 확실히 끝장내버려야합니다. 그 대상이 민주당인 것은 매우 유감입니다. ㅋ 진심입니다.

  • INDEX
    오주한
    작성자
    2023.06.23
    @INDEX 님에게 보내는 답글

    어떤 말씀이신지 깊이 이해됩니다. 안타까울 따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