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사(決死) 흉내 내며 적후(敵後) 습격했던 한신
‘불체포특권 포기’ 李의 혹시 모를 비수 대비해야
역경의 시기를 보내다
한신(韓信‧생몰연도 ?~기원전 196년)은 초한쟁패기(楚漢爭霸期)의 군인이다. 소하(蕭何)‧장량(張良)과 함께 서한삼걸(西漢三杰) 중 한 명으로 일컬어지는 명장(名將)이다.
‘반달’ 출신 한고조(漢高祖) 유방(劉邦) 패밀리가 거진 다 그렇지만, 한신도 처음엔 별 볼일 없는 위인이었다.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 등에 의하면 젊었을 때 한신의 직업은 ‘백수’였다. 아르바이트조차 하지 않았으며 낚시로 소일하면서 허송세월하는 게 전부였다. 밥은 동네 아주머니들에게 빌어먹었다. 때문에 생겨난 말이 걸식표모(乞食漂母)다.
한신으로부터 비롯된 굴욕적 고사성어는 이뿐만이 아니다. 그는 동네건달들이 시비 걸자, 기록에는 “참새가 어찌 봉황(鳳凰)의 뜻을 알리오”라는 이유로 그러했다곤 하지만, 건달의 가랑이 밑을 기어가기도 했다. 사람들은 한신을 비웃었으며 이 광경에 나온 말이 과하지욕(跨下之辱)이다.
참고로 훗날 제왕(齊王)에 오른 한신은 해당 건달을 찾아내 목과 어깨를 분리시키고 포(脯)를 뜨는 대신 대인배스럽게 일자리를 줬다는 설도 있다. “너 아니었으면 치욕을 이기는 법을 알지 못했을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고 한다.
우여곡절 끝에 漢 대장군으로
실제로 한신의 삶은 출사(出仕) 이후에도 고난의 연속이었다. 서초패왕(西楚覇王) 항우(項羽)의 숙부 항량(項梁)의 말단수하가 됐지만 중용되지 못했다. 항우는 집극랑(執戟郞)인 한신을 막사 밖에만 세워둘 뿐 어떠한 계책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참다못한 한신은 탈영해 파촉(巴蜀)으로 사실상의 유배를 가던, 당시에는 한왕(漢王)이었던 유방을 찾아갔다.
그런데 한신은 한고조 진영에서도 배척됐다. 군량창고를 관리하는 낮은 직책에 머물렀던 한신은 드디어 ‘핀트’가 나가 모종(某種)의 죄를 짓고 말았다. 일설에는 군영 밖에서 동료들과 폭음하던 중 시비 붙은 이들과 대판 싸웠다고 한다. 한고조 측 군기(軍紀)는 엄정했다. 처형장에 끌려간 10여명의 목이 차례차례 떨어지고 이제 자신의 차례가 되자 한신은 “한왕께선 천하를 취할 마음이 없으신가. 어찌 장사(壯士)를 죽이려 하시나”라고 외쳤다.
마침 근처에 있던 한고조의 가신(家臣) 하후영(夏候嬰)이 이 소리를 듣고 형 집행을 보류시켰다. 참고로 하후영은 마차 운전실력이 대단해 한고조의 운전기사 역할을 하던 이였다. 한고조와 여후(呂后‧본명 여치) 부부의 자식들을 구한 공로로 총애 받았으며 덕분에 훗날 여후의 피비린내 나는 숙청도 피해갔다. 여후는 눈엣가시였던 척(戚)부인을 ‘인간돼지’로 만들 정도로 잔인한 인물이었다.
하후영의 추천으로 한신을 만난 한고조는 그에게 전군(全軍) 군량 운송‧관리 등을 맡는 치속도위(治粟都尉) 벼슬을 내렸다. 허나 여전히 한신의 성에 차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는 스스로를 삼군(三軍)을 통솔할 대장감으로 여기고 있었다. 한신은 끝내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한고조의 군영에서도 탈영했다.
그러나 한고조와 항우 진영, 되는 집안과 안 되는 집안은 확연히 달랐다. 한신의 상관으로서 평소 그와 많은 대화를 나눴던 소하는 일인지하만인지상(一人之下萬人之上)의 재상 신분임에도 말단 한신을 단신(單身)으로 쫓아갔다. 당시 항우와의 기싸움 끝에 벽지(僻地)로 쫓겨나던 한고조 측에선 이탈이 빈번했다. ‘소하 탈영’ 오보(誤報)를 접한 한고조는 “이젠 소하마저도 날 버리고 가는구나”라며 통곡했다.
한신을 설득 반, 협박 반으로 다시 데려온 소하는 한고조를 만나 한신 중용을 강력 건의했다. 이 때 나온 말이 국사무쌍(國士無雙)이다.
소하는 “평범한 장수는 얻기 쉽지만 한신은 나라 안에서 비견할 자가 없습니다. 한왕께서 왕위에만 머무를 생각이시라면 한신을 쓰지 않아도 되지만, (항우와) 천하를 다투고자 하신다면 한신은 반드시 필요합니다”라고 단언했다. 결국 한고조는 한신을 대장군(大將軍)에, 그것도 “오만무례한 놈”이라는 소하 욕설을 듣고선 격식까지 갖춰서, 전격 임명했다.
별동대로 전세를 뒤집다
한신의 계책은 임기응변을 강조한 오자(吳子)의 가르침처럼 기발했다. 그는, 빈번이 한고조 명을 어기고서 동료를 삶겨지고 불타 죽게 만드는 등 인격은 바닥을 기었을지언정, 상대가 예상치 못한 허를 찌르는 방식으로 적을 무찔렀다. 암도진창(暗渡陳倉) 때는 진장(秦將) 출신 장한(章邯)의 정면을 치는 척하면서 후방을 덮쳤다.
초의제(楚義帝)를 앞세워 전횡 일삼던 항우의 측근들도 줄줄이 무너졌다. 위왕(魏王) 위표(魏豹)의 군대는 한고조의 구상유취(口尙乳臭) 비웃음 속에 위위구조(圍魏救趙)에 당했다. 항우가 제(齊)나라 구원을 위해 보낸 용저(龍且)의 20만 대군은 수공(水攻) 앞에 물고기밥이 됐다. 용저는 한신을 두고 “왕년에 양아치 가랑이 밑이나 기던 겁쟁이”라 방심하다가 패사(敗死)했다. 연왕(燕王) 장도(臧荼)는 한신이 온다는 소리만 듣고도 바지가 촉촉해지며 항복했다.
한신의 용병술(用兵術) 중 클라이맥스는 단연 배수진(背水陣)이다. 기원전 204년 한신은 군사 수만을 이끌고 조(趙)나라를 쳤다. 정형구(井陘口)에 진을 친 조나라 재상 진여(陳餘)는 지구전(持久戰)에 나서자는 이좌거(李左車)의 청을 물리쳤다.
전투 이후 한신마저 “이좌거 당신 생각대로 했으면 난 죽었다”고 말할 정도로 ‘존버’ 전략은 좋은 계책이었지만 진여는 오만하고 다급했다. 한신의 군대 중 정예병은 모두 한고조에게 ‘뺏긴’ 상태였기에 태반은 신병(新兵)이었다. 게다가 한군(漢軍)은 장거리원정군이었으며 정형구는 입구가 매우 좁아 치중(輜重) 수레 1~2대가 겨우 통과할 수 있었다. 굶주린 오합지졸들은 단 한 번의 일격만으로 패주하기 십상이었다.
한신은 도리어 이러한 자군(自軍) 약점을 역으로 이용했다. 한신이 먼저 싸움을 걸자 진여도 기다렸다는 듯 출격했다. 치열하게 싸우던 한신은 돌연 깃발 들어 퇴각을 명했다. 병사들은 ‘강을 등지고’ 세워진 진채 안으로 어지러이 달아났다. 진여는 이 기회에 ‘허명(虛名)만 가득한’ 한신을 사로잡아 후환을 뿌리 뽑고 제 이름을 드높이고자 전군을 차출해 맹공(猛攻)을 퍼부었다. 본진(本陣)을 지키던 군사들마저도 공격에 합세했다.
흔히 배수진을 두고 “강물에 빠져 죽느니 적과 싸워 죽겠다”는 병사들 심리를 유도한 작전이라고 평가하지만 이는 절반만 맞는 말이다. 시퍼런 강물을 등진 한군이 죽기 살기로 버티는 사이, 한신은 진여라는 대어(大魚)가 미끼를 덥썩 물 것이라 애초부터 예상하고서, 미리 준비했던 별동대(別動隊)를 미리 파악한 샛길로 보내 텅텅 빈 진여의 진채를 접수하고서 천둥 같은 함성을 내지르게 했다.
눈알 뒤집어진 앞쪽의 적군도 무찌르기 힘든데 별안간 아군 후방진채를 수놓은 한나라 깃발을 본 조군(趙軍)은 까무러쳤다. 조군으로선 얼마나 많은 한군이 후방을 기습했는지 알 도리가 없었다. “퇴로(退路)가 막힌 적군을 강물에 밀어 넣기는커녕, 우리가 앞뒤로 끼여 도망갈 곳 없는 샌드위치 신세가 되겠구나”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승부는 그대로 결정지어졌다. 조군은 병장기를 내버린 채 항복하거나 달아났다. 수색‧정찰에 소홀했던 진여의 목은 한군의 전리품이 돼 한고조에게로 보내졌다.
수색‧정찰‧정보의 중요성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불체포특권 포기’를 선언했다. 그는 “나를 향한 정치수사에 대해 불체포권리를 포기하겠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소환하면 열 번, 아니 백 번이라도 당당히 응하겠다”며 “구속영장을 청구하면 제 발로 출석해 영장실질심사를 받고 검찰의 무도함을 입증하겠다”고 말했다.
이 같은 행보 배경을 두고 여러 분석이 있지만, 일각에선 이 대표가 배수진을 친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민주당 홀로 주장하는 ‘검찰탄압’에 대해 궁지에 몰린 이 대표가 맞서는 모습을 연출함으로써 지지층 결집 등을 도모하는 것 아니냐는 추측이다.
이 대표가 단순히 강물을 등 진 것만은 아닐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한신이 별동대를 보냈던 것처럼 이 대표도 검찰 등의 허를 찌를 ‘한 수’가 있을 수 있다는 관측이다. 필자가 평소 여의도에서 보고 듣는 정보들이 많긴 하지만, 아직은 어느 것이 진실인지 알 수 없고, (이 대표 측의 또 다른 한 수 마련 계기가 되는) 천기누설(天機漏洩)이 될 수도 있기에, 본 칼럼에선 밝히지 않는다.
손자병법(孫子兵法) 용간(用間)편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전쟁의 승패는 하루아침에 결정된다. 따라서 상대 정보를 수집하는데 소홀하면 나라가 위태롭게 된다” 오자는 “무릇 장수는 문밖에 적이 서 있는 것처럼 항상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비해서 나쁠 건 전혀 없다. 혹시 모를 ‘이재명판 배수진’이 등장하더라도 이를 무력화할 ‘외통수’가 반드시 준비돼야 한다.
오주한 前 여의도연구원 미디어소위 부위원장 [email protected]
본 칼럼은 이재명 씨를 한신과 동급에 놓고 띄우려는 목적이 아니라, 이재명 씨에게 한신 같은 속임수가 있다면 우리가 대비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혹 오해 없으시길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병법 36계 중에 소리장도(笑裏藏刀)가 있는데, 딱 그게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말씀하신대로 그 가능성 또한 적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와 뭘또 찢으려고 칼까지 준비하는거야 이 악마
배수진을 응용한 '배수찢'이라는 새 병x법이 아닐까.. 짐작해봅니다..!!!..!!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충분히 그럴 만한 사람이니 끝까지 방심하면 안 됩니다.
말씀하신 바에 적극 공감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