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하이에크 신자유주의 경제학을 공부하고 추종하는 20대 초반임.
현재 우리 10~20대들은 역사교육을 전교조의 지배하에 좌편향적인 역사관을 배웠었고 그 때문에 건국 이래 가장 위대한 대통령인 이승만 박정희의 대한 평가에 단상을 과오만을 확대해석하고 치부하며 혹은 프레이저 보고서를 날조하기도 하며 이 두 사람의 업적을 왜곡하여 깎아내리려는 노력을 상당히 많은 부분에서 찾아 볼 수 있음.
좌파들은 항상 좌경화식 흑백논리대로만 근현대사 인물을 평가 하는데 절대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되며, 그 때문에 하루빨리 전교조들로부터 교육계가 국영화든 정상화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 큼.
역사는 항상 공, 과오를 50:50 지분으로 삼아 공이 더 크면 위인으로 평가 받으면 그만이며 과오가 더 많다면 저평가를 하면 그만임.
실제로 박정희의 업적은 워낙 유명하니 쉽게 깨어나지만, 이승만의 대한 업적은 한미수호통상조약 말고는 그가 이룬 성과에 대해서는 수면 위로 나오는 일이 별로 없으며, 그 때문에 사사오입으로써 임기 중 독재를 실현한 과오만을 치부하는 일 때문에 공의 대한 업적은 거의 드러나지 않고 과만으로 저평가 되는 일이 퍼다함.
즉 우리는 좌파를 싫어한다고는 하지만, 현재 전교조들이 편찬한 역사 교과서로 배운 근현대사 지식들은 대부분의 것들이 좌경화식 역사관이기에 알게 모르게 이 부분을 짚지 못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종종 생기며 그래서 앞뒤불언이 되는 상황이 종종 나오기도 함.
그래서 조금이라도 일깨워 보자는 의도로써 이승만의 대한 공에 업적을 상세하게 다는 아니더라도 적어보고자함.
이승만은 내전 이후 당시 아프리카 빈민국보다 못사는 최빈민국의 나라에 경제 체제 조차 제대로 확립하지 못한 상태에서 케인즈경제학이냐 고전경제학이냐 의미 하나 없는 정국에 거기서 반시장주의 반기업으로 하든 자유시장경제를 지피든 의미가 없는 시대였고 빈민국이면 빈민국 일 수록 경제를 꾀하기 위해서는 민주주의 라는 체제 입각을 하기 보다는 사회주의에 잠시 입각하여 경제 총동원책이 급선무였던 시대에,
국유화든 민영화든 의미 없지만 국유화에 굳이 딴지를 걸기엔, 공화국 설립후 이조때부터 관습적으로 남아있던 지주제를 타파하고 모든 전국토를 국가가 국유화 한 다음 싼값에 농민들에게 유상배분 한 것.
(실제적으로 농민들은 이 때문에 남한정부와 연합국에 우호적이었음)
그 덕분에 625때도 자기땅 지킬려는 농민들때문에 이길수있는 원동력이 되었고 여기서 이승만의 토지개혁이 얼마나 중요하나면,
현재 필리핀이나 남미 국가들 보면 선례를 알 수 있듯 이 나라 들은 지주 토지법을 개혁하지 않은 상태에서 자본주의 체제를 그대로 수용하는 바람에 시장경제의 이윤들을 전 국민 모두에게 공평히 투영되지 못했고 도심 개발만봐도 지주들의 편의를 위한 가중치를 두고 도심이 개발 되었으며 빈민들은 그 테두리 주변을 애워싸는 구조로 발전되는 기형적인 형태에 이러한 불평등이 아직까지도 균형잡힌 국토발전을 가로 막고 있고 스노우볼로써 부익부빈익빈을 가중시킴.
한국은 그런면에서 이 초기 기틀 덕분에 빠른 혁신적인 발전을 할 수 있었던 것이고 더하여 이승만이 남아있던 조선의 잔재를 확실히 정리한게 신의 한수 인 것도 꽤나 고평가 받아야 한다고 보며 자신부터 이왕조의 후손이면서 창덕궁에 살던 이씨 왕가 후손들 다 내쫓아버린건 지금 다시 들어도 후련 할 정도로 그만큼 미개했던 이씨왕조 라면 치를 떨던 사람이라는 방증.
이승만이 왜 박정희급 추앙을 받아야 하는 이유는,
'국부' 라는 의의 이외에도,
미국이란 군사 경제 강국을 최대한 활용한 용미주의로써 당대 트루먼 대통령보다 먼저 앞서 있던 반공주의를 먼저 선언 했으며 미국의 625 개입만을 봐도 반공을 구실한 이승만의 적극적인 요구가 없었으면 오늘의 조국과 지금의 주한미군은 존재하지도 않음.
+ 대한민국은 건국이념에 가장 중요하게 다뤄야 할 부분 중 하나는 바로 반공임 현재 좌파들은 교육계를 전교조로 장악하며 좌경화식 대국민 선동 세뇌 교육으로써 이 반공주의를 어떻게든 흐지부지 만들려고 하고 있음 상당히 심각한 사항.
가끔 좌파들이 이승만의 올타임 하이 수준의 외교력을 어떻게든 폄하 하려고 미국에 이용 당한 것이라고 무논리 입각한 주장을 하는데 그 반대임.
광복 이후 독립국 지위를 받은 것 역시도 이승만이 선제적으로 미국 비롯한 유럽 서방열강국들에게 조선이라는 정체성 자체를 계속 목소리를 내어 알렸던 게 가장 컷었고,
이승만은 이용 당한 것이 아니라 미국이란 군사 경제 강국을 최대한 이용 활용했다는 것.
친미가 아니라 그저 미국을 조정한 용미주의자였음.
(625 중공군의 개입과 미군 5만 죽음과 당시 미국내 여론악화에도 무리하게 전쟁 강행 등 숱한 정책에서 엿볼 수 있음)
그 다음 바통을 잡은 박정희 정권의 대대적인 경제 발전을 위한 기반을 설계 했다는 것,
(당시 고도의 경제 성장을 야기시키는데 이바지한 주요 핵심 엔지니어들 및 산업역군의 대다수가 이승만 생전 임기중에 이 나라 미래를 위해 미국이나 서방열강국들에 기술자로 꾸준하게 유학 보내 끊임 없는 인재를 배출함 하야 이후에 하와이로 가기 직전 죽기직전까지도 미국에 유학을 보내 인재양병을 지속하라는 말을 끝까지 남김)
+ 당시 일본 보다 앞서 있었던 원전의 필요성과 중요성에 대한 태동.
광복 이후 90% 이상에 역대급 문맹률을 보였던 당시 조선인들의 상황을 근본적으로 타파하기 위해 그 어려운 경제난에서도 초중등 의무 교육을 시작했다는 것,
등등의 중공업 산업화의 초석을 위한 위대한 업적들이 있겠지만,
이 업적들 보다 필자가 더욱더 중요하게 말하고 싶은건, 바로 큰 틀로써 자유주의를 남한만이라도 지켜내고 민주공화국을 수립한 사실임.
광복 이후 독립운동가들의 거의 대부분은 홍범도 처럼 레닌에게 영향을 받은 마르크스에 입각한 공산주의 파시즘에 눈 돌아가고 있던 상황에,
(현재 우리가 전교조들로 점령당한 역사교육계에서 어릴때부터 배워서 알고 있는 그 독립운동가들 태반이 하나같이 공산주의자들 이라고 보면됨)
그 빨갱이들 천지인 배수진의 상황에서 유일하게 몇 안되는 사람 중 한명으로써 자유주의, 민주주의, 자본주의를 외치던 사람이 이승만이었고 정부 수립 이후에도 북한 뿐만 아니라 남한에도 현재 민주당의 씨앗인 '남로당'을 필두로 한 수 십만의 공산주의자가 김일성의 부름 아래 적화에 온 열을 다 바치고 있는 빨갱이들 소굴 그 자체 였음.
(일례로 당시 김일성의 오른팔이었던 여운형은 남한에 상주하는 수 십만의 우리 아군이 존재하니 소련의 군비지원을 받지 않고 지금 당장 남침을 한다고 할지언정 수 일만에 남한을 적화로 쉽게 만들어버릴 수 있을 것이라고 김일성에 조언함)
그래서 이런 연유로 이승만은 더 늦기전에 이들을 소탕하기를 결심하였던 것이고 보도연맹사건, 제주 4.3사건 처럼 공산주의자들이 꿈꾸는 적화 내란을 일망타진 하기 위해 초기에 수 십만명의 공산주의자들을 다 없애야만 하는 일이 발생함.
물론 이 과정에서 선량한 시민들도 피해를 입고 희생 당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하였으나 이 일을 벌이지 않았다면 남한의 적화는 불보듯 뻔한 일이었기에 불가피한 선택이었음.
(좌파들이 노리는 포인트가 바로 이 부분임 마르크시즘을 염원하던 사람들의 꿈이 이뤄지기도 전에 자신들의 사상과 배반되는 이승만 때문에 일이 모두 그릇되어버렸으니 희생된 사람들의 인권만을 생각하며 과한 확대해석을 통해 감정을 고취 시켜 앞 뒤 내용을 제외하고 이승만을 학살자 라고만 지칭하게 만듬)
위 사례도 알 수 있듯이 자유진영이었던 월남이 미군의 끊임 없는 지원에도 월맹에게 패망한 것도 게릴라전이 아니라 바로 이러한 외부의 적 보다 내부의 적이 너무나 많았던 이유가 가장 큼.
그러니 현재 우리는 김씨 일가 3부자를 신으로 떠받들지도 않으며 쌀밥 조차 제대로 먹지도 못해 길가에 풀이나 뜯어먹고 사는 평생의 기아로 살지도 않으며 동시에 자본주의 라는 체제 아래에서 만인이 평등한 자유주의에 입각하며 풍족을 누릴 수 있는 것.
이 모든 것에 이승만이 없었으면 이 나라는 이미 625이전에 일찍이 적화 되고도 남았음.
즉, 사방팔방 천지에 공산주의자들 천국이었던 이 한반도에서 남한만이라도 자유민주주의를 정의하던 정부를 수립한 것 그리고 반공주의를 이념으로 삼았던 것 지금 우리가 한가롭게 살 수 있었던 모든 근본적인 시초적 근간은 이 이승만 이라는 인물이 없었으면 존재하지도 않았다는 얘기.
+ 바통 받은 박정희의 위대한 치세 조차도 이 이승만의 남한 단독 민주공화국 수립에 필사적으로 목숨을 걸고 사투하며 자유진영을 지키지 않았다면, 그리고 위에 열거한 산업화의 초석들이 없었다면 시작부터 불가능 했음.
좋은글~정말 그 공산주의가판치는시기에 자유의 씨앗을 뿌린 이승만할배는 정말 대단합니다 공산주의의 말로는 폭망이란걸 미리 알았던거지
이승만이 전국토를 국유화 한 것은 아니었고 임야 등을 제외한 농지만을 대상으로 했고 방식은 유상매입, 유상분배였지. 또 지주계급을 거지 만들겠다는 것은 아니고 걔들을 산업자본으로 전환하자고 지가증권 등을 주기는 했는데 이게 전쟁이 나는 바람에 당장 먹고 살길이 없으니 헐값에 팔렸고 해서 자동으로 지주계급이 몰락했다고 검색을 하니 나오네. 그냥 내 기억과 내용이 좀 다른 거 같아서 적어봤어.
양민학살과 부정선거만 아니었어도 이대통령은 이 나라 국부의 칭호를 충분히 받을 수 있다고 저는 개인적으로 그렇게 생각합니다
내 나중에 읽어보겠소
이미 저 스샷에 다 나왔네요
좋은 칼럼 감사합니다!
공이 큰 사람이죠
저도 개인적으로 국부라고 인정받았으면 하구요
하지만 반면에 과오도 뚜렷하죠
거기에 이승만 덕분에 독도의 실효권을 우리가 가지고 있음 일명 이승만라인으로 불림
이승만은 외교의 신이었다. 다들 이명박의 외교를 높이평가하지만 나는 외교는 최소 이명박처럼 최선은 이승만처럼 해야한다고 생각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