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 역사상 최절정기를 맞고 있다는 대한민국이 '역사관 논쟁'으로 내홍(內訌)에 휩싸였다. 때아닌 시비가 아닌, 건국 이래 반세기 이상 묵혀 왔던 고름이 터져 피부를 뚫고 나온 것이다.
논란의 불씨는 이종찬 광복회장이 던졌다. 그는 김형석 대한민국역사와미래 이사장이 신임 독립기념관장에 임명되자, "독립기념관장을 포함한 국책기관의 일련의 인사 사태는 이 정부가 '1948년 건국절'을 하자는 것"이라며 "이는 일본의 식민 지배를 모두 정당화, 합법화해주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정부를 상대로 김 관장의 임명 철회를 요구하며 '광복절 기념식 불참'을 선언했다.
이종찬 회장은 초대 부통령 이시영(1868~1953)의 종손자(從孫子)다. 과거 이승만(1875~1965)과 김구(1876~1949)가 단합해 만든 '독립촉성국민회(獨立促成國民會)'의 위원장을 지낸 이시영은 1948년 7월 20일 제헌국회에서 실시된 대통령 및 부통령 선거에서 대한민국 초대 부통령에 선출된 독립운동가다.
물론 1951년 5월 9일 국회에 부통령직 사임서를 제출하면서 이승만 정부와 갈라 섰으나 엄연한 '개국공신(開國功臣)'으로 추앙받는 종조부를 둔 이 회장이 '1948년 건국'을 부정하는 건 자신의 뿌리를 부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 회장이 어떤 연유로 이러한 삐뚤어진 사관(史官)을 갖게 됐는지는 알 수 없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대한민국의 '태생'마저 부인하는 이러한 역사관을 북한과, 북한을 추종하는 세력도 견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1948년 건국'을 부정하는 일련의 움직임이 자칫 '반정부 운동'으로 흐를 공산이 있다는 점이다.
'NL(National Liberation, 민족해방)파'는 1948년 건국된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송두리째 부정하고 여전히 남한 사회가 미국 제국주의의 지배를 받는 '식민지' 상태라고 주장하고 있다.
북한을 추종하는 NL파는 대한민국은 과도기적 '괴뢰(傀儡) 정부'에 지나지 않는다며 한반도에 세워진 유일한 합법 정부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이에 북한과 협력해 주한미군으로 상징되는 미제국주의를 몰아내고 진정한 통일한국을 이룩하자는 게 이들의 목표이자 지상과제다.
물론 '1948년 건국'을 부정하는 게 이 같은 논리를 수용한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단순히 이승만을 비롯한 건국세력에 대한 '반감'으로 대한민국 정부의 정통성을 부인하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대한민국 역사에서 '1948년 건국'을 지우면 남는 건 북한뿐이다.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를 가진 한민족의 정통성이 대한민국이 아닌 북한에 있다는 말인가.
북한은 1986년 '위대한 품'이라는 선전 영화를 만들어, 민족 지도자 김구를 김일성의 '위대함'에 경도돼 상해 임시정부의 옥쇄를 바치는 인물로 묘사한 적이 있다. 물론 황당하기 이를 데 없는 '조작'이다.
문제는 북한에서 김구를 '민족의 영웅'으로 띄우고 이승만을 '친일파'로 깎아내리는 작업이 오랫동안 지속돼 왔다는 점이다. 북한이야말로 상해 임시정부를 승계한 '정통성 있는 국가'라는 점을 선전하기 위한 기만전술의 일환이다.◆유엔 감시 아래 '南 단독선거' … 北, 소련 반대로 무산
이 회장은 상해 임시정부가 출범한 1919년 4월 13일이 대한민국이 건국된 시기라고 보는 듯하다. '일제강점기'였던 당시 불행하게도 우리 민족에게 '주권'은 없었다. 오죽하면 임시정부를 이역만리 타국에 세웠을까. 국가의 구성 요소 3가지(국민·주권·영토) 중 어느 하나도 충족하지 못한 상태를 '나라'라고 말할 수 있을까.
당시 민족 지도자들이 임시정부를 세운 뒤 패망한 대한제국(大韓帝國)을 계승한다고는 했으나 진정한 의미에서 독립(獨立)은 아니었다.
1945년 8월 15일 일제가 물러나면서 우리 민족은 해방(解放)을 맞았다.
그러나 이 같은 해방이 곧장 독립국가가 들어서는 광복(光復)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일본의 식민지 지배기구인 총독부는 해체됐으나 이를 대신할 정부가 아직 세워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본이 패전국으로 전락한 후 한반도를 '공동점령'하기로 합의한 미국과 소련은 각각 남한과 북한 지역을 대리통치했다.
먼저 북한을 점령한 소련은 1945년 10월 중앙행정기구인 '북조선5도행정국'을 설치하며 이 지역을 남한과 아주 이질적인 사회로 바꾸기 시작했다. 이후 소련이 꼭두각시로 세운 김일성이 1946년 '북조선인민위원회'를 만들면서 사실상 북한 내 단독정부를 수립했다.
당초 미국은 소련과 협의해 한반도를 통합관리할 임시정부 수립을 계획했으나 끝내 협상이 결렬되자 이 문제를 유엔(UN)에 넘겼다. 이에 유엔은 1947년 11월 14일 유엔 감시 아래 남북한 총선거를 통해 제헌의회를 구성, 하나의 독립국가를 만들 것을 결의했다.
그러나 한반도에 공산주의를 통치 이념으로 하는 위성국가를 만들려 했던 소련의 반대로 북한 내 선거는 이뤄지지 못했다.
이에 유엔은 1948년 2월 선거가 가능한 남한에서 우선 선거를 통해 독립국가를 창설할 것을 결의했다.
◆대한민국 '건국'→'정부 수립'으로 교과서 수정
당시 김구와 김규식은 남한 단독선거 결정에 반대하며 불참을 선언했다. '제주4·3사태' 등 남한 내 단독선거를 막으려는 시도가 잇따랐으나, 1948년 5월 10일 역사적인 총선거가 치러졌고 198명의 제헌 국회의원이 선출됐다. 이 '제헌국회'에서 헌법이 채택됐고, 같은 해 8월 15일 마침내 '대한민국'을 국호로 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탄생하게 됐다.
1948년 12월 12일 유엔 총회는 '대한민국 정부'를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로 승인했다. 국제사회뿐 아니라 우리나라 헌법 제3조도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며 한반도 내 유일한 합법정부는 대한민국이고, 휴전선 이북 지역은 북한이 불법적으로 점령하고 있는 '미수복지역'이라는 사실을 명기하고 있다.
결국 남한과 북한 모두 각자가 '한반도 내 유일한 합법정부'라고 주장하고 있는 셈인데, 유엔 감시 아래 '자유선거'를 진행해 탄생한 대한민국에 '정통성'이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는 게 모든 역사학자들의 중론이다.
'1948년 건국설'을 부정하는 건 '유엔 결의'에도 반하는 주장일뿐 아니라, '한반도 유일 합법정부'를 주장하는 북한에 힘을 실어주는 악수(惡手)가 될 공산이 크다는 지적이다.
충격적인 사실은 문재인 정부 당시 '대한민국이 유엔에서 한반도 유일 합법정부로 승인받았다'는 내용이 초등학교 교과서에서 사라졌다는 점이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이 '건국'됐다는 표현도 정부가 '수립'됐다는 문구로 바뀐 지 오래다.
이인호 서울대 명예교수는 14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1919년 건국설'은 '저쪽'의 지령에 따른, 대한민국을 허물기 위한 동시다발적인 작전"이라며 "그들은 대한민국의 토대를 허물기 위해 고의로, 거짓말로 어린이까지 세뇌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내 막내 조카손녀가 초등학교 1학년인데, 한 두 달 초등학교에 다니더니 '이승만은 몹씨 나쁜 사람이다. 국민을 많이 죽였다'라는 얘기를 했다"며 "대한민국의 토대를 허물기 위한 종북 좌파 세력의 작전은 현재진행형"이라고 강조했다.◆이재명 "친일 세력들이 미 점령군과 합작"
수상한 점은 교육계뿐만이 아니다. 고(故) 김원웅 의원이 회장을 맡고 있던 시절 광복회는 이재명 당시 경기지사가 "대한민국이 친일 세력과 미 점령군의 합작"이라는 말을 했을 때 이를 두둔하는 보도자료를 낸 적이 있다.
당시 광복회는 "친일세력이 '미 점령군과 합작해서 지배체제를 그때 유지했다'는 이재명 지사의 말은 토씨 하나 틀리지 않는 역사적 진실"이라며 "우리나라 정치인이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자질은 역사의식이다. 특히 친일 미청산과 분단극복에 대한 고뇌가 없는 정치인은 이 땅에서 사라져야 한다. 그런 면에서 백범 김구 이후 가장 역사의식이 투철한 정치인은 김대중·노무현"이라고 주장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이 회장의 발언과 같은 맥락이다.
광복회는 이번 '건국절 논란'에서도 같은 스탠스를 취하고 있다. 광복회는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광복절 경축사에서 "독립운동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만들기 위한 건국운동"이라고 밝힌 것을 두고 "△선열들의 해방 전 독립운동을 무력화시키고 △일본의 식민지배를 정당화하는 한편 △이승만 전 대통령을 '건국대통령'으로 하는 데 힘을 실어준 발언"이라는 억지 논리를 펴고 있다.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만들기 위한 건국운동이 독립운동'이라는 말이 어떻게 일본의 식민지배를 정당화하는 발언이란 말인가.
한 발 더 나아가 광복회는 홈페이지에 "△이승만을 '건국대통령'이라고 하는 자나 단체 △1948년을 '건국절'이라고 주장하는 자나 단체 △일제강점기 우리 국적을 일본이라고 강변하는 자나 단체 △대한민국 임시정부 역사를 폄훼하고 '임의 단체'로 깎아내리는 자나 단체 등이 뉴라이트에 해당한다"는 글까지 올렸다.
이게 독립운동가들의 유지를 받든다는 광복회가 할 소리인가. 1919년 상해 임시정부 때도 대통령은 이승만이었다. 아무리 '1948년 건국'을 부정해도 이승만이 '건국대통령'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승만을 건국대통령으로 부르는 자들을 '뉴라이트=친일파'로 매도하겠다는 것이다.
1945년 '해방' 이후 대다수 독립선열들은 '독립촉성국민회(獨立促成國民會)' '건국실천원양성소(建國實踐員養成所)' 등을 건립·운영하며 완전한 '독립국가'를 세우기 위해 노력했다.
이 회장과 광복회의 언행은 이 같은 선대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드는 것이나 다름없다.
◆DJ·노무현도 '1948년 건국' 인정
'1948년 건국'을 강조하면 독립운동을 펼친 수많은 선열들을 욕되게 하는 것이라는 주장은 논점과 사실을 왜곡한 선전·선동에 불과하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도 '1948년 건국'을 인정했다. 김 전 대통령은 1998년 광복절 축사에서 이날을 '건국 50년 시점'이라고 규정하고, 제2의 건국 운동을 펼치자고 했다. 노 전 대통령은 2003년과 2007년 광복절 축사에서 1948년 8월 15일을 언급하며 "이 나라를 건설했다" "민주공화국을 세웠다"고 했다.
'독립운동'은 당연히 대한민국의 역사로 계승해야 하며, '1948년 건국' 역시 대한민국의 기원을 밝혀준다는 점에서 기념해야 마땅하다. 독립운동과 건국은 양분할 수 없는, 함께 안고 가야 할 우리의 역사다.
이번 논쟁을 단순히 소모적인 설전(舌戰)으로 치부해선 곤란하다. '1948년 건국'을 지우겠다는 건,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를 가진 한민족의 역사에서 대한민국을 지우겠다는 것과 진배없다. 대한민국의 '뿌리'와 '정통성'을 말살하려는 시도를 방기한다면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역사를 잊는 것보다 더 무서운 건 잘못된 역사를 배우는 것이다.
양심과 상식이 상실된 시대, 진리의 파수꾼이 절실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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