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가입

로그인

아이디
비밀번호
ID/PW 찾기
아직 회원이 아니신가요? 회원가입 하기

”미국은 내정간섭 말라“ 이승만, 전방위 1인 전쟁 "권력투쟁 아니다"...트루먼의 협박 각서...미 ”유엔군이 계엄선포, 이승만 구속하라“

뉴데일리

미국과 야당의 ’이승만 제거‘ 국회쿠데타 음모를 사전에 봉쇄한 비상계엄령! 그것은 이승만 대통령이 ’직선제 개헌‘을 달성하려는 민주화 투쟁, 77세 노인 혼자서 미국-야당-공산군과 동시에 싸우는 전방위 ’1인 전쟁‘--바로 다윗과 골리앗의 결투 그것과 다름 아니다.그동안 우리는 오랜 세월 ’부산정치파동‘의 진상을 모르고 살아왔다. 야당적 시각에서만 축소-왜곡된 편향적 기록과 정치 공작적 책들로 인하여 ”이승만이 대통령 하려고 야당을 탄압한 사건“ 정도로만 전해져 왔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사건전모를 외면한 엉터리다. 그것은 이승만이 전세계를 상대로 대한민국 대통령의 독립적 리더십을 확보하려는 국제정치적 투쟁이었음을 왜 묵살했단 말인가. 이제라도 사건의 진상과 이승만의 수없이 공표한 뜻을 사실 그대로 806568연구하기 바란다.

◆이승만, 국회와 미국의 계엄해제 요구 일축

비상계엄령이 발효된 5월26일 아침, 임시국회의사당 2층 의장실에서 국회의원 40여명이 탄 출근버스가 헌병대에 끌려가는 광경을 내려다보던 신익희는 조봉암과 김동성 두 부의장을 불러 대책을 의논하다가 임시 경무대로 이승만을 찾아간다.“의원들이 혐의내용에 대한 아무 설명도 없이 끌려갔으니 일단 석방해주십시오.”국회의장단의 요청을 받은 이승만은 작심한 듯 세 사람을 번갈아 보면서 말하였다.“나도 할 말이 있소. 그동안 국회는 국민의 뜻에 맞지 않는 일을 많이 해왔소. 국회의원은 살인을 해도 무방하다고 생각하오? 살인한 의원을 석방하라고 결의문을 보내다니, 이건 하늘아래 둘도 없는 국회요.” 언성을 높인 이승만은 의원들의 일탈행위에 대해 일장설교를 퍼붓는 것이었다. 의장단은 머쓱해져서 물러나왔다.

다음날 27일, 이승만은 비상계엄령을 선포한 이유 등에 대하여 성명을 발표하였다.“현 정치정세에 관하여서 공평한 이야기는 없고 근거 없는 풍설만 유포되고 있다. 그들의 목적은 우리 정부에 대한 불신을 일으키고 대한민국 및 유엔 우방간의 기본적인 단결을 분열시키려는데 있다. 말할 것도 없이 현재의 국내정세는 일부 인사들이 말하는 바처럼 혼란하거나 위험스러운 것은 결코 아니다. 행정부가 취한 제반조치는 필요한 것이었고 또 오랫동안 밀려 내려온 것이다. 즉 5개 지구에 대한 계엄령 선포는 증가된 게릴라 활동으로 말미암아 필요하며 일반 국민의 시위운동이 폭동화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서도 필요하였다. 각지구의 국민의 평화와 안전보장은 심각하게 위협을 받고 있는 형편이다.그리고 부산의 바로 인근에서도 미군장병들이 기습을 받아 살해되었다. 민의에 반항적이고 무책임한 국회의원들을 규탄하는 공론은 비등하고 있다.또 공산주의자들과 관계가 맺어진 것이 발각되어 당국에서는 동사건의 완전한 조사를 행할 조치를 취하고 있다. 이 조사가 완료되면 그 전모는 일반에 공개될 것이다. 우리 정부로서는 무법이 이 나라를 지배하는 것을 허용할 수 없다. 헌법에 의한 정부형태는 보전되어야 한다. 그리고 또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국민의 권리가 보호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빨치산의 공격과 치안 불안, 그리고 공산당 관련 음모와 국회의원들의 민의 배반이 계엄령선포의 주요 이유라는 설명이다.

28일 국회는 가까스로 성원을 시켜 ‘계엄령 해제’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연행된 의원들은 12시간 만에 30여명이 석방되고 모두 10여명이 구속되었다.신익희는 30일에서야 ‘구속의원 석방 결의안’을 통과시킬 수 있었다. 연행이 두려워 시내 곳곳으로 피신한 국회의원들이 국회에 나오지 않기 때문에 늦어졌다. 여관방으로 판잣촌으로 국제시장 골목 뒷방으로 숨어 다니는 국회의원들에게 연락할 방법도 없었다.더구나 ‘공산당 자금 수령’이란 가장 무서운 혐의인지라 석방 결의에 참여한 의원은 겨우 80명 정도였다.

★”최종 결정은 내가 한다. 목숨 걸고 싸울 것“

29일 이승만은 국내외 기자단과 만나 계엄사태에 관하여 장시간 회견을 열었다.다음은 조선일보가 1면 톱기사로 보도한 기사를 읽어보자. .제목: 국민은 국회태도에 염증 / 국회는 그 자격을 거의 상실/ 이대통령 국회해산 언급[부산29일=AP=합동 스텐 카터 記] 이대통령은 29일 국회가 “그 자격을 거의 상실하였다”고 말하고 만약 그가 국회를 해체하면 한국국민들은 그를 지지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동 대통령은 기자단회견석상에서 “국회가 국민의 의견에 반한 대통령을 선거할 수 없도록 국회를 해체할 것을 국민은 요구하고 있다”라고 말하였다.그런데 한국의 현행법에 의하면 국회는 오는 6월23일 이내로 신대통령을 선출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어있다. 그러나 현국회로서는 이대통령이 지명하는 어떠한 후보에도 반대할 것이다. 이대통령은 그 자신으로서는 차기에도 대통령에 취임할 것을 희망하지 않는다는 것을 또다시 강조하였다. 대통령은 “나는 차기대통령에 입후보하지 않겠다고 전에 발표한 결정을 변경시키지는 않았다”고 말하고 이어 “나는 피로하였다. 내 생각으로는 더 젊고 활발한 인사가 이 직을 맡아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부언하였다. 그러나 이대통령은 만약 국민이 재출마를 요구할 때에도 출마하지 않겠다고는 특히 지적해 말하지는 않았다.이 대통령은 국회의원들을 매수할 목적으로 방대한 적색자금이 침투하여 온데 관하여서는 명확한 증거가 있다고 말하였다. 동 대통령은 이어 정부는 금주 한국헌병에 의하여 체포된 국회의원9명의 범죄사실에 관한 증거를 보유하고 있는데 그들에 대한 조사가 종결되려면 다른 자들도 체포될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하였다.한편 이 대통령은 계엄령의 해제 일자 결정은 오로지 자기 자신에게 달려있다고 말하였다.또한 자기에게는 국회의 해체(해산)을 요구하는 지방의회 및 개인으로부터의 청원서가 수천통이나 들어오고 있다고 말하였다.이대통령은 한국헌법에는 국회 해체에 관한 조항이 없으므로 “이 헌법은 국민의 의사를 침범하는 것이다”고 말하였다. 동 대통령은 이어 국회를 해체할 한 가지 길은 지방의회내의 국민대표들이 그들의 국회의원들을 불신임하는 방법일 것이라고 말하고 “국민은 그들의 새로운 대표를 선출한 권리를 보유한다”고 부언하였다.이 대통령은 “국민은 국회의원들이 대통령 선거를 행하는 것을 원하지 않고 있다”라고 강조하고 “국민의 의사는 그 정신에 있어서 존중되지 않으면 안된다”라고 말하였다.동대통령은 이어 “국회의원들은 매수하기 위하여 방대한 적색자금이 침투한데 관한 부인할 수 없는 증거는 정부로 하여금 즉시 조사를 하지 않을 수 없게 하여 놓았다. 이 공산당음모에 관한 진상 공포는 불원 행하여 질 것이다“라고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정부는 유명한 공산주의지도자 2명을 체포하였는데 그들의 이름은 2,3일내로 발표될 것이다. 계엄사태는 오래 계속되지는 않을 것이다. 언제 해제할는지 최종적인 결정은 국회의 어떤 결정과도 상관없이 오로지 나에게 달려있다.” 이대통령은 자신이 말한대로 국회의 계엄해제 요구는 일언지하에 거부하였다. ([조선일보] 1952년 5월31일자)

이날 오후엔 각도의회대표 14명이 이승만을 찾아와 ‘국회해산 요청’ 결의안을 전달하였다.--그동안 시위대의 구호와는 별도로 공식문서로 제출된 국회해산요구는 이것이 처음이다.이승만은 이들에게 다음과 같이 중대결의를 표명하였다고 조선일보만 보도하였다.“국가의 주인 민중이 대통령을 직접 선거하고 상하양원을 설치할 것을 희망하고 있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현 국회의원 다수가 헌법을 개정할 수 없다고 고집하고 있어 이를 반대하는 민중의 시위까지 전개되고 있는 터이니 국민의 기본권리인 평등선거권을 줌으로써 일부 소수자들의 행동을 봉쇄해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 사람들이 앞으로 어떠한 작란을 꾸밀지 모르나 나는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과감히 싸울 작정이다. 나는 내 목숨을 내걸고서라도 끝까지 싸울 것이며 소수 정상배들은 법에 의하여 단호히 처단할 것이다. 여러분은 망동을 하여서는 안될 것이다.“ 같은 날 이승만은 국민에게 경고하는 “허설(虛說) 단속처벌” 담화도 발표한다.“근일에 파당들이 국회의원 몇 분자들을 연결하여가지고 헌법조건이라는 것만 내걸고 민의를 거부하고 정권을 도둑질하려는 음모로 허무한 거짓선전을 내외국에 전파하고 있으나 이 사람들이 여러해 동안 이런 선전을 해오는 중에서 국내외의 중요한 언론기관에서는 이 사람들이 허위된 정보를 아는 고로 신뢰하는 이가 없을 것이다.그러나 아직도 이 실정을 아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서 모든 낭설을 이용하여 정부에 방해될만한 언론을 조작, 인심을 선동하는 중에 아래와 같은 말이 있는 줄 안다.즉 어떤 장관은 사직했다 그 이유는 대통령과 불합의하다는 것이고 혹은 대통령이 빌면서 사퇴하지 마라달라고 했다 하며, 또 한편으로는 유엔본부에서와 미국무성에서 대통령을 공격하는 선전이 나온다느니, 이런 비루한 언동을 지금까지는 정부에서 방임해왔으나 지금같이 인민의 공의와 국회 사이에 의견충돌로 다소간 분란이 있는 경우를 당하여 이 이상 더 방임할 수 없으므로 이런 허설을 내는 사람은 신문상으로나 개인적으로나를 막론하고 이를 단속하고 검토해서 어디서 나온 근원을 알아 법으로 처벌할 것이다.“

★김성수 부통령 사임, 미국 병원선에 입원...장면도 미군병원 입원

같은 날 29일, 김성수 부통령이 국회에 사임서를 제출하였다.지난해 5월 이시영의 사임에 따라 국회에서 부통령에 선출된 김성수는 취임직후 각의에서 이승만이 신성모를 주일대사에 임명하는데 반대하다가 좌절되자 출근을 하지않고 1년이나 칩거하던 중이었다.김성수가 사퇴결심을 알리자 신익희, 조병옥, 백남훈 등 당 수뇌들이 “좀더 두고 보자”며 반대하였으나 김성수는 이승만과 정면대결을 택한 셈이다. ‘내각제 개헌’의 전망이 어두워졌기 때문일 것이라는 평이 돌았다.“시표를 내려면 나한테 내야지 왜 국회에 내나? 부통령도 결국 야당편이구먼.”김성수가 구술하고 비서 신도성이 작성한 사임서를 본 이승만이 “과도한 언사와 비상식적”이라고 지적한 대로 극렬한 표현이 많았다. 즉 “직선제와 양원제 개헌은 사직(社稷)을 파멸하려는 반역행동”이라는 왕조적이란 말과 함께,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국회의원들을 구속한 처사는 ”국헌(國憲)를 전복하고 주권(主權)을 찬탈하는 반란적 쿠데타가 아니고 무엇이냐“라는 식으로 질타를 퍼붓는 사퇴서였던 것이다.장택상 국무총리등 각료들도 이승만처럼 ‘시대착오적인 극언’들이라며 반발하여 반박문을 작성, 김성수에게 전달하였다고 한다. 즉, 부통령의 사임서가 내각제 개헌안에 대한 절대 지지와 민국당의 이승만에 대한 반대노선에 집중됨으로써 “부통령다운 폭넓은 식견은 부족하다”고 지적하고 사과를 요구했다.이승만의 화도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부통령은 나의 의견도 묻지 않고 사임했는데 정부에 대해 퍼부은 일방적 공격에 대해서는 본인이 직접 해명해야 한다”는 메모를 국회에 보냈다. 그러나 김성수의 사임서는 ‘야당의 정치선언’으로 치부되고 있었다.

◉김성수, 바다의 미군 병원선에 피신=사임한 김성수는 칭병하며 입원하였다. 부산 앞바다에 정박해 있던 미군 병원선 헤이븐(Haven)호, 그 병실을 그가 미국 측에 미리 부탁해둔 것이었다고 한다. 계엄하에서 신변안전을 위해 ‘미국 땅’으로 피신한 것인데, 지난 달 4월 사임한 국무총리 장면도 역시 초량국민학교에 차려져있던 미군 병원에 이미 입원하고 있는 터였다.김성수의 경우, 미국병원 측은 ‘통원 치료하라’고 권고했는데도 미국 대사관이 굳이 입원시켜서 ‘미국의 보호’를 받게 하였다는 설이 유력하다. (조용중, 앞의 책)이런 상황은 장면의 경우도 마찬가지, 그는 회고록에 이렇게 경위를 적어놓고 있다.“총리를 사퇴한 뒤 어느 날, 미국 대령 한사람이 찾아와서 ‘리지웨이 장군 명령으로 왔는데 박사님을 병원으로 모시라는 특명입니다.’라고 했다. 측근이 지프차를 대기시켰지만 미군 측에선 측근이 병원에 따라가는 것도 극구 만류하는 것이었다.” (운석기념회, 앞의 책)무초 대사가 지휘하는 ‘국회 보호’ 공작에 힘입어 야당 지도자들은 이렇게 미국의 품에 안겼던 셈이다.

★원용덕 “국회의원들의 국방예산 나눠먹기” 비난

부산-경남지구 계엄사령관 원용덕은 계엄의 이유와 목적을 설명하면서 특히 직선제를 반대하는 국회의원들을 겨냥하여 군부의 정치권에 대한 적대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국가존망의 위기에 있어서 그네들은 국방예산을 대폭 삭감하여 비국민적 행동을 하고 있으면서, 입으로는 애국애족을 부르짖는 그네들은 아들, 처자를 호위경찰 기타 교묘한 방법으로 병역을 기피시켜 상이군인 원호비나 유가족 원호비까지 쓰는 것은 실로 싸우는 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헌법기관인 그네들은 자기들의 권리를 주장하고 유리한 것을 주장하면서 싸우는 일선장병들의 입장을 무시하고 있다. 이런 것을 고치지 못하면 남한은 이슬과 같이 사라져야 하는 운명에 놓여있다는 것을 철저히 알아야 한다.”열변을 토하는 그의 뇌리에는 특권층 자녀들의 병역기피와 함께 미군 장성들의 자녀들이 한국전쟁에 참전하여 싸우다가 전사하는 장면이 교차하였을지도 모른다. 바로 지난 달 4월2일 밴플리트 사령관 아들이 전투기를 몰고 출격했다가 압록강 근처에서 사라져 전사한 까닭이다. “미군들 보기에 얼굴이 뜨겁다”며 그가 흥분하는 것은 장면 총리 두 아들이 당시 불가능한 유학비자로 미국에 머무는 것을 비롯하여 국방예산을 깎는 정치인들이 국방예산을 빼내 나눠먹는 기막힌 사례들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국회의원들 석방 요구...언커크도 가세

지난해 봄부터 트루먼 정부가 한국전쟁 정책을 ‘휴전’으로 궤도수정하면서 휴전을 반대하는 이승만 한국대통령에 대하여 본국 국무성의 지침에 따라 1년 가까이 대책을 준비해 왔던 미국대사관은 비상계엄령과 국회의원 무더기 구속이라는 돌발 사태를 당하자 ‘공등 탑이 무너지는’ 충격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대사대리를 맡자마자 강타를 당한 라이트너는 계엄직전 본국에 가버린 무초 대사에게 급전을 날린다. 무초한테 인계 받은 시나리오에는 ‘이승만의 비상계엄령’은 없었기 때문이다.한국과 같은 분단국 서독에서 근무하다가 전임된 라이트너는 그러나 한국이나 아시아의 현지사정에는 깜깜한 유럽 우선주의자 외교관, 한국휴전을 성립시키려는 국무성의 인사배치를 엿보게 하는 라이트너 대사대리는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 맞닥뜨리자 불끈 일어섰다.

★이승만 “나보다 더 한국 민주주의를 걱정하는 사람 없다”

뒷날 (1973년) 자신이 회고한 말처럼 ‘국무성 훈령을 받기도 전에’(even before I had instruction to do so) 대통령 관저의 문을 두드린 라이트너 대리대사는 이승만에게 인사도 하는둥 마는둥 계엄령을 즉시 해제하라고 요구했다. “지금 우리는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려고 전쟁을 하는 마당인데 대통령의 국회 압박은 ‘늙은 마녀 사냥“이라고 몰아붙였다. 그가 얼마나 한국을 무시하는지 알수 있는 대목이다. 라이트너는 유엔 한국통일부흥위원단(언커크:UNCURK)을 만나 미국과 공동보조를 취할 것에 합의하고 한국 참전국들 대표와도 같은 합의를 끌어내느라 분주하게 움직였다.언커크는 28일 이승만을 직접 만나 요구사항을 내놨으나 이승만은 “최소한 2주일내에는 계엄령을 해제 못한다”며 곧 회답을 주겠다고 이들을 돌려보냈다. 언커크는 “우리는 유엔을 대표하여 헌법의 정치자유가 훼손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부산시의 계엄령을 해제하고 구속중인 국회의원을 전원 석방하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나흘 뒤 발표한 이승만의 회답 요지는 다음과 같다.“나는 국회 내의 반대파를 대량 체포하여서까지 권력을 장악하려는 것이 아니다. 단지 ‘평화협상’이라 속이며 적화통일을 획책하는 공산도당에 의한 반란을 진압하려는 것이다...(중략)....대한민국의 헌법을 침해한 것은 내가 아니요, 국회와 국회의원들이다. 이 나라가 진실한 독립민주국가로 확립되는 것을 보려고 나보다 더 근심한 사람은 없다. 이것은 내 평생을 통한 투쟁에 있어서 오로지 하나의 목적이다.나는 지금 유엔 여러분의 원조와 협조로써 수립되었고 방어되고 있는 대한민국에게 광범한 민주적 기초를 수립해주려는 일에 나의 여생을 바치고 있는 것이다.“([조선일보]6월4일자)

★계엄 비방 ‘미국의 소리’ 방송 즉각 중단조치

이때 한-미간의 갈등을 상징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중앙방송(현 KBS전신)에서 계엄선포를 뒤집는 방송이 터져 나온 것이다. 국회의원들을 구속에 대해 ‘국제 공산당사건 비밀자금 연루자’라는 정부 발표를 몇 차례 방송하였던 것과 달리, 이를 비방하는 ‘미국의 소리’ 뉴스가 27일 국영방송에서 나오는 게 아닌가. 정부는 즉각 유엔군사령부에 항의하고 유엔군사령부도 조사에 들어갔다. 알고 보니 중앙방송국에 파견된 유엔군 파견관이 제멋대로 아나운서에게 원고를 넘겨 방송하게 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 이승만은 주저 없이 ‘미국의 소리’ 한국어 방송 중계를 중단해버렸다.정부 대변인은 “한국에 와 있는 유엔기관이 한국의 내정에 간섭하는 것은 월권이요, 앞으로도 이런 행위를 계속하면 국외로 추방하는 것도 불가피할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미국의 소리’ 방송에 이은 언커크의 계엄개입 성명을 내정간섭으로 겨냥한 이 강경 발표가 이승만의 지침을 따랐음은 물론이다.‘미국의 소리’ 방송중단 사건은 미국대사관이 펄펄 뛰고 한국정부가 완강히 버티는 국가대 국가의 자존심 싸움이 되었다. ‘원상회복이 안 되면 단교불사’까지 공갈하는 미국 측에 대하여 이승만은 들은 척도 않고 무시하였다. 보름쯤 지난 후 미국이 ‘한국대통령 교체’ 방침에 타협 신호를 보내오자 그때서야 이승만은 ‘반복불가’의 양해각서를 받고 ‘미국의 소리’ 방송을 재개하여 주었다.

◆육참총장이 미국 대사에 ‘쿠데타 승인’ 요구

같은 날 27일 밴 플리트(Van Fleet) 8군사령관이 부산에 내려와 이승만을 찾았다. 강경파 외교관 라이트너를 동반한 밴플리트가 이승만에게 “계엄선포에 사전협의가 없어 실망했다”고 말했다. 이승만은 계엄선포 이유를 반복하면서도 “부산지역을 포함시킨 것은 모두에게 인기 없는 조치인줄 알지만 불가피했던 것이오. 장군이 원한다면 해제해도 좋다”고 맞장구를 쳤다. 그러면서 이승만은 다음과 같이 국회를 비난하였다고 라이트너는 본국에 보고하였다. “일단의 깡패들이 우리의 적에게 매수 되어 국회를 장악한 다음 자기들 대통령을 뽑겠다는 음모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들은 반역자들이오. 나는 내가 대통령 이 되기 위해서 이 자들을 체포한다는 비난을 무릅쓰고라도 나라를 구하기 위해서 결단을 내려야 했소. 한국의 장래가 걸려있는 중대 문제요. 저 몇몇 국회의원들이 아니라 내가 한국과 민주주의의 챔피언이란 사실을 기억해 두시오.” '적과 내통한 국회'라고 말했지만 이승만의 내심은 '미국과 내통한 국회‘라는 말이었다. “육군 참모총장을 갈아야겠소. 이종찬이 나를 반대하는 음모에 가담했다는 소문 알지요?”이승만은 밴플리트를 정면으로 쏘아보았다. 계엄령 선포전 원용덕의 2개중대로는 병력이 모자라 신태영 국방장관이 이종찬 총장에게 2개대대를 부산에 보내라 지시하였으나 이종찬은 ‘군은 정치개입 안한다”는 명분으로 거부하였다. 육군참모총장이 국군통수권자에게 정면 도전장을 내민 것이었다. 벌써부터 경찰과 특무대를 통해서 이승만은 '육본내 흥사단 인맥(평안도)이 평안도 출신 장면 측과 결탁, 미군과 손을 잡고 반역을 꾀한다'는 정보를 갖고 있었다. 이승만을 아버지처럼 존경한다는 밴 플리트는 진퇴양난, 한국국회와 미국대사관, 한국군내의 움직임을 알고 있는 미군 사령관도 한국의 정치실상이 남의 일 같지 않게 여겨졌다.“백선엽 장군이 어떨까요?” 잠시 말을 돌리던 밴플리트는 후임까지 천거하며 이승만 편에 서고 말았다. 그는 이승만을 ’장성보다 뛰어난 전략가‘로 평가하던 미군장성들 가운데 하나다.특유의 환한 미소로 이승만은 밴플리트와 굳게 악수하였다. ‘미군이 이종찬을 앞세워 섣부른 짓을 하지 말라’는 자신의 경고가 이것으로 성공한 셈이다. 역시 마음이 통하는 밴플리트, 이승만은 그러나 그 즉시 이종찬 참모총장을 바꾸지 않았고 개헌파동이 끝난 다음달 7월22일에서야 백선엽 장군으로 육참총장을 교체한다.

◉이종찬의 쿠데타 음모=1952년 이종찬(李鍾贊:1916~1983) 장군의 쿠데타 음모의 진상은 무초와 라이트너의 회고담이나, 장면 총리 비서실장 선우종원의 회고록과, [월간조선](1988년 6월호) 등에서 드러나 있으며, 6.25전쟁와 한미관계를 분석한 연구자들의 책과 논문에도 나온다. 라이트너 대리대사의 증언부터 인용해보자.

"트루먼 대통령은 이승만 대통령에게 헌정질서를 회복시켜줄 것을 요구하는 친서를 보냈다. 문제는 그렇게 하면 이대통령이 물러나야 한다는 것을 그도, 우리도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게 우리의 약점이었다. 어느 날 저녁, 나는 지금도 또렷이 기억하는데, 한국 육군 참모총장이 지프차를 타고 내가 살고 있던 관사로 들어왔다. 그는 다른 참모총장들의 의견도 종합하여 말한다고 했다. 그는 국군이 전쟁을 하고 있는데, 후방이 이렇게 혼란해지는 것을 좌시할 수 없어 행동을 취해야 할 시점이 되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소수의 군인들과 해병대를 동원하면 대통령, 내무장관, 그리고 계엄사령관을 자택 연금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유혈 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고 나서 구속된 40~50명의 국회의원들을 석방하고 숨어 있는 의원들을 나오게 하여 국회에서 대통령 선거를 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는 군대가 정권을 장악할 생각은 없고, 새 대통령이 취임하면 군대를 즉각 물리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한국의 육군은 유엔군의 지휘를 받고 있으므로 행동하기 전에 미국 정부의 승낙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에게 필요한 건 미국 정부는 못 본 척하겠다는 말을 나로부터 듣는 것이었다. 미국의 개입은 필요 없었다. 나는 즉각 워싱턴에 전보를 쳐 이 제안을 수락해줄 것을 권고했다. 한국에 있던 유엔위원회에도 이를 알렸다. 그들은 하늘이 내린 기회라고 생각했다. 나는 유엔위원회의 호주 대표 프림솔 경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그는 다른 대표들과 상의했을 것이다. 나의 참모들도 이것은 좋은 기회라는 데 동의했다." (Oral History Interview with Lightner by Richard McKinzie, Oct. 1973. Truaman Library)

[월간조선]은 ‘이승만 대통령 제거계획: 52년 6월초의 육본 심야회의’라는 제목으로 이종찬 등 군인들의 쿠데타 계획과 미국 정부의 이승만 제거 공작을 함께 특집으로 보도하였다.선우종원은 육본 작전교육국장 이용문(李龍文:1916~1953, 평양출생)이 찾아와 이승만을 측츨할 쿠데타를 제의한 일이 있다고 회고록에 썼는데 이것도 계엄령선포 이전의 일이다. 그때 이용문은 ‘미8군의 양해도 받았고 이승만은 없애야한다’고 말했다는 주장도 있다. 육군내 평안도 흥사단 인맥의 중심인물이 이용문이오, 장면의 측근 선우종원도 평안도 출신이다. 이들이 언제부터 미국 측과 어울렸는지는 시기를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지난 2월 한국을 다녀간 미국무성 극동담당 차관보 존슨(Alex Johnson)이 남긴 기록이 참고가 된다.“휴전협상에 대한 이승만의 반대가 너무 교활하고 열광적이기 때문에 그가 앞으로 무슨 짓을 할지 모르겠다. 한국 국회의 개헌안 처리와 대통령 선출 문제 등을 다루는데 있어서 이승만은 정말로 ‘귀찮은 늙은이’다.” 존슨은 이때 이미 미국의 성급한 군관들이 이승만을 제거하고 한국 정부를 인수하는 방안을 고려하기에 이르렀다고 밝히고 있다. 이 미국 측의 이승만 제거작전에 박정희가 끼어든 것이 역사의 흥미를 더해주는 이야기다.이용문 국장 아래 차장 박정희는 부산 계엄 출병을 막은 ‘군의 정치중립’ 훈령을 직접 작성한 장본인, 돌이켜보면 ‘장면 옹립’ 쿠데타에 발을 담갔던 그가 불과 9년 뒤에 5.16쿠데타를 일으켜 ‘장면 축출’에 성공하는 것은 격동의 한국 현대사에서만 볼 수 있는 아이러니일까.

연구자들은 이들이 쿠데타에 끌린 것은 이승만의 주변에서 활개치는 원용덕에 대한 반감과 개인적인 불만이 더 컸으리라고 본다. 신성모 국방장관때 정보국장 이용문은 ‘명령불복종’으로 좌천된 일도 있고, 정보비 유용 혐의로 구속까지 되다 보니 친지에게 분통을 터뜨렸다는 기록도 전해온다.

◆이승만 “미국은 노골적 내정간섭 말라”

라이트너 대사대리는 날마다 이승만을 만나고 국무성에 보고서를 보냈다.“만일 미국이 한국정부를 지지하기로 한다면 더욱 강경한 대책이 당장 필요하다. *서민호를 제외한 모든 구속 의원들의 즉각 석방 시키도록 할 것..*국회가 자유스럽게 회의를 열수 있도록 보장 받는 일.*유엔군이 국회의원들을 보호해야할 대책 등을 서둘러야 한다“보고를 받은 워싱턴 국무성도 비슷한 지침을 내린다.*헌정과 국회에 대한 미국정부의 계속적인 지지를 밝힐 것.*장면과 신익희 등 국회지도자와 계속 접촉하고 민주절차 선거를 지지할 것.요컨대 국회를 열어 대통령 선거를 하기 위해 계엄령을 조속히 해제시키라는 것이다.라이트너는 미국정부의 항의 서한을 만들어 임시경무대를 찾아가 이승만에게 전달하였다.이승만이 말했다. “계엄령은 곧 해제할 것이라고 귀국정부에 보고해도 좋소.”라이트너가 물었다. “곧 이라니 언제입니까? 혹시 이틀이나 2주일입니까?”이승만이 대답했다. “그건 2분일수도 있고 2개월일 수도 있을 거요.”영어 대화에서 “It might be two minutes or two months.” 짤막한 대꾸였다.영어의 달인이자 시인, 웅변가이자 외교의 귀신 이승만이 귀찮다는 듯 내뱉은 한마디, ‘대통령 직선제 헌법체제’를 만들려는 이승만에게 말단 대리대사는 상대할 인물이 아니다.하지만 강대국의 압력, 미국 정부가 휴전을 포기하고 이승만 교체를 포기하고 야당과 야합을 포기하고 국회 간선제 선거로 ‘미국 말 잘 듣는 대통령’을 세우려는 내정간섭을 포기하겠다는 보장만 확보한다면, ‘2분내 계엄해제’는 얼마든지 가능한 일. 이승만은 항의서한을 던지듯 밀쳐버렸다.

라이트너는 물러서지 않았다. “공산당 자금과 국회의원 구속과 무슨 관계입니까?”이승만이 심드렁하게 응대한다. “그건 내가 여러번 되풀이 말하지 않았소.” 라이트너가 밀고 들어왔다. “직선제를 반대하는 의원만 구속한 것 아닙니까?”이승만이 눈을 똑바로 떴다. “거짓말 마시오. 미국과 언커크는 우리 국내문제에 너무 노골적으로 간섭하고 있소. 나는 나의 나라 민주주의를 위해 일하고 있으니 그냥 내버려 두라고 본국에 보고만 하면 되오. 내가 한국의 반역자들을 발본색원할 작정이라고 말이오.”

◆미국 “유엔군이 계엄령 선포, 이승만 구속하라”

날마다 오전 오후 임시경무대를 들락날락 흥분한 라이트너는 강경대책을 본국에 올렸다. 동경의 클라크 유엔사령관이 이승만을 설득하러 온다는 연락을 받자, 문관인 외교관이 군사령관보다 더욱 무력적인 대책을 다음과 같이 만들어 급전으로 보낸 것이다.*이승만과 내각에 협력을 요청하되 거부하면 이승만을 예비구속(protective custody)할 것.*부산시내의 경찰과 한국군을 미군이나 유엔군이 장악할 것.*국회의원을 석방하고 그 가족을 보호하고 국회 기능을 회복 보장할 것.*긴급구호를 제외한 경제 원조의 중지를 선언할 것.*미 해군 함정을 부산항으로 이동, 유엔군의 부산지역 장악.*유엔군이 계엄 선포를 준비, 이에 상응한 한국군의 재배치. etc.유엔군에 의한 계엄령 선포를 주장해온 라이트너는 클라크가 이승만과 담판하기를 바랬다.“유엔군이 계엄령을 내리면 이승만은 국회해산등 반항을 하겠지만, 국회를 열어 새 대통령을 선출한다면 국민은 새 대통령에 따르고 이승만을 떠날 것이다. 이승만이 저항하기 전에 행동계획을 구체화, 즉시 시행해야 한다.” ▶미 국무성의 극동담당 차관보 존슨이 이때 애치슨 국무장관에게 올린 보고서는 미국이 한국과 이승만 대통령을 얼마나 무시하고 무례하게 취급하는지를 잘 보여준다.“이승만은 언커크와 미국정부, 미8군사령관, 한국의 국회와 수많은 사람들의 충고를 무시하여왔다. 한줌의 패거리 광신자들, 파렴치하고 이기적인 추종자들이 국회를 박살내고 고집퉁이 이승만을 떠받치고 있다. 그들은 외국의 간섭에도 반대한다...(중략)...구속의원들이 공산당 돈을 받았기 때문이라지만 우리는 믿지 않는다. 그러나 한국 국회의원 중에는 알지 못하는 사이에 공산당이나 일본의 돈을 받은 자가 있을 수도 있다....(중략)....이승만 반대진영에는 지도자가 없고 단합이 안되며 효과적인 방어수단도 없다. 한국 군부도 점차 불만에 차있다....”이러면서 그는 “한국의 경찰권을 인수하여 유엔군이 계엄령을 선포하고 즉각 국회가 새 대통령을 선출하게 할 것인지를 애치슨 장관이 하루빨리 결정해달라고 재촉하였다.

★클라크 ”이승만을 궁지에 모는 강공책 피해야“

이승만을 만나기로 한 클라크 사령관은 합참에 보낸 건의서에서 두 가지를 제시하였다.*이승만의 헌법 유린 행동을 간곡하게 설득해 볼 것.*설득이 안되면 정권을 인수하여 과도정부를 세우는 것. 이를 택할 경우 지침을 달라.그는 한국 국회에서 이승만이 당선될 경우엔 종전과 같은 지지를 보내야 할 것이라면서 어느 경우든지 군사정세를 악화시킬 우려가 크므로 이승만을 궁지에 몰아넣는 강공책은 피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클라크도 전쟁 책임자로서 밴 플리트와 마찬가지로 휴전이든 아니든 한국전쟁 수행에 이승만의 리더십이 절대 필요하다고 판단한 주요인물 가운데 한명이었다.6월2일 클라크는 부산에 날아와 밴플리트, 라이트너를 데리고 이승만을 직접 만났다.부민동 대통령 관저에서 35분간 진행된 이날의 회담을 조선일보가 1면 톱기사로 보도하였다.“우리들은 이대통령과 서로 통사정하는 회담을 하였다”며 “새로운 정치사태가 군사정세에 방해되지 않기를 당부하였다”고 밝힌 클라크는 “무슨 보장이라도 받았느냐”는 기자 질문에는 “훌륭한 회담”이라고만 얼버무렸다.클라크는 합참본부에 이승만과의 회담 결과를 이렇게 보고한다.“우리가 과격한 행동(유엔군 계엄령)을 하기 전에 외교적 압력을 가해야 한다. 그러나 나는 완전한 통제가 가능하려면 엄청난 대변동(upheaval)이 아니고는 한국 국회의원들을 보호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헌법에 대통령의 국회해산 규정이 없으므로 국회 해산은 합법”

3일 오전 11시 라이트너 대리대사는 미국 대통령 트루먼의 친서를 들고 임시경무대로 왔다. 9시부터 열린 국무회의에서 이승만은 “국회 사건은 민의에 반하는 국회를 시정하자는 것이지 소소한 뇌물 문제나 정부반대 등을 이유로 강권을 발동하자는 것은 아니다.”고 각료들에게 설명하던 참이었다. 라이트너가 가져온 트루먼의 각서를 받은 이승만은 “미국 대통령이 잘못된 정보를 받는게 아닌가 걱정된다”며 라이트너를 쏘아보았다.각서를 다 읽은 이승만이 국무회의장으로 들어가려 하자 라이트너는 다급하게 붙잡는다. “한국 헌법엔 대통령의 국회 해산권이 없는데도 정말 해산시킬 작정입니까?”표정을 바꾼 이승만은 제자에게 대하듯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달래는 듯 입을 열었다.“이번 사태에서 나는 민주주의 파괴자가 아니라 수호자로서의 목적을 가지고 있음을 미국은 알아야 하오. 우리 국민은 언커크와 미국 대사관의 간섭에 분노하고 있으며, 대사관은 나나 국민들보다 공산주의자들의 편을 드는 것 같다고 국민들이 느끼고 있다는 걸 아시오?”이승만의 어조는 금방 높아지기 시작했다.“이보시오, 대사. 우리 민국은 태어난 지 4년도 안되었소. 미국과 달리 우리국회도 민주주의가 뭔지 잘 모를뿐더러 헌법도 완전하게 수정해야 하는 등 건국 작업은 지금도 진행 중이라는 걸 알아야 하오. 당신 말이 맞소, 우리 헌법엔 국민의 뜻이 충분히 반영되어 있지 않소. 대통령이 국회을 해산할 수 있다는 규정도 없고 또 해산할 수 없다는 규정도 없잖소. 그러니 국민들이 그것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내가 국회를 해산하려 하는 것은 합법인 것이오. 안 그렇소?”(조용중, 앞의 책)

그러나 다음날 4일 이승만은 국회해산을 유보한다는 성명을 내고 원용덕 계엄사령관에게는 국회의원들의 추적 작업을 중단하라고 지시하였다.

◆트루먼의 ‘협박’ 각서...이승만 "권력투쟁 아니다”

이날 국무회의가 끝나갈 무렵 전해진 트루먼 친서를 읽고 들어온 이승만은 한참 말이 없었다.이날도 이승만은 국회 해산에 이의를 제기하는 각료들에게 일장연설을 했던 뒤인지라 트루먼의 .편지 내용을 머릿속에 굴리며 입을 열었다. “국회 해산이 어렵다면 대안을 내놓으시오.” 이승만의 발언에 각료들은 눈을 번쩍 떴다.내무장관 이범석이 나섰다. “국회의원을 모조리 체포해서 영창에 가두어버리겠습니다.”국무총리 장택상이 소리 질렀다. “참 대단한 꾀를 냈구려. 나이 쉰 두살이나 된 당신이...”두 사람은 경쟁하는 갈등관계, 건국정부의 총리 이범석과 외무장관 장택상은 지금 거꾸로 뒤집혀 장택상이 국무총리, 그 아래 내무장관에 이범석을 배치한 이승만이다. 다른 의견이 없자 이승만은 다시 국회해산의 정당성을 설명하면서 데모 군중이 부산에 들어오는 것을 막지 말라고 지시하는 것이었다.장택상이 트루먼 각서를 보여 달라는데도 이승만은 보여주지 않았다.[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트루먼은 각서에서 ‘만약 한국 대통령과 국무총리가 한국의 정치적 위기를 완화할 조치를 즉시 취하지 않는다면 한국은 위급한 정세에 부닥칠 것’이라고 위협했다. ([조선일보] 6월5일자)이승만은 다음날 트루먼에게 답신을 보낸다.“한국의 투표자들이 국회 해산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는 것은 정당한 민의의 표출이다. 한국은 지금 국회와 행정부가 권력투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 아니요, 국민들이 민의를 배반한 국회와 민주투쟁을 벌이고 있다는 것을 정확히 알기 바란다. 미국과 우방들이 깊은 관심을 표명하는데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보다 민주적이고 민중을 대변하는 국회와 정부를 운영하고자 한다.”([조선일보] 6월7일자)

◉미국, 단계적 대응으로 일보 후퇴=미국무성의 강경책과 전쟁사령관 클라크의 신중론 사이에서 설왕설래하던 미국 정부는 우선 단계적으로 대응할 대책을 마련하였다. 처음부터 유엔군을 동원하여 이승만을 궁지에 몰아넣으면, 비상계엄령을 내리듯이 고집쟁이 늙은이가 또 무슨 돌발 사태를 일으켜서 미국을 더 곤란하게 만들는지 예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밴플리트 사령관이 이승만을 지지하는 것 같은 인상을 주지 않도록 합참이 유엔군 사령관에게 명확한 지시를 보낼 것.*한국내 세력 간의 대립을 조정하기 위하여 언커크의 활동을 강화할 것.*미국인의 생명 또는 유엔군의 작전이 위협을 받게 되는 등 상황이 더 악화되면 대사관의 제안, 즉 유엔군의 직접 개입을 실행할 것을 유엔군에 미리 요청해 둘 것.*동맹국 특히 영국과의 협조로 직접 개입에 대비한 미국대통령의 성명을 준비할 것.

▶비상계엄령 발동 열흘째, 미국의 부당한 압력에 시달리며 정면 대응하는 이승만은 직선제 개헌안에 대한 국민 지지캠페인에 더욱 박차를 가한다. 부산은 날마다 데모대가 국회와 대통령 관저에 몰려들어 밤새 농성하고 해 뜨면 시위하는 “직선제 지지“ 구호가 하늘을 찌른다.”참 이상한 대통령도 다 있지, 국회해산을 말로만 떠들지 말고 계엄령 치하이니 즉각 해산해버리면 좋을 텐데...“ ”그러게 말일세, 지금이라도 직선제 헌법을 만들어 공포해버리면 될 것을...“ ”전쟁하는 마당에 무엇이 두려워 친위 쿠데타도 못하는 거야?“전국에서 부산에 모여든 지방의회 대표들은 말로만 싸우는 이승만 대통령이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언제까지 이 피곤한 싸움을 계속해야 할 것인가. <계속>



http://www.newdaily.co.kr/site/data/html/2024/06/17/2024061700131.html
댓글
0
댓글 쓰기
권한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