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그대로 지극히 개인적 소견의 담론
보수진영에 침투한 野人들… 경계해야
위만(衛滿‧생몰연도 미상)은 중국 연(燕)나라 지역 출신으로서 고조선(古朝鮮)에 투항한 뒤 무너뜨린 인물이다. 위만 집권 이전을 단군조선(檀君朝鮮)이라 칭하고 이후를 위만조선(衛滿朝鮮)이라 부른다. 고조선은 위만조선 대에 가서 결국 전한(前漢)에 의해 멸망하고 만다.
위만은 당초 전한의 연왕(燕王)인 노관(盧綰) 수하였다. 기원전 195년 노관은 한고조(漢高祖)에게 반기 들었다가 패해 흉노(匈奴)로 달아났다. 그 난리통에 위만은 1000여명의 무리를 이끌고 고조선에 항복했다.
고조선 준왕(準王)은 위만을 크게 신임하면서 그에게 박사(博士) 벼슬을 내리고 100리의 땅을 줘서 서쪽 변방을 지키게 했다. 그러나 한족(漢族) 유랑민을 규합한 위만은 이듬해 본색을 드러내 고조선 수도 왕검성(王儉城)을 쳐서 함락하고서 왕위(王位)를 꿰찼다. 그리곤 전한에 칭신(稱臣)하면서 넙죽 엎드렸다. 그 여파로 전한 무제(武帝) 시기인 기원전 108년부터 한반도 북부에는 한사군(漢四郡)이 설치돼 한민족은 한족의 반노예가 되고 만다.
그렇다면 준왕은 어느날 ‘갑툭튀’한 이 외지인을 왜 이토록 신뢰했을까. 여러 가지 추측이 있으나 학계는 망명 당시 위만의 복장에서 그 이유를 찾는다.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 조선열전(朝鮮列傳)은 위만의 복식(服飾)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위만은 상투를 틀고 조선인의 옷을 입었다”
즉 위만은 준왕을 알현할 때 자신을 ‘조선인 혹은 조선인의 후손’ ‘고조선 지지자’로 위장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게 학계 일각의 생각이다. 앞서 수십년 전 전국시대(戰國時代) 연나라의 장수 진개(秦開)가 요동반도(遼東半島)를 쳐서 얻었을 때 다수 조선인이 포로가 된 바 있다. 때문에 위만의 거짓위장은 설득력을 얻었을 여지가 적지 않다. 일각에선 위만이 정말로 조선인이었다는 주장을 펴나 현대 학계에서는 위만은 그저 한족이었다는 시각이 일반적이다.
사실 이러한 위장술은 고대 중국인들의 전통적 수법이었다. 전한에 앞서 멸망한 진(秦)나라의 장수 조타(趙佗)도 지금의 베트남 지역에 들어가 현지인들을 쳐부수고 남월(南越)을 세울 무렵 현지인의 복색을 한 것으로 기록에 남아 있다.
2020년대 대한민국은 바야흐로 ‘카무플라주(camouflage)’의 세상이다. 많은 민주당계 정당 강성지지자 또는 북중(北中) 관련자들이 마치 카멜레온처럼 보수정당 인사들 지지자를 자처하면서 접근해 갈라치기에 나서는 등 목표물의 세력 와해를 도모 중이다. 정체 모를 일부는 아예 ‘북한식 용어를 쓰자’는 둥 대놓고 의구심을 자초(自招)하고 있다. 2천여년 전 고조선은 상투 하나에 속았다가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맞이했다. 이를 마냥 옛 이야기로만 치부(置簿)해선 안 된다.
오주한 前 여의도연구원 미디어소위 부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