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그대로 지극히 개인적 소견의 담론
‘쇼’라도 좋다, 與 순천자 출현하기를
중산층 이하가 애용하는 대중교통 수단 버스(bus)의 어원(語源)은 옴니버스(omnibus)다. 1823년 프랑스인 스타니슬라스 보드리(Stanislas Baudry‧생몰연도 1777~1830)가 자신의 목욕탕까지 손님들을 운송하는 다인승(多人乘) 마차사업을 시작하면서 붙여졌다. 마차 승차(乘車)지점에는 라틴어로 ‘모두를 위한 모두의 것(Omnes Omnibus)’이라 적힌 잡화점이 있었다 한다. 잡화점 간판대로 보드리의 마차에는 목욕탕 이용객뿐만 아니라 누구나 탈 수 있었다.
‘모두를 위한 모두의 것’이란 개념에 부합하는 대중교통이 처음 생겨난 때는 17세기다. 계산기 발명자로 유명한 프랑스의 블레즈 파스칼(Blaise Pascal‧1623~1662)은 사망 1년 전인 1661년 주변에 이색 제안을 했다. 수 대의 마차가 승객이 있든 없든 파리 시내의 정해진 노선(路線)을 따라 순환운행하고 여러 명을 한꺼번에 태우며 요금은 1인당 5수(sous)를 받자는 것이었다.
‘5수 마차’는 처음엔 파격적 아이디어로 사람들 흥미를 끌었으나 당시엔 전세마차가 대세였기에 1680년 무렵 사장(死藏)됐다. 그러던 게 1819년 프랑스인 자크 라피트(Jacques Laffite)란 사람에 의해 부활했고 보드리의 목욕탕 마차를 계기로 버스란 이름이 붙게 된 것이었다. 이용자는 싼 값에 빨리 이동해 좋고 제공자는 돈을 쓸어 담을 수 있는 이 신통방통한 물건의 인기는 곧 산업혁명(IR)의 고장 영국에도 퍼져나갔다. 1833년에는 런던에서 첫 증기기관 버스가 등장했다. 1895년에는 지금과 비슷한 내연(內燃)기관 버스가 탄생했다.
우리나라에 버스가 도입된 시기는 일제(日帝)강점기다. 1920년 7월 대구호텔 소유주였던 베이무라 다마치로(米村玉次郞)는 일본 본토(本土)에서 버스 네 대를 들여와 영업을 시작했다. 운행시간은 하계(夏季)엔 오전 6시~오후 10시, 동계(冬季)엔 오전 8시~오후 7시였다. 정류장에서만 서는 노면전차(路面電車)와 달리 어디서든 손만 들면 태워줬기에 많은 이들의 선호대상이었다. 그러나 전차보다 비싼 요금(7전) 때문에 곧 외면 받았고 버스 운영권은 대한제국(大韓帝國)이 1898년 설립한 경성전기주식회사(京城電氣株式會社)로 넘어갔다.
영국에서 꽃피우기 시작한 운수업(運輸業)은 버스를 넘어 지하철을 탄생시켰다. 세계 최초의 지하철은 1863년 1월10일 런던에서 개통(開通)했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UK)의 중심지 런던은 당시 인구 약 250만명으로서 지구상에서 가장 붐비는 도시였다. 매일 약 25만명이 마분(馬糞) 등으로 질퍽거리고 좁은 길을 지나다니면서 도심(都心)교통은 마비되기 일쑤였다.
버스로도 통행량을 감당 못하게 되자 런던 당국은 기발한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땅 위가 막힌다면 땅 아래에 길을 내면 될 것 아닌가?” 아이디어 제안자는 시(市) 법무관이었던 찰스 피어슨(Charles Pearson‧1793~1862)이었다. 피어슨은 수 년에 걸쳐 끈질기게 ‘지하 열차’를 제안했으며 시의회는 마침내 예산을 배정했다. 수많은 사고를 겪으면서 도시 중심부 6㎞ 구간을 뚫는 공사가 진행됐고 1863년 메트로폴리탄선(Metropolitan line) 열차들은 하얀 증기를 힘차게 내뿜으며 달리기 시작했다. 첫 날에만 4만명이 탔고 첫 해 누적 승객은 950만명이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지하철은 1974년 8월15일 서울에서 첫 개통했다.
영국 하원의원들은 본의 아니게 ‘대중교통 광(狂)’이라고 한다. 이들의 세비(歲費)는 2019년 기준으로 7만9468파운드(약 1억1920만원)다. 월급으로 따지면 약 1천만원이다. 그러나 영국의 물가(物價)는 가히 살인적이다. 지난해 런던의 햄버거 한 개 가격은 15파운드(약 2만5천원)였다. 머리 커트는 40파운드(약 6만6천원), 원룸 월세는 1600파운드(약 263만원)에 달했다. 통장은 봉급이 잠시 머물다 가는 곳일 뿐이다.
게다가 경비(經費) 지원은 전혀 없다. 일정을 관리하고 전화 받는 수행비서는 언감생심(焉敢生心)이다. 중진(重鎭) 쯤 돼야 겨우 보좌진 1~2명을 둘 수 있다. 초선(初選)들은 중진 보좌관 노릇을 하면서 의정(議政)을 배운다. 웨스트민스터(Westminster)의 의원회관에는 전체 하원의원 650명 중 213명만 쓸 수 있는 방이 있다. 관용차(官用車)‧운전기사는 하원의원 겸 장관에게만 제공된다. 자연히 많은 하원의원들은 지하철‧버스‧자전거 등을 이용해 출퇴근한다. 비단 돈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국민과 접촉하고 민의(民意)를 파악할 수 있기에 더더욱 대중교통 이용률을 높인다고 한다.
미국 대중교통 매니아로는 조 바이든(Joe Biden) 대통령이 있다. 그는 상원의원 시절부터 자택이 있는 델라웨어주(州)에서 워싱턴DC까지 매일 암트랙(Amtrak)을 타고 왕복 약 402㎞를 출퇴근했다. 이렇게 한 기간만 수십년으로 왕복횟수는 8천회가 넘는다. 암트랙 측과도 친분이 쌓여 직원들은 바이든을 ‘암트랙 조’ 등 별명으로 부른다고 한다.
바이든이 암트랙을 이용하게 된 안타까운 사연이 있다. 1972년 그가 상원에 당선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교통사고로 첫 부인과 딸이 세상을 떴고 어린 두 아들은 중상을 입었다. 바이든은 매일 워싱턴까지 통근하며 두 자식을 돌봤고 장거리 출퇴근이 나중에는 습관이 됐다.
30여년 전에는 새 아내와의 사이에서 얻은 젖먹이 딸이 아빠 생일 축하를 위해 케이크를 만들자 상원 투표가 잠시 멈춘 사이에 암트랙을 타고 번개같이 내달려 딸에게 뽀뽀한 뒤 곧바로 반대편 암트랙을 타고 워싱턴으로 복귀하기도 했다. 바이든은 2009년 버락 오바마(Barack Obama) 대통령 취임식 당시 열차에 동석(同席)하는가 하면 2017년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당선 후 자택으로 돌아갈 때에도 암트랙에 올랐다.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의 ‘지하철 퇴근’ 사진이 최근 온라인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이 의원 측에 의하면 그는 지역구인 경기 화성에서 서울 여의도까지 차량을 이용하면 2~3시간이 걸리는 반면 대중교통은 1시간20분이면 충분하기에 지하철을 탄다고 한다.
네티즌 일부는 ‘쇼’라 폄훼하는 반면 일부는 ‘보기 좋다’ 등 반응을 나타내고 있다. 분명한 건 쇼든 아니든 시민과 호흡하려 하는 모습이 상당수 유권자(有權者)들에게 부정적으로 비치진 않는다는 것이다. 야권 의원들은 자전거‧고속버스를 이용한다는 주장‧목격담이 종종 나오는 반면 여권은 그러한 소식 따위 전혀 없다. 이게 22대 총선에서 여야 희비(喜悲)를 가른 중대한 요인 중 하나가 아닐까 감히 생각해본다. “보수정당은 중산층 이하와는 딴 세상에 사는 귀족양반들이다”는 식으로 유권자 대다수를 차지하는 중산층 이하 상당수에게 비춰진 건 아닐까 감히 짐작해본다.
최근 국민이 가장 좋아하는 역대 대통령 여론조사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1위에 올랐다고 한다. 보편화된 노 전 대통령 이미지는 그게 맞든 안 맞든 ‘서민’ 한 단어로 압축된다. 이게 지금의 민심(民心) 흐름이다. 쇼라도 좋다. 이제는 보수정당도 ‘양반’ ‘웰빙’ 꼬리표를 뗄 때다. 세상 머리 꼭대기에 앉아 가르치려 들지 말고 순천자(順天者)가 되어야 할 때다. 세상을 보수가치로 올바르게 교화(敎化)하는 건 국민의 마음을 얻은 그 다음 수순이다. 일부 신변안전에 위협이 있는 의원들 빼고는 국민 속으로 깊이 들어가 보길 권한다.
오주한 前 여의도연구원 미디어소위 부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