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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담] 단두대를 세우자

오주한

말 그대로 지극히 개인적 소견 담은 담론

무차별 살인행각으로 악명 떨친 아사신파

몽골군 물리교육 앞에 정상화… 韓도 필요

 

<알라무트의 킬러들>

 

아사신(어쌔신‧Assassin)은 이슬람 시아파 이스마일파(Ismailism)의 암살‧테러조직이자 소수계파다. 해당 조직명을 차용한 한 PC게임으로 대중에 알려져 있다.

 

아사신은 당초 평범한 종교집단‧지식인집단이었다. 이스마일파는 서기 909년 북아프리카‧아라비아반도 일대에 파티마(Fatima)왕조를 개창(開創)하고서 선교에 나섰다. 파견된 선교사들은 순결형제단(Brethren Of Purity)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포교(布敎)했다.

 

그러나 1037년 중동을 석권(席卷)한 수니파의 셀주크(Seljuk)제국은 이스마일파를 견제했다. 지금도 수니‧시아파 갈등은 유명하다. 배경은 선지자(先知者) 무함마드(Muhammad)의 혈통이 전체 이슬람을 지배하는 적통(嫡統)인가 아닌가였다고 한다. 이들은 서로와 원수처럼 지낸다.

 

셀주크에게 밀려난 이스마일파는 이성이란 게 있었던 과거 모습은 어디 갔는지 극단적 유혈(流血)투쟁으로 노선 바꿨다. 1090년 하산 사바흐(Hassan-i Sabbah‧생몰연도 1048~1124)는 이란 카스피해 남쪽 알보르즈(Alborz) 산맥 정상에 위치한 높이 약 180m의 알라무트(Alamut)요새에서 열혈신도들 뽑아 프로페셔널 킬러로 양성했다. 바로 아사신이었다.

 

<광기(狂氣)의 살인극>

 

아사신은 피에 굶주린 복수극에 나섰다. 나중에는 복수도 아니고 이도 저도 아닌 분풀이식 막가파식, “우리 앞길에 걸림돌 되면 다 죽인다. 기분 나빠 죽인다”는 식의 테러 일삼았다.

 

이들의 암살기술은 사실 대단할 건 없었다고 한다. 대낮에 길 한복판에 태연히 서 있다가 목표물이 다가오면 흉기 꺼내 공격하는 식이었다. 사바흐가 교육에서 강조한 건 ‘광신도(狂信徒)적 정신무장’이었다. 눈알 뒤집어져 덤벼드는 아사신은 살아 돌아오는 걸 포기하기에 감쪽같은 은닉술도, 정밀한 사격술도 필요가 없었다.

 

철저히 과대망상적 세뇌교육, 호전성(好戰性) 갖춘 만큼 집요함도 대단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일부 아사신은 금단(禁斷)의 집단거주지에서 나와 도시로 섞여들었다. 이들은 대대로 사람들과 어울려 살면서 부(富)도 쌓아올렸다. 그러나 수뇌부에서 암살명령 떨어지면 본인이든, 그 아들이든, 아들의 아들이든 지체 없이 테러에 착수하고 목숨 바쳤다.

 

테러목표는 누구든지 가리지 않았다. 그 유명한 십자군전쟁(The Crusades)의 살라흐 앗딘(살라딘‧Saladin)도 제거대상 중 하나였다. 아사신은 범행이 지속 실패함에도 계속 사람을 보내 죽이려 들었다. 폭발한 살라딘은 군사를 보내 시리아에 있는 아사신의 두 번째 요새 마시아프(Masyaf)를 쳤으나 함락하지 못했다. 아사신의 간은 더욱 배 밖으로 나왔다.

 

아사신은 이미 거창한 대의명분(大義名分) 따르는 의병(義兵) 따위가 아니었다. 이들은 이득이 된다면 공동의 적과도 동거하고자 했다. 대표적인 게 전체 아랍과 대립 중이던 십자군에게 손잡자 내민 것이었다. “저 놈들 등 뒤에서 칼 꽂는 놈들이다. 아침엔 밥 먹으며 악수하고 밤엔 침실 들어와 칼 꽂을 놈들이다” 당연히 기겁한 십자군은 단번에 물리쳤다.

 

<“까마귀 소리 멎는 날 없었다”>

 

이렇듯 좌충우돌 폭주하던 아사신 수뇌부도 임자 만나자 목숨을 대가로 정신교육 받았다. 타르타로스(Tartaros‧지옥)라 불리며 동아시아‧중앙아시아‧서아시아‧러시아‧동유럽을 정복한 몽골족(蒙古族)이 온 것이었다.

 

머잖아 일 칸국(Il Khanate)의 초대 칸이 되는 훌라구(Hulagu‧1218~1265)는 13세기 중엽 군대를 이끌고 중동에 모습 드러냈다.

 

천하의 살라딘도 물리쳤던 아사신은 몽골군도 가볍게 이길 수 있을 거라 자신했다. 이들은 평소 습관대로 암살자를 보내 몇몇 몽골군 천호장(千戶長)‧백호장(百戶長) 등을 죽였다. 천호장은 말 그대로 약 1000명의 병사를 이끄는 지휘관을, 백호장은 약 100명을 다스리는 지휘관을 뜻한다.

 

중동‧유럽군은 봉건제(封建制) 성격이 강했다. 자연히 일선 지휘관들은 각자 자기 장원(莊園)을 가졌으며, 각 지휘관 휘하는 해당 지휘관 소유의 장원 소속이었다. 따라서 A중대 영주(領主)가 사망하면 A중대는 대체할 지휘관이 없기에 그대로 퇴각했다. 이게 거듭되면 종래에는 A‧B‧C‧D+α중대 모두 무력화되며 이들의 총괄지휘관은 물러날 수밖에 없다.

 

때문에 “적 지휘관들을 모두 암살해 적군을 물리친다”는 아사신 전술은 중동‧유럽군에게는 통했다. 문제는 몽골은 이미 강력한 중앙집권제(中央集權制) 구축한지 오래였기에 칸의 군대는 모두 칸의 소유물이라는 것이었다. 몇몇 천호장‧백호장이 죽었다 해도 다른 천호장‧백호장으로 대체하면 그만이었다. 그렇다 해서 칸의 막부(幕府)로 접근한다는 건 언감생심(焉敢生心)이었다.

 

적군이 굳건히 진군하는 모습 본 아사신이 “어라 어라” 하는 사이 몽골군은 명성에 걸맞은 노도(怒濤) 같은 공격 퍼부었다. 아무리 알라무트 요새가 깎아지른 산꼭대기의 천혜요새라 해도 대영제국 이전까지 세계 최대영토 정복한 몽골군을 대적하긴 역부족이었다.

 

성문은 그대로 뚫렸다. 아사신들은 “죽음이 우리를 낙원으로 이끈다”는 그들 소원대로 1256년 12월15일 절벽 기어오른 몽골군에 의해 농담 하나 안 보태고 99.99% 몰살됐다. 함락 직전이 되자 아사신 측은 뒤늦게 “살려주세요” 항복하고서 문 열었으나 몽골군은 입성(入城)하자마자 씨를 말려버렸다. 어느 정도였냐면 “(시체 포식하러 온) 까마귀 소리가 멎는 날이 없었다”고 한다. 생존자는 당시 6살이었던 라시드 웃딧(Rashid ad-Din) 등 극소수에 그쳤다.

 

알라무트 요새도 오함마‧폭약 가져온 몽골군에 의해 박살이 났다. 현재 요새 유적지엔 성터만 남아있다시피 하다. 전설처럼 구전(口傳)으로 전해진 이 이야기는 1273년 알라무트를 찾은 마르코 폴로(Marco Polo)에 의해 기록됐다.

 

<우리 모두의 가족을 위해서라도>

 

오늘날 중동에서 누군가를 아사신에 비유하는 건 어마어마한 모욕이라고 한다. 제정신 가진 이들이라면 누구나 테러를 혐오하고 증오한다.

 

그런데 ‘잃어버린 5년’ 이후 대한민국 곳곳에서 자칭 아사신들이 출몰하고 있다. 최근엔 한 뮤지컬배우 살해 목적으로 분장실 난입해 칼부림한 30대 여성이 체포됐다. 경남 진주시에선 편의점 아르바이트 여성을 무차별 폭행한 20대 남성이 구속기소됐다. 비단 이 사건들뿐만 아니라 포털사이트 사회면을 보면 각종 흉악범죄가 판친다.

 

만약 우리 가족이 그런 일을 당하면 어쩌지라는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그럼에도 사형 재개는 요원(遙遠)하기만 하다.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니 흉악범들은 “그래도 밥 먹고 살겠네. 잘하면 중간에 석방될 수도 있겠네” 희망(?) 갖고 오늘도 흉기 들고 거리로 나선다.

 

무차별 살인행각 벌였던 아사신을 정상화시킨 건 몽골군의 물리교육‧단두대를 통한 ‘죽음의 훈계’였다. 오늘날에도 아사신파는 미미하게 존재하지만 테러와는 더 이상 아무 관계가 없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몽골군과 같은 불가피한 극약처방을 필요로 한다. 어르고 달래던 시절은 지났다. 단두대를 세울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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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한 前 여의도연구원 미디어소위 부위원장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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