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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담] 이재명의 쌍특검 육참골단

오주한

말 그대로 지극히 개인적 소견 담은 담론

제 살 내어주는 대신 상대 뼈 취한 무사들

야당 육참골단에 대한 국민의힘 방어술은

 

<“큰 고통 받더라도 그 이상 타격 안긴다”>

 

육참골단(肉斬骨斷)이라는 말이 있다. 제 살을 내어주고 대신 상대의 뼈를 발라낸다는 무시무시한 뜻이다.

 

유래는 여러 설이 있다. △한 손엔 장도(長刀) 들고 한 손엔 단도 쥐고 싸우는 니텐이치류(二天一流‧이천일류) 창시자 미야모토 무사시(宮本武蔵)의 오륜서(五輪書)에 나온다는 설 △18세기 무사 야마모토 조초(山本常朝)의 언행 기록한 하가쿠레(葉隱)에 나온다는 설 △권위 있는 일본어사전 고지엔(廣辭苑)에 나온다는 설 등 다양하다.

 

고지엔에는 “니쿠오키라세테호네오타쓰(肉を斬らせて骨を斷つ‧스스로 상당한 고통을 받더라도 적에게 그 이상의 타격 안겨서 이긴다)”는 내용이 나온다. 하가쿠레에는 “피부를 베어내 뼈를 끊는다”는 구절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정작 일본 고대~근세에는 육참골단의 무사를 찾아보기 힘들다. 정작 정사삼국지(正史三國志), 그 중에서도 오(吳)나라 인물들 기록한 오서(吳書)에서 유독 많이 발견된다.

 

<열두 군데 창상으로 수천 명을 물리치다>

 

주태(周泰‧생몰연도 ?~?)는 소패왕(小覇王) 손책(孫策)이 강동(江東‧양주)을 평정할 무렵부터 오나라를 따른 장수다. 동료 장흠(蔣欽)과 함께 귀순했으며 키와 덩치가 매우 컸다고 한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선 수적(水賊) 출신으로 묘사됐다. 손책의 동생 손권(孫權)은 주태의 풍채를 마음에 들어 해 그를 자신에게 달라고 형에게 청했다.

 

성격은 개차반이었으나 명문가(名門家) 출신이었던 원술(袁術)로부터 양주 평정 명을 받은 손책은 무서운 속도로 강동을 점령해나갔다. 맹장 태사자(太史慈)를 푸대접한 양주자사(揚州刺史) 유요(劉繇), 자칭 동오(東吳)의 덕왕(德王) 엄백호(嚴白虎), 회계태수(會稽太守) 왕랑(王朗) 등이 손책의 제물이 됐다.

 

손책은 앞서 원술로부터 뒤통수 얼얼히 맞은 바 있었다. 원술은 여강군(廬江郡) 함락 시 천자(天子)에게 주청해 손책을 그곳 태수로 삼겠다고 약조했으나, 여강태수 육강(陸康)이 죽자 입 싹 닦고 측근 유훈(劉勳)을 여강의 새 주인으로 삼았다. 강동의 패자가 된 손책은 자신은 회계태수가 되고 친인척‧충신들을 나머지 각지 태수로 삼아 원술로부터 독립했다.

 

그 와중인 서기 198년 손권은 주태 및 단 수백 명의 무리만 거느린 채 손가(孫家)의 근거지 선성(宣城)을 지켰다. 그런데 어떻게 기밀이 새어나갔는지 선성이 비다시피 했다는 첩보 접한 이민족 산월(山越)은 대군 그러모아 선성을 냅다 쳤다.

 

산월은 수백년 전 전국시대(戰國時代) 초(楚)나라에 의해 멸망해 숨어 살던 월(越)나라의 후손이었다. 빈궁한 이들은 손권의 목을 원술에게 바치면 큰 보상 받음은 물론 외지인(손가)도 물리칠 수 있을 거라 여겼다.

 

수백명과 수천~만여명의 싸움이니 손권으로선 버틸 턱이 없었다. 얼마나 상황이 위태로웠는지 손권의 말(馬) 안장이 칼에 찍힐 정도였다. 그러자 주태는 한 손에 장창 쥐고 한 손에 칼 든 채 분연히 떨쳐 일어나 손권에 앞서 산월족 사이로 뛰어들었다.

 

주태는 말 그대로 육참골단에 나섰다. 그의 창칼이 한 번 번뜩일 때마다 개미떼처럼 몰려온 산월족은 사지(四肢)가 절단된 채 우수수 쓰러졌다. 기적적으로 포위망 빠져나온 뒤 살펴본 주태의 몸에는 무려 열두 군데의 창상(創傷)‧자상(刺傷)이 있었다.

 

지독한 정신력으로 살을 내주고 뼈를 취한 주태는 긴장이 풀리자 곧바로 생사기로(生死岐路)에 놓였다. 그러나 손권의 지극적성 보살핌에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기록에는 없으나 산월족은 그 뒤로는 주태 두 글자만 들어도 치를 떨었음이 분명하다.

 

<하반신 장애 감수하고 적장 목을 취하다>

 

오나라에는 주태 같은 ‘육참골단러’가 또 있었다. 유찬(留贊‧183~255)이 주인공이다.

 

젊은 시절 군리(軍吏)가 된 유찬은 고향 회계군까지 밀고 내려온 황건적(黃巾賊) 잔당 수장 오환(吳桓)에 맞서 싸웠다. 이 때 오환과 직접 단기접전(單騎接戰) 벌인 유찬은 다리에 큰 부상 입는 대신 오환의 목을 베었다.

 

싸움에선 이겼으나 상처가 덧나 결국 장애인이 된 유찬은 병서(兵書) 읽으며 세월 보냈다. 그 사이 천하정세는 손책의 강동 정벌 등 급박하게 돌아갔다.

 

장수로서 입신양명(立身揚名)코자 했던 유찬은 간절한 마음을 넘어 극단적 처방에 나섰다. 그는 어느 날 일가친척 불러 모아 “지금 내 신세라면 죽으나 사나 다를 게 없다. 내 지금 다리를 절단하려 하는데 다행히 (그 과정에서) 힘줄이 펴지면 출사(出仕)할 수 있겠으나 죽으면 그 뿐이다” 말했다.

 

유찬이 정말로 중식도(中食刀) 같은 칼 꺼내자 일가는 그의 팔다리 붙들어 매고 말렸다. 허나 유찬은 일순간의 찬스 생기자 놓치지 않고 제 다리를 내리쳤다. 다리에서 피가 콸콸 솟구치자 유찬은 그대로 정신줄 놓고 기절했다. 그런데 다리는 거짓말처럼 다시 펴졌다.

 

이 일로 유명해져 능통(凌統)에게 천거돼 손권에게 임관한 유찬은 이후로도 육참골단식 ‘닥돌’ 즐겨했다. 오서 등에 의하면 유찬은 72세 나이로 전사(戰死)할 때까지 전투에 임할 적마다 머리를 풀어헤치고 하늘 향해 사자후(獅子吼) 뿜은 뒤 노래 부르며 돌격했다.

 

<맞불이 최선의 방어일 수도>

 

더불어민주당이 이른바 ‘쌍특검’ 상정 등을 예고했던 23일 본회의가 불발됐다. 쌍특검은 대장동 50억 클럽과 김건희 여사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을 함께 특검하자는 내용이다. 국민의힘은 여야 예산안 합의가 우선이라는 입장이지만 민주당은 쌍특검 강행 입장을 내비쳤다.

 

누구나 알다시피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본인은 부정 중이나, 대장동 개발특혜 사건 핵심 의혹 인물이다. 민주당은 이 대표 구속영장 기각 앞에 무혐의를 자신하고 있으나, 쌍특검 시 이 대표가 수사대상 중 하나가 될 가능성은 적지 않다. 겨우 사그라지고 있는 이 대표 논란을 총선을 앞두고 재차 국민 앞에 소환할 여지도 있다.

 

그럼에도 이 대표, 민주당은 쌍특검 시 잃는 것보다 얻는 게 더 많다는 계산인 듯하다. 이 대표 논란은 그간 언론에서 다룰 대로 다뤘기에 재차 내년 구정(舊正‧음력설) 밥상에 오른다 해도 더 이상 새로울 게 거의 없으나, 김 여사 의혹은 새로운 태풍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국민의힘이 쌍특검을 거부한다 해도 그것대로 논란 소지가 될 수 있다.

 

민주당의 육참골단 창칼이 과연 먹힐지, 그리고 대통령실‧국민의힘은 이재명발(發) 육참골단에 어떠한 방어술로 대응할지 주목된다. 여권으로선 어쩌면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의 같은 육참골단이 정공법(正攻法)이 될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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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한 前 여의도연구원 미디어소위 부위원장 [email protected]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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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멸공통일
    2023.11.26

    쌍특검을 받는 조건으로 대장동특검을 이재명특검으로 확대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이번 기회에 이석기의 경기동부연합과의 관련성도 수사할 겸.

    그런데 그럴 의지가 없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