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2기 행정부는 1기에서와 마찬가지로 주한미군 철수와 방위비 분담금(주한미군 주둔 경비) 대폭 증액을 연계해 한국 정부를 압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의 거래적 성향을 잘 활용한다면 미국의 전술핵 재배치, 나아가 한미일 핵 공유 체제로 남북 간 핵 불균형을 바로잡을 기회가 될 수 있다.
다만, 이를 위해 한국은 미국의 대(對)중국 견제에 있어서 주한미군이 갖는 전략적 가치를 부각하고 원칙에 입각한 '가치 외교'를 명분으로 이에 동참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주한미군 감축할수록 트럼프의 中 견제에 마이너스
12일 외교가에 따르면, 트럼프 당선인은 내년 1월 백악관에 입성 후 '주한미군 철수 카드'를 꺼내 들고 한미가 지난 10월 체결한 제12차 한미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의 재협상을 요구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물론 한국에 배치된 2만8500명의 주한미군 규모는 미국 의회가 처리한 국방수권법(NDAA)에 따라 유지되지만, 공화당이 상·하원을 모두 장악한 '트리플 레드'에서는 주한미군 감축이 현실화할 수 있다.
트럼프 당선인의 이러한 연계는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한 외교적 수사일 가능성이 크다. 미국이 주한미군을 감축할수록 한국에 대한 영향력을 상실하게 되므로 주한미군 감축이나 철수는 중국을 견제하고자 하는 트럼프 당선인의 기조와 상충한다.
국방부 차관을 지낸 신범철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미국이 동아시아 지역에서 중국을 군사적으로 견제하는 데 있어 주한미군은 필수적인 역할을 한다"며 "특히 역내 유일한 주한미군 육군 전력은 북한의 군사적 위협에 대응하고 있지만 다목적 활용이 가능한 형태"라고 설명했다.
◆전술핵 재배치·한미일 핵 공유 체제, 中北에 억제력 제고
이처럼 트럼프 당선인의 대(對)중국 견제 기조에 있어서 한국이 갖는 전략적 가치는 크다. 아울러 미국의 대중국 견제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다면 한반도 전술핵 재배치를 실현할 가능성이 바이든 행정부보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하경석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최근 한 국제 학술회의에서 "여러 루트로 확인한 결과 (미국에서) 전술핵탄두 재배치를 본격적으로 논의하고 있다"며 "미국은 만약 이 카드가 대중국 전략에 있어 유용한 카드로 활용될 수 있다면 핵 옵션을 늘리기 위해 한국과 충분히 대화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미국의 대중국 인도·태평양 전략에 한국이 실질적인 도움이 된다는 메시지를 분명하게 넣을 수 있으면 트럼프는 더는 한미동맹이나 주한미군을 흔들 이유가 없어진다"고 덧붙였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전술핵 재배치, 나아가 한미 혹은 한미일 간 일종의 핵 공유 체제를 수립할 기회가 될 수 있다.
윤덕민 전 주일대사는 전날 한일친선협회중앙회가 개최한 '한일 전문가·언론인 세미나'에서 "유럽은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제공한 플랫폼에서 미국의 전술핵으로 억제력을 구축했듯이, 한미일이 동해상에 공동으로 핵잠수함을 관리하며 북한의 공격에 반드시 보복하겠다고 한다면 억제력이 생긴다"고 제언했다.
최근 윤 전 대사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이러한 구상에 대해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큰 관심을 갖고 호응했다며 "한일이 독자 핵무장하기 보단 중국 등 주변국에 주는 충격을 줄이면서 미국의 핵우산 신뢰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에 관심이 컸다"고 밝혔다.
미국 핵탄두를 탑재한 미국 핵추진잠수함(SSN) 또는 전략핵잠수함(SSBN)을 한미일이 공동으로 운영한다면 대북·대중 억제력이 크게 강화된다. 윤 전 대사가 제안한 방안은 일종의 해상 기반 핵 공유 체제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대표적인 해상 기반 핵 공유 체제를 가진 나라로는 자체 핵탄두와 핵추진잠수함에 미국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을 결합한 영국을 꼽을 수 있다.
하지만 국제사회의 공인된 핵보유국, 즉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인 영국과 달리, 비핵국인 한국은 자체 핵탄두를 보유할 수 없다. 따라서 미국과 합의가 진전된다면 한미의 해상 기반 핵 공유 체제는 미국의 SSN과 핵탄두에 한국의 SLBM을 결합하는 방식이 될 것으로 보인다.
◆中과 마찰 줄이려면 원칙 입각 '가치 외교' 펼쳐야
한국이 미국과 협력을 강화한다면 중국은 사드 보복 수준을 뛰어넘는 고강도 경제 제재를 가함으로써 한미일 협력체제의 약한 고리인 한국을 흔들려고 할 수 있다. 한국이 미국의 대중국 견제에 동참하되 중국과의 불필요한 마찰을 최대한 줄이려면 항행의 자유, 법치(rule of law), 인권 보호 등 원칙에 입각한 '가치 외교'를 펼쳐야 할 필요가 있다.
가치 외교는 한국이 대중 견제에 참여하면서도 실리를 보호할 좋은 명분이 된다. 중국은 남중국해와 동중국해에서 항행의 자유를 훼손하고, 법에 의한 지배(rule by law)로 법을 수단으로 삼아 일당 독재를 정당화하며 신장위구르, 티베트, 홍콩, 중국 본토 등에서 인권을 유린하는 등 국제사회의 기본적인 가치를 부정하고 타국의 국익을 침해해 왔기 때문이다.
신 수석연구위원은 "트럼프 당선인은 자유주의적 국제질서를 강조하지 않지만, 대한민국의 외교는 지향하는 가치에 기반을 둬야 명분과 실리를 모두 추구할 수 있다"며 "동시에 우리의 원칙 이행이 중국을 겨냥함이 아님을 전달해 불필요한 마찰을 최소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일관된 외교적 관행이 중요하며, 그 과정에서 가치에 기반한 외교 행보의 전략적 명료성을 단계적으로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 정부의 또 다른 과제는 한국과 중국의 경제적 경쟁이 심화된 현재 시점에서 균형외교가 갖는 한계를 국민이 이해하도록 돕는 것이다. 국내 친중 세력은 '실용외교', '균형외교'라는 미명하에 '안미경중'(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 구호를 내세워 거센 반미·반일 선동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한국과 중국은 이미 경제적 보완 관계가 끝났고 전면적인 경쟁 관계에 돌입한 지 오래여서 안미경중은 철 지난 선동에 불과하다.
이와 관련해 윤 전 대사는 "우리는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을 취하는 것을 지혜인 양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며 "구한말 고종의 조선도 나름대로 균형외교를 했다. 일본과 협약을 맺는 동시에 러시아와는 밀약을 맺었고 다른 열강에는 다른 이야기를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문제는 열강들은 그러한 정보를 이미 알고 있었다는 데 있다. 강제 병합 과정에서 아무도 우리를 도와주지 않았다"며 "균형외교의 실체이고 우리가 처한 최악의 지정학적 환경의 실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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