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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담] 고래를 살린 기름, 석유

오주한

말 그대로 지극히 개인적 소견의 담론

동해 석유매장설, 부디 사실이었으면

 

“얼마 전 어떤 남자가 펜실베이니아에서 땅에 구멍을 뚫었는데 기름이 나왔다더군. 사실일 리 없어. 땅 속에서 기름이 나오다니. 그러면 얼마나 좋겠나”

 

2015년 개봉한 헐리웃영화 ‘하트 오브 더 씨(In the Heart of the Sea)’의 최후반부에 나오는 대사다. 이 영화는 1851년 미국에서 출간된 허먼 멜빌(Herman Melville‧생몰연도 1819~1891)의 장편소설 모비 딕(Moby-Dick; or, The Whale)을 원작으로 한다. 소설은 포경(捕鯨) 즉 고래잡이가 주제다.

 

19세기 고래잡이의 가장 큰 목적은 고기가 아닌 경유(鯨油) 즉 ‘기름’이었다. 산업혁명(the Industrial Revolution)이 시작되면서 서구(西歐)에서는 윤활유 수요가 폭증했다. 때문에 많은 배들이 바다로 나아가 기름이 풍부한 고래 특히 그 중에서도 양질의 기름이 다량인 향유(香油)고래 잡이에 나섰다. ‘향유’라는 이름 자체가 ‘향기로운 기름’이라는 뜻이다.

 

길이 10여m, 체중 40톤(수컷 기준) 이상의 향유고래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많은 선원들이 사냥 과정에서 목숨 잃거나 회복 불가능한 상처를 입었다. 그럼에도 포경산업은 식물성기름 등 타 대체유 산업과는 비교할 수 없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기에 규모는 나날이 폭증했다. 원양(遠洋)에서 향유고래를 포획한 이들은 기름을 짜낸 뒤 썩기 쉬운 고기는 그냥 바다에 내다버릴 정도였다.

 

경유를 목적으로 하는 포경산업은 상술한 영화대사처럼 ‘땅에서 시커먼 기름이 솟구치기 시작하면서’ 사양길로 접어들었다. 바로 석유(石油)였다. 석유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는 아직도 미스터리다. 유기물(有機物)에서 생겨났다는 설과 무기물(無機物)에서 발생했다는 설이 팽팽히 대립 중이다. 근래에는 후자(後者)에 좀 더 무게가 실리고 있다. 당초 2000년대 초에 고갈될 것이라던 석유가 근래에는 오히려 한층 더 다량으로 발굴‧시추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석유가 발견된 역사 자체는 오래됐다. GS칼텍스가 홈페이지에서 공개 중인 ‘에너지학 개론 - 제1강. 석유의 역사’에 의하면 석유는 성경(聖經)에도 기록돼 있다. 출애굽기(Book of Exodus)에는 “모세(Moses)가 보니 분명히 떨기나무는 불이 붙어 있었으나 불타고 있는 건 없었다”는 내용이 있다. 기원전 3000년경 수메르(Sumer)는 이미 아스팔트로 조각상을 만들었다. 이후 로마(Rome) 등에서는 우연찮게 지상으로 스며나온 석유가 등불 원료로 간혹 사용됐다.

 

석유가 폭넓은 분야에서의 에너지원(源)으로서 주목받기 시작한 건 17세기 초 무렵이었다. 1625년 유럽에서는 석유를 증류(蒸溜) 후 분리정제한다면 다양한 용도로 쓸 수 있을 것이란 주장이 나왔다. 이 아이디어는 무려 약 200년 뒤에야 실현됐다.

 

1850년을 전후해 구미(歐美)에서는 고래기름 대신 석유를 활용하기 위한 연구가 진행됐다. 고래기름 가격이 상승하고 대체유는 화력(火力)이 시원찮던 1859년 미국의 에드윈 드레이크(Edwin L. Drake‧1819~1880)는 마침내 최초의 유전(油田) 굴착자로서 사상 처음으로 지하 석유시추에 성공했다.

 

고래기름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는 높은 채산성을 지닌 석유 대량생산의 신호탄이 쏘아 올려지자 이후는 일사천리였다.

 

1885년에는 독일의 고트리프 다임러(Gottlieb Daimler‧1834~1900)가 휘발유로 작동하는 내연(內燃)기관을 제작해 특허를 신청했다. 1892년에는 독일의 루돌프 디젤(Rudolf Diesel‧1858~1913)이 중질유(中質油) 분사작용에 의한 디젤엔진 특허를 신청했다.

 

대영제국 해군장관이 된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1874~1965)은 1913년 ‘앵글로-페르시안 석유(APOC‧후에 BP로 개칭)’의 주식 과반수를 취득하면서 안정적 석유공급원을 확보했다. 전해인 1912년에는 미국에 세계 최초의 현대식 정유(精油)공장이 설립됐다. 인류는 1950년대 이후 석유산업의 눈부신 발전을 일으켰다. 21세기 오늘날의 현대인은 석유 없이는 살 수 없는 시대 속에 있다. 당장 우리 주변에 굴러다니는 플라스틱만 해도 석유로 만든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동해상의 140억 배럴(barrel) 규모의 천연가스‧석유 매장 가능성을 최근 발표했다. 박정희정부 시절인 1976년에 이미 ‘포항 석유 발견’이 공표됐다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난 적이 있기에 반신반의(半信半疑)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상업성도 미지수다.

 

그러나 만약 상업적 가치의 석유 매장이 사실이라면 반만년 한민족 역사에 큰 획을 긋는 역사적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정부는 석유가 발견 되는대로 2035년부터 상업개발에 착수한다는 방침이다. 상업성 여부는 이르면 내년 상반기에 판가름 날 것이라 한다. 모쪼록 한단지몽(邯鄲之夢)이 아닌 대한민국 경제성장의 새 이정표가 세워지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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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한 前 여의도연구원 미디어소위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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