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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담] 굳이 어퍼컷 날려야 했을까

오주한

말 그대로 지극히 개인적 소견의 담론

임금들이 현판 앞에서 붓 내던진 까닭

 

서울 종로의 경복궁(景福宮) 이름이 붙여진 계기는 다음과 같다. 조선(朝鮮) 건국 3년째인 1395년, 태조(太祖) 이성계(李成桂)는 새 궁궐을 짓고 큰 주연을 베풀었다. 흥이 오른 태조는 정도전(鄭道傳)에게 “궁궐 명칭을 작명하라” 명했다.

 

정도전은 시경(詩經) 구절을 인용해 “(임금의) 잔치에서 취하고 임금의 덕에 배부르니 후왕(侯王)의 앞날에 큰 복(경복‧景福)이 있을 것입니다” 답했다. 또 각 전각(殿閣)의 이름도 심오한 의미를 담아 강녕전(康寧殿)‧근정전(勤政殿)‧교태전(交泰殿) 등으로 명명했다.

 

이름이 생겼으니 현판도 내거는 건 당연지사. 그런데 내로라하는 서예(書藝) 실력의 역대 조선 초기 임금들은 현판에 단 한 글자도 써넣을 수 없었다. 붓을 놀리는 건 임금이 지명한 서사관(書寫官)의 몫이었다.

 

많은 조선 임금들의 붓글씨 솜씨는 탁월했다. 이들은 세 살이 되면서부터 혹독한 왕재(王才) 교육을 받았고 서예는 기본 과목이었다. 5대 국왕 문종(文宗)의 경우 “(글씨의) 굳세고 생동하는 진기(眞氣)가 오묘한 경지를 넘어섰다”는 평가를 받았다. 9대 성종(成宗)도 “전하의 글씨는 난새(鸞·전설상의 새)가 놀라고 봉황(鳳凰)이 되돌아올 정도”라는 극찬을 얻었다. 한석봉(韓石峯)을 발탁한 선조(宣祖)도 한 붓글씨 했다.

 

언뜻 보면 간신배들의 입에 발린 아첨 같으나 조선시대 사대부(士大夫) 대다수는 “아니되옵니다”를 입에 달고 살 정도로 강직했다. 실제로도 오늘날 상당수 조선 국왕들의 어필(御筆)은 하나의 작품들로 인정받고 있다.

 

그럼에도 조선 초 임금들은 근질거리는 손을 억지로 붙잡고 참아야 했다. 성종 15년인 1484년 6월28일 성종은 “창경궁(昌慶宮) 내간(內間)의 전각 현판은 과인(寡人)이 쓰고 싶은데 어떠한고?” 신하들에게 물었다. 몇몇은 맞장구를 쳤으나 대다수는 “어필로 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완물상지(玩物喪志)는 부당하옵니다” 차갑게 반대했다. 성종실록(成宗實錄)을 쓴 사관(史官)들은 “몇몇 신하가 임금에게 현판 글씨를 쓰도록 권했다. 기예(技藝)를 좋아하는 임금의 뜻에 부응했다”며 소수 간신배들을 비꼬았다.

 

그렇다면 왜 이러한 현상이 벌어졌을까. 해답은 세조실록(世祖實錄)에서 찾을 수 있다. 양녕대군(讓寧大君)은 조카 세조(世祖)에게 자신의 글솜씨를 전수했다. 그러던 1459년 5월10일 세조는 “과인도 마음만 먹으면 글씨를 잘 쓸 수 있소” 자랑했다. 그러자 양녕대군은 세조의 면전에서 이렇게 면박을 줬다. “군주(君主)란 무릇 제 재주가 크다 해도 (백성들 앞에서) 자랑을 해서는 결코 안 됩니다” 즉 자만에 빠져 스스로를 과신하고 나랏일을 소홀히 하는 대신 무엇을 잘못한 건 없는지 끊임없이 자신을 돌이켜보고 마음가짐을 새롭게 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이 취임 후 최저인 21%를 기록했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심지어 대구‧경북(TK)에서의 민심(民心) 이반도 심상찮다고 한다(상세사항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그런데 공교롭게도 해당 조사 기간에 윤 대통령의 여당 국회의원 워크숍 참석과 맥주 음주, 어퍼컷 세리머니 소식이 언론을 통해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정치권에선 “고개 쳐들면 망한다”는 말이 상식처럼 통용(通用)된다. 상술한 조선시대 임금들의 극한의 자제와도 일맥상통한다. 물론 윤 대통령의 워크숍 참석 자체는 이해될 여지가 있다. 22대 국회에서는 단 8표~10여표의 여당 이탈표만 나와도 조기대선이 이뤄질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는 앞에서 굳이 환한 표정으로 마치 지지율이 고공상승 중인 것처럼 어퍼컷을 날리고 맥주를 마셔야 했을까 아쉬움이 드는 게 사실이다. 당(黨)은 108번뇌에 휩싸인 상태고 국민은 고물가 등에 허덕이고 있는데 말이다. 조선임금들은 스스로를 과인 즉 ‘덕이 적은 사람’이라 호칭하며 만백성의 눈과 귀를 두려워했다. 윤 대통령은 지지율이 조금만 더 떨어져도 큰 운명을 각오해야 할 수 있다. 낮춤에 익숙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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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한 前 여의도연구원 미디어소위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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