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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담] 공감능력 상실 시대

오주한

말 그대로 지극히 개인적 소견 담은 담론

‘나경원 냄비’ ‘손찔껌씹’에 정상인들 경악

평균이하가 평균 위에 군림하는 웃픈 세태

 

필자의 개담에 자주 등장하는 문제아 여포(呂布‧생몰연도 ?~서기 199)는 후한(後漢) 말의 무장이다. 무력이 강한 대신 머리가 둔하고 배신하길 즐기는 인물로 잘 알려져 있으나 여포는 공감능력마저도 ‘0’인 천하에 쓸모없는 물건이었다.

 

주인 동탁(董卓)을 제 손으로 참살하고 조정에서 삼일천하를 누렸던 여포는 동탁의 잔당들에게 패해 천하를 유랑했다. 그러다 정착한 곳이 후한 13주(州) 중 하나인 서주(徐州)였다.

 

후한 말의 학자 왕찬(王粲)이 쓴 영웅기(英雄記) 등에 의하면 서주를 찾은 여포는 그곳의 주인 유비(劉備)를 접대했다. 그런데 여포는 제 딴에는 성의를 베푼답시고 제 아내를 불러 유비에게 술을 따르도록 했다.

 

당시 시대상 제 와이프에게 외간남자 시중을 들게 하는 건 상대에게도 아내에게도 크나큰 실례였다. 상대에게는 “너 호색한(好色漢)이지? 내 와이프 내 줄 테니 한 번 짐승처럼 놀아봐라” 정도의 의미로, 제 아내에게는 “너 냄비(극도의 여성비하 표현)지? 신나게 놀아봐라”는 정도의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비단 2000년 전뿐만 아니라 지금도 망행(妄行)이기는 마찬가지다.

 

결국에는 시중 들게 시킨 인간이 “나 이렇게 수준 낮다” 제 얼굴에 먹칠하는 꼴이다. 그럼에도 여포는 아무렇잖게 사회의 룰을 어기고 그걸 자신의 배포이자 ‘통’이랍시고 자랑한 것이었다. 영웅기는 “유비가 언짢게 여겼다”고 기록했다.

 

여포의 평균 이하 행동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문헌에 따르면 그는 제 부하의 아내들을 탐하길 즐겼다고 한다. 일각에서는 여포가 도덕성의 기준이 문명세계와 다른 흉노(匈奴)와 장기간 어울려 살았기에 그랬다고 변호한다. 그러나 그 문란하고 흉악무도하다는 흉노에서도 정상인 치고 수족 같은 수하들의 처를 건드렸다는 기록은 찾아보기 힘들다.

 

여포는 또 아무에게나 “동생”이라 부르며 안하무인(眼下無人)으로 놀았다. 유비와의 첫 만남에서도 바지에 손 찔러 넣고 껌 질겅질겅 씹는 식의 태도로 “어이 아우” 호칭했다.

 

최근 나경원 국민의힘 서울 동작을 후보를 ‘냄비’로 지칭한 홍보물이 온라인상에서 유포되고 있다고 한다. 냄비가 무슨 다른 뜻을 갖는가 찾아보니 입에 담지도 못할 정도로 여성을 저속하게 성(性)적 비하하는 표현으로 쓰인다고 한다.

 

제작‧유포자가 누구인지는 아직 모르나 제 딴에는 더불어민주당을 돕는답시고 이딴 쓰레기를 아주 태연하게 만들어 신나게 퍼뜨리고 있는 것이다. “설치는 암컷” 등 극언(極言) 논란이 잠잠해진지 얼마나 됐다고, 또 이런 짓을 접한 정상인들은 정작 경악을 금치 못하는데 말이다.

 

비슷한 시기, 전공의(專攻醫) 집단사직 조장 의혹을 받는 한 의료계 고위인사는 주머니에 손 찔러 넣고 껌 씹으며 경찰에 출석했다가 태도를 지적당했다며 “강압수사다” 주장했다고 한다.

 

최소한의 사회적 수양(修養)을 가진 정상인이라면 누구도 유무죄를 가리기 위해 조사받으러 가는 엄숙한 자리에서, 아니 그것을 떠나 타인 앞에서라면 껌 질겅질겅 씹지 않는데 말이다. 그런데 해당 인사는 ‘내가 이렇게 억압받고 있다. 어때? 공감 가지?’란 태도로 ‘손찔껌씹’을 제 입으로 공개했다고 한다.

 

‘손찔껌씹’ 인사는 “손이 차가워 주머니에 넣고 있었다”고 설명했지만 껌은 대체 왜 씹었는지 이렇다 할 해명을 내놓지 않았다. 언론보도에 의하면 ‘목이 아프고 껌을 씹고 있었고’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하는데 목 아프다고 껌 씹었다는 소리인지 해석이 어렵다. 사실 날씨가 추울 것 같으면 정상인들은 장갑을 미리 끼고 나오든가 하는데 말이다. 목이 아파 껌 씹는다는 신박한 논리도 적어도 필자로서는 처음이다. 남들 앞에서 씹으면 목이 안 아파지는 껌이라도 있는 건지. 정 아프면 편의점에서 쌍O탕이라도 사서 얼른 마시든지.

 

바야흐로 공감능력이 결여된, 평균이라는 걸 모르는 이들이 득세(得勢)하는 세상이다. 그러한 이들이 정치‧사회적 리더로 떠받들어지며 대한민국을 좌지우지하고 있다. 공감능력이 있는 평균적 시민들 위에 군림하고 있다. 통탄(痛歎)스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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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한 前 여의도연구원 미디어소위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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