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그대로 지극히 개인적 소견들 담은 담론
히미코 등판으로 완전종식된 ‘남탕’ 계파갈등
‘야마타이 흡사’ 韓정계 벤치마킹 필요할지도
한반도에서 건너간 도래인들
일본 열도 선주민(先住民)은 조몬인(縄文人)이라 불리던 사람들이었다. 조몬시대는 큰 고글을 쓴 것 같은 얼굴의 차광기토우(遮光器土偶)로 일본 현지에서 유명하다.
뚜렷한 이목구비에 많은 체모(體毛) 등이 특징인 조몬인들을 외곽으로 밀어낸 건 한반도‧대륙에서 건너간 도래인 즉 야요이인(弥生人)들이었다. 야요이인들은 서쪽의 하야토(隼人), 북쪽의 에미시(蝦夷) 등과 경쟁했다. 또 야마타이국(邪馬台國)‧야마토(大和)정권 등을 수립해 문명을 발전시켜 나갔다.
참고로 에미시는 극장 애니메이션 모노노케 히메(The Princess Mononoke‧원령공주) 등장부족 모티브가 된 종족이다. 후일 등장하는 쇼군(將軍‧정이대장군)도 이들을 정벌하기 위한 임시직으로 시작됐다. 지금의 일본 소수민족 아이누(Ainu)가 에미시의 후손이다.
야마타이국 위치는 한반도와 인접한 규슈(九州) 또는 교토(京都)가 위치한 간사이(関西)지방으로 비정된다. 현대 학계에서는 전자(前者)에 좀 더 무게 싣고 있다.
야마타이국은 위명제(魏明帝) 조예(曹叡) 시절인 서기 238년 나시메(難升米)‧츠시고리(都市牛利) 등을 사자로 파견하는 등 대륙과도 직접 교류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따르면 서기 173년 사신을 보내 신라 8대 국왕 아달라 이사금(阿達羅尼師今)을 알현하는 등 ‘모국(母國)’ 격인 한반도 국가들과도 친하게 지내려 애썼다.
만인이 인정한 히미코 리더십
정사삼국지(正史三國志) 위지(魏志) 왜인전(倭人傳)이나 후한서(後漢書) 등에 의하면 야마타이국은 수십 개의 성읍도시가 연합한 연맹왕국(聯盟王國)이었다.
연맹수장(首長)은 당초 남성들이 맡았다. 그런데 서기 132~189년 사이에 적통성(嫡統性) 두고서 계파들 사이에 큰 전쟁이 벌어졌다. 왜인전은 “왜는 본래 남자를 왕으로 삼았는데 난이 벌어져 서로 공격하고 정벌하는 등 오랜 기간 싸웠다”고 기록했다.
그대로 싸움을 지속했다간 기다리는 건 자멸이 될 게 분명했다. 인구급감을 넘어 에미시‧하야토 등이 어부지리(漁父之利) 취하러 올 건 자명했다. 이에 구성국가들은 창칼 내려놓고서 한 가지 타협점을 찾아냈다. “우리는 모두 남자니 서로에게 양보하려 해도 그럴 수가 없다. 차라리 여자를 왕에 앉히자. 그럼 싸움이 그칠 것이다”
이들이 택한 여왕은 히미코(卑弥呼‧비미호‧재위기간 서기 173?~248?)라는 여성이었다.
히미코는 무녀(巫女)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왜인전은 그에 대해 “나이가 이미 많았는데 남편은 없고 남동생이 있어 국정(國政)을 도왔다. 왕이 된 후로는 그녀를 본 사람이 거의 없었다. (여자) 시종 1000여명으로 시중 들게 했으며 오직 남자 한 사람(동생으로 추정)만이 식사를 옮기고 말을 전했다. 사는 곳은 병사들이 항상 엄하게 지켰다”고 묘사했다.
억지로 추대됐지만 히미코는 나라를 현명히 다스렸던 듯하다. 왜인전에 의하면 히미코 집권기간에는 평화로웠으며 그가 사망하고 타인이 옥좌(玉座)에 앉자 난이 재발했다. 내란은 히미코 집안 종친의 딸 토요(臺與)가 새 여왕이 되면서 재차 사그라졌다.
히미코가 사망하자, 순장(殉葬)이 옳다는 건 아니지만, 제후들은 큰 무덤을 세워 노비 100여명을 함께 묻을 정도로 히미코의 권위를 인정하고 그 죽음을 애도했다. RKB마이니치(毎日)방송 등 일본 현지언론 보도에 의하면 올해 6월 규슈 사가현(佐賀縣) 요시노가리(吉野ヶ里)유적에서 발견된 유적이 히미코 묘 아니냐는 분석이 있다.
위나라 황제는, 히미코가 고대~근세까지 멸시 받던 ‘여왕’이었음에도, 그를 무시하는 대신 친위왜왕(親魏倭王)에 봉할 정도로 인정했다. 일설에 의하면 일본 토착종교 신토(神道)의 최고 여신인 아마테라스 오미카미(天照大御神) 모델이 히미코일 가능성도 있다.
히미코는 2006년 니혼(日本)TV가 국민여론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발표한 ‘일본인이 사랑하는 인물’에선 약 2000년 전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44위에 랭크되는 기염도 토했다. 일본 근대화의 주역 메이지천황(明治天皇‧56위), 일본 영화계의 거장 구로사와 아키라(黑澤明‧62위)보다도 높은 순위였다.
일머리 있는 女 중진 역할론
히미코의 뒤를 이은 토요도 히미코와 마찬가지로 야마타이국을 슬기롭게 다스렸다. 히미코 사후(死後) 재차 남성이 왕위에 앉았으나 곧바로 계파갈등이 터져 수천 명이 죽었다고 한다. 허나 13세에 불과한 토요가 집권하자 나라는 안정됐다.
2023년 대한민국 정계가 어지럽다. 여야 막론하고 계파갈등이 분수처럼 표면 뚫고 솟구쳐 오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에선 이재명 대표의 ‘인재위원장 셀프임명’ 논란이 거세다. 인재위원장은 내년 총선 인재선발 등을 맡는 자리다. 국민의힘도 혁신드라이브가 걸리긴 했지만 완전한 쇄신까지는 아직 요원(遙遠)하다.
특정 인물‧세력에 의한 사당화(私黨化) 논쟁을 잠재우기 위해선, 계파갈등을 멈추긴 위해선 적재적소(適材適所) 구심점이 필요함은 두말 할 나위가 없다. 한 발 나아가 속된 말로 공격성 넘치는 ‘남탕’ 일색인 현 정치판에서 반대의 여풍(女風)도 요구됨은 분명하다.
물론 여성할당제를 두고선 찬반여론이 나뉘는 게 사실이다.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건 특정성별을 특정수치로 강제로 할당하자는 게 아니라, 여성이기에 남성은 가질 수 없는 점을 지녔으면서도 정계경험이 풍부하고 노련한 인재를 적재적소에 중용(重用)하는 게 필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경원 전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최근 제시한 ‘일머리 있는 중진 역할론’처럼 말이다. 약 2000년 전 야마타이국 내전을 종식시킨 히미코의 리더십이 이를 말해주고 있지는 않을까 싶다.
오주한 前 여의도연구원 미디어소위 부위원장 [email protected]
능력만 있다면 여성이라고 배척만 할 게 아니라 중용해야 하는데 사쿠라가 너무 많습니다.
능력만 있다면 여성이라고 배척만 할 게 아니라 중용해야 하는데 사쿠라가 너무 많습니다.
성별 상관 없이 속칭 사쿠라는 사전에 걸러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돌이켜 보니 참 많네요.
그런 능력 있는 인물이 국회에 입성해서
정치판을 바꿔주면 참 좋겠는데
류호정 용혜인 고민정 조수진
이수진 이재정 심상정 황보승희
전주혜 윤미향 권은희 문정복 ᆢ
제 극도로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여성 의원들 정상적인 분 발견하기가
어렵네요
여성 의원분들은 소리 지르는 거랑
싸우는 것 밖에 생각 안 나요
누구라 특정하긴 어렵습니다만 소수라도 계시리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