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좋은 개살구’, 소주성
탄핵 정국의 최대 수혜자였던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초반 국정수행 지지율이 80%를 넘어섰다. 여론도 호의적이었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는 문 대통령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던 국민들의 기대는 한껏 부풀어 올랐다. 기대가 물거품이 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문 대통령이 야심차게 추진했던 경제 정책들은 한낱 ‘빛 좋은 개살구’에 지나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부터 ‘소주성’(소득주도성장)이 경제성장을 이루고 양극화 해소도 할 수 있는 만병통치약이라도 되는 양 선전했다. 그리고 취임하자마자 소주성의 성공을 장담하며, ‘최저임금 인상’, 주52시간제 시행’, ‘공공부문 비정규직 근로자의 정규직 전환’ 등 이단적인 경제실험을 감행했다.
이런 실험은 대한민국 경제 전반에서 역효과를 가져왔다. 고용, 소비, 투자 등 경제 전 분야에 충격을 주었고, 소득 격차는 한층 더 벌어졌다. 소주성을 옹호하던 문 대통령 지지자들도 하나 둘씩 돌아섰다. 소주성을 실험하고 실패한 유일한 나라
문 정부의 핵심 경제정책인 소주성은 대기업의 성장에 따른 임금 인상과 같은 낙수효과보다 ‘근로자(자영업자 포함)의 소득을 인위적으로 높여 경제성장을 유도한다’는 것을 골자(骨子)로 하고 있다. 즉, 근로자의 소득을 인위적으로 높이면 이들의 소비지출이 늘어나게 되고, 그에 따라 기업투자와 생산 활동이 활성화되어 국민소득이 증가하는 선순환이 이어져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다는 주장이다. 굳이 족보를 따지자면, 포스트 케인지언(Post-Keynesian) 경제학자들의 임금주도성장론(wage-led growth)을 뿌리로 하고 있는 ‘한국판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소주성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전까지 세계 경제학계에서 가설 정도로 취급을 받고 있던, 모델조차 정립되지 않은 미완성 이론에 불과한 것이었다. 문 대통령 취임 이전은 물론 2023년 현재까지 소주성을 국가경제정책의 기조로 삼아 전 방위적으로 시행한 국가는 우리나라밖에 없다. 그래서 국내에서는 물론 수많은 외신들도 문 정부의 소주성을 설명하며 ‘실험’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던 것이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은 담대하게(?) 소주성 실험을 밀어붙였다. 결과는 ‘소득주도빈곤’으로 끝나고 말았다.
지난 2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송언석 의원실이 국세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 5년간 상위 10% 소득자의 연평균 통합소득(근로소득과 이자,배당,사업,연금,기타소득 등 종합소득의 합)은 1,853만원(2017년 1억4천644만원) 늘어난 반면, 하위 10%는 19만원(2017년 186만원) 늘어나는 데 그쳤다. 이로 인해 상위 10% 소득자와 하위 10% 소득자의 1인당 소득격차는 2017년 68.7배에서 2021년 71.4배까지 늘어났다.
문재인 정부 5년간 소득불평등이 박근혜 정부 때보다 심화됐다는 주장도 나왔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지난 3월 국세청의 통합소득 100분위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 때 소득 하위 64% 이하 구간의 소득상승률은 1.1%였다. 박근혜 정부 시기 2.1% 상승률의 절반 수준으로 뚝 떨어진 것이다. 반면 상위 10%의 소득상승률은 문재인 정부 1.3%로 박근혜 정부의 0.9%를 크게 웃돌았다.박근혜 정부 때보다 심화된 소득불평등
문재인 정부는 소주성의 효과를 높이기 위한 수단으로 제일 먼저 최저임금 인상을 들고 나왔다. 문 정부는 2017년 7월 15일, 2018년 최저임금(시급)을 전년 6,470원보다 1,060원이나 오른 7,530원(16.4%)으로 인상을 결정했다.
문 대통령은 이틀 뒤에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최저임금 1만원 시대로 가는 청신호’라고 평가한 뒤, “극심한 소득 불평등을 완화하고 소득주도 성장을 통해 사람 중심의 국민성장 시대를 여는 대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최저임금이 크게 올라 당장 내년부터 경제성장률을 견인하는 효과도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한 “최저임금 1만 원은 단순한 시급 액수가 아니라, 사람답게 살 권리를 상징한다”며, 대선 공약이었던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 인상’을 반드시 이행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최저임금만 인상하면 ‘소득불평등이 완화되고, 근로자의 삶의 질이 향상되고, 경제도 성장할 것’이라는 발상을 갖고 있지 않다면 쉽게 할 수 없는 어처구니없는 말들이었다. 문 대통령과 참모들의 경제에 대한 인식과 정책이 얼마나 조악(粗惡)한 수준이었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게 해 준다. 3만 달러 시대에 3달러 인생이라니…
문 정부는 소주성의 효과를 내는 데만 급급해 지역의 경제 상황이나 업종 등에 대한 고려 없이 급격하게 최저임금을 인상했다. 경제계에서는 큰 우려를 나타났고, 자영업자들은 생업을 포기하고 최저임금 인상을 철회하라며 길거리로 나섰다.
반발이 거센 만큼 피해는 컸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최저임금을 감당하지 못해 문을 닫거나 고용을 포기하는 업장이 속출했고, 일자리를 잃은 이들이 넘쳐났다. 최저임금은 인상되었지만, 정작 일을 하지 못해 이전의 소득조차 얻지 못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라는데, 내 인생은 왜 3달러 같냐’는 등의 자조(自嘲)와 푸념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한 경제 악화는 경제지표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8년과 2019년 ‘가계 동향 조사 결과’에 따르면, 소득 상위 20%와 소득 하위 20% 간의 소득 격차 등을 보여주는 소득불평등 지표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인건비 부담으로 고용 조정이 이루어진 서비스업과 일용직 및 임시직 일자리가 크게 줄어든 반면, 관리직과 전문직 일자리 등이 많은 고소득층의 임금은 늘어났다.
중산층 소득도 전체적으로 감소한 것으로 나타나 문 정부가 기대한 최저임금 인상의 효과는 사실상 전무했다. 저소득층 임금소득을 늘려 소득분배를 개선하겠다는 소주성이 오히려 소득 양극화만 부채질했던 것이다. 노동자의 생산성 향상 없이 임금을 강제로 끌어올린 정책이 시장에 불균형을 초래한 당연한 결과였다.
문 대통령 임기 내 있었던 다섯 차례의 최저임금 결정에서 평균 인상률은 7.3%였다. 이는 박근혜 정부 때의 최저임금 평균 인상률 7.4%와 차이가 거의 없는 것이다. 앞서 2018년도와 2019년도 최저임금은 각각 16.4%, 10.9%로 크게 올렸으나, 2020년도 2.85%, 2021년도 1.5%로 인상률이 급격히 낮아진 탓이다. 2022년도 인상률은 5.1%로, 2021년보다 440원이 오른 8,720원이었다. ‘최저임금 1만원 미만’으로 둔갑한 ‘사람답게 살 권리’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은 임기 2년 차에 접어들며 백지화 수순을 밟았다. 각종 경제지표가 악화하는데도 소주성 실험을 고집했던 홍장표 경제수석과 장하성 정책실장 등 청와대 1기 경제팀도 교체됐다.
문 전 대통령은 2018년 7월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최저임금위원회의 결정으로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을 이룬다는 목표는 사실상 어려워졌습니다. 결과적으로 대선공약을 지키지 못하게 된 것을 사과 드립니다”라고 말했다. 불과 1년 전 문 대통령이 강조한 ‘최저임금 1만원, 사람답게 살 권리’가 ‘최저임금 1만원 미만, 사람답게 살 권리’로 바뀐 순간이었다.
문 대통령이 사과라는 단어를 썼지만, 행간을 살펴보면 사과가 아니라 변명이었다. 문 대통령 자신은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을 지키려고 했는데, 최저임금위원회가 그런 결정을 내려 지키지 못하게 됐다고 핑계를 댄 것이다. 잘못된 공약을 무리하게 추진해 나라 경제를 큰 혼란과 침체에 빠뜨려 놓고서도 자신의 책임은 없다는, 참으로 뻔뻔하고 영혼 없는 사과였다.
문 대통령은 사과 발언이 있던 다음 달인 8월 국무회의에서 “최저임금 인상은 소득주도성장의 정책적 수단 중 하나일 뿐 전부가 아닙니다”라며, 최저임금 인상의 의미를 축소했다. 또한 “최저임금 인상은 말 그대로 저임금 노동자들의 근로소득을 높여 주기 위한 것입니다. 그 목적에서는 이미 소기의 성과를 거두고 있습니다”라고 함으로써 소주성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것임을 밝혔다. 국민들에겐 고통 연장을 알리는 협박이나 다름없었다.
- 다음 회에는 <대한민국 경제를 ‘마루타’로 만든 문재인 정부3> - “‘경제 잡은’ 문 정부의 선무당들”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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