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 J재판》과 《이 J 재판》 ■ 배심원제의 문제점
1995년 10월 3일. 오 제이 심슨 (O J Simpson) 은 무죄를 선고받았다. 심슨 은 미국프로풋볼(NFL)의 전설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이다. 마이클 조던이 등장하기 전 미국 최고의 흑인 스포츠 스타라고 보면 된다. 끼도 넘쳤다. 한국으로 치면 각종 《예능》으로 큰 인기를 누렸다. 영화 《총알 탄 사나이》에도 출연했다.
《슈퍼스타》 심슨 은 1994년 전처 니콜과 니콜의 친구를 살해한 혐의로 기소됐고, 이듬해 재판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증거는 많았다. 범죄 현장과 심슨 집에서 장갑이 한짝 씩 발견됐고, 각 장갑에 피해자의 혈흔과 체모가 묻어 있었다. 심슨 의 차에서도 같은 증거가 발견됐다. 심슨 은 알리바이도 없었다. 오랜 기간 전처 니콜을 학대, 그에 따른 경찰 출동 기록도 9번이나 됐다. 경찰 보고서에 “그가 날 죽이고 말 것”이라는 니콜의 증언도 남아 있었다.
그래도 심슨 은 무죄였다. 《드림팀 변호인단》의 능력도 있었지만, 더 중요한 건 그들의 정치적 기술이었다. 《사법의 정치화》였다.
■ 《법리》위에 《인종주의》
오 제이 심슨 은 흑인이었다. 그 변호인단은 재판의 테마를《인종주의》로 바꾸었다.
당시 미국 특히 LA 흑인 사회는 인종차별 트라우마가 깊게 남아있었다. 1992년 LA 폭동도 우연이 아니었다.
변호인단은 LA 경찰에 인종차별 프레임을 씌웠다. 생중계된 심슨 의 재판은 리얼리티 쇼가 됐다. 세기의 재판답게 온 관심이 집중됐다. 267일간 1105점의 증거들이 제시되고, 133명의 증인이 출석했다. 속기록만 4만5천 쪽에 달했다.
그 절정은 1994년 6월 17일 심슨 의 도주를 쫓는 추격전이었다. 그 장면 역시 미국 전역에 생중계됐는데, 미 역사상 6번째로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참고로 시청률 1위는 달착륙이었다.
마침 그 시간 NBA 파이널 경기 중이었다. 방송사는 동시 중계에 들어갔다. 큰 화면을 차지한 건 심슨 추격전이었다. NBA 파이널이 작은 화면이었다.
■ 흑인 심슨이 흑인 위해 한게 뭐라고?
변호인단의 전략은《사법의 정치화》였다. 유죄냐 무죄냐 그에 대한 답은 인종에 따라 양극화됐다.
배심원 12명 가운데 9명이 흑인이었다. 1995년 10월3일 심슨에게 무죄가 선고되자 미국인 모두 울었다. 백인들은 분해서 울었고, 흑인들은 기뻐서 울었다.
짚을 게 있다. 심슨 은 흑인 인권 신장을 위해 헌신한 적이 없다. 어려움 속에 선수 직을 걸고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흑인 스포츠 스타들은 있었다. 하지만 심슨 은 침묵했다.
그는 늘 “나는 흑인이 아니라 O J” 라고 말했다고 한다. 실제로 그는 부자들이 다니는 사립대학을 나왔고, 부자 동네에 살며 부자 친구들과 어울렸다. 주로 백인들이었다.
그런 심슨 이 1990년대 인종갈등의 수혜자가 된 것이다. 심슨과 흑인 커뮤니티가 서로 이용했다는 비아냥도 많았다.
인권 운동가 대니 베이크웰은 한 방송사 다큐멘터리에서 “OJ는 우리의 대의를 담는 그릇이었고, 도구에 불과했다” 고 고백한 바 있다.
무죄를 선고받은 심슨 의 삶은 평탄하지 못했다. 61세에 강도질을 벌이다 징역 33년형을 받아 수감됐고, 가석방된 뒤 올해 세상을 떠났다.
■ 피부색으로 무죄(OJ), 정치색으로 무죄(이J)
이재명 대표(이하 존칭 생략)가 위증교사와 관련해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오 제이(O J)》 판결이 떠오른다.
이재명 이름도 이니셜은 《이 제이(J)》다. 《이 J 판결》도 《O J 판결》만큼 얘깃거리가 풍부하다.
먼저 법조인들은 이구동성으로 그 판결을 이해할 수 없다고 한다. 사람들은 정치색에 따라 《유죄》《무죄》를 외친다.
그 무죄 주장은 논리적이진 않다. 대개 검찰이 이재명 을 겨냥, 표적수사를 했기 때문에 무죄라는 식이다. 《사법의 정치화》 한국 버전이다.
법조인들은 위증교사 증거가 뚜렷하다고 한다. 변론 요지서를 보냈고 무엇보다 녹취록까지 있기 때문이다. 어느 변호사는 방송 패널로 출연해 공개적으로 이 대표의 징역형을 100% 장담한다고 말했다. 판결은 존중하지만 상식으로 판단컨데, 어떻게 위증을 한 사람만 유죄고 그 위증을 부탁한 사람은 무죄가 되는지 모르겠다. 인과관계를 따져보더라도 모순이 아닐 수 없다. 《B》가 유죄를 받은 게 《A》 때문인데, 어떻게 B만 유죄고 A는 무죄가 될까 싶은 것이다.
그리고 《게임이론》 시각에서 보더라도, B 홀로 위증할 유인이 존재치 않는다. 그렇게 해서 얻을 게 없기 때문이다. 그럼 B는 얻을 것도 없는데, 혼자 위증을 하고 혼자 처벌을 받았다는 뜻이 된다. ■ 이재명이 민주투사? 인권운동가?《O J 재판》처럼 《이 J 재판》도 매우 정치적이다. 이재명 의 피선거권 때문이다.
지난번에 선거법과 관련해 이재명 에게 유죄 판결이 나왔을 때, 민주당 정치인은 엉뚱하게 DJ 를 언급했다. DJ 가 사형선고를 받았지만, 국민적 지지를 얻어 대통령이 됐다는 식의 주장을 폈다. 엉뚱한 프레임 전환이다.
사실 《검찰독재》《정치검찰》 같은 말은 허구다. 살인범을 수사하는 LA경찰에게 인종주의자 프레임을 씌우는 것과 비슷하다. 한국 검찰이 기소한 이는 인권 운동가가 아니다. 심슨 이 흑인 인권 신장에 기여한 게 없듯, 이재명 도 마찬가지다. 그가 한국 민주주의와 인권에 무슨 기여를 했는지 기억에 없다. 그리고 그가 사회적 약자를 위해 뭘 했는지도 모르겠다.
■ 《이J재판》은 30년전 《OJ재판》데자뷰
그는 심슨 처럼 자신의 사익추구에 부지런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라도민들이 《묻지마 지지》를 몰아주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한국은 배심원제를 채택하고 있지 않지만, 사실상 전라도민들이 《이 J 재판》에서 배심원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이재명=좌파=전라도》 등식도 황당하다. 그 와중에 무죄를 선고한 판사의 인적사항이 유출됐는데, 고향이 전라도라고 한다. 그 개인에 대한 호불호 역시 극명하게 엇갈리는 중이다.
한쪽에서는 폭발적인 인기를 이J 있고, 다른 한쪽에서는 매도당하는 중이다. 일종의 팬덤 현상이다. 정치인의 팬덤도 아니고 재판부의 팬덤. 이게 정상일까 싶다.
《오 J 재판》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났었다. 《오 J 재판》은 미국인들에게 큰 상처를 남겼다. 대략 삼십 년이 지나 《오 J 재판》이 한국에서 재현될 조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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