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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 주변에 《맹달》이 너무 많다 … 그러다 《유봉》되겠다

뉴데일리

《맹획, 맹달, 그리고 ‘명령지자’ 유봉》

■ 한동훈, 맹획을 좋아한다고

한동훈 대표가 언젠가 말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삼국지》 캐릭터가 맹획이라고. 《칠종칠금》 맹획은 제갈량에 맞섰던 중국 남부 소수민족 지도자라고 보면 쉽다.

중국인은 중국을 중심으로 동서남북 방향에 사는 민족들을 동이, 서융, 남만, 북적이라고 불렀다. 모두 오랑캐라는 뜻이다.

현재 한국은 과거 《동이》였다. 맹획은 《남만》을 지켰다.

《남만》을 지금의 베트남이라고 보는 이들도 있다. 베트남 민족성은 만만치 않다. 고대부터 오랜 기간 중국과 싸워왔다.근대엔 프랑스, 일본, 미국과 싸웠다. 중국 공산당이 베트남을 침략했다 격퇴당한 적도 있다.

맹획은 오랑캐라 무시 받던 캐릭터였다. 한동훈 대표가 맹획을 찍은 건 《동이족》 한국인의 정체감 때문으로 보인다. 평가할 만하다.

맹획은 중국의 간섭을 매우 싫어했다. 하지만 힘이 턱없이 부족했다. 제갈량은 지혜가 있었다. 남만을 무력으로 굴종시키는 것 보다 그 지도자 맹획을 달래 촉나라에 충성토록 하려 했던 것이다.

그렇기에 맹획이 패배를 인정할 때까지 붙잡아 풀어주기를 일곱 번 반복했다. 그래서 《칠종칠금》이다. 반복게임인 것이다. 《삼국지 연의》에 따르면, 맹획은 제갈량의 인덕에 감응, 마음으로부터 충성을 맹세하기에 이른다.

■ 한동훈, 맹달에게 너무 기대고

《맹획》 한동훈이 주의해야 할 캐릭터는 따로 있다. 바로 맹달 이다.

한번 언급한 바 있다. 맹달 은 잘 포장하면 《중도》다.

맹달 은 자신의 머리 나쁨을 알지 못하는 진짜 머리 나쁜 간신배였다. 그가 난세를 산 방법은 이렇다. 위나라가 강해지면 위나라에 붙고, 촉나라가 강해지면 촉나라에 붙었다.

눈치가 비상했다. 유비 세력이 강해질 듯하자 재빨리 유비 쪽에 붙었다. 《미래권력》인 왕자 유봉에게 접근했다. 유봉은 양아들이었지만 유비의 친아들이 없었기에 그가 후계자가 될 걸로 기대했던 것이다. 한데 유비에게 친아들이 생겼다. 바로 유선이다. 《장판파 전투》에서 조운이 필사적으로 구출해 낸 이다.

촉나라 후계 구도가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유봉보다 마음이 더 바쁜 건 맹달 이었다. 《괄목상대》 일화로 유명한 오나라 여몽의 공격을 받아 관우가 큰 위기에 빠지자 유봉에게 원군을 청했다.

맹달 은 관우가 유비 앞에서 양아들 유봉을 《명령지자》라고 했다며, 유봉과 관우 사이를 이간질했다.

《명령지자(螟蛉之子)》란 양자를 비유해서 이르는 말이다. 원래 《명령》이란 나방을 의미한다. 벌의 한 종류인 나나니벌이 그런 《명령》의 새끼를 제 자식으로 삼는 걸 조롱하는 표현이다. 이는 남의 자식을 키워봤자, 그 근본을 모른다는 뜻이다.

맹달 의 충동질에 넘어간 유봉은 원군 파견을 거절했다. 상용 땅을 지켜야 한다고 둘러댔지만, 실은 《명령지자》 표현이 주는 모욕감 때문이었다.

결국 관우는 전사하고 만다. 관우와 유비는 《도원결의》를 맺은 의형제 사이였다. 따라서 유봉과 관우는 의리로 묶인 숙질관계였다. 그런데 맹달 은 유봉으로 하여금 인의의 최소한마저 무시하도록 만들었다.

맹달 은 유봉을 데리고 위나라에 투항한다. 더 큰 《정치 이윤》 을 위해서였다. 유봉은 자신의 사적 감정으로 인해, 촉나라에서 인심도 신뢰도 모두 잃고 말았다. 하지만 위나라에 투항한 건 말 그대로 선을 넘었다.

생각해볼 게 있다. 관우를 평생 괴롭힌 족쇄가 《이적 혐의》였다. 관우에게 《적토마》를 하사한 건 조조였다. 적벽대전 후 패주하던 조조를 화용도에서 놓아준 건 관우였다. 관우는 그 이유를 《인의》라 말했지만, 관우를 반대한 사람들은 그 《인의》가 뭔가 주고받는 《이해관계》라고 생각했다.

유봉이 맹달 을 따라 위나라에 투항해 갈 정도면, 그 사이를 짐작하고도 남는다. 유봉이 《명령지자》일망정 그래도 왕자였다. 왕자가 투항해가자 위나라 조정은 들떴다. 처음엔 대접도 그럴듯했다.

거기서도 문제는 또 맹달 이었다. 투항은 유봉이 했는데 생색은 맹달 이 내고 다녔다. 기고만장해진 맹달 은 유봉을 자신의 발아래 사람으로 여겼다. 자기 덕에 《명령지자》가 호사를 누린다며 모멸감을 줬다.

그쯤 되자 유봉도 스스로 돌아보게 됐다. 새삼스레 유비의 인정이 생각나기도 했다. 자신이 어리석었다.

되짚어보니 모든 게 경계인이자 중간자인 맹달 때문이었다. 유봉은 단호해졌다. 맹달 에게 기별도 하지 않고 홀로 촉나라에 되돌아갔다.

하지만 그를 맞은 건 유비의 냉대였다. 양아들은 양부의 격노를 사 참수당하고 말았다.

황당한 건 또 다시 맹달 이었다. 훗날 그는 다시 촉나라로 투항한다. 유봉과 달리 맹달 에겐 벼슬이 주어졌다.

예나 지금이나 관직은 능력 유무에 따라 주는 게 아니다. 왕정 하에선 더욱 그렇다. 일을 적당히 할 사람에게 관직을 준다.

하지만 처세의 달인 맹달 은 실력이 부족했다. 사마의에게 일격을 맞고 허무한 생애를 마감하고 만다.

■ 한동훈, 유봉을 아는가

맹달 이 환생해 국민의힘의 정치 신인 《맹획》에게 달라붙은 격이다. 《맹획》은 진심일 테지만, 맹달 은 진심이 아니다. 정체감 없이 권력욕만 가득한 이간질 전문가 맹달 은 자신의 출세를 위해 유봉을 세작으로 만들고 말았다.

맹달 의 처신을 좋게 말하면 《중도》다. 세작은 이마에 《세작》이라 써 붙이지 않는다.

한국 보수가 경계해야 할 건 좌우를 넘나드는 경계인들 또는 중간자들이다. 그들 중에 전향선언을 하지 않은 이들도 있다.

《중도》는 없다. 《중도 좌》 또는 《중도 우》는 있을 수 있다.

한동훈은 주위의 인사들에게 《중도 좌》 또는 《중도 우》 둘 중 하나를 찍어보라고 해야 한다. 수차례 지적했지만, 한국 보수 진영엔 맹달 같은 캐릭터가 많다.

이것도 저것도 된다는 식이다.

그들은 풋풋한 지도자 맹획을 유봉으로 둔갑시키고 말 것이다. 그 결과, 사람도 망하고, 진영도 망하고, 나라도 망하게 된다. 정체감이 인기보다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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