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그대로 지극히 개인적 소견의 담론
민주당과 흡사한 덤 앤 더머의 이야기
필자가 책 내용을 직접 확인한 건 아니나, 또 교차검증은 되지 않으나, 혹자(或者)에 의하면 송(宋)나라의 학자 사마광(司馬光)이 저술한 자치통감(資治通鑑)에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나온다고 한다.
때는 당(唐)나라 경종(敬宗‧생몰연도 서기 809~827) 시대. 제국의 수도 장안(長安)의 한 구석탱이에 점쟁이 소현명(蘇玄明)과 염색공장 근로자 장소(張韶)란 이가 살았다. 둘은 ‘절친’이었다.
장경(長慶) 4년인 824년의 어느 날. 소현명은 염색하느라 온 몸이 시퍼래진 장소에게 이렇게 점잖게 위로를 건넸다. “동생, 이 형님이 자네를 위해 점을 쳐보니 자네는 장차 황궁(皇宮)에 들어가 대전(大殿)에 올라 앉아 나와 함께 수랏상을 먹고 부귀를 누릴 걸세”
어디까지나 반농담인 덕담이었으나 장소는 “정말?” “정말 그럴까?” 몇날며칠을 혼자 이리저리 생각하다가 “안 될 건 뭐 있나?” “난 나중에 지존무상(至尊無上)의 몸이 될 것이다” 덜커덕 동네형의 말을 진심으로 믿어버렸다.
장소는 실천력 하나는 끝내줬다. 그는 거사(擧事)를 위해 사람과 병장기를 은밀히 모으기 시작했다. 또 경종이 병사들과 함께 격구(擊毬)놀이에 골몰할 때를 틈타 황궁을 덮친다는 계획을 세웠다. 장소에게는 기적처럼 그 날은 정말로 찾아왔다.
황궁 수비병들이 온통 황제의 격구놀이에 동원되고 궁내는 환관 몇몇만이 지키고 있던 날. 장소와 그 무리는 풀더미를 실은 수레에 병장기들을 숨기고서 제국의 심장부로 향했다. 그런데 궁문(宮門)의 병사 하나가 “풀만 있는 수레가 왜 이리 무겁나” 의심하며 뒤지다가 그만 흉기를 발견해버렸다. 이판사판이다 여긴 장소는 해당 병사를 이승에서 탈출시킨 뒤 뒤따르는 이들과 함께 고래 같은 함성을 내지르며 황궁으로 난입했다.
난데없는 고성방가에 놀란 황제는 신하 마존량(馬存亮)의 등에 업혀 군영(軍營)으로 도피했다. 장소는 무인지경(無人之境) 가듯 대전까지 돌파했다. 마침내 황궁 중앙까지 다다른 장소는 덩달아 따라온 동네형 소현명과 정말로 어탑(御榻)에 앉아 황제가 저녁밥 삼으려고 차려놨던 산해진미(山海珍味)를 맛있게 냠냠 빼앗아 먹어버렸다. 동네형의 예언이 실현되는 감격스런 순간이었다.
그런데 아뿔싸. 접시에 머리 처박고 정신없이 쩝쩝거리다 마침내 이쑤시개로 이 쑤시던 장소와 동바(동네 바보형)는 그제야 자신들이 처한 현실을 알아챘다. 그들이 황제 탄핵‧하야를 위해 모은 대군(大軍)은 무려… ‘100여명’ 씩이나 됐던 것이었다! 황궁 저 멀리에서 아스라이 아지랑이 사이로 몰려오는 어림군(御林軍) 대장 강예전(康藝全)의 수천 병마(兵馬)를 본 덤 앤 더머는 일장춘몽(一場春夢)‧남가일몽(南柯一夢) 끝에 뭇 백성의 손가락질을 받으며 저자거리에서 목이 달아났다.
어제(28일) 국회 본회의에서 재표결에 부쳐진 해병대 채 상병 사건 특검법이 찬성 179표, 반대 111표, 무효 4표로 부결(否決)됐다. 더불어민주당은 범야권(180석)에 국민의힘 이탈표 16~17표를 더해 특검법을 통과시키고 대통령을 탄핵하겠다고 자신만만해했으나 결과는 정반대였다. 난리법석이 무색하게 오히려 범야권 의석보다도 못한 찬성표가 나왔다. 당경종 때의 덤 앤 더머처럼 개미 소변만한 세력만 갖고 정부를 뒤집어엎겠다고 나선 꼴이었다.
많은 국민은 이번 본회의 결과를 두고 가출한 배꼽을 찾기 바쁘다. 여소야대(與小野大) 정국이었던 21대 국회는 역대 최저 법안처리율이라는 오명(汚名)을 뒤집어썼다. 22대 국회에서 또다시 꼴사나운 작태 보이는 대신 정부여당과 함께 민생(民生)을 위해 노력하는 야당이 되길 바란다.
오주한 前 여의도연구원 미디어소위 부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