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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담] 옥쇄(玉碎)할 각오들은 돼 있나

오주한

말 그대로 지극히 개인적 소견들 담은 담론

개헌저지선 무너지면 안 그래도 죽을 운명들

 

<파양호 대전>

 

우리 속담에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草家三間) 태운다”는 말이 있다. 사전적 의미는 “집안이 다 무너져 결국엔 다 같이 죽게 될 걸 생각 안 하고 눈앞의 이익만 노린 채 덤빈다”는 뜻이다.

 

명사(明史) 등에 의하면 진우량(陳友諒‧생몰연도 1316~1363)은 원(元)나라 말기 군벌이었다. 1351년 몽골족 지배층에 대항하는 홍건적(紅巾賊)이 봉기하자 그도 홍건적 분파(玉碎) 서수휘(徐壽輝) 휘하에 들어갔다. 서수휘는 천완송제국(天完宋帝國)이라는 세력을 세웠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천완세력은 주객전도(主客顚倒)에 휘말렸다. 여러 중진(重鎭)들을 숙청한 진우량은 서수휘를 겁박해 천도(遷都)하고 스스로 한왕(漢王)에 올랐다. 그리고 마침내 1360년 서수휘를 암살하고 권력을 오로지했다.

 

폭주(暴走)는 그치지 않았다. 진우량은 서수휘 사망 당해에 장강(長江) 중류를 근거지로 해서 세력명을 대한(大漢)으로 고치고 칭제건원(稱帝建元)했다. 2006년 드라마 주원장(朱元璋)에선 진우량이 “난 아직 준비가 안 됐다” 거부했으나 주변이 억지로 옥좌(玉座)에 앉힌 것으로 묘사됐다.

 

드라마 장면을 옮기자면 어느 날 한 노인이 찾아와 집안 대대로 물려받은 한고조(漢高祖)의 옥좌라고 거짓말하며 그럴싸한 호화쇼파 바쳤다. 그러자 진우량은 “여기에 한 번 앉으면 (천하에 소문이 퍼져) 다시는 내려올 수 없다”며 난색 표했다.

 

그간 진우량을 세력 1인자로 올리는데 공헌한 공신(功臣)들은 진우량의 아들 진리(陳理)에게 몰려가 “우리계파끼리” “우리가다먹자” 주장했다. 진리로부터 묘책을 들은 공신들은 진우량 사지를 붙들고 옥좌에 내던지다시피 앉힌 뒤 황포(黃袍) 입히고 면류관(冕旒冠) 씌웠다. 처음엔 경악하던 진우량 입가에도 점차 미소가 피어났다.

 

다시 정사(正史)로 돌아가 천하에 자신의 즉위를 선포한 진우량은 숙적인 오왕(吳王) 주원장과의 대결 위해 수군(水軍)을 집결했다. 그리곤 1363년 파양호(鄱陽湖)로 나아가 주원장에게 싸움 걸었다.

 

뭍이 아닌 물에서의 결전을 택한 이유는 수로(水路)를 장악해야 강남 전체를 집어삼키기 위한 대규모 병력‧물자를 신속히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도 대규모 수출입은 바닷길을 통해 이뤄진다. 때문에 강대국들은 운하(運河)‧해로(海路) 장악을 위해 신경전 벌이고 있다.

 

<난파선 탈출, 버려진 당원들>

 

진우량 측 기세만은 진심이든 가식이든 하늘을 찔렀다. 한군(漢軍)은 호왈 60만에 달한 반면 오군(吳軍)은 20만에 그쳤다. 진우량의 수백 척 누선(樓船)은 높이 약 30m에 층마다 대포를 달았다. 배가 얼마나 컸는지 갑판에서 말(馬)이 내달릴 수 있었다.

 

건곤일척(乾坤一擲) 승부를 피할 수 없게 된 주원장은 군사를 휘몰아 대적했다. 1363년 8월30일~10월4일 전개된 이 파양호대전(鄱陽湖大戰)은 대륙 역사상 최대 규모 수전(水戰)이었다. 나관중(羅貫中‧1330?~1400)이 저술한 소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의 적벽대전(赤壁大戰) 묘사도 파양호대전에서 차용(借用)한 게 많다.

 

진우량을 황제로 세우고서 승상(丞相)‧대장군(大將軍) 등 감투에 공천(公薦)돼 떵떵거리던 공신들은 승리를 주장했다. 허나 제 기량을 과대평가하고 자신을 영웅이라 착각하던 진우량은 냉엄한 현실과 마주했다.

 

파양호는 그 면적이 거의 서울의 수 배(3000~4000㎢)에 달하는 거대한 담수호(淡水湖)로서 바다처럼 조수간만차(潮水干滿差)가 있고 파고도 높다. 게다가 한군 수군 상당수는 정예 수군이 아닌 농‧어민을 아무렇게나 징집한 거라 24시간 파도‧한파에 노출된 대다수가 심각한 뱃멀미‧역병에 시달렸다.

 

둔한 머리 짜낸 진우량 주변은 계책이랍시고 거함(巨艦)들을 쇠사슬로 엮을 것을 권했다. 동서남북 다 누빈 주원장과 달리 견식(見識)이 짧았던 진우량은 즉각 이를 채택했다.

 

육지처럼 굳건해진 함대 위에서 깔깔대는 한군 수군들 본 주원장은 “찬스다” 외치며 화공선(火攻船)들 띄웠다. 화약 등 인화물(引火物)로 인해 불타오르는 화공선은 그대로 한군 함대를 덮쳤다. 불길은 광풍(狂風)을 타고 삽시간에 번져나가 모조리 태워버렸다. 명사 태조본기(太祖本紀)는 그 날의 장면을 “화염이 밤하늘에 가득하니 호수는 모두 핏빛이었다” 묘사했다.

 

일격을 맞은 진우량은 냉정히 판단해 역격(逆擊) 가하거나 일보후퇴해야 했지만 우왕좌왕했다. 좌우를 도리도리하다가 파양호에 갇히게 된 한군은 양식마저 다 떨어져 손가락 빠는 신세가 됐다.

 

세력이 패망 일보직전이 되자 그간 진우량을 뜨거운 화롯불 위에 앉혀 신나게 아부하고 갖고 놀며 제 권세만 챙기던 지도부는 제 살 길 찾아 떠나기 시작했다. 좌우 금오장군(金吾將軍)은 “우리는 오왕께 그냥 항복하려 했는데 저 진우량 놈이 고집 피워 이리 된 겁니다” 꼬리 치며 주원장에게 투항했다.

 

세력 결딴에 큰 공을 세운 세력 지도부 일부는 외국에 가서 호의호식(好衣好食)하고 잘 살았다. 한나라 세력은 끝내 멸망하고 진우량은 유시(流矢)에 맞아 눈과 머리가 관통돼 처참하게 사망했다. 그러자 진우량의 아들 진리는 동해 건너 고려(高麗)로 이민 가서 지금의 경남 양산시에 정착했다. 피해를 본 건 오직 역적(逆賊) 신세가 돼 명나라 276년 역사 내내 유랑민처럼 떠돌게 된 말단 당원들이었다.

 

<개헌저지선 잊지 말라>

 

국민의힘이 ‘한동훈 비상대책위원회’로 굳어지는 모양새다. 당내 특정세력은 반대 측을 향해 “싸X지 없다” 등 욕설 퍼부으며 끝내 한동훈 비대위를 몰아붙이는 형국이다. 이들이 왜 이러는지는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당내 특정인사 호위 모양새를 펼치고 자기편 인물을 지도자로 세움으로써 공천이라는 이름의 빈대를 잡기 위해서 아닐까라는 것을.

 

그런데 만에 하나 내년 총선 결과가 기대에 못 미치게 될 경우 특정세력이 그 책임을 지고 침몰하는 당, 무너지는 초가삼간과 함께 장렬히 옥쇄(玉碎)할지는 의문이다. 지금 하는 걸 보면 아마도 언제 한동훈 비대위 밀었냐는 듯 한 장관은 어찌되든 상관없이 여기 저기 흩어져 제 몸보신하기 바쁘지 않을까 싶다. 양남(강남‧영남) 등 안방에서 금배지 단 이들은 더더욱 말이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한다. 만에 하나 총선 의석수가 100석 밑으로 내려가 개헌(改憲)저지선마저 무너지면 금배지 방탄(防彈)도 무용지물이 됨을.

 

야당으로선 다음 대선 이후든 이전이든 언제든 헌법개정을 통해 국회의원 불체포특권을 폐지한 뒤 선택적 체포, 핀셋 체포만 하면 그만이다. 국회 입성에 실패한 국민의힘 특정세력 원외인사들이 해외로 도주해 펜트하우스 즐긴다 해도 야당으로선 인터폴(Interpol) 등에 의뢰해 적색수배하면 그만이다. 무너진 초가삼간, 식물용산으로는 이를 막을 힘은 없다. 혹 “안 되면 야당이나 제3지대나 가서 붙지”란 속셈이라면 환상도 그런 환상이 없다.

 

당의 명운(命運)을 도박하듯이, 폭주레이스 하고 야X 쓰듯이 갖고 놀고 싶으면 그리해도 된다. 다만 사람이라면 내년 총선 결과에 책임은 지길 바란다. 만약 당이 망하면 그들은 안 그래도 죽을 목숨들이니까. 냉소적 목소리 높지만 아무튼 그들의 도박이 성공하길 바란다. 불쌍한 말단 당원들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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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한 前 여의도연구원 미디어소위 부위원장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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