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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담] 한국의 암기王 뽑기 콘테스트

오주한

말 그대로 지극히 개인적 소견 담은 담론

전근대 때보다 못한 대한민국 수능시스템

‘창의력’ 美 교육시스템 장점들 수용해야

 

<아바타 쇼크>

 

2009년 헐리웃영화 아바타(Avatar)가 개봉하자 전 세계가 숨죽였다. 시대를 앞서가는 수려한 3D영상은 국제사회 시선을 사로잡았다. 일본의 오시이 마모루(押井守) 감독도 “미국 기술력은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다” 백기 들었다고 한다. 마모루는 사이버펑크 영화 공각기동대(攻殻機動隊) 등을 통해 숱한 헐리웃 감독들에게 영감(靈感) 끼친 인물이다.

 

비단 영상분야뿐만 아니라 미국은 온갖 첨단문물의 산실(産室)이다. 앞선 칼럼에서 다뤘듯 세계 최초 항공기는 물론 음속기(音速機)도 미국에서 탄생했다. B-2 등 스텔스(Stealth) 항공기는 세계에서 유일무이(唯一無二)하게 레이더 추적을 거의 완벽히 피할 수 있다.

 

현대인류 생활사와 밀접한 인터넷‧휴대전화‧위성항법장치(GPS)‧전자레인지‧항공기‧레토르트식품 및 대량생산 자동차 등 대부분 문물이 미국에서 첫 선 보였고 아직도 미국이 독보적 선진국이다. 이세돌 9단을 꺾은 바둑프로그램 알파고(AlphaGo)도 미국기업 구글(Google) 산하 업체가 개발했다. 바둑은 장기‧체스 등과 달리 고도의 전략전술이 필요해 그간 기계는 범접할 수 없는 영역으로 여겨져 왔다.

 

미국의 기술력은 2021년 현대차가 인수한 미국 기업 보스턴다이내믹스(Boston Dynamics‧BD)의 로봇제품들에서 시각적으로 확연히 실감할 수 있다. 세계 최초 이족보행(二足歩行) 로봇은 일본 혼다(本田)의 아시모(アシモ)였지만 2023년 현재 BD의 로봇과 비교하면 아시모는 그저 아장아장 걷는 쇳덩어리일 뿐이다.

 

필자가 뜬금없이 일요일 대낮에 “미국 만세” 외치는 이유는 나이키신발 신고 미국대사관 쳐들어가는 족속들 주장대로 ‘수구꼴통’이거나 ‘미제(米帝)제국주의자’ ‘미제침략자 앞잡이’라서 그런 건 아니다. 있는 현실 그대로를 얘기했을 뿐이며, 저러한 미국 국력(國力)의 원천(源泉)을 고찰하고자 함이다. 바로 ‘교육’ 말이다.

 

<“SAT가 만능은 아냐”>

 

필자는 학창 시절 피치 못할 사정으로 인해 시기를 놓쳐 소위 말하는 가방끈이 짧다. 때문인지, 그리고 직업상 다루는 분야와도 거리가 다소 있어서 그런지, 교육 분야 쪽에 관심이 덜했다. 그런데 요즘 수능(修能) 만점자 얘기가 한창 화제다. 집안 꼬마들이 무럭무럭 자라나면서 교육에 조금씩 관심 갖던 터라 필자는 문득 미국판 수능과 우리 수능 차이가 궁금해졌다.

 

인터넷에서 여러 키워드로 검색하다 보니 올해 7월 모 유력일간지 기사가 눈에 띄었다. 신문과 인터뷰 가진 모(某) 대학 총장은 “미국 명문대는 (미국판 수능 격인) SAT 만점자도 떨어뜨린다. 수능 체제 바꿔야 한다”는 취지로 지적했다.

 

혹 해당 총장의 일방적 주장은 아닌가 싶어 교차검증 차원에서 더 검색해보니 유사 보도들이 쏟아졌다. 올해 9월 모 일간지 미주(美洲)본사 발행기사 보니 아이비리그(Ivy League) 명문대 입학전형에서 SAT 등 시험점수를 제출 안 하는 경향이 커지고 있다고 한다.

 

2017년 7월 다른 일간지 미주 한인(韓人)신문은 그 이유를 설명했다. 매체는 ‘SAT 만점 맞고도 명문대 떨어지는 이유’ 제하 기사에서 “미국은 명문대학이라고 하더라도 공부 잘하는 학생만 뽑는 것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미국 교육시스템은 단순 ‘암기왕(王)’을 뽑는 게 아니라 “이 학생이 얼마나 대학교육 받을 준비가 잘 됐나”를 본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필자 기억으로도 “미국 수학(修學) 지옥문은 대학부터 열린다”는 옛말이 떠올랐다. 물론 필자는 현장에 가 본 적이 없기에 100% 사실인지는 모르겠으나, MIT 등의 ‘공부벌레들’ 학업강도(強度)는 상상초월이라고 한다. 24시간 365일 상아탑(象牙塔)을 떠날 생각을 안 한다고 한다. 농담 좀 보태 “연인과 사랑 나눌 때도 물리학‧수학적으로 한다”고 한다.

 

이들은 단순히 뭔가를 달달 외우고 의미도 모른 채 따라 읊는 게 아니라 해당 학문의 근본 메커니즘(Mechanism)을 이해하고 자신만의 새 기술‧철학 등 근간으로 삼는다. 고교 때부터 그렇게 교육 받는 곳이 미국이다.

 

<OECD 3위 규모의 스타트업 폐업률>

 

반면 대한민국은 암기 잘 하는 사람이 곧 일등이다. 이조시대(李朝時代) 때 마냥 그저 달달 외우는 게 최고다.

 

어쩌면 조선시대 때보다도 더 후퇴했을 수도 있다. 초시(初試)‧복시(覆試) 등을 통과한 수험생들은 무려 임금의 질문에 창의적으로 답하는 전시(殿試)에서 합격해야 비로소 제대로 된 관모(官帽) 썼다. 대다수 임금은 국정(國政)에 이골이 날 대로 났기에 수험생으로선 그저 교과서에 나온 원론적 논술답안 내놓는다고 되는 게 아니었다.

 

합격생들은 또 문무(文武) 넘나들며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산전수전 다 겪어야 비로소 영의정(領議政) 등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수능 고득점자에게 사실상 벼락출세길이 보장되는 오늘날과는 180도 달랐다. 초중고 12년만 외우고 또 외우며 고생하면 평생이 보장된다는 건 2023년 우리 사회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사람을 오로지 숫자만으로 평가하는 이러한 경직성(硬直性) 때문인지 대한민국은 좀처럼 발전 기미가 안 보인다. 오로지 외우기만 했으니 사회생활 시작해서도 데이터에만 집중한다. 창의성(創意性)은 ‘용X리’ 만든 모 인사처럼 허울 좋은 자기홍보(PR) 문구로 전락한다.

 

지난 10월 중소벤처기업부의 양금희 국민의힘 의원실 제출 자료에 의하면 국내 스타트업의 5년 내 폐업률은 66.2%에 달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3위 수준이다. 모든 청년이 그렇지는 않지만, 의기양양히 창업한 20~30대들 상당수가 정작 창업 후엔 뭘 어떻게 창의적으로 해야 할지 몰라 손 놓고 있는 게 실제 현장풍경이다.

 

그 손해는 10~20년 후 40대가 될 청년들, 그들을 허리 삼아 지탱돼야 할 국가 모두에게 돌아간다.

 

이제는 대한민국 ‘암기왕 뽑기 콘테스트’도 바뀌어야 할 시점이다. 물론 오바마(Obama)가 “한국 교육을 벤치마킹하자” 말했을 정도로 미국 교육시스템이 100% 완벽하다는 건 아니다. 그런데 이게 “한국 교육이 100% 완벽하다”를 뜻하는 건 아니다. 미국이 한국의 장점을 본받으려 하는 것처럼, 우리도 선진국의 장점을 받아들일 건 받아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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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한 前 여의도연구원 미디어소위 부위원장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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