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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라면 8백개 ‘한 끼’에 먹은 사나이

오주한

정계 최고위인사 ‘450만원 한정식’ 논란

민심괴리는 곧 정계퇴출…공감대 갖춰야

 

‘가붕개 인생’ 이해 못한 도련님

 

복왕(福王) 주상순(朱常洵‧생몰연도 서기 1586~1641)은 명(明)황제 만력제(萬曆帝)의 삼남(三男)이다. 태자(太子)엔 책봉되지 못했으나 복왕으로서 온갖 부귀영화(富貴榮華) 누린, 부정적 의미의 당대 ‘유명인사’였다.

 

주상순은 출생과 동시에 고생이라곤 모르고 자랐다. 봉지(封地)는 알토란 중의 알토란인 고도(古都) 낙양(洛陽)이었다. 만력제는 삼남 결혼식 때만 해도 황금 수십만 냥을 지출했다고 한다. 거처 겸 집무실인 복왕부(福王府)는 황거(皇居) 못지않게 화려했다.

 

날 때부터 돈을 물 쓰듯 쓰고 살았기에 주상순의 서민 삶 공감능력은 ‘제로’였다. 마치 그 옛날 암군(暗君) 사마충(司馬衷)처럼 “왜 백성들은 돈 없어 못 살겠다고 난리냐. 쌀이 없으면 고기를 먹어라” 식의 태도가 일상이었다. 그것도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하는 게 아니라, 정말 진심으로 왜 가난한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때문에 주상순은 하늘에서 돈 떨어지고, 땅에서 돈 솟아나며, “백성 돈은 곧 내 돈”이라는 뒤틀린 인생관‧정치관을 당연시했다. 그는 봉지에서 얻는 세금도 모자라 갖은 국책(國策)사업 빌미로 민가(民家) 곳간을 털었다.

 

낙양 일대 백성들은 급기야 거지신세가 돼 굶어 말라비틀어질 지경이 됐다. 명말(明末) 지도층의 무능‧부패에 따른 취업난은 빈곤함을 부채질했다. 반면 주상순은 얼마나 금의옥식(錦衣玉食)했는지 체중이 ‘100여㎏’에 달했다. 따라서 식비(食費)만 해도 천문학적 백성 주머닛돈이 소요됐을 것임이 틀림없다.

 

조정대신들은 이 문제아의 패악질을 알았지만 충성경쟁에만 열중하며 아부만 떨고 쉬쉬했다. 대신 “민생(民生)에 만전 기하자” 저희들끼리 으쌰으쌰하는 상투적 레퍼토리만 읊어댔다. 만력제 뒤를 이은 명나라 마지막 황제 숭정제(崇禎帝)도 이 패역무도(悖逆無道) 행각을 알았는지 몰랐는지 손 놨다. 조정 지지율은 자연히 바닥을 기었다.

 

결국 변고(變故)는 이미 예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1627년 반란을 일으킨 이자성(李自成‧1606~1645)은 관군(官軍)을 잇달아 격파하고 쾌속진격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은 법, 당시 관군도 이미 군대라 할 수 없었다. 장교들은 군수품(軍需品) 상당수를 횡령해 착복했으며, “쟤들이 있어야 군수물자가 계속 보급돼 우리가 돈벌이 한다”며 반란군을 공격하는 시늉만 했다.

 

그렇다 해도 낙양만큼은 달랐다. 고도를 지키는 정예군이란 자부심 때문인지, 수비군은 이자성을 번번이 격퇴했다. 역대 중원(中原)왕조 성벽 특징은 두께다. 지금도 장안성(長安城)의 경우 성벽 위로 자동차 두 대가 다닐 수 있다. 이러한 견고한 성벽에 수만 병사들이 올라 활을 쏴대니, 아무리 기세 오른 반란군이라 해도 쉽사리 함락하지 못했다. 더구나 반란군은 태반이 창칼 한 번 휘둘러본 적 없는 농민이었다.

 

그런데 그 와중에도 주상순은 제 무덤을 제 손으로 팠다. 죽음을 목전(目前)에 둘 지경이 되면 늦게나마 백성들에게 고개 숙여 사죄하고, 병사들에게 밀린 급여(給與)와 위로금을 아낌없이 베푸는 게 상식이다. 당장 말단졸병 출신 이자성만 해도 임금체불을 견디다 못해 봉기했다.

 

허나 상술한대로 타인 고통 공감능력 제로였던 주상순은 금단지 껴안은 채 “내가 왜?” “이렇게 막 요구를 들어주니 ‘가붕개’들 정신상태가 썩는 것 아니냐” 되물었다. 주변의 충고에 주상순이 내놓은 돈은 은자(銀子) 수천냥에 그쳤다. 원금(元金) 그대로 수만 장졸(將卒)들에게 나눠줘도 어느 코에 붙일지 모르는 판국에, 말단병사들에게 전달된 돈은 장교층이 횡령하고 남은 1000냥에 불과했다.

 

“저는 금이야 옥이야 닥치는 대로 긁어먹으면서, 우리 보고는 하천에서 가재‧붕어‧개구리처럼 배 곯으며 소박하게 살라니 대체 왜 우리가 저를 위해 목숨 바쳐 싸워야 하나” 끝내 폭발한 병사들은 칼자루를 거꾸로 쥐고 성문을 열어젖혔다.

 

그제야 다급해진 주상순은 금단지 껴안고 한 사찰(寺刹)로 달아났다. 허나 대자대비(大慈大悲)한 부처님이 이 축생(畜生)을 용서할 리 없었다. 누군가의 밀고(密告)로 이자성 측에 붙잡힌 주상순은, 비대한 몸을 가누지도 못한 채 산발(散髮)이 돼 머리채 잡혀 끌려나왔다.

 

이자성이 광장에 모인 백성들에게 처분수위를 묻자 모두가 “죽여라” 외쳤다. 한 끼 수백만원 만찬(晩餐)이 기본으로 넘어가던 주상순 목구멍에는 쌀겨조차 두 번 다시 못 들어가게 됐다.

 

“카메라 앞에선 국밥, 없으면 주상순세트”

 

필자는 어제(1일) 저녁을 편의점에서 봉지당 900원에 파는 모 라면에 배추김치 한 접시로 때웠다. 업무상 외식(外食) 때는 1만~1만5000원 국밥 또는 면요리 한 그릇으로 배를 채우는 편이다.

 

이따금 저녁회식 때 배부르게 먹어도 필자 입에 들어가는 양은 평균 5만원가량이다. 지금까지 필자가 가장 비싸게 먹은 점심은 한 끼 5만원 안팎의 서울 강남구 청담동 한정식(韓定食), 저녁은 인당(人當) 10만원 안팎의 같은 동네 참치회다. 쏠 때는 화끈하게 쏘지만, 다 먹고 난 후 결제 때는 청구되는 식비에 남모르게 술이 다 깬다.

 

언론사 시절 서울 여의도 국회 앞 등지에서의 업무상 미팅 때는, 김영란법(청탁금지법) 의식해 ‘2만9900원 김영란세트’ 등을 필자가 먼저 주문하곤 했다.

 

정치권 ‘누군가’가 먹었다는 식비가 부정적 의미로 화제다. 일부의 의혹제기에 따르면, ‘누군가’는 지난해 중순께 배우자 등 6명과 함께 서울 강남의 한 고급 한식당에서 식사했다. 그런데 총 결제금액은 ‘450만원’이었다고 한다. 그것도 배우자 단골 프리미엄으로 50% 할인받은 가격이라고 한다.

 

‘누군가’는 그간 국밥에 공깃밥 말아 뚝딱 해치운다고 자신을 선전해왔기에 충격은 더 컸다. 그래서 웬만해선 안 쓰는 휴대전화 계산기 한 번 두들겨봤다. 식비총액(總額)이 450만원이라고 했을 때 한 사람이 먹은 비용은 75만원, 총액 900만원이라고 했을 때 인당 비용은 150만원이다.

 

5만원 한정식에 반주(飯酒) 5000원을 합하면 5만5000원, 1만5000원 국밥에 반주를 합하면 2만원이다. 450만원은 필자가 먹었던 한정식+반주를 약 81명이 즐길 수 있는 돈이다. 국밥+반주는 225명, 900원 라면은 5000명이 배를 채울 수 있다. ‘누군가’가 먹은 75만원은 900원 라면 약 833봉지어치다.

 

물론 해당 의혹이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 1일 법원이 ‘누군가’의 450만원 내역(內譯)을 공개하라고 판결했기에, 진위여부는 조만간 밝혀질 수 있다. 만약 의혹이 사실이라면, ‘누군가’의 정치생명에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카메라 앞에선 국밥 먹고 없으면 웬만한 사람으로선 그런 게 있는지도 모르는 75만~150만원 초호화 한정식 먹고, 국민에겐 국가보조금 부정수급 근절 촉구하면서 자신은 피 같은 혈세(血稅)를 사적(私的)으로 써대고 나아가 청탁금지법 위반소지 있는 할인까지 받은 셈이 되기 때문이다.

 

하루하루 허리 졸라매는 이들로서는 허탈함도 이런 허탈함이 없다. 더구나 ‘누군가’가 업무라도 잘 처리해서 민생을 발전시키냐면 그것도 아닌 듯한 인상 짙다. 해당인사 지지율은 30%대를 턱걸이로 겨우 유지하고 있다. 주상순은 민심(民心)과의 괴리로서 비극을 자초했다. ‘누군가’는 수박 겉핥기로 서민흉내 내고 불리할 땐 숨는 대신 민생 속으로 들어가 직접 체험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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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한 前 여의도연구원 미디어소위 부위원장 [email protected]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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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 지출은 개인 사비로 해야 마땅하지만

    그렇게 못하겠으면 정도 껏 해야지,

    문재앙때 호화식사도 참 뭣같았는데 역시 그 부하출신 아니랄까봐 짜증납니다.

  • ydol7707

    근데 직접 들어가면 나중에 대가를 요구할 자들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