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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검찰이 설렁탕‧곰탕집인 줄 아나

오주한

배달집 대하듯 ‘악성노쇼(No Show)’ 일삼는 野 실세

국립호텔 입주 전 檢 출석해 최후의 만찬이나 즐기길

 

배달의 민족

 

우리 한민족은 배달(配達)의 민족이다. 미국 등 서양은 한국식 배달문화가 수입돼 이제 막 정착해가는 단계이지만, 우리는 이미 오래 전부터 음식을 안방‧사무실까지 가져와 먹는 게 일상화됐다.

 

지금은 언젠가부터 생겨난 다소 지나친 배달료가 비판받긴 하지만, 원래부터 음식배송은 ‘무료’였다. “먹는 것 갖고 장난치는 것 아니다”는 말도 필자 소견(所見)엔 무료배달에 적잖은 영향 끼친 것 아닌가 싶다.

 

우리 역사 문헌(文獻)에 등장하는 최초의 배달은 ‘18세기’ 때라고 한다. 조선후기 실학자(實學者)였던 이재(頤齋) 황윤석(黃胤錫·생몰연도 1729~1791)의 이재난고(頤齋亂藁)에는, “과거시험 이튿날 점심에 일행과 함께 냉면을 시켜먹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날짜도 1768년 7월로 거의 상세히 기록돼 있다.

 

배달기록은 이뿐만이 아니다. 조선말기 학자 이유원(李裕元‧1814~1888)의 임하팔기(林下筆記)에는 무려 ‘임금’이 배달서비스를 이용했다는 대목이 있다. 조선왕조 23대 국왕 순조(純祖‧1790~1834)는 즉위 초 벼슬아치들과 달구경을 하다가 “냉면 시켜라” 지시했다고 한다. 경남 진주의 교방(敎坊‧기생학교)에선 관기(官妓)들도 냉면집에 사람 보내 진주냉면을 주문했다 한다.

 

효종갱(曉鐘羹)은 구한말(舊韓末)을 대표하는 배달요리다. ‘새벽종 울릴 때 먹는 국’이란 의미의 이 음식은 배추‧콩나물‧소갈비‧해삼‧전복‧버섯 등 귀한 식재료들을 된장과 함께 푹 끓인 ‘양반 해장국’이었다.

 

구한말~일제강점기 때 문인(文人) 최영년(崔永年‧1859~1935)의 해동죽지(海東竹枝)에는 “광주성(廣州城‧지금의 경기도 광주시)에서 이 국을 잘 만든다. (한양 양반들이 주문하면) 밤에 국항아리를 솜에 싸서 도성(都城)으로 보낸다”는 구절이 있다. 배달부들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달빛이 있으나 별빛조차 없으나 365일 항아리 깨지지 않게 머리에 이고서 그 먼 거리를 내달렸다 한다.

 

애석하게도 효종갱은 지금은 그 요리법이 실전(失傳)됐다. 음식연구가 장계향(張桂香‧1598~1680)의 조선시대 요리책 음식디미방(飮食知味方), 강점기의 방신영(方信榮‧1890~1977) 이화여자전문학교 가사과 교수의 조선요리제법(朝鮮料理製法) 등 어디에도 효종갱 관련 내용은 없다. 근래 몇몇 지역에 효종갱 이름을 내건 식당이 있긴 하지만, 전통적 맛과는 거리가 있다는 주장이 있다.

 

아무튼 이상의 배달기록은 어디까지나 사서(史書)에 남겨진 것이다. 따라서 그 이전에도 배달은 얼마든지 있었을 수 있다.

 

동아시아 상인들은 이미 북송(北宋) 시기부터 공격적인 영업에 나섰다. 수도 동경(東京) 개봉부(开封府)는 각 시장이 24시간 인산인해(人山人海) 이루고 불빛 꺼지지 않아 불야성(不夜城) 즉 “밤이 없는 도시”라 불렸다. 이 때 이미 원시적 형태의 배달서비스가 등장했을 수 있다는 추측이 있다.

 

주문도 상호신뢰 있어야 가능

 

배달의 장점은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장소에서 한 끼 식사를 때울 수 있다는 것이다. 한반도 음식배송 수요(需要)는 전화기가 도입돼 한 층 빠른 주문 가능해진 강점기 때 폭발적으로 늘었다. 이 시기 유행한 배달식은 보다 간편함, 보다 신속함을 추구한 ‘모던걸(Modern Girl)’ ‘모던보이(Modern Boy)’들의 애용식 설렁탕이다.

 

각종 소(牛) 부위를 삶아 끓인 뽀얀 국물의 설렁탕 기원이 무엇이었냐는 설왕설래(說往說來) 오간다. 음식연구가 홍선표(洪善杓‧1890~1977) 선생이 1940년 출간한 조선요리학(朝鮮料理學)은 “조선시대 선농제(先農祭)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분석 내놨다.

 

선농제는 지금의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 제단(祭壇)에서 역대 조선임금들이 농업의 신인 염제(炎帝) 신농씨(神農氏)에게 올리던 제사다. 선사시대 신화에 등장하는 신농은, 비록 훗날 황제(黃帝) 헌원씨(軒轅氏)에게 패하지만, 우매(愚昧)한 이들에게 농사짓고 장사하는 법을 가르쳤다 한다.

 

임금들은 신농에게 풍년을 빌며 기도한 뒤 우골(牛骨) 고아 만든 뽀얀 국물에 쌀밥을 말아 백성들에게 하사했다. 선농탕(先農湯)이라 불렸던 이 음식이 시간이 흘러 설렁탕으로 바뀌어 대중요리가 됐다는 게 일부 학계 주장이다.

 

설렁탕은 맛과 신속함으로 일약 20세기 초중반 한반도 인기스타로 등극했다. 설렁탕은 미리 끓인 육수(肉水)에 밥을 말아서 또는 따로 내서 파 등 고명 얹고, 수저에 소금통에 깍두기만 주면 그만이다.

 

때문에 심지어 “저런 상것들” 혀를 차던 양반층은 물론, “미개한 조선인들” “스시 반자이” 외치던 일제(日帝) 관료들도 몰래몰래 배달시켜 먹었다고 한다.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고소하고도 짭쪼롬한 국물에 흰 밥 말아 깍두기 얹어 먹는 그 맛은 지금도 가히 일품(一品)이다.

 

1926년 8월11일자 동아일보 기사(記事)는 “설렁탕 하면 서울이 따라붙는다. 이만큼 설렁탕은 서울의 명물이다. 설렁탕 안 파는 음식점은 껄넝껄넝한(미덥지 못한) 음식점이다”고 당시의 ‘설렁탕 신드롬’을 소개했다.

 

동년 12월의 잡지 별건곤(別乾坤)은 모던걸‧모던보이 생활상에 대해 “청춘부부가 만나 돈깨나 있을 땐 양식(洋食)집 드나들겠지만 어찌 돈이 무제한이겠는가. 돈 없고 늦잠까지 자니 찬물에 손 넣기 싫어 이것(설렁탕)을 주문한다. 먹고 나서 화장하면 오후 3시나 되고, 구경터나 공원 같은 데 놀러 다니다 저녁 늦게 귀가하면 밥 지어먹을 새도 없어 또 이것(설렁탕)을 시켜다 먹는다”고 묘사했다.

 

가격도 매우 쌌던 것으로 보인다. 독립운동가이자 소설가 현진건(玄鎭健‧1900~1943) 선생의 작품 ‘운수 좋은 날’에는 인력거꾼 주인공이 아내를 위해 설렁탕을 포장해가는 장면이 나온다.

 

파는 사람은 싼 값에 다량으로 팔아 가게 매출‧회전율 높여 좋고, 먹는 사람은 싼 값에 한그릇 후딱 해치울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게 상부상조(相扶相助)의 설렁탕 배달이었다.

 

‘먹튀’ 상습범 주문내역 받아줄 이유 無

 

배달 주문‧예약은 어디까지나 업자‧소비자가 준법(遵法)시민이라는 전제 하에서 성립 가능하다. 가령 소비자 A가 ‘먹튀’ 등 무전취식(無錢取食) 상습범이라면 업자로선 음식을 팔 이유가 없다.

 

그런데 2023년 대한민국에선 범법(犯法) 용의자‧피의자가, 마치 떳떳한 상거래 하는 것마냥 검찰에 출석일자‧진술시간을 ‘맘대로 주문’하는 어이없는 상황이 빚어지고 있다.

 

해당 야당 실세(實勢) B씨는 지난달 30일 검찰 측 출석요청 거부하고 “(9월) 11~15일 중 출석하겠다” “(9월) 4일 오전 2시간만 조사받겠다” “4일 출석은 어렵다” 등 마치 설렁탕‧곰탕 언제 몇 시에 보내고 몇 시에 그릇 수거하라 주문예약했다가 취소하는 ‘악성 노쇼(No Show‧예약부도)’ 일삼았다.

 

필자가 10년 이상 언론계 정치부에 종사했고, 필자 본인도 전직 대통령 C씨 실명(實名)고소에 서울중앙지검 출석했던 입장에서 ‘이런 기현상’은 처음 본다. 타당한 이유 없이 검찰출석 불응(不應) 시 ‘지명수배’ 되는 것으로 필자는 기억난다. 허나 B씨는 현재진행형인 ‘출퇴근 단식’ 빼곤 별 삶의 지장이 없다. B씨는 불응도 모자라 적반하장(賊反荷杖)으로 ‘갑질주문’ 일삼고 있는 것이다.

 

상술했듯 주문은 신용도 있는 준법시민만 가능하다. ‘야반도주(夜半逃走)’ 의혹의 B씨 주문내역 수용 시, B씨는 또 어떠한 사달을 낼 지 모른다. B씨 주문내역을 들어줄 이유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B씨는 자신의 저서에서 분당OO뷰 특혜분양 의혹 폭로 사건과 관련해 “만약 PD가 고소 내용대로 내가 시켜서 검사를 사칭했다 말해버리면 나는 곧바로 구속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일단 숨어 있어야겠다는 생각에 강원도로 향했다” 밝힌 바 있다. 그는 “원주 치악산으로 가던 중 경찰검문(檢問)에 걸리고 말았다. 나는 차분하게 미리 준비해둔 대로 동생 인적사항을 불러줬다”며 도주경과(經過)도 상세히 설명했다.

 

B씨는 더 이상 무리한 수사주문 대신 검찰에 성실히 출석해 깨끗한 경로로 배달된 취조실(取調室) 설렁탕이나 맛보길 권한다.

 

C씨 의혹기사 썼다고 고소당해 징역 10월 구형된 무고(無辜)한 필자는 (C씨가 한창 힘 좋을 당선유력 시기 고소당했지만 필자는 2심 끝에 징역 안 갔다) 중앙지검 출석 시절 2시간 안팎만에 진술이 끝나 맛 볼 기회가 없었지만, 영어(囹圄)가 기다릴 가능성 큰 B씨에겐 아마도 이 사회에서 최후로 즐길 남다른 만찬으로 다가오지 않을까 싶다. 아마 B씨 배우자도 부부동반 ‘국립호텔’ 나들이 나설 수 있어 사식(私食) 넣어줄 사람도 마땅찮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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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한 前 여의도연구원 미디어소위 부위원장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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