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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하방(下放) 전운 도는 ‘개딸’의 운명은

오주한

마오쩌둥 전위대로 악행 일삼다 토사구팽 된 홍위병

野, 첫 강성지지자 제명…‘개딸’, 홍위병 말로 되새겨야

 

“中 침략한 일본군에 감사” 권모술수 능했던 毛

 

중국 문화대혁명(文化大革命‧1966~1976) 당시 악명을 떨친 홍위병(紅衛兵)은 오늘날 만인의 공분을 사고 있는 ‘개딸’과 흡사한 면이 많다. 떼 지어 몰려다니면서 특정개인을 우상숭배하고, 피아를 가리지 않고 곳곳을 들쑤시면서 난동 부리며, 뉘우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들이 결국엔 토사구팽(兎死狗烹) 될 운명이라는 걸 모른다는 점도 유사하다.

 

중화인민공화국을 건국한 독재자 마오쩌둥(毛澤東‧생몰연도 1893~1976)은 배신‧범죄 등을 밥 먹듯이 일삼으며 종신집권한 인물이다.

 

마오쩌둥은 중일(中日)전쟁 과정에서 국공합작(國共合作)을 어기고 국민당 후미를 수시로 공격했다. 그는 일본의 침략을 권력강화 기회로 여겼다. 1964년 7월 베이징에서 마오쩌둥과 만난 일본사회당 대표단의 사사키 고조(佐々木更三)는 “침략을 사죄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마오쩌둥은 “일본이 없었더라면 중국공산당이 세를 키워 국민당을 패퇴시키는 건 불가능했을 것”이라며 ‘감사’를 표했다.

 

마오쩌둥은 일본군과의 전투는 국민당의 국부군(國府軍)에게 떠넘기다시피 하고 자신은 장제스(蔣介石) 뒤통수를 때리는 데 전념했다. 1936년 2월 일본군을 치러 간다면서 국민당 군벌 옌시산(閻錫山) 관할의 산시성(陝西省) 등을 침략한 게 사례 중 하나다. 마오쩌둥은 이 ‘통수작전’이 거하게 실패하자 언제 그랬냐는 듯 국민당에 평화무드를 제안하며 협상했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마오쩌둥은 ‘아편’을 팔아 군비를 충당하기도 했다. 일설에 의하면 1943년 한 해에만 4만5000㎏의 아편을 팔아 6000만달러(2023년 환율 기준 약 790억원)를 벌어들였다고 한다. 대영제국과의 아편전쟁으로 온 나라가 피폐해진 게 불과 약 100년 전 일인데 마오쩌둥은 앞장서서 마약재배를 부추긴 것이었다. 마오쩌둥은 국공내전(國共內戰)이 끝나자 죽여서 입을 막으려는 듯 마약상 등을 모조리 살해하거나 중형에 처했다.

 

지금의 중국공산당은 죽을 힘을 다해 이 사실이 확산되는 걸 차단하고 있다. 2015년 2월에는 중국 국가인터넷정보판공실이 모바일 메신저앱 웨이신(微信‧위챗) 계정 중 역사 관련 133개를 폐쇄했다. 이 계정들에는 마오쩌둥의 아편 재배‧판매, 1960년대 수천만명 아사(餓死)는 자연재해가 아닌 인재(人災)였다는 분석 등이 오른 상태였다.

 

“저 새는 해로운 새” 내정엔 무능해 축출

 

국민당을 타이완(臺灣)섬으로 축출한 마오쩌둥은 1949년 10월1일 천안문(天安門)광장에서 중화인민공화국 건국을 선포했다. 이후 대외적으로는 6‧25에 대군을 파병해 대한민국 주도 한반도 통일을 막거나 소련의 ‘강철의 대원수’ 이오시프 스탈린(Iosif Stalin)과 공산권 맹주 자리를 두고 파워게임을 벌이고, 대내적으로는 경제발전을 위한다며 대약진운동(大躍進運動) 등을 실시했다.

 

배신‧범죄‧모략 등에만 능했던 마오쩌둥의 밑천은 대약진운동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그는 중공업을 중시한 스탈린의 정책을 따라잡는답시고 수천만~수억 명의 농민들이 토법고로(土法高爐)에 나설 것을 지시했다. 토법고로는 작은 용광로에 무쇠솥‧농기구 등 세간살림의 쇠붙이란 쇠붙이는 모조리 집어넣어 강철을 생산한다는 개념이었다.

 

제철에서 가장 중요한 과정은 불순물 제거 등이다. 제철에 문외한인 농민들이 막무가내로 쏟아 넣은 고철에서 양질의 강철이 생산될 리 만무했다. 이 기막힌 사태에 쓴소리를 한 전문가들은 ‘미제(美帝) 간첩’ 등으로 몰려 목이 떨어졌다. 농민들은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해야 할 농사는 뒷전에 두고 고철수집‧벌목에 내몰렸다.

 

제사해운동(除四害運動)도 마오쩌둥의 ‘삽질’로 꼽힌다. 해당 운동은 곡물생산량 증대를 위해 참새 등 마오쩌둥이 지정한 유해조수를 박멸한다는 내용이었다. 1955년 마오쩌둥이 농촌 현지지도를 나갔다가 했다는 “저 새는 해로운 새다”는 말은 유명하다. 권력자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당 간부들은 농민들을 총동원해 참새의 씨를 말려버렸다.

 

참새는 떨어진 곡식 낱알을 먹기도 하지만 해충을 잡아먹기도 한다. 사실 농업에 있어서 후자의 역할이 더 크다. 그런데 부농(富農) 집안 도련님 출신이었던 마오쩌둥은 단순히 참새가 낱알을 쪼아 먹는 것만 보고 곡식도둑으로 규정해 박멸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었다. 결국 폭증한 해충 앞에 중국 전역에는 대기근이 들었다. 대약진운동에서 굶어죽은 사람은 무려 ‘2100만~4500만명’에 달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홍위병 앞세워 中 전역 피바다로

 

잇따른 실정(失政)에 민심은 크게 악화됐다. 마오쩌둥의 1인 독재 가능성을 우려하던 반대파도 성토에 나섰다. 대표적 인물이었던 류샤오치(劉少奇)는 농촌을 찾아 무릎 꿇고 석고대죄(席藁待罪)했다. 결국 마오쩌둥은 건강상의 이유로 국가주석직에서 사퇴하고 류샤오치가 후임이 됐다. 하지만 마오쩌둥의 권력욕은 오히려 더 강렬히 불타올랐다는 점을 사람들은 몰랐다.

 

마오쩌둥은 ‘자본주의자들이 당을 장악했다’고 선전하며 은밀히 전국의 젊은 인텔리들 선동에 나섰다. “젊은 남자는 젊은 여자에 이끌리게 된다”는 논리에 따라 홍위병 수장에는 18세 여학생 쑹빈빈(宋彬彬)이 임명됐다. 쑹빈빈은 1966년 8월 ‘경축 무산계급문화대혁명 백만인 대회(慶祝無産階級文化大革命百萬人大會)’에서 마오쩌둥 팔에 붉은 완장을 채워주는 모습 등으로 전세계에 알려졌다.

 

그릇된 군중심리에 휩쓸린 젊은 인텔리들은 광기에 젖어 마오쩌둥을 신격화하고 그의 어록(語錄)을 사이비종교 경전처럼 암기했다. 또 조금이라도 마오쩌둥을 비판하는 자는 ‘반동’으로 몰아 우스꽝스러운 고깔모자를 씌우고 거리에서 조리돌림한 뒤 무자비하게 때려죽이거나 수용소에 쳐 넣었다.

 

목숨을 건진 이들도 홍위병의 고문을 견디지 못하거나 무정부상태가 트라우마가 돼 극단적 선택을 했다. 덩샤오핑(鄧小平)의 장남 덩푸팡(鄧朴方)도 홍위병의 폭력을 피해 건물에서 투신했다가 하반신 장애가 됐다. 홍위병들의 위세가 얼마나 당당했냐면 심지어 인민해방군 기지까지 쳐들어가 난동부릴 정도였다. 그럼에도 군 장병들은 오히려 홍위병 눈치를 보며 쉬쉬해야 했다. 문화대혁명 사상자는 중국 정부 공식발표 자료로만 약 900만명, 비공식적으로는 ‘4500만명’이다.

 

마치 탈레반이 바미안(Bamiyan) 석불을 파괴해 국제사회 공분을 샀듯 문화유산들도 봉건시대 잔재라며 몽둥이로 때려 부수고 초토화했다. 역대 왕조의 황릉(皇陵)을 헤집어놓는 건 기본이었다. 공자(孔子)묘도 파묘된 뒤 평지가 돼 공자의 후손들, 특히 적통(嫡統) 측은 지금까지도 중국공산당에 이를 갈고 있다. 공자의 77대손인 쿵더청(孔德成)은 1949년 국부천대(國府遷臺) 당시 대만에 정착한 뒤 문화대혁명 소식을 접하고서 두 번 다시 중국 본토를 밟지 않았다. 1990년 본토에 남았던 누이와 재회할 때도 방중(訪中)하는 대신 일본‧대만에서 만나길 고집했다.

 

홍위병의 몽둥이질 여파로 중국인들이 자국 문화를 접하기 위해 해외를 방문하는 웃지 못 할 일이 벌어지고 있다. 유교(儒敎)를 배우기 위해 한국의 성균관(成均館) 등을 찾는 중국인들 소식은 흔히 접할 수 있다. 역대 왕조 유물은 본토가 아닌 대만 국립고궁박물관(國立古宮博物館) 등에 훨씬 더 많이 보관돼 있다. 만약 장제스가 국부천대 과정에서 막대한 유물을 목숨 걸고 공수(空輸)하지 않았더라면 상당수 중국 문화유산은 책 속에서나 접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문화대혁명 과정에서는 희극적인 광경도 펼쳐졌다. 홍위병들은 정말 진지한 표정으로 신호등을 가리키며 “빨간등이 정지신호라는 건 말이 안 된다. 혁명을 상징하는 적신호는 전진신호가 돼야 마땅하다”고 주장하며 적신호‧청신호를 뒤바꿔버렸다. 반려동물을 기르는 것도 ‘자본주의의 썩어빠진 풍토’라며 금지한 뒤 강아지‧고양이 등을 빼앗아 밟아 죽였다. 꽃은 곡식을 키워야 할 농지낭비라며 꽃집‧화훼농가 등을 습격해 모조리 압수했다.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는 삶아 먹는다”

 

이러한 홍위병들의 만행에 힘(?) 입어 마오쩌둥은 끝내 반대파를 숙청하고 국가주석에 복귀했다. 또 당‧정‧군을 모조리 장악한 뒤 명실상부 1인 독재자에 올랐다. 한편으로는 아내 장칭(江靑) 등 4인방을 앞세워 자신에 대한 신격화를 강화했다. 홍위병들은 ‘개’처럼 충성한 자신들의 앞날에 꽃길이 열릴 것이라고 자신했다. “‘위대한 영수(領袖)’ 마오쩌둥 동지가 우리를 영도하리라”고 호언장담했다. 그러나 이는 순진한 착각이었다.

 

사실 홍위병은 그들끼리 내전에 준하는 내분을 일으키는 등 통제불가 상태였다. 마오쩌둥으로선 1인 독재라는 목표가 달성된 이상 거품 문 ‘미친 개’가 할 일은 더 이상 없었다. 오히려 홍위병 만행 지속에 따른 민심의 화살이 어렵게 재집권한 자신에게 향할 수 있었다. 마오쩌둥은 토사구팽(兔死狗烹)에 본격적으로 착수했다. 그는 1950년대 중반부터 시행되던 상산하향운동(上山下乡运动‧일명 하방)을 이용했다.

 

마오쩌둥은 우선 홍위병 지도층을 불러 운동 중단을 명령했다. 또 “청년 인텔리들은 농촌에 가서 빈하중농(貧下中農)으로부터 교육 받는 게 우선”이라며 홍위병들을 분산 하방시켰다. 상당수는 “이 또한 마오쩌둥 동지의 먼 곳을 내다보는 혜안”이라 추켜세우며 따랐다. 그렇게 홍위병들을 기다린 건 닫힌 사회의 폭력과 성범죄였다.

 

중국 농민들은 인텔리 계급에 대한 반감에 더해 홍위병의 악명을 익히 접해온 터였다. 이들은 남학생들을 강제노동에 차출하고서 반항하면 마치 되갚아 주려는 듯 무자비하게 때려 죽였다. 여학생들의 경우 성폭행당한 뒤 강제로 가해자의 처첩이 됐다.

 

많은 홍위병들은 두 번 다시 도시에 돌아오지 못했다. 상경했더라도 농민공(農民工)이 돼 개혁개방 이후의 화려한 도심 야경이 무색하게 극빈층으로 살고 있다. 상당수는 자신이 과거 살해했던 이들 가족의 보복이 두려워 개명한 뒤 숨죽이며 은신 중이다. 마오쩌둥의 충실한 전위대(前衛隊)였다가 어느덧 백발노인이 된 쑹빈빈은 2014년 1월 베이징사범대부속여중 회의실에서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 눈물 쏟으며 과거 죄악에 대한 용서를 빌었다. 오늘날에도 홍위병이라는 세 글자는 중국에서 치욕적인 금기어로 여겨지고 있다.

 

비명(非明‧비 이재명)계에 지속적으로 욕설 문자폭탄을 날려 온 더불어민주당 강성지지층, 일명 ‘개딸’ 한 명이 민주당에서 제명됐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이를 두고 이재명 대표가 불합리함에 칼을 꺼냈다는 평가도 있지만 홍위병과 마오쩌둥의 결말이 연상된다는 목소리도 있다. 더 이상 필요성이 사라지고 제 살만 깎아먹는 강성지지층이 달가울 리 없다는 것이다. 어쩌면 비명계 분노를 달래기 위한 이 대표의 고육지책(苦肉之策) 또는 보여주기식 징계일 수도 있다.

 

비록 제명 배경의 진실은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건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는 솥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마오쩌둥을 위해 오명을 뒤집어썼던 홍위병들은 그들 입장에선 영광이었던 과거를 뒤로 한 채 오늘날 차디찬 길바닥을 헤매며 눈물로 하루하루 연명하고 있다. ‘개딸’은 홍위병의 최후를 잊지 말고 늦기 전에 지금이라도 각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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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한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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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INDEX
    2023.05.23

    좌 우를 떠나 정치권력을 이용해 특정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것은 그들의 주장이 명확해야 하며 듣는 사람도 명확하게 이해하여야 합니다. 정치권력을 이용해 목표를 달성하는것은 결국 동의하지 않은 사람도 강제로 통제하는 것이기 때문에 언제나 신중해야 합니다. 특히 실체없는 개혁 따위를 빨아댄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것입니다. 언제 어디서 누군가의 입맛에 맞는 목표와 창끝이 설정될지 모릅니다. 개딸이 주장하는 개혁이란 실체없는 럭비공 같은 것이고 이것은 수천만명을 굶겨죽인 대약진 운동의 공산혁명과 같습니다.

    일단 사람이 모여서 크게 소리지르면 근거없는 자신감과 주술적인 믿음이 생겨납니다. 이것을 군중심리라고 합니다. 그것은 분명히 실재합니다. 이것이 실재하는 것을 받아들이면 실체없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에 대해 울타리 밖에있는 사람은 더 강경하게 반대할 명분이 생깁니다. 끼지 않는것이 아니라 부정해야합니다. 그들은 실존하는 통제의 위협입니다.

  • INDEX
    오주한
    작성자
    2023.05.24
    @INDEX 님에게 보내는 답글

    고견에 크게 공감합니다. 감사합니다.

  • 멸공통일
    2023.05.24

    그니까 쿵푸가 가짜지, 홍위병이 다 때려죽였는데.. ㅋㅋ

  • 멸공통일
    오주한
    작성자
    2023.05.24
    @멸공통일 님에게 보내는 답글

    오늘날 일부 쿵푸는 무술호소인들의 율동 막춤 정도 되지 않을까..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