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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아버지, 저는 이제 떠나렵니다.

김탕아

아버지, 저는 이제 그만 떠나렵니다. 당신께선 아마 이해하지 못하실 겁니다.

 

아마도 온 가족이 모여 단합해 건너편 가게에 맞서도 모자랄 이 시기에 어딜 가냐며, 불효막심한 놈이라 꾸짖으시겠지만, 더는 그 말씀도 듣지 않으렵니다.

 

당신께선 모르시겠지만, 무너져가는 가게를 살리려, 아버지를 설득하려 부단히도 애썼습니다.

더 이상 아버지의 오래된 메뉴와 전단지가 먹히는 시대가 아니라고, 바뀌어야 한다고 아버지의 닫힌 방문 앞에서 외쳤습니다.

 

방 안에서 돌아온 대답은 '어린 놈이 어디 건방지게 어른 방문을 시끄럽게 두드리느냐'였습니다.

어린 놈의 자식이 장사를 아냐며, 시키면 시키는대로 할 것이지 무슨 말이 많냐고 하셨지요.

 

달콤한 말만 속삭이는 한량 삼촌들을 멀리 하시라 그렇게도 목놓아 외쳤습니다.

지난 명절 대목에 그 잘난 삼촌들이 상한 음식을 내놓아 가게가 폭삭 망할 뻔한 일을 정녕 다 잊으셨습니까.

 

 

아버지 대신 손님들께 무릎 꿇고, 가게 상호와 조리장을 바꾸고, 새로운 메뉴를 개발하고, SNS 홍보를 해 가게를 겨우 살려놓았는데,

예전이 맛있었다는 나이 든 단골 말에 고루한 메뉴를 살리고, 새 조리장은 '건너편 가게 프락치'라며 내쫓으시고는 사고 친 그 삼촌을 다시 주방에 넣으시는군요.

 

젊은 손님들이 행여 음식이 맛이 없다 하면 '프락치'라며 나가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시는 예전 버릇도 다시 돌아오셨더군요.

매일 밤 삼촌들과 술상을 펴놓고 건너편 가게 프락치들은 '진짜 손님'이 아니라며 자위하시는 모습도 더 이상 보기 힘듭니다.

 

 

 

 언젠가 손님이 하나도 없던 어느 날, 아버지는 잘 나가는 옆 가게를 보며 '저 가게 음식은 MSG범벅인데, 젊은 손님들이 무식해 그걸 모른다'며 비아냥대셨지요.

하지만 아버지, 저는 어젯밤 당신도 MSG를 넣는 것을 분명히 보았습니다. 요즘 세상에 MSG가 무슨 문제겠습니까만은, 저는 그 위선이 싫었습니다.

 

어젯밤 짐을 싸는 제게 잔뜩 취하신 모습으로 왜 다 늦은 반항이냐며 질책하셨지요. 예, 이 모든 제 행동이 새파랗게 어린 놈의 치기 어린 반항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당신의 세월이 만든 지혜를 제가 이해 못하는 것이라면, 아버지께선 적어도 제게 그것을 직접 설명해주셨어야 했습니다. 

 

제게 '너도 프락치냐'냐며 그 술병을 던지시면 안됐습니다. 아버지께 손님은 나이 든 단골만 진짜 손님이고, 나머지는 프락치인가 봅니다.

 

 

그러니 떠납니다. 네 놈의 그 치기 어린 반항에 가게가 망하면 가족들은 어찌 할거냐 제게 묻지 마십시요. 

이미 마음이 뜬 가게와 가족에 무슨 미련이 있으며, 애정이 있겠습니까. 너 같은 놈 하나 없어도 가게가 잘 굴러간다 하셨으니, 어련히 알아서 잘 하시지 않겠습니까. 

 

혹여 가게가 망하고, 이 골목의 손님이 저 건너편 식당으로 다 몰려간다 해도 제겐 더 이상 상관없는 일입니다. 

 

그것만 알아주십시오. 저는 진짜 가게가 잘되길 바랐습니다. 

아버지, 곧 있을 다음 대목에는 잘 해보십시오. 진심입니다.

 

민준이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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