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더불어민주당을 지지한다는 한 후배에게 이재명 대표의 '형수 발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잠시 머뭇거리던 그는 "이 대표의 형이 먼저 폭언을 해 불거졌던 말 아니냐"며 "이미 사과도 수차례 한 마당에 대체 언제까지 그 이야기를 들먹거릴 거냐"고 화를 냈다.
이 대표의 과거 발언을 들춰내 비판하는 걸 두고 "마타도어"라고 펄쩍 뛰는 반응은 충분히 이해한다. 선거가 정책 대결이 아닌 흠집내기로 얼룩져선 안 된다는 원론적인 지적에도 동의한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정도(程度)'라는 게 있다. 이 대표가 형수에게 했던 언행은 도를 넘어선 망발(妄發)이었다. 더군다나 당시 이 대표는 어느 직업보다 엄격한 도덕성이 요구되는 성남시장 신분이었다. 한 여권 관계자의 말처럼 '인품(人品)'과 '언품(言品)' 모두 공직자로서 걸맞지 않아 보였다.
그러나 이 대표는 보란듯이 성남시장 재선에 성공했고, 경기도지사를 거쳐 대통령 후보까지 됐다.
이 대표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정치인은 '도덕군자'를 뽑는 게 아니"라며 "일 잘하고 똑똑하면 그만 아니냐"고 말한다.
정치인을 성인군자와 똑같은 잣대로 평가해선 안 된다는 이들의 주장에 반대할 생각은 없다. 문제는 이 대표가 '거대 야당'의 수장이 된 게 벌써 2년째라는 점. 특히 이 대표가 배임(대장동 개발), 제3자 뇌물(성남FC 후원금) 허위사실 공표(방송 중 허위 발언) 등 갖가지 혐의에 휘말리면서도 '정치적으로' 흔들림 없는 모습을 유지하면서, 민주당에 대한 '도덕적 잣대' 역시 점점 낮아지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주변에 널린 지지자들에게 민주당 의원들의 '도덕적 흠결'을 문제 삼으면 "국민의힘은 더 하다"며 '철벽 방어'를 치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된다. 물론 개중에는 '돈봉투 사건'으로 구속된 송영길 전 대표를 보면서 "실망했다"는 이들도 있지만, 상당수는 송 전 대표를 기소한 검찰이 더 문제라는 식이다.
한마디로 정치인들의 '모럴해저드'에 관대해졌다는 것. '이 정도쯤은 괜찮겠지' 하고 넘어가는 이들이 많아지면 그곳의 자정(自淨) 능력은 사라지기 마련이다. 주춧돌이 젖어드는 걸 그냥 무시하고 지나가면 결국에는 장대 같은 비를 무방비로 맞게 된다.
더불어민주당 서울 강북을 후보로 낙점됐던 조수진 변호사가 22일 새벽 사퇴했다. 일각에선 '뒤늦게라도 당이 정신을 차려 다행'이라는 반응이 나왔지만 중요한 건, 조 변호사가 이 지역 현역 박용진 의원과의 재경선에서 당당히 승리한 인물이라는 점이다. 과연 조 변호사가 최근까지 '성범죄 가해자'를 변호했다는 사실을 당내 아무도 몰랐을까?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은 전날 오후까지도 "공천 번복은 없다"며 '여당은 더 하다'는 논리로 맞서는 모양새였다. 조 변호사 역시 일부 의원들에게 "지금은 얻어맞고 있지만, 좀 있으면 지나갈 것"이라며 강행 의지를 드러냈었다. 하지만 성범죄 가해자들을 변호하면서 여성의 '피해자다움'을 문제 삼고, '강간 통념'을 활용한 '성범죄 무죄 전략'을 블로그에 올린 사실 등이 추가로 공개되면서 결국 무릎을 꿇고 말았다.
언론 등에서 이를 폭로하지 않았다면 성폭행 피해자의 부친을 가해자로 의심했던 사람이 '금배지'를 다는 아찔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경기 부천병에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이건태 후보의 '독특한 변호 이력'도 도마 위에 올랐다. 일명 '대장동 변호사'로 '찐명'으로 분류되는 이 후보는 과거 미성년자 강제추행 가해자와 불법촬영 가해자 등을 변호한 적이 있다.
이 후보는 2018년 300여 차례 신체 부위를 불법촬영한 가해자를 변호했고, 2019년에는 6개월 간 불법 성매매 알선업자를 변호하는 등 '성범죄 가해자'들을 집중적으로 변호했다. 2020년엔 자신이 고용한 코디네이터와 간호사를 추행한 남성을 변호했고, 2022년엔 테니스장 아르바이트생이었던 미성년자를 강제추행한 남성을 변호하기도 했다. 변호 이력만 놓고 보면 조 변호사는 저리 가라 할 수준이다.
이러한 이력이 알려졌음에도 민주당 검증위원회는 이 후보를 '적격'으로 판정했다.
물론 범죄자도 변호를 받을 권리는 있다. 하지만 이런 자들이 "성범죄에 대한 국민 법감정을 고려해 성폭력 가해자 처벌을 강화한다"는 것을 강령으로 내세운 민주당의 의원이 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정치권에선 성범죄자들을 단골로 변호했던 이들이 버젓이 민주당 공천을 받을 수 있었던 건, 과거 '살인죄를 저지른 조카'를 변호했던 이 대표의 이력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조카를 변호하면서 "당시 심신미약 상태였다"고 감싸고, 살인 범행을 "데이트 폭력"으로 표현한 사실이 도마 위에 올랐을 때, 민주당 측의 논리는 '범죄인에게도 엄연한 인권이 있으며, 범법자라 하더라도 대한민국 국민인 이상 법률 서비스를 받을 자격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성범죄자 변호' 이력 때문에 이들의 공천을 막는다면, 살인 등 강력범죄자들을 변호했던 이 대표 역시 국회의원 자격이 없다는 논리가 성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결론을 맺고자 한다. 정치권에선, 양당 지지율이 '초박빙 양상'을 보이고 있으나 결국 민주당이 '원내 1당'을 사수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재명 수호당'이 된 민주당이 계속해서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입법부를 장악한다면 이 나라에 미래는 없다. 입시비리 사건으로 대한민국을 어지럽힌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정계의 다크호스로 떠오른 것도 기가 찰 노릇이다. 사실상 조국혁신당이 민주당의 연대 정당 역할을 하고 있어, 국민의힘의 입지는 더욱 좁아진 상황이다.
그 어느 때보다 유권자의 판단이 중요해졌다. 눈을 크게 뜨고 누구의 행실이 올바른지, 어느 당의 DNA가 대한민국에 발전을 가져올지 살펴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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