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함께 민주당 원내대표로서 당을 이끌었던 박광온 의원이 공천 경선 과정에서 친명(친이재명)계 후보에게 패해 컷오프 됐다. 당내에서 몇 안 되는 합리적이고 온건파였기에 박 의원의 컷오프 소식은 정치권에서 큰 충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에 대해 민주당을 탈당한 한 의원은 "박 의원처럼 양심적이고 당이 한쪽으로 휩쓸리지 않도록 중심을 잡아줄 의원이 이제 민주당 안에 몇 안 남았다"며 "박 의원이 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안 가결 당시 표 관리를 못한 책임으로 원내대표 자리에서 물러났는데, 아마도 꾀씸죄가 적용된 것 같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민주당이 이재명바라기들로만 총선 후보들이 꾸려지는 것 같아 너무 안타깝다"며 "단일대오로 한 사람에게만 의존한 정당이 살아남은 역사는 없다"고 했다.
실제로 과거 '1인 정당 체제'는 그리 오래가지 못하고 '추풍낙엽'처럼 사라졌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바른정당이다.
2017년 2월1일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대선 불출마 선언은 충격 그 자체였다. 그의 갑작스러운 불출마 선언은 당시 측근들도 몰랐던 '깜짝 쇼'에 가까웠다. 특히 야권의 문재인 후보에게 대항할 유일한 여권 주자로 거론되던 반 전 총장을 영입해 '큰집' 새누리당을 흡수, 정권 창출을 꿈꾼 바른정당은 패닉을 넘어 그로기 상태였다.
바른정당은 2017년 1월, 비박(비박근혜)계를 중심으로 정통 보수정당에서 분당한 보수신당이었다. 당시 30여 명의 인사로 구성된 바른정당에는 새누리당을 이끌던 중진이 대거 참여하는 등 의석 수 100석이 무너진 새누리당을 크게 압박하고 있었다.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이 불거져 차기 대통령선거에서 희망이 없다고 느낀 새누리당 의원들은 바른정당 지도부에 입당 가능성을 묻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때만 해도 바른정당은 반 전 총장을 '꽃가마' 태워 모셔온다면 정권 창출이 가능하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 꿈은 반 전 총장의 갑작스러운 불출마 선언으로 끝내 물거품이 됐다.
바른정당은 '개혁·중도보수'라는 새로운 기치를 들고 출범했다. 반성하지 않고 기득권 지키기에 급급한 기존 보수정당과 차별화하기 위한 작업도 진행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의 대미를 장식할 화룡점정(대선 승리)은 '반기문 영입'이었다.
당시 반 전 총장은 박근혜 정권 창출에 기여하지 않아 국정농단 의혹의 '원죄'가 없으면서 만인에게 존경받았다. 여론조사에서 선두로 치고 나간 문 후보를 따라잡을 유일한 카드이기도 했다. 그러나 바른정당은 반 전 총장과 합쳤을 시 '지분 싸움'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고자 영입을 뜸들였다. 그리고 정당에 속하지 못해 보호받지 못하던 반 전 총장은 혈혈단신으로 의혹 보도에 시달리다 그만 레이스를 중도에서 포기했다.
반 전 총장의 하차로 바른정당은 순식간에 구심점을 잃고 무너졌다. 새누리당에서 오던 입당 문의는 끊기고, 1·2차 집단탈당 사태로 내홍을 겪었다. 그러다 바른정당은 창당 1년 만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친정을 배신한 현대 정치의 반정(反正)이 이처럼 허무하게 막을 내린 데는 우리가 친박(친박근혜)계보다 더 낫다는 선명성만 내세운 채 오직 한 사람에게 지나치게 의존한 탓이 컸다. 바른정당 출신의 한 인사는 "한 사람에게 지나치게 올인 하는 정치가 얼마나 위험한지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라고 회고했다.
6년이 흐른 지금, 더불어민주당은 옛 바른정당의 전철을 밟고 있다. 바른정당처럼 분당(分黨)만 하지 않았지, 이번 공천 과정에서 쌓인 계파 갈등과 이재명당 구축 작업은 아슬아슬한 외줄을 타는 광대의 모습과 흡사하다.
만약 이 대표가 사법리스크로 인해 차기 대선주자의 지위를 잃는다면 뚜렷한 플랜B가 없는 '이재명바라기' 민주당은 소멸될 수밖에 없다. 지금이라도 이 대표와 적당한 거리 두기가 민주당이 살 길이다. 주식의 기본은 분산 투자이듯 정치는 '권력 분산'이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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