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그대로 지극히 개인적인 소견을 담은 담론
한국판 장간의 전설, 웃기지만 그만 보고 싶다
장간(蔣幹‧생몰연도 ?~?)은 소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를 읽어본 사람에겐 친숙한 조조(曹操) 휘하 세객(說客)이었다. 정사(正史)에서는 달변가로만 소개됐으나 연의에서는 천하에 둘도 없는 ‘역풍제조기’로 각색됐다.
조조‧손권(孫權)의 적벽대전(赤壁大戰)을 앞두고 장간이 동오(東吳‧강동)의 대도독(大都督) 주유(周瑜)를 찾아간 건 정사 기록과 연의 묘사가 모두 일치한다. 다만 장간이 적벽대전 이후 주유를 만나러 갔다는 설도 있다.
장간이 죽음을 무릅쓰고 적진에 간 까닭은 주유에게 투항을 설득하기 위함이었다. 조조는 수전(水戰)의 달인이자 외모마저 준수한 주유를 아껴 제 사람으로 만들고자 했다. 조조는 조정 승상(丞相‧재상)이라는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의 제 신분에 장간의 말솜씨라면 주유를 충분히 설복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
장간은 공적 방문이 아닌 사적 방문임을 강조하기 위해 갈건야복(葛巾野服)으로 장강(長江)을 건넜다. 이후부터 정사‧연의 내용이 달라진다.
정사에 의하면 조조‧장간의 계책은 간단히 실패했다. 손가(孫家)의 귀신이 되기로 마음먹은 지 오래인 주유는 조정 실권자가 보증한 하늘같은 부귀영화(富貴榮華)에도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장간이 외당(外堂)에 들어서자 주유는 대뜸 “조씨(曹氏)를 위해 유세하러 온 것이오?” 물었다. 같은 고향사람으로서의 인정으로 접근해 홀리려 했던 장간은 당황해 “그대와 나는 동향(同鄕)으로서 그저 옛 벗을 보러 온 것이오” 둘러댔다. 허나 주유는 껄껄 웃으며 “소진(蘇秦)‧장의(張儀)가 다시 살아나고 역이기(酈食其)‧육가(陸賈)가 다시 태어나도 날 속여 넘기긴 어렵소” 말했다. 아무 대답 없이 혀만 찬 장간은 조조에게 돌아가 주유의 충의(忠義)를 칭찬하며 “태산(泰山)보다 더 굳건하기에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보고했다.
연의삼국지 저자 나관중(羅貫中‧서기 1330?~1400)은 그러한 장간을 천하에 비견할 자 없는 ‘마이너스의 입’으로 변태(變態)시켜버렸다.
장간이 뻘쭘하게 사랑채에 들어오자 주유는 “너 간첩이지?” 물었다. 화들짝 놀란 장간이 “아닌데요” 도리도리하자 주유는 “그럼 됐다. 밥이나 먹자” 손 붙잡고 이끌었다. 장간이 회식장에 들어서자 주유는 맹장(猛將) 태사자(太史慈)에게 시퍼렇게 날이 선 장검(長劍)을 줬다. 그리곤 장간에게 다정스레 “오늘은 그냥 우리 강동패밀리와 웃고 마시는 거야. 딴 소리하면 확… 알지?” 말했다. 태사자가 어지러이 칼춤 추자 장간이 먹은 술은 땀이 돼 흘렀다.
어느덧 2차‧3차 술자리와 노래방 뒷풀이까지 마무리되고 강동패밀리는 뿔뿔이 흩어졌다. 대취(大醉)한 주유, 그리고 대취할 리 만무한 장간도 오랜만에 더벅머리 서생(書生) 시절로 돌아가 함께 자취하던 때처럼 한 방에 퍼질러 잤다. 주유가 코를 골자 겨우 한숨 놓은 장간은 “빈손으로 돌아갈 순 없다. 승상께 죽는다” 눈알 굴리며 뭔가 기밀자료가 없나 주유네 안방을 뒤졌다.
그 때 호롱불 아래 비친 한 통의 서신. 그것은 조조 휘하 수군도독 채모(蔡瑁)‧장윤(張允)과 주유가 몰래 주고받은 통신문이었다. 주유가 천둥 같이 코 고는 사이 장간이 읽어보니 “조조 저 역적놈이 연봉도 깎아버리고 상여금도 안 줘요. 또 무슨 야근은 매일 시키는지. 우리는 손권님만 믿어요. 약속 어기시면 미워할꼬야. 항복 선물로 조조 목 가져갈게요. 재롱둥이 채모‧장윤 올림” 식의 내용이었다.
까무러친 장간은 동이 트자마자 장강 수상택시 잡아타고 부리나케 조조 군영(軍營)으로 내달렸다. 그리곤 의기양양히 밀서(密書) 내밀며 “저 두 앙탈쟁이들이 상큼하게 배신 때리고 승상을 죽이려 했습니다. 저들을 보니 마치 은덕도 잊어버리고 숙부 여백사(呂伯奢)를 죽였던 누가 생각납니다” 일갈(一喝)했다.
나동그라진 조조도 당장 채모‧장윤을 포박해 단칼에 참해버렸다. 여백사 살인범 같은 채모‧장윤의 소문은 날개 돋친 듯 천하로 퍼져나갔다.
허나 이는 실은 최대위협인 조조 측 수군대장들을 한꺼번에 제거하려는 주유의 반간계(反間計)였다. 재롱둥이들 목이 떨어짐과 동시에 동오 측 함대가 대공세(大攻勢)로 전환하자 그제야 조조는 뭔가 이상한 걸 깨닫고 머리 긁적였다. “그러고 보니 채모‧장윤 제거로 가장 득 본 건 주유 아닌가. 이거 설마 내가 속은 건가. 또 생각해보니 여백사 살해범은 나잖아. 어쩐지 길거리에서 사람들이 나만 보면 돌맹이 던지더라. 저런 우라질 장간놈”
그러나 장간의 뻘짓은 과거형이 아닌 현재진행형이었다. 조조가 주먹 흔들며 장간 찾아다니는 사이 장간은 자신이 공 세운 줄 착각하고 ‘역풍 2탄’에 착수했다.
장간은 시치미 뚝 떼고서 또다시 장강 넘어 주유를 찾아갔다. 주유도 “채모‧장윤이 왜 죽은 거지. 아아 슬프다” 시치미 뚝 떼고서 장간을 맞았다. 또다시 풍악이 울려 퍼지고 이튿날 이 쑤시며 귀가하던 장간은 제갈량(諸葛亮)과 함께 복룡봉추(伏龍鳳雛)‧와룡봉추(臥龍鳳雛)로 일컬어지던 천하제일의 모사 방통(龐統)을 만났다.
신 난 장간은 즉각 방통을 보쌈해 조조에게 대령했다. 방통은 수군(水軍) 멀미‧역병에 고민하던 조조에게 “배들을 몽땅 쇠사슬로 엮어버리면 풍랑(風浪)에 흔들리지 않을 것이오” 건의했다. 수전에 문외한이었던 조조는 무릎을 탁 쳤다.
또다시 콧대 높아진 장간은 “주유 머리로는 이런 천재적 아이디어 짜낼 턱이 없습니다. 필패(必敗)의 주유 때문에 죽음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는 강동 백성들은 필히 주유를 증오하면서 승상을 쌍수 들어 환영할 것이옵니다. 이 광경을 보니 마치 수년 전 제 분수도 모르고 서주(徐州)에 쳐들어갔다가 백성들을 대학살로 내몬 누군가가 생각나옵니다” 읊어댔다. 서주 킬링필드 폭군 같은 주유의 이름은 또다시 산 넘고 물 건너 동서남북으로 퍼져나갔다.
허나 방통의 연환계(連環計)도 실은 주유의 계책이었다. 거함(巨艦)들이 서로 들러붙어 오도 가도 못 하자 주유의 화공선(火攻船)들이 벌떼처럼 몰려와 시원하게 불살라버렸다. 패장(敗將)으로서 수많은 인명(人命)을 죽음으로 이끈 건 도리어 조조 자신이 됐다.
얼굴에 숯검댕이 칠한 채 머리 긁적이며 달아나던 조조는 또다시 뭔가 미스터리한 데자뷰(dejavu) 현상을 느꼈다. “배들을 탈탈 모아 묶어버렸더니 환상의 불쇼가 펼쳐졌구나. 이거 설마 내가 또 속은 건가. 그리고 서주 킬링필드를 지시한 건 나잖아. 어쩐지 도망치면서 관문 지날 때마다 맞바람이 불면서 사람들이 나를 폴포트라고 부르더라. 또 사돈 남 말 한다고 욕하더라” 결국 역풍 제조의 명장, 마이너스 신화의 장간을 그 날 이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야권의 강성희 진보당 의원 ‘쉴드’ 과정에서 실소(失笑)를 낳는 발언 하나가 나왔다. 전직 법무장관 A씨는 SNS에서 “강 의원이 끌려 나가는 걸 보니 북한 김정은의 장성택 끌어내기가 생각났다”는 취지로 밝혔다. 아마도 현 대통령을 만고(萬古)의 폭군(暴君)‧독재자 김정은에 빗대려는 의도였으리라 짐작된다.
그런데 하필 A씨의 해당 SNS 당일 제1야당 최고위급 인사의 “우리 북한” 발언이 나와 야권 전체가 역풍 맞을 조짐이 보이고 있다. ‘우리 북한이라 부르는 등 김정은 독재자 같은 건 너희 야당 수뇌부인데 무슨 내로남불로 사돈 남 말 하나’는 식으로 말이다.
A씨는 그간 수많은 역풍 제조로 화제의 중심에 선 바 있다. 오죽했으면 그의 성씨(姓氏)와 내로남불을 합친 신조어까지 등장했고, 야당들마저도 그에게 선 그었을까. 그런 A씨가 또다시 한 건 해낸 것이다.
필자가 듣자 하니 당정을 거세게 몰아붙이던 야권 상당수 인사들이 A씨의 이번 김정은‧장성택 발언으로 재차 “헉” 했다고 한다. 반면 여당 일각에선 화색(和色)이 돌 조짐이 보인다고 한다. 정치적 중립이 요구되는 직업상 필자는 누구의 손도 들어줄 순 없다. 그저 A씨가 앞으로 또 어떤 마이너스의 능력 발휘해 국민에게 큰 웃음 안기고 정계 희화화(戲畫化)에 일조할지 기대 반, 탄식 반일뿐이다.
오주한 前 여의도연구원 미디어소위 부위원장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