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선관위 의혹, 사실이라면 망국(亡國)획책이다

능력본위로 흥한 손오와 낙하산으로 망한 조위

선관위 부패, 국가흥망으로 직결…엄중조사해야

낙하산 일삼으며 황제를 갖고 논 조상 패거리

능력본위(能力本位‧능력주의)는 인류가 수천년 간의 처절한 인사(人事)실패를 학습삼아 만든 선진적 개념이다. 혈통세습 등 불공정채용은 수많은 능력자들의 임용기회 싹을 자른다. 주경야독(晝耕夜讀)한 이들의 생계를 위태롭게 하고 사회를 어지럽힌다. 나아가 불공정하게 입관(入官)한 이들 상당수는 무능‧탐욕 등을 바탕으로 인사전횡을 일삼고 시원하게 국정(國政)을 말아먹어 나라 전체를 파탄으로 몰고 간다.

삼국(三國)시대 조조(曹操)가 일으킨 위(魏)나라는 불공정채용으로 쇠락한 사례 중 하나다. 초창기 위나라는 모략‧행정‧용병(用兵) 등 모든 면에서 능했던 조조의 탁월한 능력 등을 바탕으로 승승장구했다. 서기 200년 관도대전(官渡大戰)에서 북방의 강력한 원소(袁紹)를 꺾는가하면 각지 군웅(群雄)들을 제압하고 삼국 중 가장 큰 영토를 확보했다.

그러나 위나라 인사시스템에는 치명적 약점이 있었다. 인성(人性)은 개차반이었던 조조는 조인(曹仁)‧하후돈(夏候惇) 등 친인척 위주로 중용했다. 용병의 조인, 군사행정의 하후돈 등 적어도 초창기 낙하산들은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이들은 창칼이 난무하는 난세(亂世)의 창업(創業)세력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때문에 분신쇄골(粉身碎骨) 외에는 답이 없었다. 무능‧나태는 곧 죽음‧멸족(滅族)을 의미했다. 수하들에 대한 조조의 자기계발 독촉도 이유가 됐다.

하지만 삼국이 정립돼 정세(政勢)가 비교적 안정되고 조조라는 컨트롤타워가 사라지면서 낙하산 풍토의 부작용은 필연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하후돈 등 낮은 직급, 몇 명 수준으로 시작했던 낙하산 규모는 영토 크기에 비례해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조조 사후(死後) 조씨(曹氏)‧하후씨(夏候氏) 후예들이 조정을 장악하고 그들 또한 무능한 혈육‧측근들을 낙하산 채용함에 따라 위나라는 급격히 쇠락했다.

오로지 조씨 일가라는 이유만으로 황제의 고명대신(顧命大臣‧탁고대신 또는 섭정)이 된 조상(曹爽)은 매우 그릇된 방향으로 인사전횡을 일삼으며 붕당(朋黨)을 꾸려 마침내 조정을 장악했다. 조상의 최측근 하안(何晏)은 뜬구름 잡는 소리만 늘어놓으며 여성처럼 화장한 채 오석산(五石散) 등 마약에 취해 헤롱대면서도 권력만큼은 집착했다. 황제는 조상 손바닥 위에서 놀아나는 허수아비였으며 국가지대사(國家之大事) 전반을 조상 패거리의 지시에 따라 행했다. 국정 최대과제는 조상 패거리의 부귀영화(富貴榮華)가 됐다.

결국 조상은 사마의(司馬懿)에 의해 어이없이 내쫓겼다. 사마의의 거사에는 낙하산‧민생악화 등에 실망한 정서장군(征西將軍) 곽회(郭淮) 등 수많은 문무백관들이 따랐다. 하후패(夏侯霸)는 조정의 주인이 바뀌자 일가족까지 버려둔 채 적국 촉한(蜀漢)으로 달아났다. 조위(曹魏)는 조조의 위공(魏公) 책봉 기준으로 약 50년만인 서기 265년 멸망했다.

말단병사 파격중용 등 낙하산 경계한 손오

손견(孫堅)‧손책(孫策)‧손권(孫權)이 일으켜 세운 오(吳)나라는 위나라와는 반대로 부정채용 척결에 비교적 적극적이었다. 오나라 중신들 중에는 임관(任官)에 앞서 어떤 식으로든 능력‧자격이 입증된 이들이 상대적으로 많았다.

손견을 따라 거병해 황건적(黃巾賊) 등을 토벌한 정보(程普)‧황개(黃蓋)‧한당(韓當)‧조무(祖茂) 등은 모두 가문의 후광과는 거리가 먼 인물들이었다. 정보는 군(郡)의 말단관리였으며 황개는 나무꾼 출신이었다. 한당‧조무는 손견의 부곡(部曲‧사병)이었다.

강동(江東)을 평정한 손책 시절 발탁된 여몽(呂蒙)은 일반백성으로서 자형(姊兄)에게 얹혀살던 별 볼일 없는 인물이었다. 자형을 따라 말단졸병으로 종군(從軍)한 여몽은 당초 오하아몽(吳下阿蒙‧힘만 센 바보)이라는 멸칭으로 불렸지만 손책‧손권은 그의 숨겨진 자질을 알아봤다. 괄목상대(刮目相對)라는 고사성어까지 낳을 정도로 주경야독한 여몽은 훗날 전군을 지휘하는 도독(都督)에 올라 공정한 인사를 행하고 형주(荊州)를 탈환했다.

손권을 따르면서 유수구(濡須口)전투 등 마찬가지로 큰 공을 세운 감녕(甘寧)은 본래 수적(水賊)이었다. 감녕은 불과 100명의 별동대로 위나라 진영을 성공적으로 야습(夜襲)해 조조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이 외에 목동 출신의 오찬(吾粲), 농부 출신의 감택(闞澤) 등도 오나라를 위해 크게 활약했다. 오찬‧감택은 훗날 태자태부(太子太傅‧태자의 스승)에 임명돼 공정인사 등을 강조했다.

오나라의 세습경계‧능력본위 기용 수준이 어떠했는지는 풍칙(馮則)의 사례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손권 휘하 말단기병이었던 풍칙은 208년 강하군(江夏郡) 공략에서 적장 황조(黃祖)를 맹렬히 추격해 목을 취했다.

고대~근세에는 휘하의 공적은 곧 대장의 공적으로 기록되는 게 전혀 이상할 것 없는 상식이었다. 게다가 황조는 손가(孫家)의 원수였다. 자연히 내로라하는 장수들이 자신의 공이라고 주장했을 게 뻔하다. 그런데 오나라는 마치 위나라가 보란 듯 “황조를 처단한 건 풍칙”이라며 그의 실명을 사서(史書)에 숨김없이 남겼다. 그가 어떠한 대접을 받았을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공정인사는 당대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크나큰 파격이었다.

당초 밀림‧늪지대였던 강남지방이 본격적으로 개간되기 시작한 것도 능력본위의 손오(孫吳) 때다. 강남의 중심지 남경(南京)은 오나라를 시작으로 동진(東晉)‧유송(劉宋)‧남제(南齊)‧남량(南梁)‧남진(南陳)과 초기 명(明)나라 수도로 기능했다. 남송(南宋)도 강남의 임안(臨安) 등을 도읍으로 삼았다. 송나라 때부터는 강남의 경제력이 강북을 능가하기 시작했다. 능력본위 덕에 강남 백성들이 얼마나 풍요롭게 살게 됐는지는 안 봐도 알 수 있다.

오나라라고 해서 낙하산에 의한 혼란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지만, 이를 극복하기 위한 능력본위의 피나는 노력을 하고 민생(民生)에 애썼기에 삼국 중 가장 마지막(280년)까지 존속할 수 있었다. 만약 동맹국 촉한이 어이없이 무너지지 않고, 사마의가 사마사(司馬師)‧사마소(司馬昭) 등 뛰어난 후계자를 두지 않았더라면 오나라의 생명력은 더 길어졌을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선관위 불공정인사, 총‧대선 등 더 큰 인사에도 영향

대한민국 헌법기관, 그것도 그 어디보다 능력‧도덕성이 중시되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고위간부 자녀 특혜채용 의혹이 발생해 근래 온 사회를 들썩이게 하고 있다.

만인평등(萬人平等), 특수계급 불허(不許) 등이 헌법(11조)에 명시된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전근대적 낙하산인사가 버젓이 벌어진 것 아니냐는 논란에 국민 충격은 이루 말로 다할 수 없다. 고래(古來)로 과거(科擧)시험 선진국이었던 우리나라에서 계층 간 이동 사다리를 걷어 차버린 역사의 역행(逆行)이 벌어졌다는 점에서 탄식의 목소리가 높아진다. 과거제도는 근세 들어 서양이 벤치마킹할 정도로 효율적이라는 점에서 나라망신이라는 비판도 있다.

노태악 중앙선관위원장은 30일 “국민께 심려를 끼쳐드려 송구스럽다” “(불공정채용 사례가 더 있는지) 앞으로 전수조사를 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는 ‘셀프조사’라는 한계가 있기에 눈 감고 아웅하는 격 아니냐는 지적이 잇따른다. 선관위는 독립기관이기에 외부에 의한 조사도 쉽지 않다. 때문에 노 위원장이 깔끔하게 사건 전모(全貌)를 밝히고 거취를 결단하거나, 중립성이 담보되는 후임 인선(人選) 후 조사하는 게 답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선관위의 반(反)헌법적 부패, 문벌귀족(門閥貴族) 출현은 그들의 헌정질서 유린, 민생혼란 등을 넘어 나라를 기울게 만들 중차대한 사건이다. 개표 등을 전담하는 선관위에서의 ‘그들만의 리그’는 대선‧총선‧지방선거 등 중요 선거들, 즉 훨씬 더 큰 인사에도 악영향을 끼칠 공산(公算)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위나라 등 역사 사례들에서 보듯 무능을 기반으로 한 불공정인사는 설사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장기적으로는 결국 망국(亡國)을 야기한다. 당국은 구렁이 담 넘어가듯 흐지부지하지 말고 끝까지 철저히 조사해 진위여부를 밝히고 국가 근간을 바로 세워야 한다.

오주한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