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 위해 나선 레오1세, 만인 구원하고 대성인 등극
李 회동에서의 ‘작심발언’ 洪, 레오1세 답습여부 주목
인류역사상 적과의 회담을 통해 악(惡)을 물리치고 본의 아니게 자신의 위상도 크게 제고한 사례는 적지 않다. 대표적 사례 중 하나가 대교황(Magnus) 레오 1세(Leo I‧생몰연도 서기 401~474), 신의 채찍(Scourge of God) 아틸라(Attila‧?~453) 사이에 펼쳐졌던 세기의 담판이다.
아틸라는 5세기 훈족(Huns)의 왕이다. 훈족은 한 때 아시아를 두려움에 몰아넣었던 흉노(匈奴)의 일파다. 당초 흉노‧훈족의 연관성에는 의문이 제기됐다. 그러나 이를 뒤엎는 연구결과가 2018년 네이처(Nature)를 통해 발표됐다. 에스케 빌러슬레프 덴마크 코펜하겐대 지리유전학센터 교수팀은 고대인류 유전자 분석 결과 흉노‧스키타이(Scythia) 등이 통혼해 훈족이 탄생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부연하자면 스키타이는 선사시대 유럽인, 시베리아 일대 수렵채집 민족 등이 뒤섞여 형성된 유목민족이다. 최초의 기마민족으로 일컬어지며 사람 두개골을 ‘술잔’으로 사용하는 게 취미였다고 한다. 바지 등 의복도 이들로부터 비롯됐다는 설이 있다. 선사시대의 성별불문 보편적 하의였던 치마는 맨살이 드러나 억센 마모(馬毛)와의 마찰로 인해 상처 입을 수 있지만 바지는 그렇지 않다. 바지는 훗날 호복(胡服)이라는 이름으로 전국시대 조무령왕(趙武靈王) 시절에 도입돼 아시아 전역에 확산된 것으로 알려진다.
정설로 굳어진 훈족 탄생비화는 다음과 같다. 한(漢)나라를 반식민지로 삼던 흉노는 기원전 2세기 무렵 한무제(漢武帝)의 대규모 북벌에 의해 세가 크게 약해졌다. 일부가 한나라에 투항하는 등 대혼돈이 빚어지는 와중에 한 일파는 무제를 피해 서쪽으로 달아났다. 수백년에 걸쳐 서진(西進)하며 스키타이 등 여러 민족을 흡수하던 이들은 마침내 유럽에까지 도달해 공포의 대명사로 군림했다.
유럽에 도착했을 무렵 훈족의 용모는 더 이상 아시아인의 그것이 아니었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실제로 핀란드 주류민족인 핀족(Finn)의 인종은 본래 몽골로이드였다. 이들은 8세기 무렵 에스토니아를 거쳐 북유럽에 정착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의 핀족은 신체 일부 특징에서만 몽골로이드의 흔적이 나타날 뿐 외모는 완연한 코카소이드다. 같은 백인계 국가인 헝가리는 아예 국명에 ‘Hun’을 넣을 정도로 훈족을 조상으로 삼고 있다.
조상들의 호전성을 이어받았기 때문일까, 조상 대대로 전설처럼 구전되어온 망국(亡國)의 한(恨) 때문이었을까. 훈족의 전투력은 상상 이상으로 막강했으며 잔혹성은 도를 넘었다.
서기 4세기 무렵 유라시아 대초원 서부에 모습을 드러낸 훈족은 흑해 일대의 게르만족(Germanic peoples)을 무자비하게 격파하면서 화려한 신고식을 치렀다. 게르만족은 동고트족(Ostrogoths)을 시작으로 도미노처럼 무너지기 시작했다.
이들은 훈족과 유사하게 서쪽으로 달아나면서 역사적 대사건인 ‘게르만족의 대이동’을 일으켰다. 훈족의 학살‧약탈을 피해 이주한 게르만족이 훗날 세운 나라만 해도 북아프리카의 반달(Vandal)왕국, 이탈리아 반도의 동고트왕국, 이베리아 반도의 서고트(Visigoth)왕국, 서‧중부유럽의 프랑크(Frank)왕국, 그레이트브리튼 섬의 칠왕국(Heptarchy) 등 상당수다. 이 중 프랑크왕국으로부터 파생된 국가만 해도 프랑스‧독일‧오스트리아‧네덜란드 등 십수개에 달한다.
그렇게 유럽을 휘젓던 훈족은 5세기 무렵 아틸라가 출현하면서 더더욱 악명을 떨쳤다. 본래 그는 친형 블레다(Bleda)와 공동통치 형태로 종족을 다스렸다. 그러던 어느날 형이 의문의 죽음을 맞으면서 아틸라는 단독으로 왕좌에 앉았다. 권력을 오로지한 그는 주변국에서 조공 받는 걸 넘어 동‧서로마제국까지 침공하고 초토화하는 등 폭주했다.
‘인간백정’ 아틸라의 도살행각 수준은 451년 서로마군과 펼친 카탈라우눔(Catalaunum) 전투에서 그가 했다는, 진위여부는 확실하지 않지만, 발언에서 짐작할 수 있다. “이 아틸라가 싸우는 전장에서 편히 쉴 수 있는 자는 오로지 죽은 자들뿐이다” 아틸라의 패악질이 어느 정도였냐면 유럽인들이 그에게 붙인 멸칭이 ‘신의 채찍(또는 형벌‧저주)’일 정도였다. 근‧현대에 들어서도 아틸라는 유럽인들의 뇌리에 깊이 각인돼 있다. 1846년 이탈리아의 작곡가 주세페 베르디(Giuseppe Verdi)는 오페라 ‘아틸라’를 베네치아에서 초연하기도 했다.
그러나 유럽 각 국은 침략 앞에 무력하기만 했다. 카탈라우눔 전투에서 동고트족‧프랑크족 등 일부가 아틸라에게 붙어 아군에게 창칼을 내지르는 등 ‘내부총질’도 만연했다. 바야흐로 아틸라의 마수(魔手)가 유럽인들의 정신적 고향 로마로까지 향할 때 나선 인물이 바로 레오 1세였다.
로마 시내가 훈족의 말발굽 아래 짓밟히기 직전인 452년 레오 1세는 서로마제국 황제 발렌티니아누스 3세(Valentinian Ⅲ)로부터 강화 중재에 나서 달라는 긴급요청을 받았다. 기록에는 없지만 실제로 양자회담이 성사됐다는 점에서 미뤄볼 때 긴급요청에 앞서 발렌티니아누스 3세와 아틸라의 사전교감도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13세기에 집필된 라틴어 위인전 황금전설(Legenda aurea) 등에 의하면 레오 1세는 호위병도 없이 시종 몇 명만 데리고 회담장으로 나아갔다. 황금전설에는 레오 1세가 ‘신의 권능’으로 아틸라를 물리쳤다고 나온다. 그러나 이는 중세 특유의 종교적 과장일 것이라는 게 사학계 정설이다. 실제로는 레오 1세가 아틸라의 정치적‧사회적 약점 등 폐부를 정면으로 찔렀을 것으로 보고 있다.
레오 1세의 추상같은 언변이 얼마나 촌철살인(寸鐵殺人)이었으면 말 보다 창칼이 먼저였던 아틸라마저 군말 없이 즉각 회군할 정도였다. 이 믿기지 않는 세기의 담판 앞에 ‘신의 권능’ 등 황금전설의 기록도 나올 수 있었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아틸라는 회군 약 1년만인 453년 마치 정말로 신의 철퇴를 맞기라도 한 것처럼 침실에서 돌연사하기도 했다. 훈족은 아틸라 사후 내분을 겪다가 동로마제국의 속방(屬邦)이 된 후 소리소문 없이 사라졌다.
수년 뒤 반달족의 로마 침공 과정에서의 파괴‧학살마저 단신으로 막아낸 레오 1세는 본의 아니게 살아생전은 물론 후대에도 큰 이름을 길이 남겼다. 지금까지 ‘대교황’ 칭호를 받은 이는 레오 1세와 그레고리우스 1세(Gregorius I)뿐이다.
레오 1세는 1754년 교황청으로부터 교회학자(Doctor of the Church‧또는 교회박사)로 선포되기도 했다. 고대로부터 2019년까지 인정된 교회학자는 36명에 불과했다. 교회에 큰 기여를 한 학자에게 부여되는 교회학자 칭호는 성성(聖性)한 성품, 탁월한 학식, 현직 교황 인증과 같은 세 가지 까다로운 조건을 갖춰야 받을 수 있다.
근래 홍준표 대구시장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회동이 대구시청에서 있었다. 행동에 제약이 있는 대통령을 대신한 준(準)영수회담 격이었다. 회동에서 홍 시장이 ‘탈당’ ‘수석침류(漱石枕流‧자기만 옳다고 우기며 자기정치에만 몰두)’ 등 표현을 통해 방탄 등 논란의 이 대표 정곡을 찔렀다는 평가가 나온다. 나아가 홍 시장이 여당 내 문제점들도 가감 없이 지적해 ‘사심 없는’ 그의 모습에 대한 국민적 호감이 본의 아니게 한층 오를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여권 내 일각에서 이번 회동을 두고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목소리도 분명 있다. 분명한 건 레오 1세와 아틸라의 대화 내용이 기록되지 않았을 정도로 이들의 만남에서도 타인의 오해를 살 만한 허심탄회한 여러 얘기가 오갔을 수 있다는 것이다.
갖은 권모술수(權謀術數)가 난무하는 정치판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결과다. 그 목표하는 바가 레오 1세처럼 공익(公益)을 우선시한 것이냐, 난신적자(亂臣賊子)들처럼 오로지 사익(私益)만을 위한 것이냐다. 대구시청 회동에서의 각종 발언들도 전자를 위한 것이라는 평가가 적지 않다. 홍 시장과 레오 1세가 오버랩 될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잘 봤습니다
한말씀 드리면 전 개인적으로 이번만남은 서로 윈윈이라봅니다
일시적으로 홍시장님이 친윤의원이나 친윤당원 비난 받을줄몰라도
중도 무당층에는 같이 있는 사진 한장만으로 이래야한다.
제주변은 다들 긍정적입니다
정치인들은 서로 만나야 합니다
근시안적인 시각들이 판치는 요즘 국민을 위해 묵묵히 장막 안에서 대계를 그리는, 예전 건설적인 대한민국 시절처럼 진중하고 국가민생이 최우선인 정치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소견이었습니다. 고견 감사합니다.
홍시장님의 고도의 돌려까기에 당한 이재명이는 뼈가 아플겁니다. 김기현 당대표도 이재명이랑 만났을때 대놓고 탈당을 대화에 올린적은 없었거든요.
그것이 연륜이자 능력이 아닌가 싶습니다.
오늘도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늘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저는 국익우선의 정치가
홍시장님의 가장 큰 자산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때문에 검사시절부터 지금까지 온갖 비난과 협박을 받아도 물러서지 않고 업적을 쌓아가는 게 존경스러울 따름입니다.
혹자는 대통령이 되고 싶어서 그런다,
노욕이다라고 폄하하지만
저는 대통령이 되려고 하시는 게
사심보다 대한민국을 잘 살게 하기 위해서라고 추측합니다.
그리고 저 연세에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나아가시는 것에 많은 것을 느낍니다.
춘추가 지어지니 세상의 난신적자들이 두려움에 떨었다고 합니다. 지금의 난신적자들도 맏형님의 쓴소리에 두려움을 가져야 마땅하리라 생각합니다. 고견 감사드립니다.
문제는 민주당은 이걸 자신을 지지했다고 선전할 것이고, 국힘은 준표형을 민주당의 스파이라고 볼 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