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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대통령 부인과 옷의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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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하여

나토 회담에서 ‘버젓이’ 대통령 부인으로서의 임무를 수행하는 김건희 여사를 지켜보는 심정은 착잡했다. 대선운동 기간 동안 주가 조작, 논문 표절, 경력 위조 등의 범죄 피의자로 주목받게 되자 “영부인이 아닌 대통령 배우자로서의 조용한 내조”를 약속했지만, 그런 대국민 약속을 별다른 해명 없이 어기고 있기 때문이다. 역대 대통령 부인을 차례로 방문해 대통령 부인의 역할에 대한 조언을 들은 다음, 해외방문에 나서 활발한 문화외교를 펼치는 그의 주요한 이미지 메이킹 수단이 패션이라는 사실도 불편하다.

 

역대 대통령 부인 가운데 가장 젊고 맵시가 좋은 김건희 여사 패션은 늘 주목 대상이다. 여러 차례 겹쳐 입은 자줏빛 후드티와 인터넷 쇼핑몰에서 파는 하얀 슬리퍼에서 시작해 고가의 해외 명품 의상과 액세서리까지 자유롭고 세련된 이미지를 전파한다. 모든 언론이 그의 패션 아이템을 시시콜콜 보도하고, 급기야 박지원 전 국정원장까지 나서 “영부인의 패션은 국격을 보여준다”는 극찬과 함께, “하도 뭐라 하니까 주눅이 든 것 같다”는 동정론까지 펼치는 마당이다. 그러는 사이, 50일이 넘도록 답변서가 오지 않는 경찰 심문조서가 보여주듯 법망은 차별적으로 작동하고 있다.

 

대통령 부인의 옷은 지난 정권과 새로 들어선 정권의 정치 전략으로 사용되면서 이미지 정치의 민낯을 보여준다. 석 달 전만 해도 김정숙 여사의 패션과 옷값 공방이 한창이었다. 그는 공식석상에서만 180여벌의 의상, 200여점의 장신구를 착용했다고 한다. 표범 문양 브로치의 진위까지 논란이 됐다. 워낙 화려한 스타일이라 더 두드러졌던 대통령 부인의 옷값을 대통령의 월급으로 냈는지, 박근혜 전 대통령처럼 청와대의 특수활동비로 냈는지가 ‘내로남불’ 논란의 핵심이었다.

 

이런 옷의 정치는 이제 구시대의 산물로 넘겨야 한다. 이는 여성을, 그것도 퍼스트레이디를 눈요기로 삼는다. 대통령 부인은 남편에 따라 아내의 지위가 결정되는 가부장제의 산물로서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지만, 현실적으로 대통령 부부를 분리시키기 어렵다면 적절한 역할이 주어지는 일은 불가피하다. 대통령 부인이 갖는 대중성으로 인해 선한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대통령 부인은 옷이 아니라 활동으로 부각돼야 한다. 김건희 여사의 경우 동물권에 대한 관심이 높다. 늘 반려견과 함께 등장하는 대통령 부부의 모습으로부터 이번 정권에서 적어도 동물의 권리는 높아지지 않을까 기대하게 된다.

 

대통령 부인의 옷 자랑이 시대착오적인 또 다른 이유는 최고의 셀럽 모델로서 패션산업을 육성한다는 가치 또한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모피코트가 부의 상징에서 몰상식의 표현으로 변한 것처럼 이제 수많은 옷을 사고 입고 버리는 게 자랑이 아닌 시대가 되었다. 연예인이라면 몰라도 대통령 부인은 정치적 올바름을 실천해야 한다.

 

기후위기 시대의 젊은이들 가운데는 옷을 사지 않는 이들이 늘어난다. 내가 아는 20대 여성은 4년 전 미국에서 오리털 파카 한 벌을 폭탄세일로 1.5달러에 파는 것을 보고 더 이상 옷을 사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 옷과 가격표에 숨어 있는 동물 학대, 개발도상국 여성노동자들의 착취를 절감했기 때문이다. 옛날에 산 옷, 주변에서 주는 옷, 엄마에게 물려받은 옷을 입는데도 그는 늘 멋지다.

 

패션산업은 전 세계 온실가스의 10%, 수질 오염의 20%를 차지한다. 청바지 한 벌을 만드는 데 한 사람이 10년간 마시는 7000ℓ의 물이 필요하다. 유럽 귀족의 옷과 군복이 합쳐진 형태인 남성 양복은 화이트칼라 직업을 양산하던 산업시대의 산물이며 이에 보조를 맞춘 여성 의상도 마찬가지다. 우아한 옷으로 지위를 자랑하던 파워엘리트의 시대는 지나갔다. 계절마다 새 옷을 사기보다 자신에게 어울리는 옷을 천천히 고르고 오래 입는 게 기후시대의 패셔니스타이다.

 

최근 슬로패션 운동이 활발하다. 여성환경연대가 내놓은 ‘슬로패션 가이드’는 “가장 지속 가능한 옷은 이미 옷장에 있는 옷이다”라는 슬로건과 함께, 세탁기 최소한으로 사용하기(합성섬유 1㎏ 세탁 시 200만개의 미세플라스틱 발생), 옷 바꿔 입기(중고 거래)와 같이 입기(대여), 꼭 구입해야 한다면 천연섬유나 재활용섬유 그리고 공정무역 의류 선택하기 등을 권장한다.

 

한국 정치와 사회를 뒤흔드는 페미니즘의 물결에 비하면 대통령 부인의 이미지는 시대착오적이다. 화려한 옷 뒤에 숨을 필요 없다. 김건희 여사의 활동이 불가피하다면 오랜 시간 일했던 경험을 살려 혁신적 활동을 선보이면 좋겠다. 약속 파기에 대한 해명과 수사 협조도 요청 드린다. 모든 국민이 법 앞에 평등하다면, 그 역시 확정판결이 날 때까지 활동을 보장받아야 한다.

 

[경향신문 / 세상읽기 / 입력 : 2022.07.02 03:00한윤정 전환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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