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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김한길과 신성로마제국

전향자

여기 한 남자가 있다.

 

그는 4선 국회의원과 문화부 장관 그리고 여당 원내대표, 야당 대표도 1번 역임했다. 보편적인 정치인이라면 범접할 수 없을 정도의 이력(履歷)이니 분명 정치적 거물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하지만 폐암 투병으로 정계와는 단절된 삶을 살면서 사라졌던 그가 최근 다시 주목받고 있다.

바로 국민의 힘 대선주자인 윤석열이 그를 국민통합위원장으로 지목하면서부터다.

그렇다. 이 남자의 이름은 바로 김한길이다.

 

나는 김한길을 잘 안다.

 

지금은 탈당했으나 내 닉네임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나는 거의 20년 정도 진보정당의 당원이었다.

그래서일까?

김한길이 어떤 사람인지 정말 뼈저리게 잘 알고 있다.

20년 동안 그의 이름만 들으면 치가 떨릴 정도였다.

그만큼 나는 그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

뭐 하고 살았는지 세세하게 안다는 게 아니라 그의 정치적 속성이 얼마나 비정상적인지 잘 안다는 의미다.

그러나 그가 정치적 퇴물이 되면서 기쁜 마음으로 잊었다.

 

그런데 지금 보수정당의 대선후보인 윤석열이 민주당계의 정치인으로 분류되는 김한길을 중용하려는 장면을 보면서 과거의 기억이 너무나도 강렬하게 되살아났다.

또한, 김한길의 등장으로 윤석열이 무엇을 꾀하는지도 다시 한 번 더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그러자면 김한길의 지난 삶을 간단하게라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본론을 꺼내기 전 단언하는 데 김한길은 정상적인 궤도를 거친 정치인이 아니다.

 

김한길은 단 한 번도 제 능력으로 당선된 적이 없다.

 

4선의 국회의원과 여당 원내대표 그리고 제1야당의 대표.

이 화려함이 감추고 있는 김한길의 총선 성적을 잘 살펴보자.

 

1. 김한길의 첫 선거는 1991년 정주영의 통일국민당 소속으로 치른 선거였다. 지역구 의원이었으며 당연하겠지만 낙선한다. 3등이다.

 

2. 그가 처음 국회의원이 된 건 1996년 당시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총재가 제안한 전국구 즉, 지금의 비례대표 의원이다. 순번은 6번으로 안정권이었다.

 

3. 재선은 200016대 국회의원 선거로 역시 전국구 13번으로 안정권이었다.

 

4. 2001년 서울 구로을에 야심 차게 도전한다. 지역구였으니 당연하게도 낙선한다.

 

5. 200417대 총선에도 열린우리당 소속으로 서울 구로을 지역구에 도전하는 데 당선된다. 참고로 이때는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역풍으로 어지간하면 다 당선됐다는 점을 반드시 각인할 필요가 있다. 자기 능력이 아니다.

 

6. 200818대 총선은 불출마한다. 선당후사라고 생각하지 말자. 이 당시는 이명박 대통령의 당선 직후로 가히 보수정당의 전성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시기였다. 친박연대 등 보수 진영의 분열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은 153, 자유선진당 18, 친박연대 14, 친박 무소속 연대 12, 그 외 보수 무소속 등 범보수 진영이 202석을 확보했던 시기다. 참고로 민주당 당선자는 81명에 불과했으니 김한길은 알아서 발 뺀 것이라고 보면 된다.

 

7. 다시 김한길이 출마한 건 민주통합당 소속으로 201219대 총선 서울 광진 갑이었다. 지역구 출마임에도 불구하고 김한길이 이긴다. 대단하게 볼 필요는 없다. 딱 한 번 이긴 것이니까. 그런데 알고 보면 사정이 많다.

그리고 이때는 진보 진영의 총선 승리가 관측되던 시기였다. 물론, 민주당의 헛짓으로 새누리당이 이겼다.

 

8. 2016년 국민의 당 소속으로 20대 총선에 출마했다. 그런데 이때 그의 지역구인 광진구 갑은 야권 분열 상태였다. 자기 손으로 분열시킨 더불어민주당에서도 후보를 출마시켰다. 사실 더불어민주당에서 후보를 출마시키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면 진짜 멍청한 것이다. 물론, 새정치민주연합이 아예 붕괴할 것이라는 확신에 차 있었을 것이다.

어쨌든 여론 조사상으로는 새누리당 후보에게 대패하는 걸로 나왔다. 지지율이 아주 초라했다.

김한길은 초조해졌다. 그래서 미친 짓을 하는 데 바로 더불어민주당과의 연대였다.

자기가 깨고 나와놓고 연대를 주장하는 비정상적인 행동은 탈당을 운운하면서 화룡점정을 찍는다. 새정치민주연합 탈당해서 국민의 당을 만들었는데 또 탈당을 언급한 것이다. 이쯤 되면 정치공학에 미친 사람이 분명하다.

왜 이런 행동을 했겠는가.

간단하다. 자기가 낙선될 것 같으니까.

김한길은 절규했다. 단일화 안 하면 야권은 패배한다면서 계속 미친 소리를 했다. 진짜 머릿속에 정치공학만 남은 사람이다. 자기가 당을 깨고 나왔으면서 말이다.

아마도 속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이놈들아! 내가 낙선한다고!”

어쨌든 당시 국민의 당 실권자였던 안철수는 수용하지 않았다.

 

결국, 김한길은 질 것 같으니까 알아서 총선 불출마를 했다.

그런데 야권은 대승을 거뒀다.

우습게도 광진구 갑에서는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당선됐다.

김한길은 크게 뻘쭘했을 것이다.

 

그렇다.

김한길은 제 능력으로는 당선될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김한길은 왜 거물로 분류되는가.

 

지금보다는 오래전이다. 과거 민주당계 정당은 무지개가 깜짝 놀랄 정도로 심각한 계파 갈등을 겪고 있었다.

가장 뿌리 깊은 세력은 바로 호남 지역의 영주들로 이뤄진 동교동계다.

과거 DJ와 함께 민주화를 쟁취했던 동교동계의 역사는 이미 과거의 영광에 불과할 뿐 21세기의 그들은 지역의 기득권에만 집착했다.

김한길은 바로 이러한 영주 중심의 기득권 정치에 최적화된 인물이었다.

그가 총선에서는 맨날 허우적거리면서 당내 선거에서 큰 성과를 내는 건 다른 이유가 아니다. 호남 영주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기 때문이다.

 

당 대표 김한길은 공천권을 위해서 존재할 뿐이었다.

물론, 그의 행동은 유권자에게 엄청난 염증을 줬기에 실제 성적은 늘 형편 없었다. 당 지도부로 치른 선거는 늘 엉망진창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호남 정치인을 대변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적합한 인물이었기에 상당한 계파를 구축할 수 있었고, 늘 유력한 당 대표후보였다.

 

바꿔 말해서 김한길이 거물이었던 세상은 지독할 정도로 악취가 났던 지역 영주들의 세상이었다.

 

김한길은 목적을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잠시 과거로 되돌아갈 필요가 있다.

 

2007년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이 대통합민주신당으로 변화하는 과정은 정상적이지 않았다.

원내 1당이었던 열린우리당 소속 의원 대부분이 대통령 노무현에게 독설을 퍼부으면서 탈당을 감행한다.

새해 벽두부터 시작한 탈당의 시작은 당연하지만 동교동계였다.

소수의 1차 탈당에 이어서 김한길계 23명이 탈당하면서 열린우리당은 대통령 노무현의 당적을 정리하는 절차에 이른다.

이후 17명의 2차 탈당, 16명의 3차 탈당 등의 과정을 거치면서 열린우리당은 사실상 강제 해체당한다.

이를 진두지휘한 사람이 바로 김한길이었고 배후는 동교동계다.

한국 정당사에 이토록 참혹할 정도로 과반 정당을 붕괴시킨 사례는 없다.

이걸 해낸 게 바로 김한길이다.

 

2013년 민주통합당의 당 대표로 선출된 김한길은 당내 권력을 완벽하게 장악하고자 했다. 그러자면 결국 동교동계의 유일한 경쟁 계파인 친노 세력의 정점에 있는 문재인을 제압해야 한다. 결과 김한길은 문재인과 대척점에 있는 숙주를 선택하는 데 바로 안철수다.

그렇게 새정치민주연합이라는 희대의 무지개 정당이 탄생하게 되었다.

 

물론,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김한길은 당내 권력 싸움에는 탁월할 뿐이었기에 2014년 지방선거에서 가까스로 무승부(이때도 공천은 진짜 개판이었다.), 7·30 재보선에서 대패하면서 당 대표 사퇴를 하게 된다.

 

그러나 이렇게 물러나면 김한길을 정당 브레이커라고 부르지 않을 것이다.

직후 출범한 문재인 체제를 흔들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

미친 듯이 난사한 내부 총질은 민주당계 정당의 계파 갈등이 얼마나 추악한지 여실하게 보여줬다. 그리고 김한길은 총선 직전 새정치연합을 무너뜨리기 위한 작업에 착수한다.

, 안철수와 동교동계의 연합이라고 할 수 있다.

 

김한길이 지독한 이유는 탈당도 한 번에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1, 2, 3……이렇게 나눠서 당을 혼란으로 빠트렸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 작업은 실패한다.

 

새정치민주연합의 명운이 걸린 시점에 지지율의 변동이 감지된 것이다.

결과 김한길, 안철수와 함께 새정치민주연합을 나간 사람은 동교동계로만 국한되었다.

죽 쒀서 개 준다고 했던가.

또한, 총선 결과가 아주 의미심장했다.

김한길과 안철수가 창당한 국민의 당은 다수 의석을 확보했으나 호남 정당이 되었고, 문재인의 더불어민주당은 사실상 전국 정당의 기틀을 마련했다.

결국, 김한길의 행보는 문재인에게 완벽한 당권을 선물로 주고 말았다.

 

그러나 이때 김한길이 문재인의 정치적 생명을 끊기 일보 직전이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윤석열이 김한길을 중용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대구 경북을 중심으로 수십 년간 똬리를 튼 영주들이 원하는 건 건강한 보수정당이 아니다.

이미 국민의 힘은 경선 결과로서 정권 창출을 제1 가치로 삼은 정당이 아니라는 것이 입증됐다.

 

민심과는 왜곡된 결과를 만들어 낸 그 집단은 정당이 아닌 신성하지도 않고, 로마도 아니며, 제국도 아닌 집단에 불과했다.

, 자신들만의 신성로마제국을 세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들에게 있어서 대선은 이기면 좋은 당근에 불과하다.

 

그리고 신성로마제국과 가장 잘 어울리는 정치인은 누가 뭐라고 해도 김한길이다.

그를 중용한 이유는 신성로마제국만의 단일 대오를 구축하기 위해서이다.

 

이미 김한길의 당권 싸움은 시작됐다.

 

최근 언론의 보도로는 윤석열이 국민의 힘에 입당하는 과정에서 김한길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고 한다.

윤석열이 입당 전후에 이준석 대표를 흔들었던 여러 방책 그리고 당심을 장악하는 과정에 김한길이 깊숙하게 개입했다는 걸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다.

윤석열이 이준석 대표를 흔들었던 과정은 과거의 사례와 너무나도 유사하다.

, 윤석열이 영주들과 손을 잡고 조직표를 확보하는 건 과거 민주당계 과정에서 동교동계 했던 과정과 지독할 정도로 흡사하다. 마치 2007년 대통합민주신당의 경선 과정을 보는 것만 같다. 아니 11만의 조직표를 보면 더 발전했다.

 

물론, 이 모든 걸 김한길이 기획했다고 예단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의 등장은 신성로마제국과 대표 윤석열이 당권 장악을 위한 가장 추악한 수를 펼치기 시작했다는 걸 의미한다.

 

보고 있노라면 참으로 씁쓸하다.

어째서 그런 정치인이 아직도 정치적 생명을 유지하며, 거물로 평가받는지 말이다.

 

2007년 대통합민주신당의 대선 경선 후보였던 유시민은 정동영에게 이렇게 말했다.

정치도 사람이 하는 건데, 사람이 의리가 있어야지요.”

그래도 한때 민주당계 정당의 당 대표였던 이가 보수정당을 기웃거리며 당권을 바라보는 추악한 모습에 그 말이 뇌리를 강하게 스친다.

 

홍준표는 보수정당과 한국을 개혁할 수 있는 유일한 승리의 보검이다.

 

나는 국민의 힘을 지지하지 않는다.

보수정당의 환골탈태를 바랄 뿐이다.

 

나는 홍준표를 지지하지 않는다.

홍준표지지할 뿐이다.

 

홍준표의 26년 정치 인생에 과오(過誤)가 없을 수는 없다.

그 역시 시행착오가 존재한다.

그러나 그의 정치는 분명하게도 과감한 정당 개혁으로 귀결되고 있다.

또한, 홍준표 대통령의 탄생은 보수를 넘어서 진보 진영까지 변화시킬 수 있었다.

 

비록 그의 걸음이 잠시 멈췄으나 아직 포기하기는 이르다.

과거 패배에 익숙하다는 조롱을 받았던 진보 진영이 지금의 더불어민주당으로서 최고의 성세를 누리기까지는 10년이 넘는 혼란을 거쳤다는 걸 상기할 때 아직 포기하기는 이르다.

 

국민의 힘이 신성로마제국화 되고 있으나 지금의 위기를 잘 극복할 묘안을 가진 선지자(先知者)는 있다.

지금 우리는 선지자(先知者)와 함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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