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코스닥 상장사인 '와이더플래닛(현 아티스트유나이티드)' 주가조작 의혹에 대해 본격 조사에 착수한 가운데 배우 이정재와 박인규 전 위지윅스튜디오 대표 등 와이더플래닛 인수 세력들이 연루된 '래몽래인(현 아티스트스튜디오)' 경영권 분쟁 이슈가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시장에서는 이들이 와이더플래닛 인수에 투입한 자금을 그대로 다시 빼내 래몽래인 경영권을 인수한 뒤 경영진 불법 이슈로 거래정지 상태에 빠진 또 다른 코스닥 상장사인 '초록뱀미디어' 인수를 시도한 점에 꾸준히 의구심을 제기하고 있다.
회사들을 인수한 뒤 사업 확장이나 내실을 다지기보단 회사가 보유 중인 자금을 활용해 이른바 '돌려막기식'으로 M&A를 추진한 정황을 두고 자본시장 전문가들은 기업사냥꾼으로 의심될 소지가 있다고 지적한다.
9일 금융당국과 관련 업계 등에 따르면 이정재와 박인규 전 대표 등은 지난해 말 와이더플래닛을 인수한 직후인 올해 3월 코스닥 상장사인 드라마제작사 래몽래인의 경영권을 인수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이들은 당시 래몽래인이 실시한 290억 원 규모 제3자 배정 유상증자(발행신주 292만440주)에 참여해 경영권을 인수했는데 사명을 아티스트유나이티드로 바꾼 와이더플래닛 자금 180억 원과 이정재·박인규 전 대표 개인이 각 50억 원, 케이컬쳐제1호조합이 10억 원의 자금을 태웠다.
이로 인해 와이더플래닛 최대주주인 이정재는 개인 지분까지 포함해 래몽래인 지분 24.09%를 보유하게 돼 래몽래인의 최대주주 자리도 꿰찼다.
박인규 전 대표는 와이더플래닛에 이어 래몽래인 인수에도 이정재와 함께 손을 잡았는데 시장에서는 박인규 전 대표가 이정재에게 래몽래인 인수를 제안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앞서 위지윅스튜디오는 래몽래인 상장 전인 지난 2019년 7월 50억 원을 투자했다 이번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보유 지분 절반을 매각해 투자금 대비 4배 이상의 수익을 챙겼다.
이정재와 박인규 전 대표는 래몽래인 인수 직후 창업자인 김동래 전 대표에게 원영식 회장의 불법 행위로 거래정지 상태에 빠진 초록뱀미디어 인수를 제안했고 이 과정에서 김 전 대표의 반발에 부딪히면서 양측의 갈등이 시작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에 대해 김 전 대표는 언론 매체들과의 인터뷰에서 "이정재 측이 미국의 거대 엔터테인먼트사인 'CAA' 투자 유치와 배우 이병헌의 소속사이자 카카오그룹 계열사인 'BH엔터테인먼트' 인수 합병 건을 추진하겠다고 약속해 경영권을 넘겨줬으나 모든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다"며 "이정재 측이 갑자기 회사가 보유 중인 현금 200억 원으로 초록뱀미디어를 인수하자고 제안해 갈등이 시작됐다"고 주장했다.
김 전 대표는 지난 6월 계약 당사자 간의 구두 계약이나 약속도 이행돼야 마땅하다며 이정재와 박인규 전 대표를 서울강남경찰서에 사기 혐의로 고소한 상태다. 경찰에 따르면 담당 조사팀은 고소인과 피고소인 일부에 대한 조사를 마치고 오는 12일 양측 간 대질조사를 실시할 예정이다.
이와 관련해 본보는 앞서 김 전 대표의 주장을 확인하기 위해 BH엔터테인먼트 손모 대표를 상대로 이정재나 박인규 전 대표 측과 사업적인 내용을 협의한 사실이 있는지 여부를 확인했으나 손 대표 측은 "이정재와는 사업적인 이야기를 전혀 나눈 적이 없고 박인규 전 대표는 일면식도 없는 사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한편 박인규 전 대표 측은 김 전 대표를 사기와 무고 혐의로 경찰에 맞고소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이정재 측은 지난 10월 임시주주총회를 통해 아티스트유나이티드의 대표를 맡고 있는 이태성씨를 래몽래인 대표로 추가 선임한 상태다.
◆사업가로 변신한 톱배우들…뒷배엔 '세력'의 그림자
시장에서는 이처럼 이정재 사단이 연루된 일련의 기업 인수전들과 경영권 분쟁 이슈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사실 관계가 어찌 됐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스타급 배우들이 지저분한 구설에 휘말렸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정재 사단과 주식시장 작전 세력의 핵심으로 지목돼 온 원영식 전 초록뱀그룹 회장과의 관계를 둘러싼 다양한 의혹들이 쏟아지면서 투자자들을 불안에 떨게 하고 있다.
실제 초록뱀미디어는 이정재 사단이 와이더플래닛을 인수하기 전인 지난 2021년 8월 와이더플래닛의 160억 원 규모 신주인수권부사채(BW) 발행 당시 50억 원을 투자했다. BW는 일정 기간이 지난 뒤 미리 정해진 가격으로 신주를 인수할 수 있는 권리가 붙은 사채다.
초록뱀미디어는 해당 BW를 와이더플래닛의 주가가 장중 최고점을 찍은 지난해 12월21일 다음 날인 12월22일 전량 행사했고 행사가액은 1만8720원이었다. 2만 원이 훌쩍 넘는 주식을 1만8000원대로 매수한 것이다.
수상한 대목은 이 뿐만이 아니다. 이정재 사단이 인수하기 전 와이더플래닛 공동대표를 지낸 구모씨와 정모씨는 원영식 전 회장과 평소 관계를 유지하며 각종 사업들을 함께 진행해 온 인물들로 알려졌다.
아울러 초록뱀미디어에서 2006년~2009년, 2015년~2017년 감사를 지낸 김모씨는 2013년~2017년, 2018년~2020년 와이더플래닛 감사를 맡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김씨는 2015년부터 2017년까지는 초록뱀미디어와 와이더플래닛 감사를 겸임하기도 했다. 원영식 전 회장의 측근들이 경영에 관여해 온 회사를 이정재 사단이 인수한 것이다.
VC업계 관계자는 "회사 경영진들이 서로 겹친다고 해서 반드시 관계가 있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초록뱀과 와이더플래닛의 경우가)일반적이진 않다"며 "보는 시각에 따라 다양한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도 있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한편 1세대 '기업사냥꾼'으로 알려진 원영식 전 회장은 지난해 7월 가상화폐 거래소인 '빗썸' 관계사 주가조작에 관여한 혐의(자본시장법 위반 등)로 구속 기소됐다. 원영식 전 회장은 이 사건으로 초록뱀 그룹 내 모든 직위에서 물러났고 구속 6개월 만에 보석으로 풀려났지만 여전히 불구속 상태로 남은 재판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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