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양공(齊襄公)은 춘추시대 제(齊)나라의 14대 국군으로 아버지는 제희공(齊僖公)임.
세자 시절부터 이복 여동생 문강(文姜)과 불타는 밤을 보낸 것으로 악명이 높았음. 그 뒤에 기원전 709년 문강은 노(魯)나라 국군 노환공(魯桓公)에게 시집 가게됨.
그리고 국군이 되자마자 아버지가 아꼈던 사촌동생 공손무지(公孫無知)를 쫒아냄. 이에 공손무지는 이를 갈게됨.
그리고 나서 기원전 694년에 노환공에 제나라로 오는데 문강도 같이 옴. 당연히 문강은 제양공과 만나서 또 불타는 밤을 여러번 보내게 되는데, 그것이 노환공에게 적발됨.
화가난 노환공이 병력일 일으킬 준비를 하자 제양공은 아들(확실하지는 않음) 팽생(彭生)을 시켜서 접대하는 척 하며 노환공의 갈비뼈를 부러뜨려 죽임. 그러나 이후 시신 검사에서 갈비뼈가 부러진게 들켜서 노나라가 항의하자 자기 아들 팽생을 죽여서 무마시킴.
심지어 대부 연칭(連稱)과 관지보(管至父)를 국경에 1년 파병시켰는데, 1년이 지나도록 교체할 생각이 없었음. 결국 연칭과 관지보는 공손무지와 반란을 일으키게됨.
그사이에 제양공은 사냥을 갔다가 갑자기 누군가가 팽생의 복수를 위해 멧돼지 분장으로 덤벼들자 놀라서 신발한짝을 잃고 궁궐로 돌아왔는데, 이에 분노해서 도인비(徒人費)에 매 300대를 침.
그사이에 반란군이 들어오자 도인비는 놀랍게도 제양공을 숨기고 반란군에게 거짓 위치를 알려줌.
하지만 반란군은 끝내 제양공을 찾아내고 죽여버림. 그리고 공손무지가 국군이 됨.
이렇게 제양공은 온갖 막장 행보로 마지막에는 반란군에 의해 살해되었지만, 본인이 아끼는 사람에게는 잘해준 국군이었음. 그리고 그렇게 국군자리를 찬탈한 공손무지는 제양공보다 더한 실정으로 얼마안가 암살당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