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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배현진 피습사건, ‘배후’ 있나 없나

오주한

1960년 아사누마 이네지로 암살사건 연상

日, 17세 범인 엄중처벌하고 배후도 조사

裵 사건에 의문투성이… 철저히 수사해야

 

1960년 10월12일, 전 일본이 지켜보는 가운데 믿기지 않는 사건이 발생했다. 정치인 아사누마 이네지로(浅沼稲次郎‧생몰연도 1898~1960)가 생중계 연설 도중 17세 소년이 수차례 휘두른 흉기에 맞아 숨진 것이었다.

 

현장에서 체포된 범인은 극우로 포장된 테러리즘에 경도됐던 야마구치 오토야(山口二矢‧1943~1960).

 

오토야는 일본군 육군 소속인 부친 야마구치 신페이(山口晋平)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신페이는 마치 북한의 ‘절대존엄’ 교육과 비슷하게 천황(天皇‧일왕)에 대한 무조건적인 충성 등으로 오토야를 세뇌시켰다. 그런 환경에서 자라나던 오토야는 극좌에서 극우로 전향한 정치인 아카오 빈(赤尾敏‧1899~1990)의 사상을 접하고서 그의 대일본애국당(大日本愛國党)에 1959년 입당했다.

 

오토야는 전형적인 정치깡패로 활동했다. 대일본애국당에서 그는 빈의 연설에 누군가 야유 보내거나 하면 덤벼들어 폭행하는 등의 역할을 맡았다. 입당 반 년만에 오토야가 경찰에 체포된 횟수만 해도 10차례 안팎이었다. 1959년 12월에는 징역형의 집행유예 4년이 선고되기도 했다.

 

그런데 오토야는 이네지로 암살 몇 달 전인 1960년 5월 ‘돌연’ 대일본애국당을 탈당했다. 또 범행 며칠 전인 10월4일엔 정말 ‘공교롭게도’, 누가 준 것인지 정말 집에 보관돼 있었던 것인지 모르나, 자택에서 일본도(日本刀)의 일종인 와키자시(脇差)를 찾아냈다. 와키자시는 날 길이 40~50㎝의 날카로운 흉기다.

 

교복 안에 와키자시를 숨긴 오토야는 1960년 10월12일 도쿄(東京) 히비야공회당(日比谷公会堂)에서 열린 3당 합동연설회에 참석했다. 당일 오후 3시께 이네지로의 연설이 시작되자 오토야는 단상으로 뛰어올라가 세 차례에 걸쳐 이네지로를 향해 흉기를 휘둘렀다. 그것도 오토야‧이네지로가 쓰고 있던 안경이 모두 날아갈 정도로 작정하고 체중을 실어 덮쳤다.

 

길이 수십㎝의 날붙이가 몸을 관통한 이네지로는 결국 병원 이송 중 사망했다. 모든 과정은 NHK를 통해 전 일본에 생중계됐다. 범행 순간을 생생히 촬영한 마이니치신문(每日新聞) 기자 나가오 야스시(長尾靖‧1930~2009)의 사진은 전 세계로 타전돼 충격을 던졌다. 이 사진은 1961년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오토야는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그는 ‘미성년자’였으나 테러범‧살인범이라는 점에 따라 실명(實名)이 언론에 공개됐다. 또 도쿄 소년감별소 2호실에 수감됐다.

 

당국은 ‘배후’도 수사했다. 가장 유력한 건 단연 아카오 빈이었다. 빈은 오늘날 일본 극좌‧극우단체 특유의 가선차(街宣車‧가두선전차) 문화를 처음 고안할 정도로 극단적‧폭력적 성향의 문제아였다. 빈은 “오토야는 이미 대일본애국당 당원이 아니다. 나완 아무 관계가 없다”는 취지로 혐의를 부인했다.

 

빈에 대한 수사는 오토야가 ‘돌연’, 정말 스스로 생을 마감한 건지 누군가가 입막음 차원서 제거한 건지는 모르나, 옥중(獄中)에서 극단적 선택을 함에 따라 흐지부지됐다. 오토야는 지급된 치약으로 벽에 ‘칠생보국 천황폐하만세(七生報國 天皇陛下万歲)’라는 글을 남긴 채 목 맨 상태로 발견됐다. 감별소 2호실에는 오토야 외에 두 명이 더 있었다.

 

정상적 사고방식의 정치인‧시민들은 입 모아 오토야를 비판했다. 반면 극단적 단체들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 오토야를 열사(烈士)로 칭송했다. 이들은 지금까지도 매년 오토야가 숨진 11월2일에 오토야 묘소에 모여 추모제를 열고 있다고 한다.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 피습사건에 온 국민이 경악하고 있다. 범행현장에서 검거된 피의자 A는 마치 사건을 계획이라도 한듯 범행장소를 배회하다가 배 의원과 마주치자 두 차례나 신원을 확인했다 한다. 이후 배 의원이 쓰러졌는데도 마치 작정하고 ‘살해’하려는 듯 머리만 노려 둔기로 십 수차례 내리쳤다. 경찰 진술에서 A는 자신이 ‘촉법소년’이라고 태연히 주장했다고 한다.

 

일본은 천하의 흉악범인 17세 오토야에게 최소한의 자비도 베풀지 않았다. 또 17세 소년이 저토록 잔혹한 범죄행각에 대한 자신감‧도구를 어떻게 얻었는지도 철저히 수사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해야 한다. CCTV에 범죄과정이 모두 촬영된 A는 살인미수 혐의가 명명백백(明明白白)한만큼 엄벌에 처해야 한다. 또 평범한 청소년이 어떻게 정치인의 개인일정‧동선(動線)을 저토록 정확히 꿰고 있었고 어떻게 살인미수라는 흉악범죄 동기(動機)를 부여받았는지, 즉 ‘배후’는 없는지 철저히 살펴야 한다. 만에 하나 배후가 있다면 오토야처럼 의문사(疑問死) 당하지 않도록 A 신변도 엄중히 관리해야 한다.

 

몸도 마음도 충격에 휩싸였을 배 의원의 조속한 쾌차(快差)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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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한 前 여의도연구원 미디어소위 부위원장 [email protected]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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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INDEX
    2024.01.26

    가능한 모든 시나리오에 대해 조사하고 대비하는것은 옳은일입니다. 행위자의 밝혀진 행적으로 미루어볼때 사주보단 진짜 정신이 모자란 사람같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명백백해야합니다

  • 서울동아리
    2024.01.26

    옳소

  • 풀소유

    일부에서는 피의자를 단순한 정신이상자로 몰아가는데 다른 가능성도 열어두고 철저히 수사해야 하겠습니다.

  • 오주한
    작성자
    2024.01.27

    요즘 뭔가 세상에 난독증호소인들이 청꿈 외부에 일부 계시는 듯해서 부연합니다.. 혹시라도 배후가 있다면, 그런 게 있다면, 김정은위인맞이호소인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병상 누워 계신 분 앞두고 참 무슨 추측하는 게 그렇긴 합니다만, 배 의원께서도 범인 혹은 범인들 엄벌 원하시는 걸로 압니다. 꼭 배후 엄벌 받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