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그대로 지극히 개인적 소견 담은 담론
병사 실종에 “中 침략 찬스” 외친 일본군
민주당 일각, 시대착오적 음모론 중단하길
1937년 7월 발생한 루거우차오 사건(蘆溝橋事件‧노구교 사건)은 중일전쟁(中日戰爭) 도화선이 된 사건이다. 수천만명의 사상자를 야기한 일제(日帝)의 대륙침공 발단은 ‘급똥’을 참다못해 수풀로 내달린 한 일본군 병사였다.
20세기 초 일제는 지금의 중국 동북3성 지역에 괴뢰국 만주국(滿洲國)을 세우고서 대륙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당초 국민당 장제스(蔣介石‧장개석)는 마오쩌둥(毛澤東‧모택동)의 공산당을 먼저 제압해 통일을 이룬 뒤 일제에 대항한다는 방침이었다. 그러나 대륙에서 반일(反日)정서가 거세지고 설상가상 시안사건(西安事變)까지 벌어지자 공산당과 2차 국공합작(國共合作)을 맺고 일제에 공동대응하기로 했다.
시안사건은 중화민국 동북군(東北軍) 총사령관 장쉐량(張學良‧장학량)이 1936년 12월 반란 일으켜 장제스를 억류한 뒤 국공합작을 요구한 사건이었다. 당시 중국은 명목상으로는 20세기판 전국시대(戰國時代) 격인 군벌시대(民國軍閥)가 종식됐으나 중화민국에 승복한 여러 군벌들은 여전히 중앙정부 통제를 제대로 받들지 않았다. 장쉐량만 해도 중앙정부가 임명한 사령관이 아닌 동북군 전신(前身) 봉군(奉軍)의 창설자 장쭤린(張作霖‧장작림)의 아들이었다.
물론 중일전쟁 내내 일본군과 싸운 건 국민당뿐이었다. 마오쩌둥이 한 일은 일본과 투닥투닥하는 척 하면서 장제스 뒤통수 때리기였다.
끝내 국민당을 대만으로 내쫓고 옥좌(玉座)에 앉은 마오쩌둥은 1964년 7월10일 방중(訪中)한 일본사회당 대표단이 과거 침략을 사죄하자 “미안할 것 없다. 당신들 황군(皇軍)이 없었다면 우리가 정권을 빼앗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2008년 중국공산당 기관지 베이징일보(北京日報)는 ‘일본 침략에 감사한다는 마오쩌둥 발언을 정확히 이해하자’ 제하 기사에서 마오쩌둥의 습관적 표현이라면서도 발언 자체는 부인하지 않았다.
아무튼 공산당과 일시휴전한 장제스는 쑹저위안(宋哲元‧송철원)이 이끄는 국민혁명군 29군을 베이핑(北平‧지금의 베이징) 인근에 배치했다. 이들과 대치한 일본군은 타시노 간이치로(田代皖一郎)의 지나(支那‧중국)주둔군이었다.
두 군대가 노구교를 사이에 두고 서로를 노려보던 1937년 7월7일 밤, 돌연 한 발의 총성(銃聲)과 함께 시무라 기쿠지로(志村菊次郎‧생몰연도 1916~1944)라는 한 명의 일본군 병사가 실종되는 사태가 빚어졌다. 처음엔 발칵 뒤집어졌던 일본군 지휘부는 간지(奸智)를 퍼뜩 떠올렸다. “안 그래도 쳐들어갈 명분이 없었는데 잘 됐다. 중국이 먼저 발포(發砲)해 우리 병사를 암살한 걸로 하고 이 기회에 밀고 들어가자”
들뜬 일본군 수뇌부는 실종 병사를 찾는 척 하는 한편 즉각 중국군 지휘부에 사람을 보내 “배후가 너희 아니냐” 따지며 진상규명을 요구했다. 심지어 수풀 사이에 숨어 거사를 무사히 치른 기쿠지로가 두루마리 휴지 든 채 실종 약 20분만에 복귀(!)했음에도 “기쿠지로 따위는 이미 죽었다. 오야붕이 그렇다고 하면 그런 거야!” 부르짖었다. 어리둥절함도 잠시, 화장지 내려놓은 기쿠지로가 동명동인(同名同人)의 기쿠지로를 찾기 위해 수색대에 합류하는 웃지 못 할 장면도 연출됐다.
국민당은 “기쿠지로 따위 우리는 모른다” “암살사주한 적 없다” 필사적으로 해명했다. 사실 팔로군(八路軍) 견제도 버거운 국민혁명군 지휘부가 미치지 않는 이상 일본군 사살을 지시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그러나 일본군의 태도는 이미 ‘답정너(답은 정해졌고 너는 대답만 하라)’였다. 양 측 협상이 한창이던 그 때 두고두고 회자되는 문제의 인물 무다구치 렌야(牟田口廉也)는 중국군을 향해 발포했다. 관동군(關東軍) 사령관 우에다 켄키치(植田謙吉)와 참모장 도조 히데키(東條英機)는 “확전(擴戰)은 없다”는 고노에 후미마로(近衛文麿) 내각총리 입장을 무시하고서 노구교로의 대규모 파병을 단행했다.
‘급똥’에 따른 한 병사의 정치테러 오해 사건은 일본군 수뇌부의 답정너 우격다짐에 의해 미국‧소련 등 국제사회가 참전(參戰)하는 약 8년 간의 중일전쟁으로까지 번졌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흉기피습이라는 불미스러운 사건을 두고 민주당 일각에서 이상한 조짐이 일고 있다. 피의자 김모 씨가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민주당으로 위장입당한 인사이며, 따라서 이 대표 피습사건은 국민의힘에 의한 정치테러 아니냐는 뉘앙스의 주장이 흘러나오고 있다.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이 대표 정치테러 사주로 국민의힘이 얻을 이득은 전무(全無)하다. 우선 이 대표가 큰일을 당할 경우 보수정당이 사골국처럼 줄기차게 우려먹을 수 있는 대북송금‧대장동 의혹 등은 일거에 묻히게 된다. 이 대표가 부상당한다 해도 보수정당 입장에서 총선을 앞두고 유의미한 무언가가 나와야 할 이 대표 재판 지연은 불가피하다. 게다가 지금은 정치깡패 날뛰던 혼돈의 해방직후가 아닌 2024년이다.
때문에 상식인이라면 누구나 이 대표 사건은 그저 피의자 개인범행일 가능성이 다분하다고 보고 있다. 사회 부적응자에 의해 벌어진, 결단코 있어선 안 되며 그나마 이 대표가 천우신조(天佑神助)로 목숨 건져 불행 중 다행인 살인미수 사건으로 보고 있다.
만약 민주당 일각이 중일전쟁 때 일본군과 같은 시대착오적 답정너·음모론을 꿈꾼다면 당장 중단하길 바란다. 누군가의 고통을 정략적으로 이용하려는 듯한 태도는 대한민국 정치를 구시대로 후퇴시키는 행위이며, 정신적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을 이 대표에 대한 예의도 아니다.
오주한 前 여의도연구원 미디어소위 부위원장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