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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北 생수통에 불빨대 꽂힌 까닭

오주한

카무플라주 통해 유사시 南 궁지 몰려는 속셈

위장 위력 막강…서울불바다 前 대책 마련해야

 

대자연의 생존비결 ‘위장술’

 

2003년작 헐리웃영화 ‘마스터 앤드 커맨더 : 위대한 정복자’는 19세기 초 나폴레옹전쟁(Napoleonic wars‧기간 1803~1815)이 배경이다. 제76회 아카데미시상식 촬영상‧음향편집상 수상한 영화에는 한 가지 특기(特記)할만한 전술이 나온다. 위장(Camouflage‧카무플라주)이다.

 

함포 28문, 선원 197명의 영국해군 소속 서프라이즈호(HMS Surprise)는, 태평양에서 영국상선 대상으로 노략질 일삼는 프랑스 사략선(私掠船) 아케론호(Acheron) 요격임무를 띠고 파견된다.

 

허나 미국 보스턴에서 건조된 아케론호는 기존 함포(艦砲)로는 도저히 뚫을 수 없는 오크(Oak)나무 장갑, 뛰어난 기동성, 전열함(戰列艦) 특유의 다단(多段)함포로 무장하고 있었다. 게다가 사거리 또한 서프라이즈호보다 월등했다.

 

자연히 서프라이즈호는 싸우기는커녕 달아나기 바빴다. 아케론호에 이함(離艦)해 백병전 벌이기도 전에 서프라이즈호는 격침될 게 뻔했다. 그러던 어느 날 서프라이즈호 선장은 군의관(軍醫官) 격 인물이 무인도에서 가져온 나뭇가지 하나를 구경한다. 돋보기로 들여다 본 결과 이 물건은 눈‧입‧더듬이가 달린 곤충, 즉 나무로 위장한 ‘대벌레’였다.

 

“자연에서 해군전술 아이디어 얻게 될 줄이야” 이마를 탁 친 선장은, 그 즉시 유니언 잭(Union Jack) 내리고 장병들을 포경(捕鯨) 선원복으로 환복(換服)케 하는 등 소위 ‘군바리 냄새’를 모조리 지웠다.

 

미끼를 문 아케론호는 약탈을 위해 신나게 추격했다. 겁먹은 척 달아나던 서프라이즈호는 기습적 일제(一齊) 함포사격으로 아케론호 주돛(Mainsail)을 부러뜨려 정선(停船)시켰다. 이후 그 주위를 돌면서 함포로 신나게 두들겨 패다가 이함해 프랑스 측 항복 받아냄으로써 끝내 승리를 쟁취했다.

 

사실 지구상 최고의 위장 전문가는 ‘자연’이다. 카무플라주 대명사 격인 카멜레온(Chameleon)은 시시각각 변화하는 화려한 색채로 유명하다. 인도네시아 연안에 서식하는 흉내문어(Mimic octopus)는 바다뱀‧넙치 등 무려 40가지 타 생물로 변신할 수 있다. 이들 동‧식물은 위장을 통해 때로는 피식자(被食者)로서 생존하고, 때로는 포식자로서 군림한다.

 

군사 교리(敎理) 응용된 위장술

 

이처럼 있으면서도 없는 척 하거나 제3의 무언가로 둔갑(遁甲)하는 위장은 매복‧기습의 필수조건이다. 위장은 그 효과만큼이나 유구한 역사 지니고 있을 정도로 동서양 용병가(用兵家)들 사랑을 듬뿍 받았다. 고대에는 트로이의 목마(Trojan horse)가 유명하다.

 

근세(近世) 들어 위장을 애용한 나라는 미국이다. 독립전쟁 등에서 미니트맨(Minutemen) 즉 미국 민병대들은 대영제국 건설 주역 레드코트(Redcoat)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레드코트는 조직력에서 상당한 우위 점했으며, 따라서 전열보병(戰列步兵) 일제사격에서 압도적 화력 내뿜었다.

 

레드코트들이 죽음을 두려워 않고 질서 정연히 진군(進軍)하며 정교한 화망(火網)을 구축했다면, 미니트맨은 순식간에 대열이 무너져 죽고 달아나는 게 다반사였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생몰연도 1732~1799)의 초창기 전략도 ‘도주’였다. 넓디넓은 북미대륙 장점 이용해 영국군이 지쳐 나가떨어질 때까지 ‘뒤로 돌격’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미국이 영국과 정면대결하는 건 불가능했다. 미니트맨의 유일한 강점은 사냥 등으로 다져진 ‘정밀사격’ 실력이었다. 이에 샤프슈터(Sharpshooter)들은 녹색 상하의 등을 착용한 채 나무에 올라 숨어 있다가 지나가는 레드코트 장교들만 골라 쐈다. 영국군 사기가 급락하는 등 효과는 워싱턴의 상상 이상이었다.

 

“식민지 천민(賤民)에게 대영제국 귀족(장교)들이 죽어나가다니” 영국 왕실은 크게 분노했다. 허나 전장에선 뭐니 뭐니 해도 살아남는 게 최고인 법, 일선(一線) 레드코트 상당수도 쓸데없이 눈에 잘 띄는 빨간 군복 더럽혀 카키(Khaki)색으로 만드는 등 위장신드롬에 이내 편승(便乘)했다. 누구나 알다시피 독립전쟁은 미국의 믿기지 않는 승리로 끝났다.

 

현대적 위장전술 발전시킨 곳은 나치독일(Nazi Germany) 특히 악명 높은 무장친위대(SS)다. 가학적 독재자에 대한 충심(忠心)으로 뭉친 SS는 개인단위가 아닌 부대단위로 위장복을 사용한 첫 군사집단이다.

 

SS에게는 봄‧여름‧가을‧겨울 등 모든 계절에서 제 모습을 자연에 동화(同化)시킬 수 있는 네 종류의 전투복이 지급됐다. 폭설(暴雪)에 따른 눈밭과 사람을 거의 구분할 수 없게끔 하는, 북극여우처럼 새하얀 색상의 설상(雪上)위장복이 대표적이다. 우리나라 예비군 등에 공급되는 소위 ‘개구리 군복’ 원형(原型)도 나치가 개발했다. 위장복은 저격수들의 필수품 길리슈트(Ghillie suit) 등으로 진화해 지금도 세계 각 국에서 쓰이고 있다.

 

위장이란 개념은 군복을 넘어 타 분야에도 응용됐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은 고스트아미(Ghost army)란 특수부대 운용했다.‘화가‧패션디자이너‧사진작가’ 등으로 구성된 이들 임무는, ‘고무탱크’ ‘고무대포’ 등 만들어 배치하고 나치독일을 기만(欺瞞)하는 것이었다.

 

나치는 “저기가 미군 주공(主攻)방면인가 보다” 착각하고서 총부리를 그리로 돌리기 일쑤였다. 그 사이 ‘진짜 미군주력’은 다른 길로 나치 전선(戰線) 뚫고 들어가는 전격전 벌여 독일군을 포위하곤 했다. 미군병사 네 명이 30톤 무게의 M4 셔먼(Sherman) 탱크를 ‘번쩍’ 들어 올리고 있는 사진은 ‘밀덕들’ 사이에서 매우 유명하다.

 

유사시 우리 기다릴 양자택일

 

지난 9일 자정(0시)부터 정권수립기념일(9‧9절) 맞아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열병식(閱兵式)에 눈길 끄는 장면이 등장했다고 한다. 우리 예비군 격인 노농(勞農)적위군 행진 사이로 웬 ‘생수·시멘트 트럭’ 등이 등장한 것이었다.

 

‘룡악산 샘물’ 공장트럭 문이 열리자 안에선 무장병력이 나타났다. 트럭에는 유사시 우리 수도권에 막대한 인명피해 끼칠 방사포(MRL)가 장착됐다. 조선중앙TV 아나운서 리춘희는 이 희한한 부대 가리켜 “민간무력 위장방사포병 구분대”라고 소개했다. 주석단 특별석 중앙에 앉은 김정은은 딸 김주애와 함께 이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북한은 종종 이상한 짓을 하곤 했다.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에선 ‘사다리전법’이라는 전무후무(前無後無)‧공전절후(空前絕後)의 기행(奇行) 벌였다. 해당 전법은 평균 신장 165㎝였던 북한대표팀이 장신(長身)의 서양선수들과의 헤딩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고안한 것이었다. 이견(異見)은 오가지만, 여러 선수들이 일렬로 서서 맨 앞 공격수 허리를 잡고 들어주는 게 전법 내용인 것으로 알려진다.

 

문제는 ‘이러한 짓거리’가 효과를 낸다는 것이다. 잉글랜드 월드컵 본선(本選)에서 북한은 1승 1무 2패로 전체 순위 8위에 랭크되는 파란(波瀾) 일으켰다. 우리 대한민국은 본선 진출 문턱도 넘지 못했던 터라 충격은 더더욱 컸다.

 

이번 방사포만 해도 트럭에 빨대 꽂듯 방사포 매달고, 화물칸에 사람 넣어놓을 것이라곤 누구도 생각지 못했다. 외견(外見)만 보면 이 엉뚱한 아이디어에 실소(失笑) 금치 못하나, 막상 유사시 저 방사포가 불을 뿜으면 우리로선 대응방안이 마땅치 않다는 게 문제다.

 

저게 정말 생수트럭 등인지 테크니컬(Technical·급조군용차량)인지 몰라 우리 군(軍)이 머뭇거리게 되면, 킬체인(Kill chain‧북한의 대남 공격징후 시 선제타격)은 무용지물(無用之物)이 된다. 그렇다고 해서 막 타격했다가 정말로 민간인‧생수‧시멘트 실은 트럭으로 드러나면, 우리는 “저 남조선 간나들이 전쟁범죄 일삼네” 식의 북한 국제여론전(輿論戰)에 고스란히 휘말리게 된다.

 

연평도포격 등 민간인 목숨도 파리 목숨 여기는 북한정권이라면 이는 충분히 하고도 남을 ‘짓거리’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서울불바다 또는 민간인학살 오명(汚名) 중 양자택일(兩者擇一)해야만 한다. 군의 조속한 대응방안 마련 그리고 대민(對民) 우려 불식(拂拭)을 촉구한다. 군은 지금 한가하게 내부 정치질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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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한 前 여의도연구원 미디어소위 부위원장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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